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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11.5.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3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반갑다. 화엄경 공부시간이다. 요즘 이렇게 알뜰하게 개인 축원해주는 데가 잘 없다. 실시간 방송을 통해서 여러분들 만나뵈니까 이름을 한 번씩 이렇게 읊고 마음속으로 축원도 하고 참 좋다.
지금 미국에는 대통령 선거가 큰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어서 코로나가 더 큰 일인데도 잠깐 뉴스에서 묻혔다.
그러나 절대 우리 불자님들 마음 놓지 마시고 조심하면서 사셔야 할 줄 믿는다. 절대 낯선 사람 함부로 만나지 말고 사람 만날 때는 꼭 마스크 끼는 것 잊지 마시고, 어떻게 하더라도 이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잘 무사히 넘겨야 할 줄 믿는다. 부디 그렇게 하시기를 부처님께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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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한 단락 읽어보겠다.
어제는 주주신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을 살펴 보았다면 오늘은 ‘주야신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할 차례다.
주야신, 낮이 있으면 당연히 밤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다. 우주의 별들 세계를 우리가 살펴보면 참 요행히도, 정말 다행스럽게도 알맞은 거리에 별들이 있고, 태양이 있고 달이 있고, 일부러 작품을 만든 것 같이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배열되어 있고 적당한 거리에 태양이 있다.
태양의 열기가 알맞게 지구의 생명체를 위해서 때로는 춥기도 하고 때로는 덥기도 하고 적당하게 열량을 보내고 빛을 보낸다.
별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연히 그렇게 별들이 배열된 것 같은데 마치 사람들이 일부러 작품을 만든 것도 같다. 달과 태양과 별들과 지구가 나열된 것이 1cm의 거리도 오차 없이 꼭 필요한 거리에 딱 이렇게 배열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신기한 이치다.
특히 우리나라 기후는 늦가을로 접어들어서 공기가 많이 쌀쌀한데 사철의 계절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계절계절마다 산천초목이 옷을 갈아입고 색깔을 변화시켜 주는 모습들도, 마당에 나가서 산천초목을 바라보면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다. 정말 불가사의하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낱낱이 감지하는 그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들에게 마음이 있다고 하는 이 사실, 그 마음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있어서 그 모든 상황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일일이 감지한다.
살피고 느끼고 알고 깨닫고 거기에서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어떤 변화에 대한 이치도 깨닫기도 하고 신비롭기 이를 데 없다.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자연현상도 불가사의하고 신비롭지만 그러한 사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우리가 이 한마음의 주인공을 가지고 그것을 감지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이 사실은 더욱더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그래서 결국은 주인공인 한마음, 이 참나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는 더 깊이 느끼고 그것을 확실하게 알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고 믿는다.
불자들은 자나깨나 마음공부니까, 마음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렇게 굴러가고 있으니까 늘 그러한 이치를 놓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어제는 주주신 낮을 맡은 신이라면 오늘은 밤을 맡은 신 주야신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이라.
22. 주야신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 득법
부차보덕정광주야신(復次普德淨光主夜神)은 득적정선정락대용건해탈문(得寂靜禪定樂大勇健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보덕정광(普德淨光) 주야신은 고요한 선정의 즐거움에서 크게 용맹한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밤다운 의미를 한껏 담고 있다. 고요한 선정의 즐거움, 그대로 밤이 갖는 의미를 잘 나타낸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크게 용맹한 해탈문을 얻었다.
고요한 선정의 즐거움에서 크게 용맹하다. 고요하고 조용하다고 해서 힘이 없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사자가 크게 포효하듯 하는 어떤 현상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표현한 것 같이 느껴진다.
희안관세주야신(喜眼觀世主夜神)은 득광대청정가애락공덕상해탈문(得廣大淸淨可愛樂功德相解脫門)하니라
희안관세(喜眼觀世) 주야신은 광대하고 청정하며 사랑스러운 공덕의 모양인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대하고 청정하며, 사랑스러운 공덕의 모양, 이 밑에다가 저는 이런 말을 써 놓았다.
불심(佛心)이라는 낱말에는 불교에서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마음씨와 마음 작용이 다 들어 있다. 부처님의 마음과 보살의 마음과 선지식의 마음과 도인의 마음과 큰 스님의 마음 등등이 다 들어 있다. 그것이 “광대하고 청정하며 사랑스러운 공덕”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과 용서의 마음과 하심(下心)의 마음과 배려의 마음과 사양의 마음과 겸손의 마음과 다른 이를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등등 훌륭한 마음은 다 들어 있는 말이 불심이다. 그래서 기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야신이다.
저는 누가 책에다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걸핏하면 불심(佛心)이라고 써준다. 옛날부터 모필 글씨로도 불심이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썼다.
불심이라는 두 글자 속에 모든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마음, 6바라밀의 마음, 온갖 사섭법, 사무량심의 마음이 전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불심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 의미를 여기서 담았다.
호세정기주야신(護世精氣主夜神)3은 득보현세간(得普現世間)하야 조복중생해탈문(調伏衆生解脫門)하니라
호세정기(護世精氣) 주야신은 세간에 두루 나타나서 중생들을 조복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세간에 두루 나타나서 중생들을 조복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은 세간에 두루 나타난다. 그리고 중생들을 다 교화하고 조복하고 성숙시키는 일을 한다.
적정해음주야신(寂靜海音主夜神)은 득적집광대환희심해탈문(得積集廣大歡喜心解脫門)하니라
적정해음(寂靜海音) 주야신은 광대한 환희심을 모으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대한 환희심을 모으는 해탈문을 얻었다.
보현길상주야신(普現吉祥主夜神)은 득심심자재열의언음해탈문(得甚深自在悅意言音解脫門)하니라
보현길상(普現吉祥) 주야신은 매우 깊고 자재하여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말씀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매우 깊고 자재하여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말씀의 해탈문을 얻었다. 그분 이름이 보현길상주야신이다. 그 이름과 그 법을 얻은 내용이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보발수화주야신(普發樹華主夜神)은 득광명만족(得光明滿足)한 광대환희장해탈문(廣大歡喜藏解脫門)하니라
보발수화(普發樹華) 주야신은 광명이 만족하여 광대한 환희의 창고인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명이 만족하여 광대한 환희의 창고인 해탈문을 얻었다. 지혜 광명을 만족하여 환희가 광대하다. 그러한 창고의 해탈문을 얻었다.
평등호육주야신(平等護育主夜神)은 득개오중생(得開悟衆生)하야 영성숙선근해탈문(令成熟善根解脫門)하니라
평등호육(平等護育) 주야신은 중생을 깨우쳐서 선근을 성숙케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중생을 가르친다. 사람을 교육시킨다. 몽매한 사람 어린 사람들 또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우리가 깨우치고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선근을 성숙시키는 일이다. 착하게 살라는 것이다.
착하게 살라는 것, 양심대로 살고 정직하게 살고 이치를 알아서 이치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가 무엇이냐?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다.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선한 일을 많이 하라. 더 간단하게 하면 착한 일 하고 살아라.
그 한마디로 요약할 수가 있다.
그것이 칠불통계(七佛通戒)라고 해서 과거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공통적으로 중생들에게 내리신 가르침이다.
착하게 살라.
중생들을 깨우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아이들 유치원에 보낸다든지 초등학교에 보낼 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아라’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유희쾌락주야신(遊戱快樂主夜神)은 득구호중생무변자해탈문(得救護衆生無邊慈解脫門)하니라
유희쾌락(遊戱快樂) 주야신은 중생을 구호하는 끝없는 자비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중생을 구호하는 끝없는 자비라고 하는 것이 또 무엇이겠는가? 그저 어떻게 하더라도 정직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이치를 알고 살라. 그것도 참다운 이치를 알고 이치대로 살라고 하는 가르침을 펴는 것이다.
제근상희주야신(諸根常喜主夜神)은 득보현장엄대비문해탈문(得普現莊嚴大悲門解脫門)하니라
제근상희(諸根常喜) 주야신은 장엄을 널리 나타내는 큰 자비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장엄을 널리 나타내는 큰 자비문의 해탈문을 얻었다. 장엄을 널리 나타낸다.
장엄도 필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찌 딱 주식만 가지고 먹을 수 있는가? 반찬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고 기타 과일도 필요하고 식사를 하는 데도 그러한 것이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런 많은 장엄이 필요하다.
시현정복주야신(示現淨福主夜神)은 득보사일체중생(得普使一切衆生)으로 소락만족해탈문(所樂滿足解脫門)하시니라
시현정복(示現淨福) 주야신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널리 만족케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널리 만족케 한다. 그렇다.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중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 화엄경과 같은 성인의 가르침을 자꾸 읽고 읊조리고 또 써보고 한 번 써보고, 두 번 써 보고, 혼자 흐뭇해 하고 하는 것이다. 출세간의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즐거움을 널리 만족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그다음에는 게송이다.
2) 게송
이시(爾時)에 보덕정광주야신(普德淨光主夜神)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변관일체주야신중(徧觀一切主夜神衆)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보덕정광(普德淨光) 주야신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주야신 대중들을 두루 살펴보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여등응관불소행(汝等應觀佛所行)하라 광대적정허공상(廣大寂靜虛空相)이시니
욕해무애실치정(欲海無涯悉治淨)하사 이구단엄조시방(離垢端嚴照十方)이로다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행하신 바를 관찰하라.
넓고 크고 고요한 허공의 모습이시니
끝없는 욕망의 바다를 다 다스려 깨끗이 하시니
때가 없고 단엄(端嚴)하여 시방을 비추시네.
참 좋은 게송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행하신 바를 관찰하라
넓고 크고 고요한 허공의 모습이시니
부처님의 행하신 바는 넓고 크고 고요한 허공의 모습이시다.
끝없는 욕망의 바다를 다 다스려 깨끗이 하시니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정말 끝이 없다. 대통령 한 번 했으면 됐지 그걸 또 하려고 저렇게 아등바등 온갖 시시비비를 해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 사람들, 그래도 대통령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신사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까 완전히 진흙탕 싸움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국에서 하는 민주주의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네?’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 내가 그런 뉴스를 듣고는 ‘야 참 그 사람들도 할 소리 했구나’ 아프리카는 미개한 나라라고 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미국 같은 나라는 유럽에서 건너간 사람들, 아주 선진국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야말로 신사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할 줄 알았는데 보니까 완전 진흙탕 싸움을 벌여도 보통이 아니니까 ‘우리 아프리카 사람들 미국사람들에게 배울 것 아무것도 없네’ 이런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정말 비꼬아도 그렇게까지 비꼴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비꼴 수 있는 틈을 주었다는 것,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참 그러고도 그것 생각하지 않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비꼬든 말든 그것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욕심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이시간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
끝없는 욕망의 바다를 부처님은 다 다스려 깨끗이 하시니
때가 없고 단엄(端嚴)하여 시방을 비추시네
이 게송이 오늘 또 그런 미국대선과 맞물려서 내가 이런 구업을 짓게 된다.
일체세간함락견(一切世間咸樂見)이여 무량겁해시일우(無量劫海時一遇)라
대비염물미부주(大悲念物靡不周)하시니 비해탈문관세도(此解脫門觀世覩)로다
모든 세간이 다 보기를 즐겨하지만
한량없는 겁 동안에 한 번 만남이라
큰 자비로 중생들을 두루 걱정하시니
이 해탈문은 희안관세 주야신이 보았도다.
모든 세간이 다 보기를 즐겨하지만
한량없는 겁 동안에 한 번 만남이라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다.
큰 자비로 중생들을 두루 걱정하시니
이 해탈문은 희안관세 주야신이 보았도다
도사구호제세간(導師救護諸世間)이여 중생실견재기전(衆生悉見在其前)하야
능영제취개청정(能令諸趣皆淸淨)케하시니 여시호세능관찰(如是護世能觀察)이로다
도사(導師)께서 모든 세간을 구호하심이여
중생들이 그 앞에 있음을 다 보도다.
모든 갈래 중생들을 다 청정하게 하시니
이러한 것은 호세정기 주야신이 관찰하였네.
도사(導師)께서 모든 세간을 구호하심이여
중생들이 그 앞에 있음을 다 보도다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다.
모든 갈래 중생들을 다 청정하게 하시니
모든 갈래라고 하면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그런데 중생들을 다 청정하게 성숙시킨다 이런 뜻이다.
불석수치환희해(佛昔修治歡喜海)여 광대무변불가측(廣大無邊不可測)이라
시고견자함흔락(是故見者咸欣樂)하니 차시적음지소요(此是寂音之所了)로다
부처님이 옛적에 닦으신 환희의 바다여
광대하고 무변하여 측량할 수 없네.
그러므로 보는 이가 다 기뻐하고 즐겨하니
이것은 적정음해 주야신이 깨달은 바로다.
부처님이 옛적에 닦으신 환희의 바다여
부처님이 수행을 했다, 그냥 수행했다, 고행을 했다, 참 딱딱한 표현이다. 그런데 뭐라고 했는가? ‘옛적에 닦으신 환희의 바다여’ 중생을 환희케 하는, 그리고 본인 자신도 환희한다. 그 환희심이 잠깐 한 조각 정도가 아니라 바다같이 넓고 넓다는 뜻에서 옛적에 닦으신 환희의 바다여
광대하고 무변하여 측량할 수 없네
부처님이 닦으신 환희의 바다, 자신도 환희롭고 중생들에게도 환희롭고 나도 환희롭고, 너도 환희롭고, 모두가 환희로운 공부, 그런 수행, 그런 일이 바로 불법이라는 것이다.
나도 환희롭고, 그도 환희롭고, 모두가 다 환희로운 삶의 길이 바로 불교에서 불법이 제공하는 길이다.
그래서 광대하고 무변하여 측량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는 이가 다 기뻐하고 즐겨하니
불교를 제대로 전하기만 하면, 또 불교의 진정한 뜻, 부처님의 참마음,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에게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우리가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보는 이가 다 기뻐하고 즐겨할 수 밖에 없다.
‘불교 좋다. 불교 환희롭다. 아 대단한 불교야. 사람들에게 기쁨을 줘. 그 어떤 기쁨보다도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베푸신 진리의 가르침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더이상 찾을 길이 없는 최고의 기쁨이야’
우리 불자들이 모두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고 불교 안에서 이렇게 기쁨을 늘 맛본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신심이고 환희심이다.
여래경계불가량(如來境界不可量)이라 적이능연변시방(寂而能演徧十方)하사
보사중생의청정(普使衆生意淸淨)케하시니 시리야신문용열(尸利夜神聞踊悅)이로다
여래의 경계는 헤아릴 수 없음이라.
고요하지만 또한 시방세계에 두루 소통하시어
중생들의 마음을 다 청정케 하시니
보현길상[尸利] 주야신이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네.
여래의 경계는 헤아릴 수 없음이라.
고요하지만 또한 시방세계에 두루 소통하시어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고, 없는 듯이 고요하다. 그런데 시방세계에 두루 통한다는 것이다.
중생들의 마음을 다 청정케 한다.
중생들이 인연만 잘 제대로 접속이 되면, 부처님과의 인연이 딱 접속이 되면 중생들이 다 청정케 된다. 다 성숙된다. 다 교화가 된다. 자연스럽게 성숙되고 교화가 된다. 그렇게 아등바등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숙되고 교화된다는 사실이다.
불어무복중생중(佛於無福衆生中)에 대복장엄심위요(大福莊嚴甚威耀)하사
시피이진적멸법(示彼離塵寂滅法)하시니 보발화신오사도(普發華神悟斯道)로다
부처님은 복이 없는 중생들 가운데서
큰 복으로 장엄하여 매우 위엄 있고 빛나시다.
그들에게 번뇌를 떠난 적멸한 법을 보이시니
보발수화 주야신이 이 도를 깨달았네.
보발수화 주야신이라고 하는 분은 부처님에게서 이러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복이 없는 중생들 가운데서
큰 복으로 장엄하여 매우 위엄 있고 빛나시다.
부처님처럼 복 많은 이가 없다. 정말 부처님은 참 복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제일 복짓기를 좋아하는 분이다. 바늘귀 꿰어주는 자그마한 복도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당신이 먼저 가서 그런 작은 복이라도 먼저 짓고자 하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이런 이치를 알고 어찌 우리가 감동과 환희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은 복이 없는 중생들 가운데서
큰 복으로 장엄하여 매우 위엄 있고 빛나시다.
그 복은 어디서 온 것인가? 법을 보시해서 그런 복인이 되었다. 그래서 대시주라고 한다. 법, 진리의 가르침을 보시했기 때문에 그 공덕으로 그런 큰 복인이 되었다.
그들에게 번뇌를 떠난 적멸한 법을 보이시니
보발수화 주야신이 이 도를 깨달았네.
세주묘엄품에, 다섯 권이나 되는 화엄경의 서론에 해당되는 이런 게송들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우리가 다 읽을 수가 있고, 불교의 마음, 불법의 마음, 불교의 마음이 무엇이다 하는 것을 환히 엿볼 수가 있다.
시방보현대신통(十方普現大神通)하사 일체중생실조복(一切衆生悉調伏)하사대
종종색상개영견(種種色相皆令見)케하시니 차호육신지소관(此護育神之所觀)이로다
시방에 큰 신통을 널리 나타내사
모든 중생을 다 조복하시며
온갖 색상들을 다 보게 하시니
이러한 것은 평등호육 주야신이 본 바니라.
시방에 큰 신통을 널리 나타내사
우리가 가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모든 중생을 다 조복하신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고 듣고 하는 사실로써 모든 중생들을 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조복하시며
온갖 색상들을 다 보게 하시니
여래왕석념념중(如來往昔念念中)에 실정방편자비해(悉淨方便慈悲海)하사
구호세간무불변(救護世間無不遍)하시니 차복락신지해탈(此福樂神之解脫)이로다
여래께서 지난 옛적 순간순간에
방편과 자비의 바다를 다 청정하게 하사
세간을 두루두루 다 구호하시니
이것은 유희쾌락 주야신의 해탈이로다.
여래께서 지난 옛적 순간순간에
방편과 자비의 바다를 다 청정하게 하사
세간을 두루두루 다 구호하시니
이것은 유희쾌락 주야신의 해탈이로다
군더더기 붙일 것이 없다. 제가 좋아서 흥분해서 자꾸 이런 말 저런 말 더 붙이고 싶어서 붙이기는 하는데, 깨끗하게 그대로만 읽고 그대로 우리 가슴에 와 닿기만 하면 군더더기는 필요치 않다.
그야말로 긁어서 부스러기가 되는 것 같은 군더더기라고 늘 느끼면서도 또 한 말씀씩 부연하고 싶어서, 좀더 제대로 이해하도록 공감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자꾸 그런 설명을 붙인다. 사실은 다 쓸데없는 기우다.
중생우치상란탁(衆生愚癡常亂濁)하야 기심견독신가외(其心堅毒甚可畏)어늘
여래자민위출흥(如來慈愍爲出興)하시니 멸원신능오희(此滅寃神能悟喜)로다
중생이 어리석어 항상 어지럽고 혼탁하여
그 마음이 견고한 독기에 맞아 심히 두렵거늘
여래가 불쌍히 여겨 출현하시니
이것은 제근상희[滅寃] 주야신이 깨닫고 기뻐하네.
중생이 어리석어 항상 어지럽고 혼탁하여
그 마음이 견고한 독기에 맞아 심히 두렵거늘
삼독(三毒) 독이라고 한다. 이 독기에 제대로 맞으면 그 독은 빼낼 수가 없다. 화타가 오고 어떤 천하의 유명한 의사가 온다 하더라도 그 독기는 뽑아내지 못한다.
참 두려운 일이다.
그런 중생들 우리 주변에서 보지 않는가? 신문지상에서 TV의 뉴스에서 우리가 자주 본다.
그 마음이 견고한 독기에 맞아 심히 두렵다.
그런 사람들하고 인연될까봐 얼마나 두려운지 말도 못한다. 그런 것들이 자기딴에는 머리 굴려서 똑똑하게 한다고 하지만 중생이 어리석어서 항상 어지럽고 혼탁해서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의 영혼은 참 볼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어지럽고 혼탁한가?
아주 심한 견고하고 견고한 독기에 맞아서 정말 그 사실을 보면 가까이 가기가 두렵다. 주변에 조금만 가까이 가도 그 독기에 우리도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 어떻게 하더라도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지혜와 자비의 힘이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을 조복하고 교화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가까이해도 되고, 당연히 보살로서는 가까이해야 하지만 그런 상황이 못되면 쉽게 가까이할 일이 아니다.
주변에 그와 유사한 일들을 많이 보지 않는가?
한 분 한 분들 평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하신 일들 속에도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내 일생에 몇 번 만났다’고 아마 속으로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저 같은 사람도 어려서 출가해서 절에서만 평생을 살았는데도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세속이야 오직 하겠는가? 그렇다고 절 집안이 세속하고 특별히 다르다고 하는 뜻은 아니다. 똑같다.
여래가 불쌍히 여겨 출현하시니
여래가 그러한 이들이 불쌍하고 애처롭고 안타까와서 세상에 오셨다. 그런 뜻이다.
중생이 어리석어 항상 어지럽고 혼탁하여
그 마음이 견고한 독기에 맞아 심히 두렵거늘
여래가 불쌍히 여겨 출현하시니
이것은 제근상희[滅寃] 주야신이 깨닫고 기뻐하네
불석수행위중생(佛昔修行爲衆生)하사 일체원욕개영만(一切願欲皆令滿)이실새
유시구성공덕상(由是具成功德相)하시니 차현복신지소견(此現福神之所見)이로다
부처님이 옛적에 중생을 위해 수행하사
모든 원력을 다 원만히 하였네.
이로 이해 공덕상호를 온전히 성취하시니
이것은 시현정복 주야신이 본 바로다.
부처님이 옛적에 중생을 위해 수행하사
모든 원력을 다 원만히 하였네
중생을 위해서 수행하는데 참 각양각색의 중생들, 별의별 업을 다 짓고 살아가는 중생들 그들을 다 교화하고 조복하고 제도하려면 모든 원력을 다 원만히 할 수밖에 없다. 한두 가지 원력가지고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원력을 다 원만히 하였다.
이로 이해 공덕상호를 온전히 성취하시니
공덕상호. 부처님의 모습은 공덕상호다. 그냥 생긴 얼굴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중생들을 위해서 수행하고 ‘별의별 중생들을 다 내가 감화를 입게 하고 감동을 주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도록 해야되겠다’ 하는 원력을 가지고 갖추어진 상호다.
그러니까 술취한 코끼리도 부처님 앞에 와서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해치려고 아주 사나운 코끼리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부처님 앞에 몰고가서 풀어놓았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코끼리도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거기에 감동을 해서 스르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는 그림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부처님의 덕의 모습은 그와 같다.
그뿐인가? 어떤 사람이 99명을 살인을 하고 마지막 100명째 부처님을 살인하러 왔는데 그 사람도 또 감동을 받아서 결국은 부처님을 해치지 못하고 마음을 돌리고 교화를 입었다 하는 내용이라든지 등등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복을 많이 짓고 덕을 많이 닦고 음덕을 많이 쌓으면, 남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덕을 많이 쌓아놓으면, 그것이 어디 가겠는가? 그것이 전부 자기 자신에게 축적이 되어서 풍긴다. 사람들에게 풍기기 때문에 그러한 어떤 감화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런 정도가 되어서 원력을 다 원만히 했다.
이로 인해 공덕 상호를 온전히 성취했다.
공덕의 상호, 부처님의 모습은 공덕의 상호다.
그래서 불상을 모시는 데는 참 신중하게 모셔야 된다. 존경심이 가고 늘 보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대상이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고 돈 아끼지 말고 최대한 잘 모실 수 있는 데까지 잘 조성해서 모셔야 한다. 그런 것들도 제가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오늘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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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명, 이 낮에 많이도 오셨다. 동시 시청자수 71명으로 되어 있다. 참 많다. 평균 20분 정도 공부를 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많은 동참하셔서 이렇게 훌륭한 화엄법회를 빛내주셨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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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날로 더욱 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굴러가서
미망에 허덕이는 만 중생들 하루빨리 지혜의 눈을
활짝 뜰 수 있게 하여지이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主夜神~ 아! 아름다운 밤이네요. 위쪽 라이트의 불빛을 살짝 감추고 보니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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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환희롭고, 그도 환희롭고, 모두가 다 환희로운 삶의 길이 바로 불교에서 불법이 제공하는 길이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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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主夜神ㅡ고요, 청정, 원만, 넓게 두루 밝게 비춤 등,
주야신의 드러나지않으면서도 이익을 주는 공덕행에 환희하고 찬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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