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回 줄거리....
혜원과 정재의 결혼식날 이태리로 떠나려던 민우는 대풍과 함께 예식장에 나타난다. 민우
는 드레스를 입은 혜원을 먼발치서 보면서 그녀의 행복해 하는 미소를 보고는 뒤돌아선다.
민우를 떠나보내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식장주변
을 두리번거리던 혜원은 민우를 발견하지만 민우는 차를 타고 예식장을 벗어난다. 혜원은
이제 다시는 민우를 못볼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며 민우를 싣고 떠나는 차를 쫒아가지만
몇걸음 못가 의식을 잃고 대로에 쓰러지고 만다. 민우는 쓰러지는 혜원을 자동차 사이드
미러로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심장이 멎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온 혜원은 응급처치로 살아나지만 의식불명상태에 빠져든
다. 민우는 예식장에 온 것을 후회하며 비통에 빠져든다. 장미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
온 정재는 민우의 멱살을 잡고 원성을 쏟아놓지만 민우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김박사는 혜원이 의식을 회복하지 않는한 현재로선 아무런 방법이 없다며 정재한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민우는 혜원이 깨어나지 않는다며 정아한테 울먹이다시피 읊조리며
절망에 빠져들고 정재는 민우를 원망하며 그만 병원에서 나가달라고 한다. 대풍은 정재의
냉혹함에 화가나는지 민우는 지금 이순간 혜원의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며 민우를 두둔한
다. 민우는 정재한테 자신의 분별없는 행동을 사죄하며 혜원이 깨어날때까지만 있게 해달
라고 사정하지만 정재는 아무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병실로 들어간다. 정재와 정아는 가
사상태에 빠져든 혜원을 보면서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후 의식이 돌아온 혜원을 보면서 기뻐 하던 정재와 정아는 마치
꿈결속에서 누군가를 부르듯이 혜원의 입에서 민우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참담한 표정을 짓
는다.
민우는 의식이 돌아온 혜원을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정재한테 사정하지만 정재는 안된다며
거절한다. 민우는 혜원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간다. 혜원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계속 민우을 부르자 정재의 혼란스러움은 가중된다.
김박사는 혜원을 살리는 방법은 재수술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결과는 장담할수 없다며
정재의 선택을 요구한다. 정재는 장담할수 없는 수술을 왜 해야하는지 화가 나면서도 혜
원을 살리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자고 한다. 하지만 혜원은 또 다시 병실에
갇힌채 병마와 싸우며 창문밖을 바라보는 쓸쓸함이 싫다며 수술을 받지 않을려고 한다.
혜원은 이태리로 떠난줄 알았던 민우가 병원에 왔었다는걸 장미에게서 듣고 알게 된다. 장
미는 혜원에게 민우가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지만 혜원은 자신의 수술결과가 잘
못되면 은혜씨에 이어 두번씩이나 민우씨에게 같은 아픔을 겪게 하는 거라며 그렇게 할 수
는 없다고 한다.
민우는 자신이 혜원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것에 화가나면서도 자신이 혜원
이 곁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대풍이 말리는 것을 뿌리
치고 집을 나서다가 자신을 찾아온 정재와 맞닥뜨린다. 정재는 혜원이 수술을 받게 하고 삶
의 희망을 갖게하는 유일한 방법은 민우씨 밖에 없다며 민우보고 혜원을 만나서 설득을 좀
해달라고 한다.
혜원의 마음을 돌리려 정재는 혜원이 누구와 같이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혜원이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다는 말을 하며 카라리조트 프로포즈방에서 민우와 만나게 한다. 정재
는 연적이었던 민우를 프로포즈방으로 들여보내며 한 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프로포즈방에서 천장에 붙은 노란 장미를 올려다보던 혜원은 꽃을 장식하던날 살며시 나타
나 자신의 머릿결을 올려주던 민우를 떠올린다.
카라꽃을 들고 프로포즈방에 들어선 민우를 본 혜원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하면서도 눈가
에 이슬이 배어난다. 민우는 혜원을 처음 만난후 지금까지 은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혜
원이란 여인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믿어달라고 말하면서 수술을 받으라고 한다. 혜원은 수술
이 성공한다고 해도 어쩌면 영원히 침대에 누워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민우는 자
신이 혜원의 곁에 영원히 있겠다고 한다. 혜원은 말만으로도 고맙다며 민우씨를 위해서 수
술을 받을테니 민우씨도 자신을 위해서 떠나달라고 말한다.
정재는 혜원이 수술도중 죽었다며 민우에게 편지를 보낸다.
3년이 흐른후 정아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던날 민우가 문화회관 재리모델링
공사때문에 귀국한다. 민우는 문화회관에서 혜원의 뒷모습을 우연히 보게되지만 고개만 갸
웃거린다. 민우는 정재를 만나서 혜원이 마지막까지 행복했었냐고 물으며 혜원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것에 대해서 자괴를 한다
정재는 혜원에게 민우를 만나보라고 하지만 혜원은 이제는 다 지난일이라고 말한다. 그리
고 민우씨 잘 살고 있다는데 그런 그를 흔들기 싫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민우를 잊었다
고 말하지만 정재는 민우란 사람은 혜원을 아직 잊지 않았다고 말한다.
혜원은 이제 자신의 심장이 은혜씨의 심장이 아니라서 민우씨를 만나더라도 심장이 뛰지 않
을까봐 두렵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혜원은 그러면서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비오는 어느날, 민우와 혜원은 문화회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21回........#
민우는 길고긴 회관 계단을 거의 오를때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에 걸음
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 계단아래로 돌렸다. 민우는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
다. 오른쪽 계단 중간에 우산을 든 낯이 익은듯한 여인이 노란 장미꽃을 들고 자신을 바라
보고 있었다. 혜원은 막상 민우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핑돌았다. 민우는 떨리는 걸음으로
혜원에게 다가갔다. 민우가 다가오자 혜원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우산으로
얼굴을 가렸다.
"심..혜원씨가 맞다면 제...손을 잡아..요."
민우가 혜원의 우산밑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꽃을 든 혜원의 왼손이 가늘
게 떨고 있었다.
"사람을.. 잘못... 보셨네요."
혜원은 몸을 돌려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민우는 손을 거두지 못한채 한동
안 멍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혜원의 뒷모습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한번 비
비고는 마치 헛것을 본 마냥 머리를 가로저었다.
혜원은 회관을 빠져나와 가쁜숨을 내쉬며 대로변 버스 정류장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
의 원피스 끝자락이 빗물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만졌다. 자신의 의
지와는 관계없이 심장이 민우를 알아본것일까. 혜원은 적잖이 놀랐다. 자신의 가슴속에 아
직도 은혜의 잔해가 남아 있다는 것일까. 이젠 은혜의 심장이 아닌데도..... 혜원은 민우를 만
나도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떡할까 걱정을 했었다.
그녀는 비내리는 회관쪽을 바라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인파의 더운
기운만 긴 회관벽을 따라 묻어나는것만 같았다. 혜원은 민우가 자신을 알아보고 손을 내
미는데도 왜 외면을 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심장이 시켜서 그런건지
혜원은 자신의 행동을 이해 할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분명한건 빨리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던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노란장미꽃을 보았다. 꽃은 빗물이 방울방
울 맺혀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민우는 회관 1층 대강당으로 들어가다말고 대강당 입구 통로에 기대어 깊은 상념에 잠겼있
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혜원은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아까 본 여인의 모습은 분명히 혜원
이었다. 닮은 사람이었다 해도 그렇게 쏙 빼닮을순 없었다. 민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벽
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불나방 한 마리가 둥근 형광등 주위를 맴돌고 있었
다.
"실장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민우가 고개를 돌려 입구쪽을 쳐다보았다. 오동철 작업 반장이었다.
"실장님, 그기서 뭐하세요? 오늘 오후 작업은 2층 대강당입니다."
민우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서 올라오세요. 한참을 찾았잖아요.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우가 2층 대강당으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마치 선생을 기다리는 학생들 같이 화이트보드앞
에 서서 잡담들을 나누고 있었다. 화이트보드 옆에는 백수연이 팔장을 하고는 민우를 노려
보고 있었다.
"유민우씨, 여태껏 어디서 뭐하구 이제 왔어요? 점심을 만들어 드시고 오셨나요?"
백수연은 잔뜩 화가 났는지 성악가의 바리톤 저음같이 목소리가 강당 바닥을 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민우는 아무말 없이 작업 인부들과 백수연한테 고개만 한번 숙이고는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백수연은 한쪽으로 비켜서며 여전히 민우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여러분들 그동안 수고들 하셨습니다. 이제 여기만 하면 회관 공사는 끝납니다. 다시 말씀드
리지만 공사도 중요하지만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우가 수성팬으로 흰 칠판에다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문화회관은 시민의 정신생활, 문화생활의 중심지입니다. 한마디로
문화회관은 국민들의 압축된 일상의 문화생활공간입니다. 건축양식은 모두 한국의 전통양식
구현이라는 취지아래 외부 벽면을 모두 화강석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제가 굳이 이런 말
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제가 그리는 그림을 보시다시피 이 대강당도 용도에 맞지않게 디
자인이 아주 조잡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강당 전면은 유럽 유수 예술극장의 그것들
처럼 개성없이 설계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양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빠른시일안에 디
자인을 완전히 바꿀겁니다. 제가 나눠 드리는 일정표와 도면, 그리고 조감도를 보시고 작업
일정과 작업수순을 숙지 하십시오. 김차장님과 반장님은 저 좀 보실까요."
민우가 도면을 엔지니어들에게 나눠주고는 김차장과 반장을 돌아본다.
"공사기간 맞출려면 두분이 좀 서둘러 주셔야 겠어요. 이번주는 무대공사 끝내고 다음주에
는 내벽과 객석, 천장공사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김차장님은 마감제 목록좀 뽑아주세
요. 서둘러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돌아서자 그때까지 칠판옆에 서있던 백수연이 민우에게 다가왔다.
"유민우씨, 제방으로 좀 오세요."
백수연이 싸늘한 얼굴로 민우한테 한마디하고 강당을 나가자 김차장이 다가왔다.
"어휴, 저 시어머니는 귀신이 안잡아가고 뭐하는지...실장님 신경쓰지 마세요. 그냥 희스테리
로 생각하세요. 자기가 회관경영본부장이면 본부장이지 왜 남 작업하는데 사사건건 간섭하
는지 모르겠네...자기가 무슨 작업감독관이라도 되는줄 착각하는 모양이네..."
김차장이 백수연이 빠져나간 문과 민우를 번갈아보면서 입을 실룩거렸다.
"김차장님, 좀 같다 올테니 작업들어가세요."
"예, 알았어요. 불여우 기좀 꺽어놓고 오세요."
회관 본관옆에 딸린 백수연사무실로 민우가 들어서자 백수연이 주방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
다.
"그기 좀 앉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강당에서 차갑게 내뱉던 것과는 달리 나긋나긋했다. 민우는 아무말없이
소파에 앉아서 정면에 자리잡은 그녀의 책상을 쳐다보았다. 문화회관 경영본부장 백수연이
란 명패가 민우의 눈에 들어왔다. 책상너머 의자뒤 벽에는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사진이 걸
려있었다.
"아까는 화를 내서 미안해요."
백수연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고 민우앞에 앉았다.
"........"
민우는 대꾸도 없이 무표정하게 찻잔을 들었다.
"왜, 화났어요? 정말 미안해요. 다음달 말에 큰 공연이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촉박하거든
요...."
백수연은 마치 교사앞에서 야단맞는 초등학생처럼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화 날일이 뭐가 있습니까. 수연씨한테 욕먹는게 한두번도 아닌데....신경쓰지 않습니다."
"어머, 그래요....제말에는 콧방귀도 뀌기 싫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그녀가 민우를 한번 흘겨보고는 찻잔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민우씨 언제 출국 하나요?"
".........?"
민우가 고개를 들고 백수연을 쳐다보았다.
"이태리로 언제 돌아가냐구요."
백수연은 창밖으로 시선을 둔체 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물었다.
"그건...어떻게 아셨..죠?"
차를 마시던 민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제 직함이 뭐죠? 궁금한건 전화 한통이면 다 해결이 되요."
"하실 말씀이 뭔가요?"
민우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저도 이태리 갈일이 있거든요.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다음달 이곳 회관에서 대형 공연이
있어요. 이태리 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이죠. 그래서 그곳 공연관계자들을 만나러 가야해요."
"그런일이라면 공연사업부나 공연기획부에서 하는일이 아닙니까? 어째 지체 높으신 본부장
님께서....."
민우가 관심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머! 민우씨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백수연이 고개를 돌리며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
"근데 이번 공연은 아주 중요해서 제가 나서는 겁니다. 아직 협연 약속을 체결 한건 아니기
때문이죠. 이왕 가는거면 민우씨와 같이 가자는 거죠. 참! 그리고 정우는 이태리에 잘 있어
요?"
"예? 정우요? 정우를 어떻게 아십니까?"
남정우는 회관 재리모델링공사에 민우를 추천한 사람이다.
"후후후...정우는 저의 둘도 없는 친구죠. 민우씨가 지금 소속되어있는 주식회사 르네상스대
표도 잘 아는 사람이예요. 정우가 얘기 안하던가요? 실은 민우씨가 이태리로 돌아간다는 것
도 정우한테 들었어요."
그녀가 민우의 허를 찌른데 대해서 희열을 느끼는지 팔장을 하고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민우는 그제서야 왜 이 여인이 주식회사 르네상스 직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사
에 대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지 이해를 할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회관리모델링공사가
자신의 책임하에 있기 때문에 신경을 아니쓸래야 아니쓸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재리
모델링공사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할것이다.
민우는 자신이 이태리를 떠나오던날 정우가 이죽거리듯이, 장난스레 지껄이던 말이 떠올랐
다. 재색을 겸비한 여인을 만날지도 모르니 스켄들 한번 만들어 보라며 히죽거리던 정우, 민
우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정우녀석, 정말 싱거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웃어요 민우씨?"
백수연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원참....짜고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민우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녜?"
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고 있어서 그런지 밖은 일몰쯤인 것 같은데도 컴컴해져 있었다.
도심은 질척이는 물기젖은 도로와 그 위로 비치는 휘황한 내온사인이 어울려 오색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민우는 화양동 대풍의 집으로 가다말고 동호대교를 건너 신사동으로 넘어왔다. 귀국해서
한번 가보았던 꽃가게가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그땐 문이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혹시나 열
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민우의 발걸음을 이쪽으로 향하게 한건 오
늘 낮에 회관계단에서 만났던 여인이었다. 그는 다 부질없는 짓이란걸 알면서도 그녀의 흔
적을 느껴 보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이 이곳으로 오게 한건지도 모른다.
다행히 가게문은 열려 있었다. 민우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가게를 들여다 보았다. 가게가
좀 높아서 실내는 잘 볼수 없었지만 가게안은 환했다. 민우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민우는 혹시나 하는마음으로 계단 꼭대기에 서서 가게안을 들여다 보았다. 무성한
꽃들에 둘러쌓인 응접실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채 뭔가를 들여다 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민우의 눈에 들어왔다. 민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가게문을 열었다.
"저...실례합니다."
"어서오세요."
여인은 책에서 눈을 떼며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여성이었다.
"혹시...여기 주인이 바뀌었나요?"
여인은 손님이 아닌것에 실망을 했는지 금새 얼굴이 굳어졌다.
"바뀐지 오래됐죠. 한 3년은 돼었죠. 그런데 무슨일로 그러시죠?"
민우는 대답은 않고 가게안을 둘러보았다. 구조는 여전했지만 옛날 잘 정돈돼어있던 실내
풍경은 찾아볼수 없었다. 서양식 구조로 만들어진 길가쪽으로 난 창문틀에는 먼지가 덕지
덕지 절어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만 3년전 주인은 어디 갔는지 모르십니까?"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뭐 그때 들리는 얘기로는 병 때문에 미국에 수술 받으러 간다는 것 같았어요."
"그...그래요...."
민우는 실날같은 희망이 깨어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그녀가 살아있다면 이 가게가
다른사람한테 넘어갔을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장미꽃 있으면 좀 주시겠어요?"
빗물위를 구르는 자동차바퀴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채 많은 구슬을 쏟아놓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게창문은 성애가 하얗게 끼어있었다. 혜원은 창가에 앉아 망막에 흐릿하게
투영되는 바깥을 보다가 성애가 자꾸 앞을 가리자 손으로 유리를 가만히 닦았다. 그리고 다
시 검지손가락으로 방금 지운 유리위에다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유민우란 글씨가 창문에 새겨졌다. 그녀는 한동안 글씨를 쳐다보다가 황급히 손바닥으로 지
웠다. 그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는가 싶더니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녀는 낮에 본 민우
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언니 왔어요? 언제 왔어요?"
혜원이 고개를 들었다.
"응, 민지야...좀 됐어..넌 플로리스트 협회에서 지금 오는 길이니?"
"녜...좀 늦었죠? 강의가 좀 길었어요. 무슨 강사가 꽃에 관한 얘기는 안하고 자신의 신변
얘기밖에 안하는거 있죠. 얼마나 하품이 나오는지....근데 언니, 어디 아파요?"
언제 들어왔는지 민지가 고개를 갸우뚱한채 혜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랜지색 머
릿결이 마치 가을햇빛에 잘 익은 갈대처럼 출렁거렸다. 꽉끼게 입은 그녀의 청바지 끝자락
절반이 빗물에 젖어있었다.
"아..아니..좀 피곤해서.."
혜원은 흐트러진 머릿결을 두손으로 쓸어 올렸다. 민지는 여전히 동그란 눈으로 혜원의 얼
굴을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니?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니?"
혜원은 머리를 다시 묶으며 민지를 올려다 보았다. 민지는 입을 숙 내밀고 미간을 찡그리
며 혜원을 가자미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 온지 좀 됐거든요. 근데 언니 오늘따라 이상해요. 아까부터 뒤에서 쭉 지켜봤거든요."
"민지는 그만 퇴근해라. 난 정리좀하고 퇴근할게. 내일은 현장으로 나오도록 해라. 아무래
도 민지가 좀 도와줘야 겠다."
"참! 내일 부케 쇼 하는 날이죠? 알았어요 언니, 사실은 저도 약속이 있거든요. 언니 미안
해요. 저 그만 퇴근할께요."
민지는 마침 잘됐다 싶었던지 환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가져온 우산을 다시 들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때르르릉....때르르릉..."
"여보세요?"
장미가 주방에 있다가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거실로 나와 수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전화를 했으면 대답을 하세요."
장미는 대답없는 전화에 짜증을 냈다.
"어...언니, 혜원이야."
"어머! 혜원이니? 기집애도 너 요즘 왜 전화해도 안받고 오지도 않는거니? 무슨일 있어?"
"아...아니 언..니.. 그냥....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냐구? 대풍씨와 그의 아들외에 누가 있겠어."
"그...그래...정민이는 잘있어? 정민이가 보고 싶네..."
"얘..혜원..아."
장미가 안방쪽을 한번 보고는 작은소리로 혜원을 불렀다.
"언니....왜..."
"너...민우씨 귀국한..거 모...르지? 유민우씨 말이야."
"알...고 있..어."
"어머!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았니?"
"정재오빠와 민우씨가 한번 만났나봐."
"그렇구나....너, 민우씨 때문에 여기 오지도 않고 전화도 않는거지? 우리집에 오면 민우씨
와 부딪칠까 싶어서 그러는 그지? 하긴 민우씨는 니가 죽은줄 알고 있을텐데.... 민우씬 아
직 우리집에 한번도 안왔어. 일이 많이 바쁜가봐. 조만간 한번 온다구 했어."
"........"
"혜원아, 걱정하지마 민우씬 일 끝나면 바로 출국한데.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귀국했대."
"세종문화...회관이라구?"
"그래, 세종로에 있는 문화회관. 근데 두사람 만나서 무슨 얘기 했대? 물론 혜원이 니 얘기
를 주고 받았겠지?"
"그냥 서로안부 인사만 주고 받았나봐. 언니 이만 끊을게....또 전화할게."
"그...그래...참! 혜원아, 너 민우씨 만날 생각 없니?"
"언니, 그러지마 만날생각 없어."
"그...그래 알았어..."
장미는 한동안 서있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누구야? 혜원씨야?"
대풍이 안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대풍씨, 다..들었...어요?"
대풍은 대답없이 소파에 앉았다.
"미안해요. 얘기안할려구 했는데....근데 혜원이가 민우씨 귀국한거 알고 있던데요."
"어쨋든 두사람 다시 만나서는 절대 안돼."
대풍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누이며 장미를 착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근데, 혜원이가 여태껏 마음과는 달리 민우씨의 등장에 혼란스러워 하나봐요. 아마 민우씨
동정을 살피려구 여기에 전화한 것 같아요. 두사람 정말 다시 만나면 안될까요?"
"그건 절대 안된다고 했잖아!"
대풍이 언성을 높였다.
"대체 왜 안된다는 거예요. 두사람이 헤어진건 두사람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잖아요. "
장미도 지지않고 대꾸했다.
"지금 정재씨와 가족들, 그리고 혜원씨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지내고 있어. 민우가 아무리 친
동생 같아도 민우로 인해 정재씨 집안이 또다시 갈등의 늪으로 빠지는건 원치않아. 3년전
민우로 인해 모든게 꼬여버린 정재씨입장을 생각해봐. 민우한테도 지금와서 혜원씨를 다시
만난다는건 불행이야. 두사람 사랑이 아직 변치 않았다고해도 두사람 앞에 놓여있는 현실
은 냉혹해. 정재씨 부모를 한번 생각해봐. 그사람들 입장이 한번 되어보라구. 3년전엔 나도
정재씨 욕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아냐. 여태 결혼도 안하고 있는 정재씨를 한번 생각해봐.
지금은 마냥 민우편만 들수도 없어."
대풍은 민우가 귀국하던날 정재와 혜원이가 승용차안에서 행복한 웃음을 주고받던 것이 떠
올랐다. 말이 좋아 오빠 동생사이지 그건 남매사이에 주고 받는 웃음이 아니란걸 느꼈다. 두
사람은 원래 결혼할 사이아니었던가. 다시 민우가 나타났다고 해도 혜원씨는 이제 쉽게 흔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혜원씨는 정재씨를 몇 번씩이나 울릴정도로 정재씨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사는 여인은 아닐것이다....정재씨는 몇 번이나 혜원씨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다. 혜원
씨도 이점을 잊고 사는건 아닐 것이다. 그녀는 결국 정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대
풍은 혜원을 믿고 싶었다.
"대풍씨, 혜원이와 정재씬 오빠 동생사이 이상은 절대 아니라구요. 혜원이가 누누이 얘기를
했다구요. 안그러면 두사람 벌써 결혼했죠. 혜원이가 이제껏 내색은 안했지만 민우씨를 기다
리고 있었던게 분명해요. 아까 혜원이 전화받고 그걸 분명히 느꼈어요."
"과연 정재씨 마음도 그럴까. 정재씨가 정말 혜원씨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벌써 다
른여인과 결혼을 했을거야. 당신 그렇게는 생각안해 봤어? 박정재씨는 혜원씨의 마음이 돌
아오길 기다리느라 여태 결혼을 안했을거란 생각은 안해봤어? 박정재 그사람이 뭐가 부족
해서 아직까지 결혼을 안하고 있는지 생각안해봤냐구.... 어쨋든 두 사람 절대 다시 만나서
는 안돼. 당신도 진정으로 민우와 혜원씨의 행복을 바란다면 두사람의 가교역할을 할생각
은 추호도 하지마. 두사람은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어. 두사람의 재회는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야."
"대풍씨 말도 일리가 있긴 있는데 간과한 점이 있어요."
대풍이 무슨소리냐는 듯이 장미를 쳐다보았다.
"대풍씨 말이 맞다면 정재씨는 왜 민우씨가 귀국한걸 혜원이 한테 얘기를 했을까요. 아까
혜원이말로는 정재씨가 민우씨 만난걸 혜원이하테 얘기 하더라고 하던데요. 대풍씨 말대로
라면 정재씨는 민우씨가 귀국한걸 혜원이한테 얘기안하는게 상식 아녜요? 정재씨 입장에서
는 어떡하든 숨길려구 할텐데 말이예요."
"그건 정재씨의 지나친 신중함이라고 볼수도 있는거지. 가령 혜원씨의 반응을 한번 볼려구
그랬을지도 모르는 거지. 어쨌든 민우오면 절대 딴소리 하지마."
"........"
장미는 대풍의 말이 정말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발길을 돌리자 초인종 소리
가 울렸다. 장미가 주방으로 들어가다말고 현관으로가서 인터폰을 들었다. 액정장치 모니터
에 낮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대풍씨! 민우씨 왔어요."
"그..그래...자식이 연락도 없이..."
대풍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민우씨 어서오세요. 제대로 찾아 왔네요."
장미가 현관문을 열며 호들갑을 떨었다. 민우는 쇼핑백과 장미꽃을 들고 현관에 들어섰다.
"장미씨, 아니 이제 형수님이죠...그동안 잘 있었어요?"
"저야 뭐 항상...민우씨도 얼굴 좋네요 뭐..."
장미가 두손으로 얼굴을 만지며 낯을 붉혔다.
"민우야, 어서오너라...자식이 귀국 첫날에도 바쁘다고 못온다고 하더니 이제야 나타나냐?"
대풍은 민우가 귀국하던날 마중가서 만난후 이번이 두번째다. 민우는 미안한 듯 미소만 지
었다.
"참! 민우씨 저녁 안먹었죠? 조금만 기다려요. 우리도 아직 식전 이예요."
장미가 쇼핑백과 꽃을 받아쥐고는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민우는 소파에 앉으며 거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천장엔 무지개빛의 샹들리, 정면엔 대형 티브이와 홈시어터, 그 옆 벽
엔 결혼식때 찍은 듯한 사진과 신혼여행에서 찍은듯한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들이 한줄로
붙어있었다. 오른쪽엔 바닥부터 천장까지 확터인 발코니가 시원하게 보였다.
"왜, 민우야. 부러워? 너도 결혼하고 싶어지지. 왜 안그러고 싶겠냐....하하하...."
대풍이 민우옆에 앉으며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아니 형, 하나도 안 부러워, 옛날 형이 살던 집이 아니라서 조금 낯설었던 것 뿐이야."
민우는 천연덕스런 표정을 지었다.
"형은 결혼하니까 그렇게 좋아?"
"야, 다른건 모르겠는데....."
대풍이 주방을 한번 힐끗 보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일단 편하잖아, 청승맞게 남자가 부엌에서 칼질 할 일없고 귀찮아서 하지 않던 집안 일도
결혼하면 해결이 되니까 얼마나 좋니."
"다른 건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야?"
대풍이 다시 주방을 한번 쳐다보았다.
"야, 결혼해서 보니 오장미 성깔이 보통아냐."
민우가 손으로 입을 막고 쿡쿡 웃었다.
"야, 왜 웃냐? 난 심각한데..."
"게으른 형하고 살려면 누군들 안그렇겠어."
"야 너까지 정말...."
"아....아야!"
대풍이 민우의 팔을 비틀었다.
"민우씨, 제가 애를 하나 더 키워요!"
장미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다...당신 다 들었어?"
대풍이 주방과 민우를 번갈아 보며 멋쩍게 웃었다.
"형, 애기는..?"
"응...방에 있어."
"누구 닮았어? 형? 형수?"
"가서 직접 확인해봐."
"알았어. 이따 확인해보지."
"민우야. 너 언제 출국할거야? 일 끝나면 바로 갈거야? 일은 언제 끝나? 보성에도 가봐야
할거 아냐. 어머니도 뵈어야 할거고."
"응, 보성에 가봐야지. 어머니를 뵙고 가야지. 일은 다음주에 끝날거야."
민우는 텔레비전위를 한참 쳐다보는가 싶더니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갔다. 민우는 벽 중간에
걸린 커다란 액자를 목을 빼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대풍은 민우의 행동에 아차 싶었다. 그의
등에서 한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민우가 유심히 쳐다보던 액자를 두손으로 잡더니 벽에서
떼어냈다.
민우는 떼어낸 액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진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맨
앞에 턱시도를 입은 대풍과 드레스를 입은 장미가 서있었고 장미옆에는 혜원이 서 있었
다. 대풍은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듯 머리가 띵해오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민우의 뒤
통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형...."
민우가 액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대풍을 불렀다.
"응...왜.. 그래....사진이 잘 나왔...지?"
대풍은 애써 태연한척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리가 든 것 같았다.
"형수옆에 서있는 여자는 누구지? 정말 많이도 닮았네...."
"아....그..그여자...장미씨 아는 동생이야. 심...혜원씨와 엄청 닮았지? 나도 첨 봤을 때 내 눈
을 의심했지. 완전히 붕어빵이야....근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그렇게 이쁜 얼굴이 아니더라.
혜원씨완 비교를 할수 없지.."
잔뜩 긴장한 대풍의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민우씨, 대풍씨 밥먹을 준비해요!"
장미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민우야, 그만 저녁먹자."
대풍이 민우가 들고 있던 액자를 뺏아 벽에다 걸었다.
"민우씨, 찬이 별로지만 많이 드세요. 전화하구 왔으면 장이라도 좀 봐왔죠."
민우와 대풍이 식탁에 앉자 장미가 해물탕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자식이 일마치면 여기와서 저녁을 먹든지 하지 왜 사람 미안하게 하냐."
"형도 참, 내가 뭐 동가식 서가숙 하는 홈리스야. 만들어 먹기 싫어서 그렇지 나도 음식은
잘 만들어. 혼자 산게 몇년인데..."
민우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게 문제 아냐. 혼자 살면서 음식 못만드는 사람이 어딨냐. 너처럼 죄다 게을러서 안해먹
는게 문제지."
"조금 진도 더 나가면 결혼하란 얘기 나오겠다."
민우가 수저로 찌개를 뜨면서 피식 웃었다.
"어머! 민우씨도 이제 그런소리 많이 듣나봐요? 제가 그 얘길하려구 했었는데...."
장미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듯 낯을 붉혔다.
"결혼하란 소린 민우한텐 아마 고문일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대풍이 식탁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능글맞게 웃었다.
"맞아 형, 이제는 결혼하란 얘기를 많이 들어, 특히 보성 어머님이 성화셔. 전화 한번씩 하
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민우는 배가 고팠던지 게눈감추듯 밥한그릇을 비웠다. 대풍과 장미는 수저를 든채 민우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민우씨, 더 드실래요? 밥 더 가져 올께요."
"아..아뇨 많이 먹었어요. 형수님 일어나신 김에 이쑤시개나 한 개 같다 주실래요."
민우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이를 쑤시는 시늉을 한다.
"어머...민우씨...세상에 똥도 안쌀 것 같은 사람이 어째...."
장미가 이맛살을 찌뿌렸다.
"하하하...농담입니다. 형수님..."
"어머! 민우씨 웬 넉살까지....이태리 두 번 갔다오시더니 사람이 달라진거 같네요."
장미가 손으로 입을 가린채 웃었다.
"민우야, 너 이태리에서 괜찮은 여자라도 하나 물지 그랬냐."
"대풍씨, 여자가 무슨 물건이예요!"
장미가 대풍에게 눈을 흘겼다.
"형수님....."
민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장미를 불렀다.
"녜?"
"혜원씨가 잠들어 있는곳이 어딥니까?"
민우의 뜻밖의 말에 대풍과 장미는 화들짝 놀라며 서로 쳐다 보았다.
"혜원씨, 고향에 묻혔겠죠?"
"녜...그..그래요. 혜...혜원이 고향에 잠들어 있어요."
장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녀는 잠깐동안 가슴속이 와들거렸다.
"그기가 어디예요?"
민우가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그...그러니까..그기가 어디냐 하..면...."
"민우야. 혜원씨는 그만 잊어라. 넌 왜 또 스스로 아픈상처를 꺼집어 내는거냐."
대풍이 미간을 찡그리며 장미의 말을 가로막았다. 장미는 당황한 얼굴로 민우와 대풍의 얼
굴을 번갈아 보았다.
"니가 아직까지 혜원씨를 잊지 않고 있었다니...... 솔직히 난 과거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민우 니가 한심스럽다. 니가 혜원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
고 견우와 직녀도 아닌데 왜 3년전에 세상뜬 사람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지 딱하다. 이젠
가슴을 비우고 다른걸 채울때가 되지 않았냐? 어쨌든 혜원씨는 그만 잊어라."
민우는 입을 다물고 팔장을 한채 아무말이 없다.
"어머! 정민이가 우네."
안방에서 울음 소리가 나자 장미가 안방으로 뛰어갔다.
"형, 내가 귀국한 것은 꼭 일 때문만은 아냐."
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풍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민우를 쳐다보았다.
"그럼, 죽은 혜원씨와 결혼이라도 하려구 온거야!"
대풍이 화를 냈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어.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도 가봐야 겠어....그래서 처음이자 마
지막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무덤에다 꽂아주고 싶어. 그리고 줄 것도 있고....."
민우가 손으로 턱을 괴고 비감어린 표정으로 대풍을 바라보았다.
"혜원씨의 흔적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어."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고향에 묻혔다며..."
"그건 니가 딱해서 마누라가 그렇게 대답한거지. 혜원씨의 유골은 북한강에 뿌려졌어. 혜원
씬 수술전 수술이 잘못되면 화장해달라고 유언을 했어. 정 의심스러우면 박정재씨한테 물어
봐."
민우는 대풍의 말에 망연자실하는 듯 했다. 대풍은 수저를 놓고 안방으로 갔다. 장미가 정민
이를 안고 얼르고 있었다. 대풍이 대뜸 화를 냈다.
"이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어떡해! 박정아씨와의 약속을 잊었어?"
"미안해요..그만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장미가 대풍을 보며 미안한 듯 배시시 웃었다.
문화회관은 여러군데 공사중이라 어수선하지만 공연중인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그런지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늘은 잔뜩 찌뿌려 있었다.
"왜 이렇게 안오는 거지?"
민지는 초조한 얼굴로 연신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민지씨 아닙니까?"
누군가 뒤에서 민지를 불렀다.
"어머! 아저씨 오셨어요?"
민지가 정재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어딨어요?"
"언니...아직 안온 것 같아요..시간이 다돼 가는데...."
민지는 대답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꺼내자 휴대폰이
울렸다.
"언니, 어디예요? 빨리 안오고 뭐하는 거예요!"
"민지야, 나 오늘 못가겠다....참가 명단에서 우리는 제외시켜달라고 주최측에 얘기좀해라."
"언니!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몇날 며칠을 준비해놓고 이제와서 포기를 한다는 거예요?
포기하면 위약금도 물어야 해요!"
"그럼 민지야...아주 좋은 기회다. 니가 내대신 참가해라. 이기회에 실력발휘 좀해봐라. 알았
지? 절호의 기회다. 꽃은 지금쯤 온누리 화훼에서 갖다놓았을거야. 그리고 부케 만든거 행
사 끝나면 하나 갖고 오너라. 얼마나 이쁘게 만들었는지 함 보게. 알았지?"
"언..니 그렇..지만..제가 어떻게....."
"괜찮아, 너 정도면 충분히 해 낼수 있어. 나하고 2년동안 허송세월 안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너도 명색이 플로리스터 잖니."
"전화 이리좀 줘봐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정재가 민지에게서 휴대폰을 받아쥐었다.
"혜원아, 오빠다."
"어머....! 정재...오빠....오빠가 어쩐일이야? 내가 얘기도 안한 것 같은...데."
혜원의 목소리는 천근만근의 쇠덩어리에 눌린것처럼 기운이 없었다.
"안하긴...너 정아 신혼여행 떠나던날 공항에서 얘기했잖아. 부케행사준비로 문화회관 꽃집에
서 미팅있다고 했었잖아."
"네가 그랬....었나? 오빠 용케도 그걸 기억하네....그러고 보니 오빠도 아주 섬세한 면이 있
네.."
혜원이 전화기 너머로 소리없이 웃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날짜는 얘기안한거 같은..데."
"그건 민지씨 한테 물어봤지. 근데 너 몸이 아픈...거.니?"
"응....조금....그냥 어제 무리한데다 비까지 맞아서 몸살이 났나봐."
"혜원아! 많이 아퍼? 약은 먹었어?"
정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응, 약 먹었어..."
"오빠 행사 끝나고 이따 갈게."
"알았어, 오빠."
정재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민지에게 건넸다. 민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저보고 대신 좀 하래요."
"할수 있겠...어요?"
정재가 안쓰러운 눈으로 민지를 보았다.
"한번 해보..죠. 아저씨, 어서 들어가요."
두사람이 회관출입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이봐요! 정재씨 아닙니까?"
정재와 민지가 뒤돌아 보았다. 계단에서 민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유민우씨 아닙니까?"
두사람은 만난지 이주일 정도밖에 안되지만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나누었다.
"민우씨는 여기 어쩐 일입니까?"
"아..예..제가 여기 리모델링 공사를 맡았거든요."
"아...공사한다는 곳이 여기군요..."
"근데 정재씨는 어쩐일로..."
정재가 민지를 돌아보았다. 민지는 민우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제 친구 동생입니다. 플로리스터죠. 민지씨 인사드려요. 이쪽은 유민우씨라구 옛날에 같이
일하던 사람입니다."
민지가 정재를 쳐다보며 자신의 친구 동생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민지라고 합니다."
민지가 홍조띈 얼굴로 민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귀가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핑크색
블라우스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목이 유난히 길어보였다. 민우도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민우씨 바쁘지 않으면 들어가서 행사 구경좀 할까요?"
"아...지하 부케쇼 행사에 오셨군요."
지하2층 강당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갖가지 꽃들로 강당무대는 갖은 향기의 꽃내음
이 진동을 했다.
"민우씨 안바쁩니까?"
정재가 민우를 돌아보았다. 민우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니 괜찮...아요. 실무자들이 잘하고 있습니다. 정재씨, 저거 무슨 꽃인줄 아세요?"
민우가 무대위 어느 참가자테이블에 놓인 작고 여린 초록색의 나무를 가리켰다. 정재가 목
을 빼고 실눈을 하고는 무대를 쳐다보았다.
"저건 관엽식물인 벤자민 아닙니까?"
"어, 정재씨 잘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저건 벤자민입니다. 입이 많고 모양이 수려해 거실에
서 기르면 좋은 식물이죠. 정재씨도 꽃에 관심이 많은 것 같군요."
"그건...혜원이가...."
정재는 말을 꺼내다가 멈추었다. 민우도 정재의 입에서 혜원이란 말이 나오자 미묘한 감정
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혜원씨가 살아있다면 지금 저 무대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민우가 정재를 곁눈질하며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그렇겠죠...."
"자 지금부터 부케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참가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화훼관련 업체가 참가했습니다. 먼저 오늘 참가
한 업체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참가업체는 듀오 웨딩부케 컨설팅의 박수경씨입니다."
사회자가 소개를 하자 무대위에 꽃이 가득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서있는 20여명의
사람들중 사회자 옆에 서있던 여성이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회
자가 소개된 여성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오늘 자신있으십니까?"
"글...쎄요....최선을 다해야죠."
"녜..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종목은 뭘 선택하셨죠?"
"웨딩부케중 볼부케와 핸드타이드부케를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회자가 소개를 다 끝내고 맨 마지막으로 무대 끝에 서있는 민지에게 다가갔다.
"오늘의 마지막 참가 업체입니다. 문라이트 카라의 최민지씨입니다."
민지가 두손을 뒤로한채 객석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민우는 사회자의 문라이트 카라란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최민지씨라고 하셨는데 원래 오늘 나오시기로 한분이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외람되오나.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리고 잘할 자신 있으십니까?"
민지는 긴장을 하는지 얼굴이 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녜, 실은 저희 언니가 몸이 불편해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물론 긴장되지만 잘할 자신있
습니다."
민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긴장감이 부끄러운지 당차게 대답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정재는 좌
불안석이었다. 혜원의 이름이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그는 민우를 곁눈질했다. 민우는 무표정
한 얼굴로 무대만 보고 있었다.
"녜 최민지씨의 각오가 대단하군요. 한번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최민지씨는 오늘 뭘 선택하
셨습니까?"
"저도 웨딩부케중 릴리 멜리아와 내추럴 스템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릴리 멜리아면 타고난 감각과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부케인데 자신있게 대답하시는
군요. 아무튼 기대해 보겠습니다."
"잘했어요 민지씨."
"그래도 아쉬워요. 무슨 상이 그렇게 많은지...참가자 대부분이 다받았잖아요."
그들은 2부행사 도중 회관을 나왔다. 민지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녀는 그래도 아쉬운지 민우
와 정재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니한테 얘기해야죠? 아저씨 이거좀 갖고 계실래요."
민지가 트로피를 정재한테 주고는 휴대폰을 꺼낸다.
"미...민지씨, 이따 점심먹고 전화해요. 같이 가서 얘기하면 되잖아요."
정재가 당황해 했다.
"그....그럴...까요."
민지가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민지씨, 운영하는 가게 이름이....."
민우가 아까 강당에서 들었던 사회자의 말이 떠올랐다.
"녜, 문라이트 카라예요. 이름 이쁘죠? 언니가 지었대요."
민지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녀의 치아가 눈이 부시도록 희었다. 그녀의 파릇한 목덜미에
는 금색으로 물들인 몇가닥의 긴 머리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민우씨, 우리 그만 가볼께요. 인연이 연장된다면 또 만납시다."
정재가 민지의 말을 막고 나섰다.
"그....그래요 정재씨, 안녕히 가세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면 또 만날 수 있겠죠. 민지씨
도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민지가 민우에게 머리를 숙였다.
"아저씨, 저사람 누구예요?"
회관 계단을 내려오면서 민지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정재를 올려다 보았다.
"예....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끔찍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허여멀건하게 너무 잘생겨서 끔찍하다구요."
"잘생긴게 왜 끔찍합니까?"
"저런남자 사귀는 여자들 피곤하잖아요."
"요즘 얼굴보고 남자 사귀는 멍청한 여자들이 있어요?"
"아저씨 옆에 있잖아요."
민지가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굴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정재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정재아저씨, 왜 아까 그분한테 인사시킬 때 저를 친구 동생이라고 하셨어요?"
민지가 별일 다보겠다는 듯이 정재에게 입을 삐죽거렸다.
"아....그...그건...달리 소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정재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혜원아 뭐 먹을래?"
"오빠도 먹어야지."
"난 아까 민지씨와 먹었어. 그래 몸은 좀 괜찮아?"
"응, 괜찮아."
점심때라서 그런지 레스토랑은 조금 분주했다. 혜원은 가슴이 깊게 파인 레이스가 달린 베
이지색 블라우스에 카키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발위로 무릎이 하
얗게 드러나 보였다.
"터키음식 한번 먹어볼래?"
정재가 메뉴판을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터키음식?"
"그래...터키음식. 여기 메뉴에 나와있네."
"오빤 먹어봤어?"
"아니...난 한식 스타일이지 외제는 잘 안먹잖아."
정재가 웃었다.
"나도 첨 먹어보는 거니까 아무거나 시켜."
정재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음식을 주문했다.
"오빠, 정아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구 아까 전화 왔더라."
"그래...자식이 친오빠한테는 전화도 않구..무슨 신혼여행을 이주일 넘게나 다녀오는지...."
정재가 익살스레 코를 벌렁거렸다.
"오빠...."
"왜...?"
"나 밉지."
"갑자기 무슨 소리니?"
정재는 혜원의 뜬금없는 소리에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냥....오빠한테 미안한것 같아서....항상...."
"혜원아, 또 그소리냐. 그런얘긴 하지마라. 넌 니 건강이나 신경쓰라."
정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냐 오빠....난 항상 오빠에게 죄를 짓고 사는 느낌이야."
"혜원아, 얘기안해도 오빠 니 마음 다안다. 그러니 그런얘긴 하지마라. 참! 오늘 세종문화회
관에서 유민우씨 만났다."
정재가 말머리를 돌렸다.
"..........."
혜원은 아무런 표정없이 주방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혜원아."
혜원이 고개를 돌렸다.
"오빠, 난 그사람 잊었어. 그사람 얘긴 하지마."
혜원이 냉담하게 말했다.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게 아니다. 오빤 정 대안이 없으면 니가 민우
씨와 다시 만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아도 결혼했는데...."
"오빠....오빤 내가 밉지도 않아? 밉지도 않냐구!"
".........."
고개를 숙이는 정재를 보면서 혜원은 슬픔이 밀려왔다.
"오빠가슴에 평생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긴 내가 밉지도 않냐구!"
혜원은 격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식탁에 업드렸다. 혜원은 정재의 바보스러
울 만큼 자신에 대해서 너그러움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고문을 하는것처럼 괴로웠다. 차라리
미워해주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았다.
"혜원아, 오빤 다 잊었다. 왜 새삼스런 얘기를 하는거니."
혜원은 당당하던 예전의 심성과는 달리 한없이 유약하기만 한 정재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
었다.
9월달 오후의 뙈약볕은 따갑기 그지 없었다.
민우가 현장사무실에서 잡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달만에 공사를 완전히 끝낸 민우는 덥
지만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이제 보성가서 어머니 뵙고 이태리로 돌아갈일만 남았다. 민우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 한켠이 뻥뚫리는 것처럼 허전해지면서 까닭모를 슬픔이 물밀 듯
이 밀려왔다.
"유민우씨."
민우가 현관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수연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온통 햐얀색이
었다. 흰색바탕에 목과 소매에 검은 줄이 쳐진 재킷, 그리고 흰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도
심의 산들 바람에 미처 묶이지 못한 새카만 머리카락 몇가닥이 날리며 그녀의 이마를 가리
고 있었다.
"민우씨,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어요."
그녀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건지 연방 미소를 흘렸다.
"뭔 소립니까?"
민우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쫑파티에 가시든지 아니면 우리집에 가시든지 양단간 선택하세요."
"나원참, 대체 무슨말씀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민우는 관심없다는 듯이 하던일을 계속했다. 수연은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던지 민우의
태도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민우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결심을 한 듯 입
을 열었다.
"저...지금 자존심 접었거든요. 오늘 제 귀빠지는 날이예요. 그래서 민우씨 초대하구 싶어요."
민우가 돌아서며 수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듯 쳐다보았다.
"실은 공사도 너무나 훌륭하게 끝냈고해서 사례하고 싶어요. 민우씨 덕분에 사장님과 이사
장님한테 칭찬좀 들었어요. 이따 방송국 갔다 오시는길에 좀 들리...세요."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양볼이 빨개지고 있었다.
"아니, 생일날 초대할 사람이 그렇게 없습니까? 맨날 작업공정이 늦다고 타박할땐 언제고
.... 인덕이 무척 없으시군요. 저 같은 녀석을 초대하게요. 그러니까 인적관리를 제대로 하셔
야죠. 사람관리는 돈보다 중요해요.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을 생일에 초대하는건 무슨 연유입
니까?"
"민우씨, 전 작심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녀의 표정이 뾰루퉁해졌다.
"그래요, 작심하셨으니까 한번도 안들어온 현장사무실에 들어오신거 아닙니까. 그리고 작심
하시고 툭하면 공사하는데 와서 잔소리나 하시고...."
"민우씨, 전 지금 말장난 할 시간이 없어요."
민우는 팔장을 한채 수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웬일인지 뾰루퉁한 그녀의 얼굴이 귀여
워 보였다.
"뭐 진주성찬이라도 준비했습니까? 혼자 사시면서 준비하면 얼마나 준비하겠어요. 라면 안
먹으면 다행이겠죠. 저녁에 방송국 갔다가 시간 나면 가죠."
"어머머...어쩜 저렇게 갑자기 오만해 지셨을까...."
"그래도 수연씨만 할려구요...."
빈정거리는듯한 민우의 말투에 백수연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백수연의 집은 반포동에 있었다. 민우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수연은 확인도 않고 문을
열었다.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민우가 장미꽃을 내밀었다. 꽃을 받아드는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거실은 음식냄새가 진동했다. 민우는 앞치마를 두른 수
연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저 모습도 변신이라면 변신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
던가. 아니면 요리하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기 때문인가. 평소엔 그렇게 냉정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여자가 오늘은 평범하고 수수한 여자로만 보였다. 민우는 앞치마를 두른 백수연을
보면서 어느것이 진정 저 여인의 참된 모습일까를 생각했다.
"안오실까 내심 걱정했어요. 방송국 다녀왔어요? 텔레비전에 나오겠네요?"
"수연씬 카멜레온 이군요."
"녜? 무슨 소리예요?"
"아..아닙니다."
"민우씨, 거실에 좀 앉아 있어요. 집이 좀 어수선하죠?"
민우는 거실을 두리번 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혼자사는 여인의 집답게 집안은 너무나 정갈
하고 깨끗했다. 넓은 거실 오른쪽벽엔 책을 가득 담고 있는 오동나무로 만든 커다란 책장과
진열장이 여러개 있었고 반대편에는 대형 프로젝션 티브이와 오디오, 그리고 그 옆에는 뽀
글뽀글 거품이 일고 있는 커다란 수족관에서 이름모를 관상어들이 노닐고 있었다. 정면에는
발코니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어디선가 가늘은 음악소리가 들렸다. 민우
는 소리가 나는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오디오에서 낯익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파
에 앉아 한동안 오디오를 쳐다보던 민우는 팔장을 하고 눈을 감았다.
명랑한 저 달빛아래 들리는 소리
무슨 비밀 여기 있어 소근 그리나
만날 언약 맺은 우리
달 밝은 오늘... 달 밝은 오늘...
우리 서로 잠시라도 잊지 못하여 잊지 못하여...
수풀 사이 덮인 곳에 따뜻한 사랑.......
적막한 밤 달빛아래 꿈을 꾸었네....
밤은 깊고 고요한데 들리는 소리 들리는 소리....
들려오는 그의 소리 들려오지만
분명치 않구나
오라는가... 나의 사랑 들리는 곳에
타는 듯한 나의 생각 기다리는 너...
잊을수 없구나 나의 사랑...
노래가 끝나고 민우가 눈을 뜨자 백수연이 반대편에 다소곳이 앉아서 민우를 응시하고 있었
다.
"민우씨, 저 노래에 무슨 사연이 있..죠?"
"사연...이라뇨?"
민우는 애서 태연한척했다.
"다 알고 있..어요. 정우한테 들었...어요."
"........."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예요."
"..........."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우씨의 감정을 건드렸다면 사과드릴께요. 전 그냥 민우씨가 좋아한
다는 말만 듣고.....그리고...민우씨의 아픈 사랑까지도....알고 있어요...미안...해요. 제가 너무
주제 넘죠?"
민우는 물끄러미 수연을 쳐다보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민우는 홍차에 코냑을 타서 마셔서 인지 취기가 빨리 오르는 것 같
았다.
"수연씨....그만 가봐야 겠어...요. 오늘 잘 먹었...어요."
민우가 비틀거리며 식탁에서 일어나다가 식탁에 걸려 넘어졌다. 수연이 일어나 민우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 민우씨 괜찮아요? 오늘 여기서 자고 가요. 너무 취했어요. 무슨 남자가 이렇게 술에
약해요."
민우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 있었다. 수연은 민우를 부축해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뉘였다. 그
리고 민우의 몸과 팔을 제껴 윗도리를 벗겨 장롱옆 옷걸이에 걸려는데 옷에서 뭔가가 떨어
졌다. 수연은 붉은색의 작은 케이스를 집었다.
`이게 뭐..지?`
그녀가 케이스 뚜껑을 열었다. 큐빅 로렉스 사각 커플링 두 개였다. 수연은 민우를 한번 보
고는 반지를 눈앞에 가져갔다. 반지를 이리저리 살피던 수연이 뭔가를 발견한 듯 침대 스탠
드 불빛으로 반지를 가져갔다. 보석이 박힌 윗부분만 빼고 폭이 넓은 링 전체에 깨알같은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한개의 반지에는 `Y minwoo` 그리고 또한개의 반지에는 `S
haewon`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수연은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반지를 다시 케이스에
넣고 민우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민우는 벌써 잠이 든 것 같았다. 수연은 민우를 한동안 내려보다가 이불을 덮었다. 그녀는
나가려다말고 민우의 얼굴에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민우의 볼에 입술을 갖다댔다.
`당신을 사랑해요`
창문을 통해서 비춰드는 따가운 햇살에 민우는 눈을 찡그렸다.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화
장대와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대 옆 3단짜리 서랍위에는 곰인형 한 마리가 민우를
보고 있었다.
"민우씨 일어났어요? 이거 좀 드세요. 꿀물이예요."
백수연이 앞치마를 두르고 문을 열었다. 민우는 말없이 컵을 받아 꿀물을 들이켰다.
"그깟 코냑 몇잔 마시고 정신을 잃는 사람은 첨봤어요."
수연이 민우옆에 앉아서 꺄르르 웃어제꼈다.
"나 뭐...실수 한거 없어..요?"
민우가 컵을 건네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수연은 가만히 생각하는지 손으로 턱을
괴었다.
"실수 한거 많죠. 첫째, 혼자 사는 여자집에 잔거, 또 제 얼굴에 뽀뽀한거..또 오바이트까지
하구....."
수연이 손가락을 꼽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그게 정말이..예요?"
"사실이라면 책임 지실거예요?"
수연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민우가 수연의 말에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수연은 민우
의 표정이 우스운지 또 까르르 웃었다.
"어머...민우씨 표정이 왜그렇게 귀여워요?"
그러면서 그녀는 또 배를 잡고 웃었다.
"농담이예요. 어서 나와요. 아침 먹게요."
민우는 세수를 하고 나오면서 거실을 두리번 거렸다. 세면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현관문
옆 벽에 커다란 사진하나가 걸려있었다. 민우는 액자앞으로 다가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사진을 쳐다보았다.
석사모를 쓴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액자 하단에 `미국 MBA 경영학 석사학위 수료식
때`라는 글귀가 민우눈에 들어왔다. 맨 오른쪽 첫째줄 중간에 수연이 석사모를 쓰고 앉아
있었다. 동양인은 몇 명되지 않아서 수연은 금방 눈에 띄었다. 민우의 눈길이 수연의 뒤에
서있는 동양인 남자에게 머물렀다. 민우는 눈을 비비며 사진속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박정재였다.
"사진 잘나왔어요?"
수연이 민우뒤에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수연씨, 수연씨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한국사람... 같은데.."
민우가 정재를 손으로 가리켰다.
"왜요? 민우씨 아는 사람이예요?"
"아니...그냥.. 누구를 좀 닮은 것 같아..서.."
"잘생겼죠? 한국 사람이예요. 이름은 박정재. MBA수료하고 귀국해서 한동안 연락하고 지냈
는데 만나지 않으니까 멀어지더라구요. 지금 무주에서 리조트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연락한번 해야할텐데.... 조만간 그곳에서 세미나가 있어요. 그때 한번 만날거예요. 아주 유
능한 친구죠. 우리 학번중에 한국사람으로서 유일하게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던 수재죠. 전
그사람 발바닥도 못따라 가요."
"수연씨, 그만 가볼께요. 간밤에 폐가 많았어요."
민우가 윗도리를 걸치며 거실로 나왔다. 민우가 신발을 신을려고 현관에 서자 뭔가 허리를
감아왔다. 수연이 민우의 등을 두팔로 안았다. 민우는 한동안 돌상처럼 서있었다. 그녀의 따
스한 체온이 전신으로 뻗치는 것 같았다.
"수연씨...."
민우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차가웠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던 수연의 두손
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팔은 더욱 옥죄어 들었다.
"그냥...이렇...게 조금만 있어....줘요."
수연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고 있었다. 수연은 한참후 팔을 풀었다.
"나오지 말아요."
민우는 고개를 돌려 수연을 지그시 한번 쳐다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민우씨! 고향갔다오면 전화해요! 안하면 제가 할거예요!"
엘리베이트가 민우를 싣고 문이 닫히려하자 수연이 아파트 문을 열고 소리쳤다.
가을기운이 하늘에서부터 스며드는지 9월의 아침 햇살은 여뉘때와는 달리 싱그럽기까지 했
다.
민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꽃을 다듬고 있었다. 혜원은 책상에 앉아서 꽃과 관련된 책을 들여
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가끔 멍하니 문밖에다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언니!"
민지가 부르는 부르는 소리에 혜원이 고개를 돌렸다.
"언니! 이리좀 와봐요!"
"뭔데 그러..니?"
"이리와서 텔레비젼 좀 봐요!"
민지가 꽃을 다듬다 말고 두손을 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혜원은 응접실 소파에 앉으
며 시선이 텔레비전에 머물렀다. 민우였다. 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니, 나 저 사람 알아요."
민지의 얼굴에 희열이 번졌다.
"민지가 어떻게 아...니..?"
"일주일전에 회관부케행사때 저 사람을 봤어요. 정재아저씨와 아는 사이던데요. 그날 정재
아저씨와 행사에 같이 있었어요."
"그....그래.."
"언니는 저 아저씨 몰라요?"
민지가 혜원을 돌아보았다. 혜원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응....몰..라."
"아깝다.....언니하고 아는 사이라면 내가 어떻게 작업들어갈수도 있을텐데...."
혜원은 민지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는 사람이면 민지가 어떻게 작업들어갈텐데?"
"언니하고 아는 사이라면 자주 만날 수 있을거 아녜요. 그럼 자연스레 가까워질수 있을거
고...."
"언니하고 사귀는 사이라면....?"
민지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혜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혜원은 그런 그녀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게만 보였다.
"언니도 참, 골키퍼 있다구 골을 못넣는건 아니잖아요. 이런 케케묵은 말을 꼭 해야겠어
요? 뺏으면 되죠."
"그러...니..."
혜원은 민지의 당찬 말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사귀고 있으니 한번 뺏어봐."
"녜?"
"아냐...그냥 해본 소리야."
"참, 언니, 저 아저씨가 우리 가게 이름을 묻던데요."
"그...그래서 뭐라고 했니?"
혜원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긴요. 문라이트 카라라고 했죠.."
"그...그래..."
혜원은 거칠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지 소리없이 긴 호흡을 하고는 다시 텔레비전에
눈길을 돌렸다.
사회자가 민우에게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다.
"오늘 화제의 인물시간에는 건축가 한분을 모셨습니다. 며칠전 세종문화회관 재리모델링 공
사 설계를 맡아 성공리에 마무리한 유민우씨를 모시고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민우옆에 앉았다.
"이번에 세종문화회관 재리모델링 공사 설계를 맡으셔서 수고를 하신데 대해서 노고를 치하
드립니다. 다들 회관이 다시 태어났을 정도로 외관이 수려하고 한국적 이미지에 걸맞게 디
자인 되었다는데 본인께서도 만족하십니까?"
"별로 공들인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품고 있던 기본 컨셉은 기존 디자인에다 한국 고
유의 건축양식을 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첨단이
모든걸 대체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디지털이 첨단이라면 아날로그는 복고풍이라고 할수
있죠. 아날로그 없이는 디지털이 있을수 없듯이 둘의 조화는 필수적입니다. 회관 내외벽 디
자인도 첨단과 한국적 건축양식을 적절히 배합을 했습니다...."
혜원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민지도 탁자에 턱을 괴고는 시간가는줄 모
르고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다른 질문 좀 할까요? 유민우씨는 결혼을 아직 안하신걸로 알고 있는데 계획같은 것 있으
십니까?"
민우는 사회자의 질문에 뭔가 생각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회자가 당황해 하며 다
시 말을 걸었다.
"배우자가 있는걸로 판단해도 될까요?"
"있긴 있는데 생사를 모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이세상을 떠났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그녀에 관한 마지
막 기억이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을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린겁니다. 그래서 그
녀를 아직 제 가슴에 영원히 묻지를 못했습니다."
"녜....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제가 괜한 질문을 드린 것 같군요. 이태리로 다시 돌아가신다
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언제 출국합니까?"
"예, 다음달 초에 떠납니다."
혜원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언니... 왜 그래요?"
민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혜원을 쳐다보았다.
"아냐..아무것도..."
혜원이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민지의 눈길이 혜원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
다.
`민우씨.....민우씨한텐 혜원이란 여자는 이세상에 없어요. 제발 절 잊으세요`
민지가 문에 기대어 서서 보고 있는줄도 모르고 혜원은 주방 싱크대에 기대어 눈물을 쏟았
다.
커피솝은 한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게릴라 소나기가 지나간 커피솝 창문에는 여러갈래의
빗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민우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창가에 앉아 문쪽을 바라보고 있
었다. 민우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아였다.
그녀는 가게를 한번 두리번 거리더니 민우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민우씨, 오래 기다렸어? 미안해...갑자기 비가 쏟아지지 뭐야."
정아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빗물이 반짝거리는 정아의 웨이브진 진한 갈색 머릿결
이 말총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선배, 우리 악수 할까?"
정아가 민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었는지 빨개져 있었다.
"오랜만이다 정아야. 넌 여전하구나 ....."
민우가 정아에게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뭐가 선배?"
"그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차림새 말이야."
정아는 자신의 몸을 한번 훓어 보더니 겸연쩍게 웃었다. 정아는 레이스가 달린 핑크색 민
소매 블라우스에다 아랫부분은 헐렁하고 골반은 꽉 죄는 감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선배도 뭐 여전하네...얼굴이 좀 탄거 빼고는...여자같이 뽀시시한 피부도 여전하구."
"그래....그러고 보면 3년이란 세월은 바람같은 세월이었군....정아나 나나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이 3년전 그대로니 말이야."
"주문 하실까요?"
어느새 다가왔는지 종업원이 메뉴판과 물컵을 내려놓았다.
"민우씨, 시원한거 마실까?"
"그래...."
"레몬쥬스로 주세요."
정아가 메뉴판을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선배, 영원히 온거야? 정재오빠 얘기로는 다시 돌아간다던데..."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래, 곧 돌아가야해....가기전에 너 얼굴이나 한번 볼려구...그냥가면 나중에 욕할거 아냐."
"선배, 그게 아니지?"
정아가 고개를 약간 비튼채 민우를 야릇한 눈으로 보았다.
"무슨 소리니?"
"혜원이 때문이지?"
"............"
"난 혹시나 선배가 혜원이 아직까지 잊지않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되서 그래. 정재오빠 만나
서도 혜원이 얘기했었다며."
"............"
"솔직히 혜원이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아. 이제 다들 잊고 사는데....."
정아가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꼬리를 흐렸다.
"혜원씨.... 화장한거 사실이니?..."
민우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정아는 민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너, 결혼했다며?"
"정말 일찍도 물어보네요."
정아가 웃으며 눈을 흘겼다.
"늦었지만 축하한다. 자 이건 결혼 선물."
민우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뭔데..."
"목걸이야, 내가 이런걸 결혼한 여자한테 선물해도 되는지 몰라. 뭘 알아....야지..."
민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괜찮아 선배...고마워."
정아는 민우의 표정이 우스운지 피식웃었다.
"어때, 오랜만에 교외에 나오니 상큼한 기분이지?"
"응, 오빠."
서울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차는 4차선 경부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휴일이라 그런지
도로는 차들로 가득햇다. 하늘엔 새파란 공간을 배경으로 드문 드문 조각 구름이 떠 있었다.
"혜원이 리조트가보는게 오랜만이지?."
"응.....내가 수술받고 첨...이지. 오빠는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내려가니까 기분이 맨숭맨숭하
겠다."
"그래 니말이 맞아. 너무 멀어서 한번씩 내려갈 때 마다 힘들어, 그렇다고 안내려 갈수도 없
고.... 리조트 처분해 버릴까?"
정재가 혜원을 보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오빠도 참, 어린애도 아니고 자신의 사업인데 멀리 있어 귀찮다구 팔아버리는게 어딨어. 차
라리 본사를 리조트와 합병해서 전원생활하면서 경영하는 게 낫지."
"나도 그생각 안해본거 아니지, 하지만 사업이란게 그렇게 구멍가게 경영하듯이 간단치 않
아. 본사는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해. 안그러면 마켓팅을 원활하게 할 수가 없어..... 근데 혜
원아 니가 갖고 있는 가방은 뭐니?"
"응....꽃이야."
"그건 뭐할려구?"
"응.....카라리조트 프로포즈방을 다시 꾸며 놓을려구. 그 방 돌보는 사람 아무도 없다면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꼭 창고같이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을거야. 그래도 내가 3년전
에 공들인 곳인데 지저분하면 내 기분이 안좋을 것 같아서....그래서 가는김에......."
".........."
정재는 혜원의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묘해지는 것 같았다. 그가 가방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거 무슨 꽃이니?"
혜원은 가방을 한번 보고는 정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응 이거....목련..꽃이야."
"목련꽃? 왜 목련꽃이니? 니가 좋아하는꽃은 카라와 노란장미 아니니?"
"응..근데 가만히 보니 목련꽃이 더 이쁜 것 같애. 튀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자태가 마음에 들어."
차가 카라리조트에 도착하자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컨추리 클럽과 가족호텔 좌측에 위치
한 종합주차장에 정재는 차를 세웠다.
"혜원아, 내려라. 다왔다."
혜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쪽엔 덕유산 꼭대기가 보였고 덕유산 중턱엔 점핑 파크와
어린이 공원이 보였다. 앞에는 카니발 상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상가끝에는 프로포즈방이
우뚝 서있었다. 혜원은 카니발 상가를 지나면서 3년전 자신이 운영하던 꽃집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그동안 혜원은 정재한테 리조트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정재에겐 3년전의 카라리조트는 생각하기조차 싫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우와 자신으로 인
해 정재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혜원에겐 이곳은 아름다운 추억과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꽃가게는 그때 공사가 끝나고 얼마후 문닫았어."
"그...그래 오빠."
혜원이 줄지어 늘어선 상가를 두리번 거리자 정재가 말했다. 그들은 프로포즈방을 지나 알
프스풍의 호텔티롤에 도착했다.
"혜원아, 거피숍에 가있어. 사무실에 좀 들렀다 올게."
"알았어 오빠."
정재가 안내 데스크에 다가가자 안내직원이 정재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혜원은 정재가
안내 데스크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김부장님, 카니발 상가에서 연예인들 cf 촬영이 있다더니 끝났습니까?"
정재가 이사실에 들어서며 뒤따라온 김부장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김부장의 머리가 이마에
서 정수리까지 고속도로같이 훤했다.
"예,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촬영을 마치고 한시간전에 돌아갔습니다."
"그래 누가 왔던가요? 얼굴 좀 봤어요?"
정재가 책상에 앉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보면 뭐합니까, 짜증만 나죠."
김부장은 관심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 모습과 비교되는 것 같아 열등감만 생기죠. 그래서 딴따라들 촬영한다고 오면 짜증만
납니다."
김부장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정재는 김부장의 말에 입에서 웃음이
피식피식 터져 나왔다.
"세미나 준비는 끝냈습니까?"
"예, 많은 직원을 세미나 준비에 투입시켰습니다. 여기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는 업
체와 단체 명단입니다. 전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김부장이 작은 책자 한권을 정재 책상에다 놓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정재는 책자는 보지
않고 회전의자를 돌려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호텔 정면 산중턱에 점핑파크와 점핑카페가
보였다. 정재는 3년전 어느날밤에 서울에서 돌아오던날 점핑파크한가운데에서 혜원과 민우
가 같이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입술을 깨물며 한참을 바라보던 정재는 다시 돌아앉아 김부
장이 놓고간 책자를 펼쳤다.
"전국 경제인 연합회 이상철, 중소기업협회 중앙회 이만제, 한국무역협회 조대룡, 서울대
총장 정운찬......"
정재는 소리내어 읽는가 싶더니 책을 호주머니에 넣고 일어나려하자 인터폰이 울렸다.
"이사님, 손님 오셨습니다. 들여 보낼까요?"
"누굽니까?"
"친구분이라는데요."
"들여보내요."
정재는 누가 찾아왔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박정재씨."
정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한번 비볐다.
"아니..당신은... 수연씨 아냐?"
"정재씨, 정말 오랜만이네."
수연이 목에 하늘하늘한 연푸른 스카프를 두른채 문에 기대어 활짝 웃고 있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네. 대체 어떻게 된거야."
수연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정재는 악수를 하면서 신기한 듯, 믿을수 없다는 듯이 수연
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되긴......정재씨, 내 얼굴 뚫어지겠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틀림없이 백수연이
야."
수연이 소파에 앉았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야뭐 항상 잘있지, 정재씨는 사회 지도층으로 자리잡은 것 같네."
수연이 깔깔웃으며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정재는 수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
고 있었다.
"그래 여긴 어떻게 왔어? 설마 나만날려구 일부러 시간내서 온건 아닐테고...."
"모래 세미나 있잖아."
"아참 그렇구나, 너 예술의 전당에 있다는 얘기 들은 것 같은데..."
"지금은 아냐..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 있어."
"세종문화회관..?"
"그래, 그기 있어."
"얼마전에 그기 갔었는데....수연씨가 그기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네...."
"웬갓 공연들이 많으니까 정재씨가 한번쯤 왔을수도 있겠네..."
정재는 호주머니에서 김부장이 준 세미나 책자를 펼치더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아...여기 있네..세종문화회관 경영본부장 백수연..."
정재는 다시 고개를 들어 수연을 쳐다보았다.
"전화나 하고 오지 않구..."
"그냥...놀래켜 주려구..."
"좌우지간 반갑다. 일단 나가자 점심 안먹었지?"
정재와 수연이 커피숍으로 올라가자 혜원은 눈을 감고 두손으로 턱을 괸채 창밖을 바라보
고 있었다. 실내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혜원아."
혜원은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깊은 명상에 빠진사람 같았다.
"혜원아!"
정재가 자리에 앉으며 다시 부르자 혜원은 그제서야 꿈에서 깬 듯 눈을 뜨고 정재를 쳐다보
았다.
"오...오빠 왔어?"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니?"
"아..아냐 오빠 아무것도..."
혜원의 눈길이 정재옆에 서있는 수연에게 쏠렸다. 수연과 혜원의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수연이 혜원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이자 혜원도 엉거주춤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참, 서로 인사들 하지, 혜원아 이분은 미국 경영대학원 동기인 백수연씨야. 그리고 수연씨,
이쪽은 혜원이라고.....동...생이야."
"첨 뵙겠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백수연입니다."
수연이 앉으며 다시 혜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녜. 안녕하세요. 전 심혜원이라고 합니다."
혜원도 다시 수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흠...혜원이가 왜 명상에 잠겼는지 이제야 알겠네. 지금 나오는 음악 니가 좋아하는 음악이
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맞지?"
혜원이 정재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은 정재의 말에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였
다. 분명히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단지 연주 악기가 바이올린이어서 낯설었던 것이었다.
바이올린특유의 슬픈 선율은 쓸쓸함과 외로움, 비애가 가득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우울
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다.
"참! 내가 아는 사람중에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수연이 웃으며 정재와 혜원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혜원이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 원 죽자 사자 들으니....."
정재가 의자에 두팔을 걸면서 크게 웃었다.
"오빠도 참...내가 언제..."
혜원이 정재와 수연을 번갈아 보면서 낯을 붉혔다. 수연은 혜원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청초
하기 이를데 없이 깔끔한 외모를 지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뭔가가 뇌리를 빠
르게 스쳐갔다. 5일전 자신의 집에서 세레나데를 듣던 민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민우
가 가지고 있던 커플링에 새겨져 있던 `혜원`이란 영어 이니셜, 그리고 자신앞에 앉은 세레
나데를 좋아하는 혜원이란 여자, 그리고 거실에 걸려있던 정재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던 민우
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수연은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틀림없이 어
떠한 연관성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오빠, 나 화장실 좀 다녀 올게."
"응, 그래 알았어..얼른 갔다와 점심 먹으러 가게."
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수연이 정재를 돌아보았다.
"정재씨, 아까 올때는 동생이 아니라면서...동생은 따로 있다면서. 성이 다른걸 보면 분명히
친남매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뭐...아무러면 어때..동생은 동생이지."
정재가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감추고 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솔직하게 얘기해봐, 누구..야?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대단한 미인이네. 결혼할 사이야?"
수연이 속삭이다시피 얘기했다.
"난 수연씨가 더 이쁜데 뭐...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수연이 정재에게 눈을 흘겼다.
"정재씨, 분명히 동생분 이름이 심혜원이야?"
"그래, 갑자기 그건 왜?"
민우가 리조트에 도착하자. 서쪽하늘에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민우는 리조트 입구에
차를 세우고 저물어 가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리조트건물들을 응시
했다. 3년만에 와보는 카라리조트는 3년전 그대로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니발 상가를 걷던 민우는 혜원이 운영하던 꽃집앞에서 발길을 멈췄
다. 가게는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민우는 상가 언저리에 위치한 유럽풍의 건물인 프로포
즈방을 올려다 보았다. 민우의 기억은 3년전으로 돌아가는지 한동안 프로포즈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발은 어느새 프로포즈방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민우는 살며시 프로포즈
방 문을 열고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방은 눈이 부셨다. 마치 누군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천장에는 노란 장미가 그대로 있었고 정면 창문에는 하얀 실크커튼이 묶여져 있
었다. 창문 왼쪽 탁자위에는 과일과 포도주. 그리고 유백색의 목련꽃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
루며 세팅이 되어있었다. 왼쪽 벽에는 연인한쌍이 마주보고 있는 그림한장이 걸려있었다.
민우는 목련꽃에다 코를 댔다. 놀랍게도 생화였다. 민우는 목련꽃과 과일바구니 사이에 종이
한장이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박용주<목련이 진들>에서-
민우는 다시 종이를 접어 목련꽃과 과일바구니사이에 꽂았다. 누가 이방을 관리를 하고 있
는것일까. 민우는 누군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목련꽃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과 크리스탈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민우는 방을 나와 메인호텔너머 점핑파크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리는 점핑파크는 자욱
한 안개가 덮고 있었다. 민우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똑똑..."
혜원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다가 노크소리에 문을 열었다. 정재였다.
"혜원아, 그래 프로포즈방은 다녀왔어?"
"응..."
"그래, 예쁘게 꾸몄어? 천장에 달린 노란장미는 어때?"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어. 그거 다 털어내느라고 좀 힘들었어."
혜원은 대답을 하면서도 정재를 바로볼수 없었다.
"혜원아, 식당으로 와, 가서 기다릴게."
"알았어 오빠."
정재도 혜원의 마음을 아는지 더 이상 프로포즈방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빠."
정재가 나가려하자 혜원이 불렀다.
"........"
"수연이란 사람, 결혼했어?"
"아니. 그건 왜?"
"아니...그냥. 궁금해서."
혜원이 여전히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대답했다.
"그 친구가 결혼안한건 아마 일때문일거야. 미국에서 같이 공부할때도 열성이 대단했거든.
결혼하면 자신의 일을 포기해야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안했을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만나서가 아니고?"
"혜원이는 그 친구가 그렇게 보이던?"
"응, 상당한 미모에다 성격도 쾌할하구 낙천적인 것 같던데....웬만한 남자는 성에 안찰 것
같던데...그 사람이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까?"
혜원이 정재를 돌아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너도 우리가 대화하는거 봤지. 꼭 남자들의 대화 같지 않던? 걔는 날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아. 미국에 같이 있을때도 날 친구 이상으로 생각안한 얘야."
"그...래."
"정재씨, 혜원씨는?"
정재가 혼자 레스토랑에 나타나자 수연이 물었다.
"응, 금방 올거야."
레스토랑은 몇쌍의 남녀가 드문 드문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혜원씨 지금 뭐하고 있어? 직업이 뭐야?"
"꽃 만지는 사람."
"꽃 만지는 사람?"
"플로리스터야."
"어머! 그래...어쩐지 꽃처럼 이쁘더라."
수연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너도 만만치 않은데 뭘 자꾸 그러니."
정재가 눈을 흘겼다.
"아냐. 난 선머슴 같은데가 있지만 혜원씨는 여자인 내가봐도 부러울 만큼 프리티 우먼이
야."
"원...참 내가 다 몸둘바를 모르겠네..."
정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정재씨 이제 얘기해봐, 혜원씨하고 어떤 사이인지."
수연이 문쪽을 한번 보고는 정재를 졸랐다. 정재가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수연을 물끄러
미 쳐다보았다.
"대답못하겠는데..."
"아이, 왜 그래."
수연이 탁자에 턱을 괴고 있다가 김이 빠지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며 짜증을 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니? 정 알고 싶으면 혜원이한테 직접 물어봐."
"치사하다 정말.....그럴 기회가 있을지 몰라."
수연이 정재에게 눈을 흘기며 혀를 내밀었다. 그녀가 문쪽을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저게 누구야."
수연이 정재뒤 문쪽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등이 희미해서 잘볼수 없지만 틀림없
이 민우였다. 수연이 문쪽으로 걸어갔다.
"유민우씨 아녜요?"
수연이 민우에게 얼굴을 들이밀자 민우가 흠칫 놀라며 머리를 뒤로 제꼈다.
"수..수연씨..."
"민우씨, 여기 어쩐일이예요? 정말 반갑네요."
수연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래동안 헤어진 친구를 만난양 기
뻐했다.
"수연씬 여기 어쩐일로....?"
"민우씨도 참, 제가 제 생일 때 말씀드렸잖아요. 카라리조트에서 세미나가 있을거라구요."
"아참, 그랬었죠. 그게 오늘입니까?"
"아뇨. 다음주 월요일이예요."
정재는 민우를 보자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여기서 또 만나다니, 곧 혜원이가 나타날텐데. 정재는 이제 표정관리 하기조차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사람이 알고 있다니....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정재는 두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민우와 수연이 정재쪽으로 걸어왔다.
"민우씨, 여긴 친구인 박정재씨, 그리고 이쪽은 유민우씨, 서로 인사들 하시죠."
수연이 인사를 시키려하자 민우가 정재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재...씨..."
"민우씨, 또 만나네요."
정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수연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민우와 정재를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 아는 사이..예..요?"
"응, 수연씨,"
정재가 대답했다.
수연은 그제서야 자신의 생일날 민우가 정재사진을 유심히 보던걸 떠올렸다. 어쩜 이런 우
연이 다 있을까...세사람은 틀림없이 서로 아는사이가 분명했다. 수연은 정재와 민우, 그리
고 혜원, 세사람의 관계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리고 민우는 혜원이란 여자는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그녀는 버젓히 살아있지 않는가. 민우는 어째서 혜원이 죽은 것으
로 알고 있을까. 정재와 혜원은 연인사이일까...... 그녀는 짧은 순간에 어느정도 의문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혜원이 죽은걸로 알고 있는 민
우는 혜원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수연의 머리를 꽉 채웠다. 민우는 수연이 정재와
아는 사이라는걸 그녀의 생일날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세사람이 만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민우씨, 우선 좀 앉아요."
민우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자 수연이 민우의 팔을 잡고 자리에 앉혔다. 출입문쪽을 보
는 정재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수연은 정재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나 잠깐 좀 나갔다 올께요."
정재가 두사람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정재씨 빨리 갔다와."
수연은 정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예상된 정재의 행동이었다. 자신이 민우를 데리고 식
당을 벗어나든 정재가 혜원이 들어오는 걸 막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식당 엘리베이트 문이 열리면서 혜원이 모습을 나타내자 정재가 혜원의 팔을 잡고 다시 에
리베이트안으로 들어갔다.
"오빠....왜 그래?"
"응, 우리 저쪽 리조트 호수카페에 가자. 호수카페 분위기가 좋거든, 수연씨는 약속이 있대."
"그래......오빠, 저녁 먹어야 할거 아냐."
"카페에도 먹을게 많아."
정재가 엘리베이트 문을 닫았다.
"민우씨, 여긴 어쩐일이예요? 정말 뜻밖이네요."
"3년전에 이곳에서 리모델링공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고향가는 길에 한번 들러봤어요."
"그렇구나...그럼 정재씨도 그때 알게 된 거군요."
"예, 그래요. 그때 정재씨가 여기 실장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일도 같이 하게 된거죠."
수연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민우가 자신의 집에서 사진속의 정재를 보고도 아는 사
람이라고 얘기안한 이유도 묻고 싶지 않았다. 의문은 실타래처럼 풀리는 것 같았다. 혜원은
플로리스터이기 때문에 여기 공사때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을것이다. 그때 세사람사이에 무
슨일이 생겼다는건 쉽게 유추해볼수 있었다. 흔히 일어나는 삼각관계, 그리고 그로인한 뻔한
결과, 일단은 현재 정재와 혜원의 관계가 궁금했다. 셋중에서 한사람인 민우가 떨어져 나갔
다면 정재와 혜원은 왜 어정쩡한 관계일까. 애매모호한 그들의 관계가 궁금했다. 한가지 분
명한건 민우가 혜원을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고향이 전남 보성이랬죠 언제 올라올거예요? 다음주 화요일날 출국해야 하잖아요."
"내일이 일요일이고....월요일날은 올라와야죠. 수연씨는 언제 올라올겁니까?"
"저도 월요일날 세미나 끝나고 바로 올라갈거예요. 참, 민우씨 저녁 안드셨죠?"
"예, 안그래도 저녁 먹으러 들어왔어요."
"뭐, 드실래요?"
수연이 메뉴판을 들여다 보았다.
"박정재씨 오면 같이 먹죠."
"아뇨, 정재씨는 약속이 있대요, 그래서 나갔어요."
"제기 괜히 두사람을 방해한건 아닙니까."
민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걱정말아요."
수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민우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호텔밖은 어둠에 잠긴채
가로등만 빛나고 있었다.
"수연씨, 전 그만 가봐야 겠어요."
"녜? 지금 집에 가신다구요?"
"예."
"여기서 자고 가요. 너무 늦었는데."
"괜찮아요. 방 예약을 해둔것도 아닌데 아마 방도 없을겁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오늘 꼭
간다고 했어요. 정재씨 만나면 인사못드리고 갔다고 좀 전해주세요."
수연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민우씨 화요일날 공항에서 뵙도록 해요."
"그래요. 공항에서 봐요."
민우가 뒤돌아서 호텔을 빠져나갔다. 수연은 한동안 민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민우가 보성에 도착하자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민우는 잔디로 뒤덮인 마당으
로 들어섰다. 방이며 거실이며 죄다 불이 켜져있었다. 평소에는 전기사용료가 많이 나온다며
꼭 필요한곳 외에는 불을 잘 켜지 않던 자신의 어머니가 오늘은 집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켜둔 것 같았다. 민우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모친이 안방에서 나왔다.
"민우야, 왜 이렇게 늦었니. 좀 일찍와서 저녁이나 집에서 먹지않구."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젖어있었다. 3년만에 보는 외동아들인지라 오죽하겠는가. 민우를 보는
그녀의 시선은 지독한 외로움에 절어있는 것 같았다. 민우가 그녀를 안았다.
"어머니, 미안해요."
그녀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래 밥은 먹었어? 웬만하면 집에 와서 먹지 그랬냐."
"미안해요 어머니, 너무 늦어서 먹고 왔어요,"
"좀 앉아라. 차좀 내올게."
민우는 큰방과 자신의 방을 한번 열어보고는 거실에 앉았다.
"민우야,"
민우모친이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민우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알아요 어머니, 무슨 말씀 하실지...."
"그래 마음에 둔 사람이 있느냐?"
"걱정마세요. 이태리에서 완전귀국하면 결혼할께요."
"언제 돌아올건데. 여자도 없잖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걱정마세요. 만들께요."
".........."
민우모친이 한숨을 쉬었다.
"박정아란 아가씨 소식은 모르니?"
"어머니, 정아는 얼마전에 결혼했어요."
"그...래, 너 후회하지 않니? 그 아가씨 못잡은거."
"어머니도 참,"
민우가 쓴 웃었다.
"어머니, 은혜부모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아요?"
"........."
"왜요 어머니, 무슨일 있어요?"
"은혜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프신가봐. 내일 한번 들러봐라."
녹차밭은 추수가 한창이었다. 민우는 녹차밭을 끼고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늘어선 오솔길을
지나 은혜의 집에 도착했다. 단풍이 물들고 있는 나무들과 초록의 숲으로 둘러쌓인 은
혜의 집은 산장을 연상케 했다.
"계십니까?"
민우가 노크를 하자 한참후 문이 열리며 은혜아버지가 머리를 내밀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민우 아니니?"
은혜아버지는 민우를 보자 마치 친자식을 만난것처럼 반가워했다.
"아버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래 나야 잘있지 어서 들어와. 언제 귀국했어?"
"귀국한지는 한 보름되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면서요?"
"항상 그렇지 뭐."
안방에는 은혜모친이 누워있었다. 민우가 옆에 앉자 그녀는 간신히 민우를 알아보는 것 같
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그녀는 민우를 보고는 눈만 껌벅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뼈대만 앙상했다.
"아버님, 어떻게 된겁니까?"
"원래 건강이 안좋았잖아. 그런데다가 합병증까지 겹쳤어. 병원에서도 손을 쓸수가 없대.
그래도 아직까지 살이있다는 것이 기적이래."
민우는 가죽만 남은 은혜모친의 얼굴을 보면서가슴이 아파왔다.
"아버님은 건강이 괜찮으세요?"
민우는 3년사이에 은혜 아버지의 머리가 더 희어진 것 같았다. 이마와 눈가, 양쪽귀밑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난 괜찮아. 마누라가 걱정이지."
그의 목소리는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머님은 전혀 움직이지도 못해요?"
"먹지를 못하니 움직일 기운이 없는거지."
민우가 은혜모친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민우야. 너 결혼은 안하는 거니?"
".........."
"왜, 혜원씨란 아가씨를 못잊어서 그러는 거니?"
"아...아닙니다 아버님."
"지난일이지만 그때 정재란 사람이 너와 혜원양이 사랑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한테 한적있
어. 그래서 혜원양이 자신의 심장주인이 은혜란걸 알면 충격을 받기 때문에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정재씨가 나한테 말했던 적이 있어. 민우 니가 혜원양을 보면서 죽은 은혜를 떠
올릴까봐 민우어머니께서도 반대를 많이 하셨다는것도 알고 있단다. 하지만 민우어머니께
서도 민우니가 이태리가고 난다음에 후회를 많이 하셨어. 혜원씨가 자신의 심장이 은혜의
심장이란걸 알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게 왜 너희 두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는지 이해가 안가더구나. 민우도 그렇고 혜원양도 진실된 마음으로 서
로 사랑하면 그만이지 혜원양이 은혜의 심장을 가졌다고 해서 혜원양이 은혜가 될 수는 없
어. 난 혜원양이 정재씨와 결혼을 하지않고 정말 사랑하는 너와 결혼을 했더라면 혜원양은
지금쯤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결국은 혜원
양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해."
".........."
"하긴 은혜, 혜원양....두사람이나 잃고 나니 의욕도 없을거야. 그래도 민우어머니 봐서라도
결혼을 해야지."
"은혜야, 잘있었니?"
민우는 은혜의 묘에 가져온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묘는 벌초가 깨끗이 되어있었다. 묘주위는
들국화와 진한 분홍빛의 철쭉꽃이 조화를 이루며 군데군데 묘를 감싸듯이 피어있었다.
"너도 죽고 너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도 죽고....이제 너의 어머니까지 오늘내일 하시는구
나..... 사람 사는게 왜이런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민우가 탄식을 했다. 산소아래 비포장도로에는 경운기한대가 먼지를 날리며 한가롭게 지나
가고 있었다.
설천호수는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모서리를 감아쥐고 던진것도 아닌데 혜원의 손을 떠난
돌은 물표면을 한번 튀기고는 호수에 가라앉았다. 잔잔하던 호수는 파문이 커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돌을 던지려다 호수 반대편 나루턱에 묶여있는 노란색의 나룻배를 발견했다.
틀림없이 저배는 3년전 민우와 같이 탓던 배가 틀림없었다. 혜원은 그때 배에 물이 스며드
는 바람에 휴대폰이 고장났던걸 떠올렸다.
"혜원씨!"
혜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호수카페쪽에서 수연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그녀의 엷은 초록색 스커트가 시원해 보였다.
"여기 있었어요? 한참을 찾았네."
수연이 허리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왜요, 무슨일 있어요?"
"아뇨...방에도 없길래 걱정이 되어서..."
"......."
어머! 그러고 보니 호수가 참 깨끗하고 아름답네요."
혜원은 수연의 즐거워하는 표정이 얘들같이 귀여워 보였다.
"오빠는 뭐해요?"
"정재씨는 내일 세미나 준비로 바쁜가 봐요."
"수연씨는 준비안해요?"
"저요?"
호수에 눈길이 가있던 수연이 혜원을 돌아보았다.
"저는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요. 이것만 있으면 돼요."
수연이 자신의 귀를 가리키자 혜원은 웃음이 나왔다. 수연이 스커트를 엉덩이 밑으로 감싸
며 혜원이 옆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듯한 향긋한 샴푸냄새가 혜원의 코를 자극했
다.
"혜원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
혜원은 아무말없이 수연을 쳐다보았다. 수연은 별다른 뜻 없이 물어본다는 듯 느긋한 표정
을 지었다.
"누구를 사랑해본적이 있어요? 그것도 가슴이 시리도록."
"........"
"아니..그냥, 혜원씨를 보니까 갑자기 그런생각이 드네요?"
"..........."
"설마 정재씨는 아니겠죠?"
혜원은 수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호수에 눈길을 돌렸다.
"정재오빠와는 너무나 오랫동안 같이 살아와서 사랑이란말로는 설명이 어려워요."
"그래..요. 전 혜원씨 말이 더 어려운 것 같네요."
수연이 까르르 웃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요? 가슴에 멍울이 생기도록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요?"
수연이 다시 물었다.
"있었는데.....지금은 없어요."
"무...슨 소리...예요?"
수연이 눈을 반짝이며 혜원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제가 이세상에 없는줄 알고 있어요."
"그래..요."
"더 물으신다면 대답하지 않겠어요."
혜원이 호수를 바라보며 다소 냉담하게 말했다.
"그.....그래요. 혜원씨 마음을 언짢게 했다면 미안해요. 그럼 정재씨와는 정말 오빠, 동생 사
이예요?"
수연이 혜원의 표정을 살폈다. 혜원은 여전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렇잖아요.....남녀가 같이 있으면 두사람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궁금해 지잖아요. 제
가 지금 그렇거든요. 정재씨와 정말 어떤 사이예요? 정재씨한테 물으니 그냥 오래전부터
오빠, 동생사이로 지내고 있다고만 하던데...."
수연이 말을 하고는 다시 조심스레 혜원의 표정을 살폈다.
"결혼할 사이예요."
혜원이 다시 돌을 집어 호수로 던지며 말했다. 혜원의 발 끝에서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그래요.....정재씨는 물어도 아무말도 안하던데...."
수연이 다시 혜원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제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예요."
하늘은 도시의 매연으로 온통 잿빛이었다. 태양마저 새벽안개에 잠긴양 희뿌연하게 도시의
탁한공기에 휘감겨 있었다.
"실례합니다."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화환을 만들고 있던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오세요."
민지가 고개를 빼고 미간을 찡그리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이었다.
"저... 모르시겠어요?"
"아! 정재아저씨 친구분 맞죠?"
민지가 그제서야 환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이죠? 좀 앉아도 돼겠어요?"
"녜, 아저씨 어서 앉으세요."
민우가 소파에 앉았다.
"아까 전화하셔서 이곳 위치 물어보신분이 아저씨죠?"
민우가 웃음으로 대답했다.
"근데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전화국에다 문라이트 카라 전화번호좀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참,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아저씨 좀만 기다리세요. 차한잔 타드릴께요."
민지가 주방으로 사라졌다. 민우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테이블 옆에는 민지가 조물락 거리
던 흰색과 노란국화꽃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상가집에 갈 근조화환을 만들고 있던 것
같았다.
민우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빨간 장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노란 장미와 카라꽃도
눈에 띄었다. 주방문옆에는 튜울립과 노란수선화가 벽을 따라 층을 이루고 있었다.
"아저씨, 근데 어쩐 일이세요?"
민지가 찻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물었다. 그녀의 표정은 소풍나온 초등학생처럼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연보라색의 노란 원피스에는 군데군데 붉은 장미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냥 들러봤어요. 가게 이름이 인상적이어서....."
"가게 이름이 좋아서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얼른 납득이 안가네요."
민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민우를 쳐다보았다.
"이 꽃집 민지씨가 운영하는 겁니까? 얼마전 회관에서 언니가 이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얘기
한 것 같은데...."
"녜?"
민우의 갑작스런 질문에 민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겁니다."
"녜... 사촌언니가 운영...해요. 가게 이름도 언니가...."
민지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민우가 쓸쓸하게 웃었다.
"아저씨도 카라꽃과 노란장미를 좋아하시는가 보죠?"
"누가 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민우가 빙긋히 웃었다.
"아...아뇨.... 아저씨, 내일 출국하시죠?"
"어떻게 알았...어요?"
"얼마전 아침에 텔레비전에 나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
"가시면 언제 와요?"
"아직 돌아올 계획이 없어요. 공부를 더 해야해요."
"근데 아저씨는 결혼...안해...요?"
민지는 민우에게는 어쩌면 가장 민감한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더듬거렸다.
"........"
민우는 민지의 말에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저씨가 사랑했던 사람도 꽃을 좋아했어요?"
민우는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민지를 쳐다보았다.
"왜요, 텔레비전에 나오셔서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사람도 꽃을 좋아 했
냐구요."
민우는 한동안 민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여인은 카라꽃을 좋아했고 나는 문라이트를 좋아해요."
"그....그래요..."
민지는 입술을 깨물며 민우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근데 아저씨..... 사랑하던 사람과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요?"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런일은 없을겁니다. 주위 사람들이 죄다 날
속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
"때르르릉....."
민지가 민우의 눈치를 살피며 테이블위의 수화기를 들었다.
"녜? 병원이라구요? 언니 지금 없는데요. 언니 지방에 갔어요?.......녜, 알았어요."
민지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촌언니가 멀리갔나 보죠?"
"아, 녜, 아저...씨........"
파아란 하늘과 알록달록한 산야의 풍경은 투명하기조차했다.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는 논과
밭에는 농부들의 풍년가가 들리는듯했다. 추수가 끝난듯한 논에서는 누군가 볏짚을 태우는
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열린 차창으로 볏집 타는 냄새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오빠, 이 냄새 좋지."
혜원이 연기냄새를 맡았는지 차창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
"무슨 냄새?"
정재가 핸들을 잡은채 혜원을 돌아보았다.
"왜, 낙엽 태울 때 나는 냄새 말이야. 지금 그 냄새가 나잖아."
"난 잘 모르겠는데..."
"피이...오빠후각이 무딘가봐. 논두렁 태울 때 나는 냄새 있잖아."
"왜, 넌 그 냄새가 좋니?"
"응, 오랜만에 맡으니 좋아. 이 냄새 맡으면 어릴적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메뚜기 잡으
러 논밭을 헤집고 다니던 기억도 나고 지연이네 집 울타리아래에 핀 채송화를 꺾었다가 엄
마한테 혼난 기억도 나고 고등학교 다닐때에는 오빠하구 나하구 연애한다구 얘들이 놀리던
기억도 나고....타임머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혜원은 마치 과거를 여행하고 있는 듯 눈을 감은채 차창틀에 턱을 의지하고 있었다. 정재
는 그런 혜원의 옆모습이 웬지 측은해 보였다.
"돌아가고 싶어....오빠, 돌아가고 싶어....고통없는 그 시절로...."
".........."
"오빠."
혜원이 정재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래 하나 할까?"
"한번 해봐, 무슨 노랜지."
정재가 미소를 지었다. 혜원은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뜨락에
창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아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집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집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가고 해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아아 이제는 손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쌍이네.....
"이게 무슨 노래니?"
"오빠는 모를거야. 누가 요즘 가곡을 좋아하겠어."
"가곡이니?"
"응,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고향의 노래`라는 가곡이야....노랫말이 너무좋아, 멜로디도 좋
고....그래서 좋아해. 오빠는 별로지?"
"아냐. 니가 잘불러서 그런지 몰라도 이 노래를 들으니 정말로 고향생각이 절로난다."
"오빠, 지금쯤 우리가 살았던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뒷집 꼭지네는 그대로 있을까? 동
네 어귀 느티나무와 포도밭은 그대로 있을까? 아침 안개자욱한 뒷산에 뙈아리를 틀고 있던
뱀들까지 보고 싶어진다...."
"언제 한번 가보도록 할까?"
"그냥 아무 때나...오빠 안바쁠 때...."
혜원은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겨울이 오기전에 한번 가도록 하자."
차는 어느새 대진(대전, 진주) 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대전터널
을 지나자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지만 4차선으로 넓어지는 회덕분기점을 지나자 차들은 다시
속도를 내기시작했다.
"혜원아, 수연이란 친구하고 얘기는 나눠봤니? 사람이 어떻든?"
차가 신탄진 금강다리위를 지나자 정재가 무료한지 침묵을 깨고 혜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혜원은 정재의 말에 풋풋한 웃음을 지었다.
"수연씨, 글쎄......"
"성깔 좀 있을 것 같지 않던?"
"그건 모르겠는데 나에 대해서 궁금한게 많은가봐."
"무슨.... 소리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냐는둥 정재오빠와는 어떤 사이냐는둥 많은 질문을 해왔어."
"그...래."
"오빠, 수연씨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봐. 왜 아직 결혼 안했는냐고 물으니까 좋아하는 사람
이 있대.....그러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쩌면 눈먼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했어. 아마 그 말은 힘
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어."
정재는 수연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민우를 떠올렸다. 어쩌면 수연이 좋아하는 사
람이 민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형화물차들이 굉음을 내며 스치듯 지나가자 정재의 차가 좌우로 휘청거렸다. 정재는 핸
들을 꽉 잡았다.
"오빠....."
혜원이 애절한 눈빛으로 정재를 불렀다.
"왜?"
"나...오빠한테 꼭 할말....있어."
"무..슨 소리니?"
"오빠... 우리... 결혼...해."
정재는 앞을 보고 있다가 혜원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혜원아, 너 방금 뭐...랬니?"
정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으로 파동을 그리고 있었다.
"미안해 오빠......또 오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하지만 진심이야."
혜원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차창밖으로 돌렸다.
"혜원아...."
"오빠, 아저씨 아줌마께서 욕많이 하시겠지? 아주 못돼먹은 얘라구...."
"혜원아, 그럴 리가 있겠니. 그건 걱정...하지마."
"아냐 오빠....난 아저씨 아줌마 심정을 알아...세상에 나같이 못된 얘도 없을거야....내가 대체
뭔데.....벌써 몇 번째야...약혼식 파기하고 결혼식까지 무산시키고 이번에 다시또 결혼하겠다
고 하니...오빠, 나도 내 정신이 아닌 것 같애....날 용서해줘 오빠...."
혜원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
"오빠, 나한테 뭐 물어볼거 없어?"
혜원이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정재를 돌아보았다.
"아니...없어."
정재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왜 갑자기 결혼을 하자고 그러는지 묻고 싶지 않어?"
"그런건 의미없어. 니 마음이 중요한거지."
"언니 왔어요?"
"그래, 민지가 고생이 많구나."
혜원이 가게에 들어서자 민지는 여전히 화환을 만들고 있었다. 한쪽벽에는 여러개의 화환이
기대어 있었다. 혜원은 목이 마른지 핸드백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정수기에서 물을 빼내
마셨다.
"별일 없었니?"
혜원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예, 별일 없었어요. 근데....언니."
"왜...?"
"유민우란 사람이 왔다 갔어요. 얼마전에 회관에서 정재아저씨와 같이 만났다는 사람말이예
요."
혜원은 민우가 왔다 갔다는 말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숨도 막히는것만 같았다. 민지는 혜원의 표정을 살폈다. 혜원은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그래 그...그 사람이 여기에는 어떻게 왔...대?"
그녀는 민지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 가게 상호가 잊혀지지 않아서 왔대요. 문라이트 카라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어요."
"........."
혜원은 입술을 깨문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민지는 혜원을 곁눈질하다가 다시 하던일을
계속했다.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민지야, 그 사람 다른 얘기는 안하던..."
혜원이 소파에 얼어붙은 듯 앉아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출국한다던데요."
민지가 앉은채로 혜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참! 병원에서 전화 왔던데요. 왜 요즘 병원안오느냐구요."
"뭐! 결혼한다구?"
정재부모는 정재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아버지 어머니."
"잘 생각했다. 그래 상대는 누구냐? 열흘전에 만났던 브릴리앙스 호텔의 장녀냐? 내가 봐
도 얘가 심성도 고운 것 같고 얼굴도 참하게 생겼더구나."
"아닙니다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혜원이예요."
"................"
정재부모는 서로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니? 혜원이는 그동안 결혼에 대해서 아무말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너한테 결
혼하자고 그러더니? 니가 이제껏 숱한 혼처를 마다한 이유가 혜원이 때문이었니?"
정재모친의 표정은 정재의 생각과는 달리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여보, 왜 그래?"
정재부친이 정재모친의 팔을 잡았다.
"그동안 참고 있었지만 난 알고 있어. 3년전 너와 혜원이 결혼식때 혜원이가 쓰러진 이유를
애미는 알고 있어."
"어머니...제발... 이제 지난 일입니다."
정재의 눈빛은 간절했다. 정재부친은 팔장을 하고는 아무말도 없었다.
"혜원이 아무리 친딸같지만 이제 너하고의 결혼은 절대 안된다. 걔 목숨 서너번 살려준걸로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고 본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이 자존심도 없는 녀석아, 니가 혜원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면 혜원이는 니가 여태
껏 결혼을 안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는 있기나 한거냐? 자신 때문에 니가 결혼도 안하고 해
바라기처럼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사람으로서 그렇게 무심할 수는 없
다. 그런데 이제와서 결혼을 하겠다는 이유가 대체 뭐니. 왜, 유민우란 사람 기다리는데 지
쳤다더냐?"
정재모친의 얼굴이 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머니, 혜원인 유민우란 사람 잊은지 오래돼었어요. 그리고 혜원인 여태껏 우리한테 미안
한 감정을 갖고 살아왔어요. 제가 결혼못한데 대해서도 항상 죄책감을 느끼곤 했어요."
"혜원이가 그렇게 얘기하던? 니가 어떻게 아니? 혜원이 마음속을 들어갔다 왔니? 아무튼
결혼은 절대 안된다. 그리고 민우란 사람 완전히 잊었다고 해도 안돼."
정재모친이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정재는 낙담한 듯 고개를 떨궜다.
"내가 잘 설득해 볼테니 너무 걱정말아라."
정재부친이 정재의 어깨를 한번 만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정재모친은 문을 등지고 팔장을 하고 서 있었다.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모든걸 잊고 다시 시작하자구. 혜원인 뭐라해도 우리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두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하면 그만이지 과거가 무슨 문제야. 정재는 그렇게 옹졸한 녀석이 아니야."
정재모친이 뒤돌아섰다.
"행복하면 된다구요? 어떻게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거예요? 혜원이가 진정으로 정재를 사
랑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어요?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가 갑자기 그 마음이
정재에게 돌아왔다고 믿고 싶은거예요? 정재가 민우란 사람대신 차선으로 선택됐다고 생각
해봐요. 사랑없는 결혼은 절대 오래 못가요!"
정재모친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여보, 정재와 혜원인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야. 어릴때부터 꾸준히 쌓아온 신뢰가 바
탕이 되어 유지되어온 사이야. 난 그 신뢰가 사랑과는 별개라고 봐. 오누이 같은 관계로 두
사람을 설명하는게 옳다고 봐."
"그래도 안돼요. 내눈에 흙이 들어가는한 절대 안돼요. 난 3년전 혜원이가 결혼식때 쓰러진
이유가 민우란 사람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혜원이만 보면 혜원이 얼굴에 민우라 사
람 얼굴이 자꾸만 겹쳐보여요. 그런데 어떻..게...."
"오빠, 무슨 일이야?"
다음날 늦은 오전, 정아가 정재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왔어? 그래 거기 좀 앉아라."
정재가 인터폰을 들었다.
"여기 커피 두잔 부탁해요."
"오빠, 내가 신혼여행 갔다온 새에 얼굴이 어째 안돼 보인다."
"아냐, 괜찮아. 그래 김서방은 잘 있어? 이사람 신혼여행 갔다 오고 전화한통 없네."
정재가 인터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오빠가 이해해, 신혼여행 갔다오자마자 그 사람 일이 바빠졌어. 그런데 무슨일이야?"
"너 나좀 도와 줘야겠다."
정재의 눈이 빛났다.
"오빠...무슨 소리야?"
"나 혜원이와 결혼한다."
"오빠....그게 정말이야?"
정아가 입을 벌리고 놀란눈을 했다.
"그래 정말이야."
"결혼얘기 누가 먼저 꺼냈는데."
"그게 왜 중요하니."
"아니 오빠, 아주 중요해. 혜원이는 이제껏 자신의 입으로 약혼식이든 결혼식이든 꺼낸적이
없어. 그런 혜원이가 결혼얘기를 먼저 꺼냈다면 아주 중요한 변화라는 거지 나쁜 뜻으로 물
은건 아냐."
"그래, 혜원이가 결혼하자고 했어."
"정말이지 오빠? 혜원이도 결국은 별수가 없구나."
정아가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비서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갔다.
"그런데 도와 달라는건 무슨 소리야?"
"어머니가 반대를 하셔."
정재가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
"3년전 혜원이가 결혼식때 쓰러진거 유민우씨 때문이라는걸 알고 계셨어. 니가 얘기했니?"
정아가 정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땐 솔직히 너무 화가났었어. 혜원이 병원에서 의식이 혼미할 때 민우씨를 계속 부르는걸
보고는 너무나 화가 났었어. 그래서...."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했단 말이니?"
"오빠가 혜원이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지금은 후회 막금이다. 왜 그때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
했는지 모르겠어."
정아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툭툭 쳤다.
"니가 엄마를 좀 설득해줘."
"어느 정도야?"
"어머니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셨어. 혜원이는 아직 민우씨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
시나봐."
"혜원이 민우씨 귀국한거 알고도 민우씨 안만날려구 했다고 오빠가 얘기했었잖아...그럼 혜
원이는 민우씨를 잊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것 같은...데 엄마는 요지부동이라...."
정재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내가 엄마 설득해 볼테니까 혜원이도 엄마 한번 만나보라고 얘기해, 무엇보다도 당사
자인 혜원이가 엄마한테 자신의 진심을 알려야해. 그게 중요해."
"그래...그게 좋겠지..만약에 그래도 어머니가 끝내 반대하신다면...."
정재는 비장한 결심을 하는 것 같았다.
"반대...하신...다면?"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혜원이와 결혼 할거야."
책상위에서 전화벨이 울리자 정재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여보세요? 박정잽니다."
"정재씨, 나 수연이야."
"응, 그래 수연씨야."
"나 오늘 이태리로 떠나."
"아, 참 그렇구나 수연씨 이태리로 간댔지. 기다려 내가 배웅나갈게."
"아..아냐 정재씨, 나오지마 다녀와서 연락할게."
"그래도 괜찮겠어? 미안한데..."
"괜찮아 정재씨, 나오지마 그만 끊는다 다녀와서 만나자."
정재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빠, 누구야?"
"응, 친구야. 미국 MBA 동기."
"민우야, 다 왔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민우와 대풍은 곧장 1층로비로 들어갔다.
"민우야, 몇시 비행기야?"
민우가 에스켈리터에 오르자 대풍이 물었다.
"얼마 안남았어. 그리고 같이 갈 사람이 있어."
"같이 갈사람? 누군데...? 여자야?"
"응, 여자야. 내가 일했던 세종문화회관에 근무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태리에는 왜 같이 가냐?"
대풍이 눈을 흘기며 민우의 어깨를 잡았다.
"형도 참....다른 생각 하지마. 그 사람도 이태리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같이 가는거야."
인천국제공항 2층 비즈니스센터 앞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민우가 시계를 보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민우씨?"
민우가 뒤돌아 보았다. 어떤 여인이 선글레스를 쓴체 다가오고 있었다. 민우는 한참을 쳐다
보다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야 백수연임을 알았다. 그녀의 뒤에는 남자한명이 따르고 있었
다.
수연이 안경을 벗었다. 웃고 있는 그녀의 하얀치아가 백옥같이 희어보였다.
"언제 왔어요?"
"저야 오래됐죠. 파라다이스 비즈니스센터에서 일좀 보고 있었어요."
대풍이 민우 옆구리를 손으로 쿡쿡 찔렀다.
"아참, 수연씨 인사하세요. 형님입니다. 형도 인사해, 백수연씨라고 세종문화회관에 근무하시
는 분이야."
"안녕하세요. 백수연이라고 합니다."
수연이 대풍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예...안녕하세요. 지대풍이라고 부릅니다."
민우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수연씨, 3층으로 올라가요. 탑승수속을 밣아야죠. 형은 그만가."
"그..그래 알았어. 탑승수속 밝는 것 보고 갈게."
"민우씨, 뭐해요? 어서 가요."
보안검색을 받기위해서 출국장으로 들어가던 수연이 출국장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민우
를 돌아보았다.
"민우씨. 어서 가요."
민우는 뭔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민우씨, 뭐하고 있어요?"
"............".
민우는 끝내 혜원의 흔적을 찾지 못한데 대한 허전함이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오면서 가슴
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그녀를 잊어야 할때가 온 것만 같았다. 민우는 마치
출국장 입구가 자신을 빨아들이는 수렁처럼 보였다. 이제 저곳을 통과하면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릴것만 같았다. 그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우는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손으로
조물각 거리던 조그만 상자를 바지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민우씨, 그거 뭐예요?"
뒤에서 보고 있던 수연이 물었다. 자신의 생일날 보았던 민우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케이스였
다. 민우는 수연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상자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별거 아닙니다."
"민우야, 잘가. 몸조심하구....."
"형, 도착하면 연락할게."
"그래..."
대풍이 손을 흔들었다. 민우는 출국장으로 들어서며 대풍에게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민우 아저씨! 잠깐만요!"
민우와 수연이 출국장입구로 막 들어가려하자 3층 출구쪽에서 누군가 민우를 부르며 뛰어오
고 있었다. 네 사람의 시선이 출구쪽으로 쏠렸다.
"아니, 민지씨 아닙니까?"
민지가 이마에 굻은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아가씨는..."
대풍이 눈을 가늘게 뜨며 민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풍은 몇번 장미와 혜원이 운영하
는 꽃집에 갔다가 민지를 본적이 있었다.
"어머, 대풍아저씨 아녜요?"
민지는 민우와 대풍을 번갈아 보았다.
"민지씨, 여긴 어떻게...."
민우는 의아한 눈으로 민지를 쳐다보았다.
"아...아저씨, 심...혜원씨 아시죠?"
민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우리꽃집 주인이 심혜원씨예요."
민우는 한동안 얼어붙은 듯 민지를 쳐다보다가 출구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민...민우씨!"
"미...민우야!"
민우가 뛰어가면서 뒤돌아 보았다..
"수연씨, 혼자가요! 난 나중에 갈께요. 미안해요!"
혜원은 앞치마를 두른채 창문가에 서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그녀는 눈
이 시려운지 이맛살을 찡그리며 손으로 햇살을 가렸다. 부숴지는 햇살사이로 무지개가 보이
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길이 창가 오른쪽아래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노란장미꽃에 머물렀
다. 노란장미꽃은 붉은 장미, 튜울립, 흰카탈리아, 분홍다알리아. 흰 백합화등이 빼곡이 들어
찬 벽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노란장미꽃을 만졌다. 꽃에는 아침에 민
지가 뿌려준 물기가 만져졌다. 그녀는 다시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쯤 민우는 저
하늘 어딘가를 날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순간 슬픔이 밀려오며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그녀는 민우를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문라이트를 보는순간 자
신의 의지가 무참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제 가게에 왔다가 쓸쓸히 돌아섰을 민
우의 모습이 떠오르며 어쩌면 그는 한국에 있는동안 자신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귀국해서 정재오빠를 만났고 회관에서는 자신과 마주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제
는 결국 가게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혜원은 민우가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질없는 자신의 집착을 탓하며 비행기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는 가슴이 아파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혜원은 붉게 상기된 얼굴을 손으로 더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계속........
첫댓글 정말 다음회가 기대 되네요. 역시 얽키고 설키는게 드라마지만 너무 얽키게 만들지는 마시구요.
와웅 역시 데스님이십니다요..낮에 보지를 못해서 바로 들어와서 다 봤는데,,,일향님 말씀처럼 다음회가 기대되는군요..민지넘 이뻐^^ 그리고 새로운 등장인물 수연이란 인물이 음,,,몬가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글케 떠날리가 없지 민우가,,,,데스님 더운데 글쓰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부탁의 말씀,,,
제발 민우랑혜원이 데이트도 많이하고 밥도 많이 먹고 행복한거 많이 써주세요..이제 정말 가슴아픈건 보기 싫거든요^^ ㅋㅋㅋ 감좌합니다~ 미리 인사^^
읽어 내려오면서 데쓰님이 미워졌어요...아무리 다음을 기약한다하지만....너무나 아쉬웠어요...마지막을 읽으면서....눈물이 납니다...아! 정말 감상주의자 느낌입니다...만나서 반갑습니다......윤감독님께도 꼭 님의 글 보내보세요......다른 글 쓰셔서요..신인 공모전에도 응모해보시구요...부족하다면 다듬어서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추어로 남기엔 아쉽네요...또 꿈이 이 쪽 분야라 하셨던걸로 기억하구요...단막극 이런 분야로 먼저 도전해보심이 어떨런지요......데쓰님이 글을 잘 쓰는지 부족한지 전 잘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지루하지 않다는 거예요...한 번 잡으면 끝을 보고서야 손에서 놓아진다는 거예요...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듯 싶은데.......혹여 지금 연습중이신건가요....가능하시다면 본명으로 올리세요...혹여 나중에 작가로 등단하게 된다면 얼른 알아볼수 있게요...ㅎㅎㅎ....주제 넘은 이야기였는지 ..실례가 되는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부는 아니랍니다...다만 염려스러운것은 제 판단력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데쓰님의 인생항로에 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네요....글 잘 읽었습니다.....다음을 기대할께요.. 다음회를 시작해야하는 부분 설정도 기가 막히게 잘하시는군요....꼭 보게 만드는......궁금증 만땅!!!!!!
어제는 슈베르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써프라이즈에서 보고 민우를 떠올렸네요...그리고 사랑하던이를 사고로 잃고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는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의외로 소설 같은 이야기가 곳곳에 존재하는군요...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때문에... 혜원은 또 정재에게 희망고문을 가하고 있는 건가요...? 정재가 넘 안되었네요.....남을 위한다는게 어느땐 정말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요....때론 단호한 결단력이 필요하네요...
데스카드님..계속이라 했는뎅~언제 올려 주실건가영~에고...빨리 좀 올려 주시징~넘 궁금해서리..넘 재밌게 봤어요..아직 끝 아니지 ...하고 방송 볼때처럼 조마조마하게 읽었어요..다음편 눈빠지게 지달림..ㅋㅋ
허 힘들어 간신히 밧어여 ... 빨리 나왓음 좋겟는데 너무 꼬앗내요 등장 인물을 2명 추가시켜서 너무꽈서 쬐금 아쉬움 그냥 여서 계단서 만나서 잘되서 끝낫음 좋을텐데 .. 하튼 2부빨리좀 부탁해요 ~
이틀동안 대구에 출장가 있다가 방금 올라왔어요. 느낌님의 무자비한 (?) 도배 여전하시군요.^^ 님이 보시기에는 제가 작가기질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는 몰라도 전 그냥 이러다 말거예요..^^ 솔직히 머리싸매고 두문불출하면 안될것도 없겠죠. 누구나 말이죠.
드라마 대본형식으로 쓰면 쓰기가 훨 쉬워요. 감정표현을 세세히 할 필요가 없기때문이죠 하지만 드라마로 제작을 하지않는한 대본만으로는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설형식으로 이렇게 쓰고 있어요. 소설형식으로 쓰면 등장인물의 감정표현을 아주 세세히 표현해야하는것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말이 감정표현이지 무척이나 힘들어요. 이게 저의 한계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심리묘사언어`가 생각안날때는 거의 한계에 봉착하죠. 그럴때는 왜 시작했을까 하는생각도 해요.
님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군요. 빠른시일안에 22회를 올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쉽지가 않을것 같아요. 언제올릴지 기약은 못해요........미안합니다...^^
출장 다녀오셨군요..더운데 고생 많으시네요..아묻튼 우리 향기님들은 다 데스님 팬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