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 김밝은
눈치 채지 못했다
시치미떼고 불쑥 나타난,
붉은 물집 같은 얼굴들
탱자나무 가시덩굴처럼
빽빽한 눈물로 가득해진 뒤에야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선물처럼 두고 갔음을 깨달았다
독하디독한 통증을
비명처럼 앙다물어도
온몸은 허공에서 어지럽기만 한데
눈치 없는 마음이 문제였다고
굳이 짝을 맞춰 붉어지는
낯선 표정들
벼락이 내린 흔적처럼
내 몸 어딘가
화인火印으로 남은 시간이 들썩여도
아슬아슬하게 붉어진 물집처럼 끝내
터트릴 수 없는 눈물이 있다
ㅡ 김밝은 시인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새까만 울음을 문지르면 밝은이가 될까』등. 시예술아카데미상, 심호이동주문학상, 전국계간문예지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 역임, 현재 미네르바 부주간, 한국시인 편집위원
독일의 철학자 M.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제한된 공간과 사유의 한계로 인하여, 여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언어를 통한, 현상을 시로 형상화하기에 내재한 통점을 어느 정도 순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어 발생하는 질환이다. 어릴 때 수두를 앓은 후 바이러스가 신경 주위에 잠복 상태로 남아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질 때 나타나며 주로 몸통이나 엉덩이 부위에 발생하지만 신경이 있는 부위라면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다.
시인이 호소하는 통증은 대상포진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겪는 변화의 주기에 따라, 심층 의식의 포화를 정화하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평생 몸에 숨어있던 바이러스처럼 성찰과 구도에의 여정에서 만나는 기억들로 아프기도 하다. 시인의 지향점과 탐미의 세계가 선명하다. (박용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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