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농기계와 농기구
농기계에 대한 고민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어정쩡한 농지에 밭갈이를 하겠다고 트랙터를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딸딸이라는 경운기를 사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원래 기계치인데다 얼마나 요란하게 농사를 짓겠다고 농기계를 장만할 것인가?
그래도 예초기는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풀과의 전쟁을 치루려면 맨손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장구를 쓰고 예초기를 돌린다는 것은 한 여름의 찜통 더위를 더욱 무덥게 했지만
안전 사고를 예방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비록 풀 속에 갇힌 유실수 묘목까지 잘라버리는 일이 발생하지만 예초기는 이제 내 농장의
착실한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음으로 산 것은 전기 잔듸깎기 기계였다.
예초기로 잔듸를 깎자니 들쭉날쭉이라 고르게 깎는 기계가 필요해서다.
밀고 다니기도 편해 보였다.
단지 불편한 것은 전기줄을 길게 매달아야 하니 거추장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경사지였다.
경사지에서는 무거운 기계를 이기지 못해 혼자서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려 수평을 잡기 힘드니 자빠지기 일쑤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세 사람이 붙어 끈을 매고 작업을 해야 경사지 잔듸를 깎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기계는 사고 나서 내내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평지에 잔디밭이 있는 지인에게 선물로 줘버렸다.
마지막으로 산 것은 관리기이다.
밭을 갈자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 번 트랙터를 빌려 일을 시키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할 때 마다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없었다.
작은 밭을 갈고 나중에 또 필요할 때 또 부르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 번에는 농촌에 온지 3년 가까이 되어서 내린 판단이니 오판이 아니기를 믿었다.
그런데 또 후회막급이다.
무엇보다도 관리기의 쓰임새가 생각처럼 용이하지 않았다.
첫째는 경사지가 문제였다.
그러니 산쪽에 있는 밭은 아예 관리기를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만 경사가 져도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멱을 감는다.
다음은 돌이다.
원래 우리 밭은 돌 때문에 관리기를 쓰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무수히 돌을 골라냈건만
로타리를 치거나 골을 탈 때면 돌에 관리기가 부딛혀 관리기가 요동을 친다.
자칫하면 다칠 우려도 있었다.
더구나 약간이라도 경사진 밭에서 고랑을 타려면
구굴기 바퀴가 좁아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또 로타리를 치고 고랑을 타려면 줄 맞추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줄을 미리 매고 하자니 번거롭고 결국 이랑의 넓이도 달라지고 줄도 삐뚤빼뚤이다.
그나마 편리할 듯 싶어 산 멀칭기를 부착하려니 왜 그리 무겁고 복잡한지...!
결국 혼자 작업하기가 어렵다는 불편 때문에 반납하고 말았다.
로타리와 구굴기 만으로 관리기를 쓰기로 하니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은 멀칭이 힘들어 덕 좀 보려 했었던 것이다.
농기계의 또 하나 어려운 문제는 관리상의 애로였다.
다행히 농업기술센터에서 무상으로 출장 수리를 해줘서 지금은 한결 편하다.
농기계는 아니지만 있으면 편리한 것이 고추 건조기이다.
태양초를 고집하다가 애써 가꾼 고추의 태반을 못쓰고 버렸다.
매년 고추 말리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안식구는 더 이상 자연상태에서 고추 말리기를 하다가는 고추 농사 자체를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 궂은 날씨가 계속되어 해를 보기가 어려운 최악의 기상조건이 계속되자
우리는 결국 고추 건조기를 사기로 결단을 내렸다.
기왕이면 다른 작물의 건조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두짝짜리로 골랐다.
농협에서 1년 거치 7년 분활상환으로 저리 융자도 끼어 준다.
총액 2백 40만원 안팎이면 마음 편하게 고추를 말린다.
매년 30여 만원이면 그리 큰 부담도 없다.
기후에 상관없이 고추를 말릴 수 있으므로 애써 수확한 고추를 버릴 일도 없어졌다.
햇볕이 좋으면 건조기에서 적당히 말린 다음 태양초 과정을 단축하면 된다.
타인에게 팔 일도 없으니 태양초 시비도 가릴 필요가 없다.
한편 농기계 못지않게 자주 사용하는 것이 농기구이다.
액비나 천연농약을 살포하기 위해서는 분무기가 필요하다.
20L(한 말)짜리 분무기 뿐 아니라 용량이 작은 분무기도 있어야 한다.
삽이나 괭이도 필요하지만 괭이삽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고랑의 흙을 두둑으로 퍼올리는 도구가 바로 괭이삽이다.
무경운으로 밭을 만들려면 괭이삽의 역활이 더 커진다.
농기계 대신 괭이삽으로 고랑의 흙을 퍼올리는 작업이 따라야 제대로 밭을 만들 수 있다.
삽도 큰 것과 작은 것 모두 사용하게 된다.
작은 삽은 퇴비를 푸대에서 퍼 나눌 때나 비닐 멀칭을 할때 양변을 고정시키기 위해
흙을 퍼 올릴 때도 큰 삽보다 훨씬 가볍고 효율적이다.
레귀는 괭이삽으로 퍼올려진 흙을 두둑의 용도에 따라 흙을 고르는데 이용된다.
감자나 마늘을 캘 때 호미 대신 이빨이 두 갈래로 길게 나온 미니 쇠스랑이 작업에 유리하다.
호미도 크기가 다양하고 낫도 여러가지다.
용도에 따라 편리하게 만든 농기구들이 많아졌다.
농사에 쓰이는 기구는 대부분 철물점이나 농약사에서 판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른 용도로 쓰이던 것이나 자기가 만들어 쓰면 편리한 것들도 있다.
내가 그 동안 도움을 받았던 기구들을 위 사진의 왼쪽부터 소개하기로 한다.
1. 하얀 작은 프라스틱 통은 100ml 눈금이 있다.
대체로 천연 농약을 물과 희석할 때 사용한다.
2. 빨래 걸때 쓰는 집게는 줄과 면을 임시로 부착시킬 때 쓴다.
예를 들면 간이 비가림 비닐을 끈과 연결하는 경우 사용한다.
3. 소형톱은 정교하게 작은 목질을 절단할 때 쓴다.
조롱박을 두 쪽으로 자를 때 큰 톱은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4. 핀셋은 배추벌레를 잡기 위해 사용하지만 수수를 타작하고 난 나머지를 사료용으로 쓸 때는
홀태 대용으로 훑어내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5. S자 고리는 마늘이나 수수 등을 말릴 때 하우스 기둥에 걸어 놓기 위해서다.
6. 양파망은 수수나 참외가 익어갈 때 조류나 들쥐 등의 피해를 막는데 쓴다.
양파망을 씌운 것들은 확실히 피해가 적었다.
7. T자 핀은 비닐 멀칭이나 부직포를 땅에 고정시킬 때 쓴다.
8. 하우스 골조용 쇠파이프는 50cm 정도 길이로 잘라 긴 고추 지주를 땅에 박을 때 사용한다.
지주를 직접 땅에 박을 때는 힘이 들지만 파이프를 먼저 박고 지주를 구멍에 넣으면
지주를 세우는데나 나중에 철거할 때에도 훨씬 용이하다.
9. 그 옆의 대나무 꼬챙이는 6cm정도 끝을 다듬어 뾰족하게 만들었다.
마늘 파종할 때 깊이 만큼 꼽고 살짝 벌린 후 마늘을 세워 대나무 안 공간에 밀어 넣으면
균일하고 편리하게 투입할 수 있다.
또한 대나무에 30, 35, 40, 50cm 등의 눈금을 그어 놓고 모종을 정식할 때 식재 간격에 따라
멀칭 비닐에 구멍을 뚫으면 편리하다.
10. 희고 긴 모양의 알미늄 대는 대형 파라솔의 살대인데
고장난 것을 해체하여 재활용하기 위해 쓴다.
가볍기 때문에 고추 간이 비가림 시설을 할때 지주 끝 지붕 옆 간격을 고정시키는데 쓴다.
11. 붉은 색깔의 작은 빗자루는 구석까지 쓰는데,
댑싸리 빗자루는 하우스 안 작업장 등을 쓸어내는데 유용하다.
12. 들깨를 타작할 때는 도리깨를 쓴다.
많은 량을 타작할 때는 도리깨가 편하다.
그러나 작은 량을 앉아서 타작하는데는 손으로 털 수 있는 막대 묶음이 더 편리하다.
집 주변에 있는 뽕나무 가지를 잘라 세가닥을 한데 묶어 타작물을 치면 잘 털린다.
참깨를 털 때는 적당히 굵은 막대기가 동원된다.
그러나 콩을 타작할 때는 회초리같은 가는 막대기를
여러개 묶어 두들기면 가볍고 효과적이다.
13. 파란 펫트병은 고추나 배추밭 등에 설치하는 부비트랩이다.
막걸리와 설탕 등을 섞어 넣어 걸어두면 담배나방 등의 해충이 빠져 죽는다.
14. 여러 바가지들이 동원된다.
분말이나 입자로 된 농약을 일정량 담아 사용할 때,
비료 등의 분량을 다른 용기에 담아 사용할 때,
닭의 사료를 섞어 넣을 때,
효소 등의 액비를 담아 넣을 때 크기가 다르면서 각기 일정량을 옮겨 담는데 편리하다.
15. 바탕의 검은 프라스틱 포트는 벼 못자리하는 판이다.
작은 구멍이 촘촘히 있어 틀깨나 참깨 수확을 할 때 얼개미 대용으로 쓴다.
16.작은 화분은 육묘하는데 사용한다.
야콘 처럼 약간 큰 포트가 필요할 때 쓰는 것이다.
화훼시장에 가면 쓰레기 통에 넘쳐난다.
17. 나무 판대기는 도마로 쓴다.
하우스 안에서 닭 사료를 절단할 때 칼질하는 받침이다.
야콘 뿌리중에서 식용으로 적당치 못한 가는 것들은 닭 사료로 주는데 닭이 먹을 수 있도록
절단 작업을 할 때 도마가 필요하다.
18. 전복을 먹고 껍질은 보관했다가 해바라기 씨앗을 발라 내는데 쓴다.
손으로 씨앗을 발라내려면 목장갑이 닳도록 문질러야 한다.
조그마한 전복 껍질은 손톱 대용으로 사용하기 용이하고 편리하다.
19. 고추밭의 간이 비가림용으로 사용하던 비닐은 깻대를 세우고 양변에 지주를 세운 후
비닐을 덮으면 역시 비 올 때 방수가 된다.
별로 쓰임새가 없을 것같은 조각 비닐도 흙에 놓고 작업하기 곤란한 것들을
올려 놓을 때 유용하다.
결국 농가에서는 버릴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 된다.
특히 전원생활을 하는 텃밭 수준의 농사에는 이런 작은 기구가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그 밖에 도시 아파트에서 버리는 것들 중에 헤진 돗자리 같은 것들이 농촌에서는 유용하게 쓰인다.
우리집에 자주 들리는 친구가 가져다 준 돗자리와 돌식탁 등이 우리집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전업농인 경우에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하므로 기구도 생산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소량 생산을 하면서 필요 이상의 기구를 사거나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