수수한 女人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우리 집사람하고 매우 친한 베스트 프랜드가 있다.
회사에 입사해서부터 줄곧 친한 친구인데 사실은 나이가 두어 살 적다. 그는 내로라하는 사학의 명문 S대 사학과 출신으로 한국통신에 근무하다가 명퇴를 하고 어려운 부동산자격증을 취득해 현재 서울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번이었다. 무덥던 팔월 중순 휴가를 얻어 춘천으로 발길을 돌려 찾아온 게 아닌가! 하룻밤을 거하고 맑고 수량이 풍부한 화천길목 지암리 오누이 가든에 가서 종일 취하고 돌아갔다. 물론 우리 집에서 일박을 하면서 조용한 집안은 순간 살아 꿈틀거렸다.
친구는 독신이다. 50대 후반인데 처녀로 군림한다. 독신하면 일단 남성들의 달콤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아내가 자주 전화도 걸고, 걸려오고 해서 우연 중에 친구를 관찰해 보았다. 명문대학 출신이란 자부심 하나로 평생을 노젓는다.
한국통신에서 과장을 중임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 외모이다. 외모란 옷차림, 얼굴, 걸음걸이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닌가! 신은 인간에게 평등하게 모든 것들을 하사하셨다. 머리가 명석하면 인물이 별로이고, 인물이 충줄하면 머리가 별로이다. 외모가 무슨 대수냐고 반발할 자가 있겠지-.
요즘 우리나라는 특히 외모에 서비스, 관광, 의료 등이 집결되어 가치가 한껏 상향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성형수술이 봇물을 이룬다. 쌍꺼풀은 물론이고 콧대를 세우고 턱을 깎는다. 우리 집사람처럼 돌부처도 아니다. 마음이 활달하다. 건강하다 머리가 명석하다. 연색색하다.
그런데 깎은 밤 같지 않다.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털복숭이랄까 심히 자연 그 자체이다. 좋은 화장품을 싸 발라도 컴프라치가 되지 않는다. 별종이다. 선글라스를 쓰면 그래도 조금은 보완되지만, 그의 맨 얼굴은 아무리 명문대 수재라도 남성의 눈길이 집중되기 어려운 게 솔직한 표현이다.
반드시 미인이 아니라도 좋다. 옛말에 곧은 나무도 뿌리는 굽어있다라고 했다. 외모만 번듯해도 내면이 굽어 있다는 말이다. 또 흔히 쓰는 빛 좋은 개살구,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고,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첫인상이 명당, 건너다 보면 절터,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들이 외모를 받쳐준다. 여자는 촛불이 꺼지면 모두 같더란 속담도 설득력이 없다. 옛말에 남자는 성과 그 외의 것을 논하지만, 여자는 오직 성이라고 해 외모를 꼽는다.
이 베스트 프랜드의 살아오는 방식 역시 유별난 인생관도 아니다. 정제된 언어로 고백하는 것은 50대 초반까지 어지간만 해도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인연이 없자, 학력을 콧대삼아 가치를 상향 조정했단다. 그래 혼자 살자-.
여자는 예쁘지 않아도 된다. 귀여운 곳만 만들면 된다. 광염(光艶) 의 여인이 아니라도 어딘가, 수수하면 된다. 너무 예쁜 절대가인(絶代佳人)이면 남편 입장에서 불안하다. 미인은 남이 보는 입장이다. 미인박명이니 미인이 끄는 힘은 황소보다 세다느니, 예쁜 여자와 유리잔은 깨지기가 쉽다고 한다. 그리해서 그저 여자는 숟갈 한단 못 세는 사람이 오히려 살림을 잘한해, 농경사회 때야 먹혀 들어가겠지만 요즘 현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수렴하기 힘든 문구임에 틀림없다.
현명한 남자는 미인은 사실상 두려워한다. 외모만 치장하거나 살림이 뒷전인 경우가 높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늘 입을 옷과 장신구만 신경을 배가한다. 여자란 참 요상하다. 비교를 잘하고 남을 칭찬하려 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옛말에 얼굴이 아름다우면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다(美色不同面)고 했을까!
언젠가 옛 소양극장 뒤편으로 오르면 이름조차 잊어버린 안과병원이 있다. 여자가 원장이다. 훤칠한 키에 양귀비 같은 미인이다. 참으로 놀랐다. 신은 왜 이리도 공정치 못할까! 의대를 나오도록 명석한 머리도 주고 미모도 수려하고-.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나올 때 장난기일까 쪽지에 신은 공평하지 않습니다란 글을 간호사에게 전하도록 한 게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요즘 외모가 지상과제처럼 대두되고 있다. 며칠 전 이용식 개그먼이 외동딸과 함께 퀴즈풀이에 나온 적이 있다. 참으로 뚱뚱한 외모가 그의 컨셉인 이용식, 그저 곁에만 있어 건강하라는 아빠의 30대 딸은 예쁜 얼굴에 적당한 몸매라 한층 돋보이는 게 아닌가! 그 프로에서 딸이 준 교훈은 30킬로 몸무게를 빼고 나오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딸은 복스러운 입술로 일갈한다. 요즘 텔레비전을 틀면 그녀 말로 말라깽이들만 나와 우리나라 미모의 척도에 큰 문제라고 소리친다. 순간 박수를 보냈다. 동감-.ㅎ 우리 막내도 그렇다. 얼마나 비만퇴치에 고심하였으면 그럴까! 물론 비만은 만병의 척도지만 ㅎ 나의 경우 막내딸을 곁에서 보면 사뭇 안쓰럽다. 더하기는 잘 하는데 빼기를 못하기에-.
바야흐로 현대 21세기는 외모지상주의가 틀림없다. 강원랜드에 근무하는 큰딸이 귀띔해 준다. 몸 때문에 적게 먹고 늘 힘없이 살아간다고 ㅎ, 그 이면에 더 처절한 것이 숨어있으리라. 전쟁이다. 몸매 관리, 비만퇴치를 위해 요즘 여성들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광수 작가는 일찍이 미인의 조건을 다양해 갈파했다. 체격미, 동작미, 용모미, 음성미, 표정미, 취미, 정신, 쾌활 열정, 자비심으로 등을 통틀었다.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 여자와 포도주는 남자의 판단력을 망각하게 한다고 했다. 아니 풀무요, 용광로라고 함석헌옹이 말했다. 여자가 남자의 방향을 밀고 나가는 여존남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주관적이겠지만 착한 심성에 수수한 얼굴이면 착한 심성을 합쳐 최고가 아닐 수 없다.
떨잎이 이제 질서 없이 대지 위를 덮으면서 가을은 한껏 깊어 가리라. 무슨 죄목인지 캄보디아 학살 때처럼 얼굴을 뒤집어 씌워진 수수가 오늘 아침에 가보니 참수를 -. 그래서인지 대추가 절반은 붉어 흥분, 안달이다. 대룡산에 간밤에 누군가 구름을 한덩이 중턱에 띄워놓고 갔다. 깊어가는 추일(秋日)이다.(끝)9/7최근작
첫댓글 여인에게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토끼가 절구방아찧는 보름달같은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