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 편향’이란 새로운 정보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론이나 세계관,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정보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차별은 편견에서 비롯합니다. 편견의 합리적인 것에 근거했다면 대화를 통해
어느 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무의식인 것이라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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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문화를 통해 오랫동안 영향을 받아
각인된 생각과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리를 베타 적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한 기독교인은 이런 편견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각종 포비아(혐오)
현상을 기독교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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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바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의 영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의
시민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들의 시기와 질투를 자아냈습니다(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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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비방하는 유대인들(44-45)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함(46-47)
복음을 듣고 회심하는 이방인들(48-49)
이고니온으로 이동하는 선교사들(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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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요청으로 다음 날에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회당에는 이미 안디옥 시민들이 거의 다 운집해 있었습니다. 전에 회당에서
말씀을 들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까지 전도하여 데여온 것입니다.
바울의 스텐다드 선교전략 가운데 회당사역이 있는데 당시 회당이라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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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 지금의 한인 교회 같은 숙박, 취업, 각종
정보를 수집 알선해 주는 센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김 세윤, 바울 신학).
바울은 유대인이라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면 영생을 주신다고 설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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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믿음 없는 선민은 선민이 아니며 참 선민은
믿음의 열매로 증명됩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인 고난 받는 종을 이방인을 위한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지 이르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 역시, 세상의 빛으로 삼아
말과 삶을 통해 이 예수를 드러내는 사명을 받들게 하셨습니다.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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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알고,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동경 받고, 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막중한 사명이지요. 유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씀은 안디옥을 넘어 그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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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사도 일행은 안디옥에서 쫓겨났지만 그들을 통해 복음을 영접한
제자들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했다는 것 아닙니까?
환영받는 복음-반대 받는 복음,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복음
쫓겨나는 복음-기쁨을 주는 복음, 나의 동선은 향기인가, 악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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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삼으시고 작정하신 자들은 다 믿게 하신 주님,
내 안의 숨겨진 질투를 용서하옵소서. 때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 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내 시기심을 삭히고 이방의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2018.2.4.sun.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