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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어(위)와 가숭어. 출처= 수산과학원 홈페이지 |
- 몸통 검은 빛 띤다해서 '鯔魚'
- 어느 바다든 잘 잡혀 '水魚'
- 맛도 용모도 으뜸이라 '秀魚'
- 그 맛은 미식가 허균도 극찬
- 숭어·가숭어 혼동하기 일쑤
- 정약전 '자산어보'도 실수
- 가덕도 봄 특산물로 유명세
새벽에 누군가 친구의 편지 전하더니
홀연 쟁반에 숭어 다섯 마리 올랐구나
회치매 다시금 다섯 말 술 비워야지
이 늙은이 풍미 아직 다 없어진 건 아니지
- 이행(李荇), '용재집(容齋集)' 권1, '윤상경(尹商卿)이 동어(凍魚)를 보내 준 데 사례하다' -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위치한 가덕도는 겨울엔 대구(大口)로 유명하지만, 봄이 되면 펄펄 뛰는 숭어가 그 명성을 대신한다. 가덕도 숭어는 육질이 부드럽고 단맛도 함께 품어 그 맛이 일품인 탓에 예로부터 특산물로 진상되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 또 약으로 먹을 만큼 영양도 풍부해 겨우내 잃었던 입맛과 원기를 회복하는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육지에선 봄꽃이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지만 바다에선 봄의 주인공인 숭어가 왕성한 기운을 한껏 뽐내고 있다.
■빼어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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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인 정세광(鄭世光)이 그린 그림으로 나무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 부는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두 명의 어부를 소재로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조선시대에는 숭어를 치어(鯔魚)·수어(秀魚·水魚)·어수어(魚秀魚) 등으로 기록했다. 치어라는 이름은 한치윤(韓致奫, 1765~1814년)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도 등장하며, 서유구(徐有榘, 1764~1845년))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보다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서유구는 숭어를 "한자로는 치(緇)라고 쓰고 한글로는 '슝어'로 쓴다"고 하고 '치'라는 글자가 쓰이게 된 이유로 "숭어 빛깔이 치흑색(緇黑色)이기 때문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치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 명나라 때 약학자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쓴 이시진(李時珍, 1518~1593년)이 숭어의 몸이 검기 때문에 치어로 쓴다고 한 바 있고, 서유구도 치어를 설명하며 "조선에서는 수어(秀魚)라는 속칭을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빛을 띠는 숭어의 몸 색깔을 보고 치어라고 기록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서유구가 언급했듯이 수어 또는 어수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이수광(李睟光, 1563~1628년)의 '지봉유설(芝峰類說)',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년)의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을 비롯해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나 허준(許浚, 1539~1615년)의 '동의보감(東醫寶鑑)' 같은 약학서와 의학서에서 숭어를 치어가 아닌 수어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그럼, 조선은 왜 숭어를 수어(秀魚 또는 水魚)라고 기록했을까? 일단은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찾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숭'과 발음이 비슷한 '수'자(字)를 따왔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음으로 숭어의 습성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숭어는 연안에서 서식하다가 민물로 올라가 생활하기도 한다. 바다에서도 하천에서도 모두 서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바닷물이든 민물이든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살 수 있는 말 그대로 '물고기'였기 때문에 수어(水魚)로 기록했으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어와 같이 바다와 하천에서 모두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숭어가 너무나도 흔했던 물고기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숭어는 서해, 남해, 동해 세 면의 바다에서 모두 난다. 조선의 3대 물고기인 조기, 대구, 명태가 각각 서해, 남해, 동해에서 주로 나던 것과 대비된다. 그 만큼 숭어는 조선시대에 흔한 물고기였다. 현재 조사된 바에 따르면 숭어에 붙은 토속어는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조선의 어떤 물고기가 이토록 많은 이름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름이 많기로는 명태도 만만치 않지만 숭어에게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산지가 널리 분포하고 다량으로 어획되지 않고선 이토록 이름이 다양하긴 어렵다. 사정이 이쯤 되다 보니 그만 희소성이 떨어져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하고 성의(?)없는 '물고기(水魚)'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을 읽다 보면 이와 관련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이수광은 이 책에 숭어를 수어(秀魚)로 기록하게 된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야기인즉, 옛날에 중국 사신이 와서 숭어를 먹어보고 그 속명을 묻자 역관(譯官)이 수어(水魚)라고 답했는데, 사신이 이를 비웃자 역관 이화종(李和宗)이 나아가 "숭어는 물고기 중에서 빼어난 것이므로 그 이름이 수어(水魚)가 아니고 수어(秀魚)라고 한다"고 말해 사신이 비로소 납득했다는 것이다. 숭어는 너무 흔했던 나머지 중국 사신의 비웃음이 있기 전까진 자신의 맛과 이름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사정을 잘 보여준다.
숭어가 '물고기(水魚)'에서 '빼어난 물고기(秀魚)'로 격상(?)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사신도 인정했듯이 그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이름난 미식가 중 하나인 허균(許筠, 1569~1618년)도 '도문대작屠門大嚼'(조선 팔도의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에서 숭어를 소개했으며, 빙허각이씨도 자신의 요리서인 '규합총서'에서 숭어를 빠뜨리지 않았다. 서유구도 '난호어목지'에서 "(숭어는) 강에서 나는 물고기 중에서 제일 크고 맛이 있으며, 알을 햇빛에 말리면 빛깔이 호박(琥珀) 같은데 이를 속칭 건란(乾卵)이라 하며 호민(豪民)·귀인(貴人)이 진미로 삼는다"며 그 맛을 높이 평가했다.
숭어가 '빼어난 물고기(秀魚)'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준수한 외모 때문이었다. 서유구는 '빼어난 물고기'란 이름의 유래를 "그 모양이 길고 빼어나기 때문이다"고 했다. 숭어는 몸이 홀쭉하고 긴 것이 잉어의 자태를 닮았다. 잉어는 선비들의 학문적 성공을 상징하는 물고기이니 이와 닮은 숭어가 어찌 그냥 '물고기'일 수 있었겠는가. 잘 생긴 외모에 맛도 좋은 숭어. 이처럼 겉과 속이 꼭 들어맞는 물고기이다 보니 '빼어난 물고기(秀魚)'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 그리 이상할 일만은 아니다.
■주객전도
숭어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숭어와 가숭어로 분류했다. 그는 숭어와 가숭어를 구별하면서 그 기준의 하나로 동공 색깔을 들었다. 숭어는 동공이 노란색인 반면 가숭어는 검은색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그의 분류 기준은 현재 어류도감의 내용과는 정반대다. 어류도감에는 숭어가 동공이 검은색을 띠는 반면 가숭어는 노란색 동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실수(?)를 범한 것인가? '자산어보' 보다 약 11년 앞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집필한 김려(金鑢·1766~1822년)는 정약전과 달리 숭어와 가숭어의 차이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는 "영수는 숭어와 매우 비슷하다. 다만, 숭어의 색깔은 약간 검은색인데, 영수의 색깔은 약간 노란색이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숭어를 수어(秀魚)라고 한다. 아마도 영수라는 이름은 이것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고 해 숭어와 영수(가숭어)를 분간하고 영수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를 추정했다.
이로부터 11년 뒤에 '자산어보'가 집필된 점을 떠올려보면 자산어보에서의 숭어와 가숭어의 분류는 정약전의 실수라기보다는 당시 흑산도의 사정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흑산도의 사정이란 다름 아니라 당시 주민들이 실제로 숭어를 가숭어로, 또 가숭어를 숭어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숭어와 가숭어의 맛 차이 때문이다. 둘은 맛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정약전은 숭어를 논하며 "고기살의 맛은 좋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서 첫째로 꼽힌다"고 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가숭어가 숭어보다 더 맛있다는 이야기다. '우해이어보'를 집필한 김려도 가숭어를 지칭하는 '영수'의 맛이 "바다의 진미 중에서 으뜸이다"고 했다. 당시 흑산도 주민들도 분명 숭어와 가숭어의 맛 차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주민들이 맛이 좋은 가숭어를 숭어로 인식했을 수 있고, 이것이 자산어보 집필에 반영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유가 어디에 있든 현재 많은 사람들은 정약전처럼 숭어를 '개숭어' '보리숭어'로, 그리고 가숭어를 '참숭어' '밀치'로 알고 있다. 숭어 입장에서 보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기분이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애당초 숭어와 가숭어를 구분한 것도 우리 인간들이었으니 우리 입맛과 생각대로 이름을 다시 바꾼다고 한들 뭐 그리 대수일까. 숭어든 가숭어든 모두 빼어난 맛과 수려한 외모를 가진 숭어임엔 틀림없으니 말이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