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9월11일(금). 맥체인 성경 읽기표를 따라 성경 읽기. 1) A) 삼하 5장.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2) +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7). 창 3:15.창14:18. 시110:4. 창15:14-21. 22:2. 18. 수15:63. 시2:6. 신16:5-6. 삼하 삼하6:2. 시 24:7.마2:6. 마21:9. 계14:1. 21:2. 9-11.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의 인물 다윗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예루살렘 정복 ⒜ 5장은 드디어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 즉 통일왕국의 왕이 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40년을 다스렸는데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 때가 찬 경륜”(엡 1:9)이 있는 것입니다. ⒝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때의 다윗의 나이가 30세+7년 6개월+ 37세쯤 되었으니까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지 근20년 만에 성취가 된 것입니다. 사울도 40세에 왕이 되어(삼상13:1), 40년 동안 왕노릇(행13:12)한 것으로 보아, 다윗이 사울을 처음 만날 때의 나이가 겨우 10 세 정도였음과 사울과 함께한 세월이 무려20년 세월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구속사에서 40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광야 같은 우리 인생. 그 인생 가운데 자기 중심의 왕 노릇하는 인생이 있고, 다윗과 같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빌2:5. 마20:28)ㅡ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왕 노릇(빌3:3)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나는 어떠한 왕 노릇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 엘리 제사장도 40년(삼상4:18), ㈁ 사울도 40년(행13:12), ㈂ 다윗도 40년(삼하5:4. 왕상2:11, 대상29:27), ㈃ 솔로몬도40년(대하9:30), ㈄ 다 같은 40년 왕 노릇이지만 성경에서 다윗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이었음을 증거합니다. 40년을 왕 노릇(빌2:5. 시78:68-72))하다가 70세 즈음에 하나님 나라(눅13:28)에 가게 되었습니다. 다 같은 40년의 왕 노릇이지만 사울과 다윗, 솔로몬 각각 왕 노릇하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노릇의 길이 어떠한 길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78:68-72).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윗은,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한 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결코 앞서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 5장의 핵심은,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왕)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2하)한 “목자와, 왕”이라는 말씀과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7)하신 목자와 왕이 되시는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예루살렘을 정복한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목자와, 왕”(겔34:23-24)이 여자의 후손(창3;15), 아브라함의 자손(창 22:28),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그 이름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의 태아나실 곳이 예루살렘 인근 베들레헴(미5:2)이기 때문입니다. 창 14:18.시110:4. 창15:14-21. 수15:63. 시2:6. 신16:5-6. 삼하6:2. 시24:7. 마2:6. 마21:9. 계 14:1. 21:2. 9-11. ⒠ 그러므로 5장의 주제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와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7)입니다. 창14:18. 시110:4. 창15:14-21. 수15:63. 시2:6. 신16:5-6. 삼하 삼하6:2. 시24:7. 마2:6. 마21:9. 계14:1. 21:2. 9-11. ㈎ 첫째 단원(1-5) 말씀대로 되었더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2)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4-5). ㈏ 둘째 단원(6-9). 그 이름(창22:2. 13-14. 시2:6)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16:6),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그 땅(여부스 땅 .창15:21)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서 왕이 됨.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6-9). ㈐ 셋째 단원(10-25)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10. 1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22. 24) * 나누어 봅시다. ① 다윗이 “말씀대로”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② 비로소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았다는 점에 대해서, ③ 봉사하는 자와 대적하는 상반된 반응에 대해서, ④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24상)하신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22). 블레셋 군대가 “가득했다”는 말은 수적으로는 중과부족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24상). “걸음 걷는 소리”가 무슨 뜻일까요? 성경은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24하)하십니다. ㈀ 모세는 언약궤를 메고 출발할 때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 10:35)하였고, ㈁ 다윗은 노래하기를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 하셨을 때에”(시 68:7) 하고 감격해했던 것입니다. ㈂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25) 합니다. ㈃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도 목자와 왕이 되셔서 백성들 앞에서 행진하셨으며, 이제도 목자가 되사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요 10:4) 가는 것입니다. * 적용- 형제의 귀에는 “뽕나무 위에서 걸음 걷는 소리”, “세미한 음성(시119:18. 105)이 들리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면“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 68:19)고 찬양할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와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입니다. 목자와 왕 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말씀에 나타난 언약궤의 핵심, 우리 주님의 복음, 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 찬송203장.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 B) 삼하 6장.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하나님의 궤”(삼하6:2. 출25:22. 사6:1-2. 행 10:43)를 예루살렘에 옮겨 오게 됨. ⒜ “다윗의 잘못” – 다윗의 교만. 언약궤를 새 수레에 태워 오면 내가 기뻐할 줄 알았더냐. 웃사의 죽음을 통해. 나는 소를 위해 십자가 진 것이 아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 마16:24. 눅9:23. 갈5:24. ⒝ “언약궤를 메고 운반.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예루살렘에 안치” ㈎ 하나님의 뜻은,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시78:68),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기를”(시68:16) 원하셨기 때문.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24:7).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삼하6:13-15)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요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구속을 성취하신 그 이름. 주님이 주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찬송 :524장. 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524. 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1)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 예수곧 오라하시네 후렴: 죄악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 주의 이름 – 내 이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안치됨과 같이 그 언약궤의 주인공 주의 이름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성취의 복음과 결부되어 있음을 늘 잊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주의 이름은 항상 성육신과 대속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복음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그 날(구속성취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구속성취의 은혜가 너희 안에 적용되는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요16:24. 2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구속을 성취하신 그 이름. 주님이 주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 구속사 맥락에서 궁극적 새 예루살렘성은 - 언약궤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성취의 은혜가 적용된 그리스도인들이 새 예루살렘 성 - 창 22:13-14.번제가 드려진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내 아들을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6).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창22;2. 신16:5-6. 대상21:18). 여호와의 산, 시온 산에 임재(미5:2)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의를 이루시고(고전15:3-4. 롬3;25-26. 요19:30. 히9:12). 그 은혜를 성령을 통해 적용(히10:19-20)받은 그 분들이 주님이 함께 거하시는 성전(고전3;16)이요, 주님의 집(고전3:9)이요, 주님의 신부(사62:2-5. 엡5:32)요, 여호와 삼마(겔48:35. 계21:3)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벽옥과 수정같이 맑은 새 예루살렘성.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계21:9-11) ㈑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언약궤”(삼하6:2. 출25:22. 레16:14-15. 사6:1-3. 요 12:23-24. 27-28. 40).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24:7. 삼하6:2. 마21:9. 요1:12) - 다윗이 왕이 되고 난 이후 최초로 한 일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창15:18-21)을 이룬 것입니다(삼하5:6-7). 그리고 그 땅에 언약궤를 모시는 일입니다. 이는 이 땅의 존재기반이 메시아 언약임을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을 저버린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그 언약이 중심에 있을 때 약속의 땅(사6:13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입니다. 다윗의 중심에 그 언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형제의 마음속에도 그 언약(갈2:20)이 자리 잡고 있는지요(계3:20). ⒞ 그러나 슬픈 일도 함께 있었으니 언약궤를 메고 올때에 같이 기뻐하지 못하고 조롱한 미갈.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삼하 6:20-23). ㈎ 다윗은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 뛰놀리라”(21). 우리를 택하셔서 지옥만 면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자녀면 하나님의 후사요 유업을 이을 자인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고 말씀하십니다. ㈏ 성경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부르고 있지 아니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 번(16, 20, 23)을 다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그 아내 미갈이”, 이렇게 불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도 성경은 “사울의 딸 미갈 ”(20)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 하나님의 궤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아버지에 그 딸”인 셈입니다. 아버지 사울이 경건 생활을 등한히 여기지 않았더라면 딸에게 이러한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23)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시 127:3)을 의미합니다. 미갈에게는 돌아갈 여호와의 기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 에서가 좋은 예가 됩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다윗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이를 거절하자 축복 대신 저주가 임한 셈입니다 . “축복”을 가지고 돌아온 다윗을 박대한 것이 곧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에게는 돌아갈 축복이 없었습니다. ㈔ 우리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 잘해보려고 하다가 잘못을 저지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날도 구속의 은혜를 망각하고 인간의 의를 예표하는 “새 수레”로 모시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 만일 예배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구속하신 그 사랑에 대하여” “힘을 다하여 춤을 추듯 ”14), “사함으로 섬기는 기쁨”(12)이 없다면 화려한 건물과 시설들은 한 낮 새 수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의 날(주일)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산 소망을 주신 날입니다. 벧전1:3. 시110:3. 시118:22-24.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118:24). ㈖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우리 부부 사이가 다윗과 미갈 같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부모 된 우리는 자손들에게 어떤 신앙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숙연한 마음으로 점검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입니다. * 나누어 봅시다. ① 다윗이 새 수레로 운반하려 한 의중에 대해서, ② 하나님의 궤를 메어라 하신 의도에 대해서, ③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한 다윗과 비난한 미갈에 대해서, ④ 새 예루살렘성의 구속사적 의미에 대해서 2) 고전 16장. 믿음에 굳게 서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A)고린도 교회는 분쟁, 음행, 형제간의 송사, 우상제물의 문제, 예배의 무질서, 부활 교리의 부정 등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하나 시정해주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 첫째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합니다. 이는 건강한 교회라 되라는 격려입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4) 합니다. ㈀ 이 둘을 요약하면 “진리와, 사랑 가운데 행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22) 한, “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를 부탁하면서 앞으로의 선교계획 등을 언급합니다. ㈀ “구제와, 선교”는 사랑의 실천(첫째 단원)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 그런 후에, 여러 교회와 형제들의 간절한 문안(問安)을 전하면서 너희도 “서로 문안하라” 합니다. 이는 성도간의 교제(둘째 단원)입니다. ㈐ 그리고 “주께서 임하시느라” 합니다. 이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소망입니다. B) 내용 관찰 ⒜ 첫째 단원(1-14) 사랑의 실천 네 개의 명령문. 13절. ㉠ 깨어, ㉡ 믿음에 굳게 서서, ㉢ 남자답게, ㉣ 강건하여라(13) 하고 격려합니다. 34절에서도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명했고, 2절에서는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네 개의 명령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복음 진리(고전15:1-4. 롬3:25-26. 4:25)를 굳게 지키라는 격려입니다. 이 말씀은 이어지는,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4)는 말씀과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하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둘째 단원(15-24) 성도의 교제.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5), ㈎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성도의 교통”에 있다 하겠습니다. ㈏ 마지막 장에는 여러 인물과, 여러 교회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유대를 맺어주고 문안을 통해서 교제케 하려는 의도입니다. ㉠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요”(15상) 한 것은, 고린도 선교에서 추수하게 된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15하) 합니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섬기기로” 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처음 대하는“섬김”입니다. ㉢ 교회가 분쟁하게 되는 원인은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요삼 1:9) 사람들 때문인데, “성도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몸과 물질로 교회를 섬겼다는 뜻입니다. ㈏ “너희를 권하노니”,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16) 합니다. 여기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고린도 교회의 다른 모습을 대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 하면 말썽 많은 교회라는 인상이 떠오릅니다만, 그것은 일부 잘난척하는 교만한 사람들의 단면(斷面 )이요, “이 같은 자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라 한 것을 보면 신실한 많은 형제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17상) 한 것으로 보아 이들이 고린도로부터 편지를 가지고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17하) 한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마련해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18) 합니다. ㈑ 19-20절에서는,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하고, 여러 교회, 형제들의 문안을 전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은 이웃에 있는 교회가 경쟁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초대 교회 당시는 이러한 문안이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 “너희도 거룩하게 입 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20하) 한 말씀을 생각해보십시오. 복음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주적인 것입니다. 입맞춤은 같은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21) 하면서 두 가지 엄위(嚴威)한 말씀을 첨부합니다. ㈀ 첫째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합니다.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한 말씀과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짓 형제들(고후 11:3-4) 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둘째는,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공력을 밝히”(3:13)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는 약속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고전16:23-24) 아멘. C) 묵상해 보십시다. ㉠ 깨어 굳게 서 있는 남자답게 강건한 믿음인지? ㉡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있는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 형제들, 그리고 이웃 교회와 교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3) 겔14장. 우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자들 ㈎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貪心)은 우상숭배니라”(골 3:5). ㈏ 우상을 떠나라. ㈀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14:6)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시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23-24)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1대1의 관계.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14) ㈑ 우상을 품는 자. 심판(징계)을 면할 길이 없음.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겔14:21) ㈒ 징계의 목적.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14:11) * 묵상. ⑴ ㈀ 예배드리러 나아가는 내 속에 우상(탐심)이 도사리고 있지는 아니한가? ㈁ 예배드릴 때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마16:24. 눅9:23. 갈5:24. 골3;1-5. 시110:3. 시118:24. ⑵ 우상(탐심)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59:3. 골3:1-5. ⑶ 우상을 품고 있는 저들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징계.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⑷ 내 믿음으로 자식들이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4) 시 55편. “나를 치는 전쟁에서 구원하셨도다”. A) 내용 관찰. * 요절 : 18절,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55편도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 55편 안에는 “나, 또는 내가”라는 1인칭 대명사가 무려 32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본편의 중심점은 “나를 치는 전쟁”(18)에 있습니다. 이는 다윗을 예표로 하여, 그리스도를 치는 전쟁을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치는 전쟁(행26;14. 슥2:8). ㈁ 다윗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動機)가 무엇인가?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12-13) 한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가까운 친구의 배신(背信)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4) 하고, 몹시 상심하여 지은 시입니다. ㈂ 그렇다면 그것은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배반한 일(삼상 15:31)일 것입니다. ㈃ 이 예표는 시41:9절에서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한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가룟 유다에게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 주님은 가룟 유다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마 26:49) 하고 입을 맞추었을 때에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고, “친구”라 하셨습니다. ㈅ 그런데 다윗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22) 하고, 인칭(人稱)을 “나가 아닌, 너”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55편은 다윗의 예표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말씀이, 이제는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 첫째 단원(1-8). 두려운 공포가 나를 덮었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8) ㈏ 둘째 단원(9-15). 가까운 친구의 배신 ㈐ 셋째 단원(16-23) 구원하사 평안케 하셨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17-18)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저녁과 아침과 정오)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B) 적용 : 우리에게도 다윗의 처지와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을 치는 전쟁, 형제를 치는 전쟁은 곧 우리 주님을 치는 전쟁입니다. “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 하십니다.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붙드신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요동함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중공 코로나로, 패역자들의 덮어씌우기 전략으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저들의 협박에 성도들이 요동하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요동을 하면 사탄이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시 139:23-24), 주님의 품(복음)안으로 돌아와 주님 주시는 평강을 찾아야 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사25:4-5).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26:3) 하십니다 . C) 묵상 ㉠ 첫째 단원에 나타난 다윗의 상한 심령에 대해서, ㉡ 배신자를 가리켜 “그가 곧 너로다” 하고 말씀함에 대해서, 다윗의 배신자 -아히도벨. 예수 그리스도의 배신자 –가룟유다. ㉢ 코로나의 위협과 예배를 폐하는 당국자의 위협과 세상 사람들의 조롱의 위협에 대해 성도들의 취할 자세에 대해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22). 시37편. ㉣ 사단의 후예, 뱀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심히 대적하는 가인, 에서, 아말렉-의 후예들(공산당. 이슬람...천주교. 유대교 ...신천지를 비롯한 각종 이단들)의 특징에 대해서. 꾀는 자(계12:9). 거짓과 기만. 참소자. 거짓의 아비(요8:44).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시55:11).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15) “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21). ㈁ 저들의 결국에 대해서 -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23).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1:10) ㉤ 형제의 피난처(도피성)는 어디인지에 대해서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는 적용에 대해서, * 찬송 70. 피난처 있으니 ⑴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⑵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⑶ 만유의 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⑷ 높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 * 오늘도 피난처 되시는 주님 안에서 범사에 복된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