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회
김한석
“어느 모임에 오셨습니까?”
“만취회 모임입니다.”
“아~ 네. 꽤나 요란스럽겠네요.”
주당(酒黨)들의 모임이니 뒤치다꺼리가 골치 아프겠다는 투다. ‘만취’라는데 지레 겁먹었는지 이 불경기에 찾아온 손님도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노는 모양새를 지켜보지도 않고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빈정거리는 듯한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한번은 식당을 예약하면서 모임의 이름을 묻기에 “만취회”라 했더니 몇 번을 되묻는다. 처음엔 장난일거라 반신반의했던 듯, 진위(眞僞)를 알고서는 꽤나 호감이 가는지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년 부인의 낭랑한 목소리가 우리모임의 존재감을 확인해 주는 것 같아 맞장구치며 한참 얘기를 주고받았다. 예약주문일랑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고.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여주인은 감각만으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재담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회식을 파하고 나오는데 우리일행의 면면을 보고도 데면데면 대한다. 꽤나 호기 있는 주객으로 기대했다가 ‘그깟 주량으로 무슨 놈의 만취회야!’하는 눈빛이다. 술집에서야 폭탄주를 돌려가며 매상깨나 올려주고 곤드레가 되도록 술에 취해야만 제대로 대접받는 호걸인가. 만취회 라는 호칭에 미리 겁먹던 처음 주점과는 어쩜 이렇게 시각이 다를 수가.
우리는 문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내가 늦둥이로 수필집을 내었으나 다들 두 세권씩 책을 펴낸 중견 수필가들이다. 의기가 투합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술잔이 몇 순배 돌고나면 거대담론으로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거침없이 펼치기도 한다.
만취회란, 실은 滿醉(만취)가 아니라 晩翠(만취)회다. 앞의 만취는 술에 잔뜩 취함을 말하고, 뒤의 만취는 푸르름이 늦게까지 변하지 않음을 이른다. 그걸 알 리 없는 세인들의 눈엔 마치 주정이나 부리자고 작심한 사람들의 패거리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린 후자의 만취회요” 라며 떠벌리며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아예 명칭을 바꾸자는 회원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두 호칭이 나름대로 독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취(晩翠)에는 황혼의 나이에도 청춘을 간직하겠다는 열정과 패기가 엿보인다. 멈추지 않고 꿈과 희망을 향해 도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듬직한가. 만취라는 명제 앞에 서면 조금도 긴장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한 축제≫라는 책에는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만 살다간 상처 받기 십상’ 이라고 적고 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주변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준다며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면모(眞面貌)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쫓아 달려가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힘 빠지는 충고인가. 옛날 같으면 그런 역설적인 주장에 펄펄 뛰었을 터이나 오랜 세월을 살았음인지 거기에도 일말의 진리가 있다며 수긍이 간다.
만취(滿醉)라고 하면, 어쩐지 낭만을 떠올리게 돼 매력적이다. 옛날에는 문인이라면 술에 취해 다소 객기를 부리거나 괴벽(怪癖)스럽게 굴어도 작가란 원래 그런 존재라며 관대했다. 그들은 당대의 지식인이요, 선각자였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 민족의 아픔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 울분을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낭만과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호기심 많던 젊은 시절, 나도 ‘작가’ 라는 호칭이 듣고 싶었음인지, 어쩌다 만취라도 되면 우주는 온전히 내 것이었고, 그 끝없는 공간을 마음껏 유영하고 다녔다. 어느 호걸처럼 시를 읊으며 달을 쫓아 강물에 뛰어드는 꿈의 허무를 맛보기도 했는데….
술은 시의 경지요, 환상의 세계가 아니던가. 이제는 문학도라는 긍지라도 가졌으니 이백(李白)의 풍류를 제대로 한번 뽐내보고 싶다. 용기를 내어 호방한 문인의 기개를 이어가고자 애를 써봐도 기력이 딸려 환상 속에 머물고 만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인들은 기성세대나 신인들을 막론하고 왜 그리 무기력하고 풍류가 없는지.
오늘날 우리의 술 문화에는 다소 문제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술을 멀리만한다면 낭만을 잃게 되어 세상이 삭막해질 것만 같다. 다소 술에 취한들 심지만 굳건히 한다면 만취(滿醉)로 인한 폐해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며 잠시 궤도를 일탈한들 만취(晩翠)가 잘 뒤받쳐줄 것 아닌가. 한편 너무 만취(晩翠)로만 치닫은 나머지 무미건조한 단계에 이르게되면 만취가 낭만으로 인간성을 회복해 줄 것이다. 두개의 축은 적당한 긴장과 유연성으로 배의 평형수처럼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조절해 나갈 것이니 지극히 이상향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모임의 명칭을 한자(漢字)로 쓰지 않는다. 우리모임의 베일이 들통 나 묘미도 잃고, 한자에 감추어진 심오한 맛도 달아나버릴 것 같아서다. 두 의미로 읽혀지는 ‘한글의 만취회’야말로 내게 쥐여진 매우 값진 호칭이다.
첫댓글 제가 살고 있는 수동면 수동중학교와 수동초등학교 사이에 만취대(晩翠臺)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