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점의 미성년자 중노동(조선일보 잠입취재)

[한결]

취재메모/학교배달 뒷이야기  2004/09/15 23:48	추천 0     스크랩 0
9시 30분, 라운드를 대걸레로 닦는 걸로 나의 업무는 시작됐다. 오늘은 라운드를 나 혼자서 다 담당했다. 바닥을 쓸고, 닦고,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닦고, 유리를 닦고, 화장실을 체크하고. 매니저가 나를 부를 때까지만 해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덜깨 “어서오세요 ***입니다”라고 해야 할것을 “어서오세요 ####입니다”라고 한 것 외에는. (둘다 제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 이름인데 바꿔 얘기를 한 것이죠. 이런 실수는 그 후에도 몇번 계속 됩니다..^^;;) 매니저는 박스를 가르키며, 교복입은 학생들을 따라 가라고 했다. 그때 시각이 오전 11시 30분쯤.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단체주문을 한것이다. 당황해하는 내게 “교문까지만 갔다주면 된다”고 했다. 차를 타고 배달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 일하는 남자애와 박스를 하나씩 들고 걸어서 가는 것이었다. 더러운 노란색 옷을 입고 노란색 빵모자(?)까지 쓰고 밖을 다가다니 코미디였다. 아니 비극이었다. 집근처에서 먼 곳으로 일자리를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은 근처 **고등학교 학생. 매장에서는 걸어서 5분거리였다. 나와 같이 가는 남자애는 밀가루 범벅이 된 남색 옷을 입고 앞장서 걸어갔다.(나의 옷보다 더 꼬질꼬질했음) 가는 길은 시장이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최악이었다.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나중에는 팔이 너무 아팠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남자애가 모르고(인지 알고 그랬는지는-.-) 더 무거운 상자를 나에게 준 것이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남자애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한달동안은 뒤에서 청소만 죽어라 했다고 한다. 요즘은 내내 손으로 닭조각을 씻고 밀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튀기는 일을 한다. 오늘은 비스켓모양을 제대로 못 만들었다고 혼이 났다. 닭을 만드는 곳은 냄새가 심하지 않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참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함. 30분쯤 후 더 끔찍한 일이 나에게 닥쳤다. 매니저가 배달에 하나가 빠졌다며 나에게 작은 비닐봉투를 건넸다. 3학년 11반에 가져다 주라는 것이다. 황당했다. 좀 전에는 교문앞에서 여자애들에게 상자를 건넸는데 이번에는 교문을 통과해서 지나갔다. 심지어 이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붙어있었다. 다양한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쳐다봤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는 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던 선생님도 심지어 나에게 한마디 했다. “그 속에 소프트콘있는거 아냐” -.-+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며 물어봤다. “하나도 배달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수근덕거리기도 했다. 다 들렸지만. “저게 맥도날드냐, KFC냐” “롯데리아 아냐” “어느반에서 시킨거야? 따라가서 얻어먹자” 애들도 이런 배달을 가끔 한다고 합니다. 고등학생과 나이차이가 꽤 있는 저도, 그리고 나름대로 얼굴이 두껍다고 자부하던 저도 꽤나 민망한 상황이었습니다. 또래애들에게 배달을 해야 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그 아이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미성년 노동자들] ① 일, 노동, 고역
패스트 푸드점'McJob' 미성년 노동자들
“밥은 언제 먹어요?” 쉴틈 없는 중노동

신은진기자 momof@chosun.com

입력 : 2004.09.15 18:31 12' / 수정 : 2004.09.16 06:13 43'

	▲ 패스트푸드점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는 신은진 기자. 초보들은 청소, 쓰레기통 정리 등'막일'에 속하는 일을 한다. / 황정은기자
	관련기사 - 청소년 실업률 15%… 식당 ‘알바’ 29%

“밥은 언제 먹어요?”

패스트푸드점 ‘알바’(아르바이트 직원의 줄임말)는 이런 말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오후 2시30분. 매니저(상급 정규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4명(고교생 1명 포함) 등 5명이 100명 가량 손님을 치렀지만 점심을 먹으라는 지시가 없었다.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경험 많은 고3 직원 C(18)군의 충고 그대로였다. 매니저는 “교대할 사람이 와야”라고 했다. “언제 오느냐”고 묻자 “3, 4시쯤 돼야 오겠지?”라고 답했다. “애들(미성년 직원)은 지시가 없으면 안 먹는 날도 있어요. 아니면 일 끝나고(오후 4시 이후) 먹거나.” C군의 설명이었다.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인 이 점포는 점장을 포함한 전체 25명 직원 중 정규직원 3명을 제외한 22명이 시급(時給)을 받는 아르바이트 직원. 그 중 17명(전체 직원의 68%)이 미성년 고교생이다.

우리는 점장이나 매니저 허락이 있어야 재활용품·비품을 쌓아둔 창고에서 15분 동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5분)을 빼면 실제론 10분. 식사 도중 “언니, 시간 지났어요”란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들은 “몇 번 체하고 나니 빨라졌다”고 경험담을 얘기했다. 근로기준법은 휴식시간을 30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은 오전 9시30분 시작됐다. 하지만 급료 산정이 시작되는 공식 출근 시각은 오전 10시. 패스트푸드점에선 늦어도 15분 전(9시45분)까지 나오는 것이 불문율이다. 식사시간 대신 출근 전에 15분 더 일하라는 뜻이리라.

	▲ 밤 11시가 넘은 시각. 고교생 직원 2명이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 패스트푸드점은 밤 11시30분까지 영업을 계속한다. 밤 10시 이후에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 황정은기자

라운드(또는 플로어:손님 식사 공간)를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로 닦고, 160개에 달하는 의자를 닦고 화장실 정리를 끝내는 시각은 오전 11시30분. 점장의 지시로 가로 50㎝ 정도의 음식을 담은 상자 2개를 C군과 나눠 들고 인근 학교 정문까지 걸어서 배달을 갔다. 돌아오자 이번엔 매니저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음식 한 개가 빠졌으니 3학년 11반 교실까지 배달하라”는 것이다.

다시 전등갓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컵과 컵뚜껑, 빙수 컵, 커피 컵, 음식물 박스, 샐러드통 등을 분리수거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을 닦자 곧장 “언니 뭐하는 거예요?”란 질책이 날아왔다.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다.

내가 청소만 하듯 다른 직원도 일이 정해져 있다. 고2 J(17)양은 종일 계산대에 서서 주문을 받는다. 고3 C군은 종일 치킨을 튀기거나 비스켓을 만든다. J양은 “내내 서 있으니 다리가 붓고 너무 아파서, 처음엔 자다가 쥐가 나서 잠을 깬 적도 있다”고 말했다. J양이 종일 반복하는 말은 이렇다. “손님 주문하신 내용은 ○○입니다. 맞으세요?… 제휴카드나 할인카드 있으세요?… 드시고 가실거예요?… 가지고 가시면 컵 보증금 100원을 더 내셔야 합니다.”

‘시작조’(組·낮 근무자) 일을 마치는 시각은 오후 4시. 교대자가 나오지 않을 때는 이런 상태로 밤 12시까지 일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의 실태를 좀더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치킨점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오후 6시에 ‘마감조’(組·밤 근무자) 근무가 시작되는 햄버거 체인점에 가서 일했다. 근무시간은 밤 12시까지 6시간. 15분 일찍 출근해야 하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곳 역시 전체 직원 16명(점장 2명, 매니저 1명) 중 13명이 아르바이트 직원. 이 중 9명(전체직원의 56.3%)이 미성년 고교생이다.

식사시간은 역시 15분. 햄버거(또는 치킨), 디저트, 음료수 하나씩 선택을 하면 무료로 지급됐다. 다만 가장 비싼 햄버거(5000원)는 선택 금지다. 종종 ‘오늘 급식은 ○○○’란 메모가 계산대 위에 붙으면 그나마 선택권도 사라졌다. 안 팔려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품목이 아르바이트 직원의 식사로 제공되는 것이다.

처음엔 햄버거 종류를 바꾸어가며 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일주일도 안돼 속이 안좋았다. 고2 P(17)군에게 물었다. “햄버거나 치킨 말고 딴 건 못먹니? 느끼한데….” 답은 이랬다. “그럼 굶어야죠.”

마감조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았다. 밤 9시부터 반복되는 ‘다운(down) 작업(하루 일을 정리하는 것)’ 때문. 튀김 식기를 닦고 정리하는 일에서 설거지, 쓰레기통 정리, 화장실 청소…. 일반 손님은 밤 11시까지, 포장을 해가는 손님은 밤 11시30분까지 받았다.

프렌치 프라이 튀김 기름에서 불순물을 걸러낼 때는 섭씨 160도가 넘는 기름이 튀었다. 고1 P(16)군의 팔뚝엔 직경 2㎝ 정도의 타원형 화상 자국이 3개 있었다. P군은 “눈물나게 아팠지만 점장님은 ‘괜찮으냐’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며 “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얼음을 대고 있었던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곳의 고교생들은 밤 12시까지 하루 평균 5~6명씩 일했다. ‘시작조’보다 ‘마감조’에 미성년자가 많은 것은,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야(보통 오후 4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고 1학년 L(16)양은 나에게 “언니 오기 전까지 100개가 넘는 의자를 밤 12시까지 닦았어요. 몸이 피곤해서 낮엔 학교에서 잠만 자요”라고 말했다.

미성년자를 당사자 동의와 노동부 인가 없이 밤 10시 이후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고교생 동료들은 “야간 근무 동의를 요구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점포 내 출퇴근 기록계에는 이들의 근무시간이 형식상 밤 10시에 종료되는 걸로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