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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7월 29일 월요일
[(백)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는 형제간으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그들은 베타니아의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대하여, 마르타는 정성껏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다.
본디 7월 29일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었으나, 2021년부터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변경되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2021년 1월 26일 교령 참조).
<전례문은 주교회의 홈페이지 참조(말씀 마당, 전례문)>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서로 사랑하자며,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도, 사회적인 지위와 능력도, 그 어떤 것도 죽은 이를 살리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를 주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를 사랑하신’(요한 11,5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정말로 가져야 할 것, 곧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됩시다. 라자로가 죽음에서 일으켜졌던 것처럼, 이 믿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신 예수님까지 희생시키시면서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초대가 이 믿음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면서까지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질 때마다,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예수님의 오아시스, 베타니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그런 무한 리필 에너지 충전소같은 집이 있었으니, 베타니아에 위치한 절친 라자로의 집이었습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15스타디온(약 2.8킬로미터) 떨어진 곳, 올리브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르내리실 때 마다 자주 라자로의 집에 들르셔서 숙식을 해결하곤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종종 벌어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껄끄럽고 날선 대화로 끝내신 예수님께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베타니아로 내려오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런 날 밤에는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와 마주 앉아 밤늦도록 포도주잔도 많이 기울였습니다.
손님 맞이의 총 책임자는 언제나 마르타였습니다. 그녀는 엄청나게 먹고 마셔대는 제자들을 위해 빵을 굽고 또 구웠습니다. 하루 온 종일 지지고 볶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사흘씩 앓아 누울 정도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본당 성모회장으로 적격인 인물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힘들고 굳은 일은 도맡아 하는 사람, 이웃의 필요성에 언제나 즉각적으로 응하는 사람이 마르타였습니다. 성격은? 착하고 성실했습니다. 그러나 때로 과격하기도 하고 쉽게 흥분도 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일행들 식사 준비에 바빠 죽겠는데, 동생 마리아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마리아를 발견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르타는 주저없이 예수님께 따집니다.“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 복음 10장 40절)
마르타는 예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그분께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지녔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예수님과 절친했습니다. 친한 오빠처럼 예수님을 각별히 신뢰했습니다.
그럼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동생을 향한 언니 마르타의 까칠하고 날선 발언을 통해 마리아의 성격을 대충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돌아가는 분위기 파악에 더딘 사람이었습니다.
살짝 ‘공주과’라고나 할까요? 산더미 같은 일감 앞에 언니가 쩔쩔 매고 있으면,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는 것이 당연할텐데, 동생에게는 그런 ‘촉’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리아는 종종 존재 자체로 마르타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곤 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모든 것이 180도 바뀌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리셨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있어 예수님은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마리아는 이제나 저제나 예수님을 목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만 하면 만사 제쳐놓고 쪼르르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을 바라봤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문자 보냈습니다. 자동차 키가 안 보인다고 합니다. 분명히 차를 타고 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키가 없다고 합니다. 제게 키가 하나 더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사무장님이 자동차 키를 가져왔습니다. 교우분이 길에 떨어져 있는 자동차 키를 주워서 사무실에 맡겼다고 합니다. 키를 하나 복사해야 했는데, 찾아서 다행입니다. 저도 좋은 일을 했습니다. 공항에서 여권과 핸드폰 그리고 항공권을 주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어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0분 정도 있으니 한 남자가 급하게 뛰어왔습니다. 저는 제가 보관하고 있던 여권과 핸드폰 그리고 항공권을 보여주며 본인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맞는다고 하면서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저도 기분 좋게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생명이 머물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하느님 나라가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형제에게 용서를 청하는 사람입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겨자씨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였던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꽃동네를 시작한 오웅진 신부님입니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입니다. 환경미화원에게 따뜻한 국물을 나눠주는 포장마차 주인입니다. 헌혈증을 모아서 수혈이 필요한 아이에게 전달한 국밥집 주인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겨자씨’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물리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나라입니다. 문학적인 상상력을 뛰어넘는 나라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외장 하드에는 수백 편의 영화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나라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고, 은행 업무를 보기도 하고, 물건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보내기도 합니다. 스마트 폰은 작지만 접속하기만 하면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해 줍니다. 시간과 공간의 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 나라에 접속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한적한 곳에 머물며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나라에 머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행동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접속하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기도로 하느님 나라에 접속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작은 선행과 나눔이 우리의 이웃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로 접속하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주님을 닮는
믿음으로
여기
죽음조차
여기 너머
삶이요
주님을 버리는
불신으로
여기
삶조차
여기 너머
죽음이지요
주님을 품는
희망으로
여기
죽음조차
여기 너머
삶이요
주님을 지우는
절망으로
여기
삶조차
여기 너머
죽음이지요
주님을 따르는
사랑으로
여기
죽음조차
여기 너머
삶이요
주님을 거스르는
미움으로
여기
삶조차
여기 너머
죽음이지요
오늘의 성인
성녀 마르타(Martha)
신분 : 신약인물, 동정녀
활동지역 : 베타니아(Betania)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마르따, 말따
성녀 마르타는 성녀 마리아(Maria)와 성 라자루스(Lazarus)의 누이이고 예루살렘 근교 베타니아에서 살았으며 집안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의 친구였으며, 주님은 그들의 집에 자주 머무신 듯하다.
성녀 마르타는 활동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다. 루카 복음 10장 38-42절의 사건은 그녀의 성격을 잘 묘사하는 내용이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이런 기사 때문에 그녀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상징이고, 성녀 마리아는 관상생활의 모델처럼 공경을 받는다.
성 라자루스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 연락했던 이는 성녀 마르타이고, 성녀 마리아는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요한 11,20). 어떤 전승에 의하면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의 사후에 프랑스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성녀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녀이다.
성 올라보 (Olave)
활동년도 : 995-1030년
신분 : 왕, 순교자
지역 : 노르웨이(Norway)
같은 이름 : 올라부스, 올라프
노르웨이의 귀족 하랄드 그렌스케(Harald Grenske)의 아들인 성 올라부스(Olavus, 또는 올라보)는 흔히 ‘팻트’란 별명으로 불렸다. 한때 그는 해적질을 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1013년에 세례를 받았고, 덴마크를 공격하는 잉글랜드(England)의 에텔레드(Ethelred) 왕을 도우려고 영국으로 간적도 있으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을 통일하는 방편으로 그리스도교를 적극 권장하였으나 1029년에는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잠시 멈칫한 사실이 있다. 그 후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싸우다가 스티클레스탓(Stiklestad) 전투에서 살해되었다. 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고, 노르웨이를 그리스도교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1164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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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우르바노 2세 (Urban II)
활동년도 : 1035-1099년
신분 : 교황
지역 :
같은 이름 : 어번, 우르바누스, 우르반
프랑스의 귀족 가문의 후손인 외드 드 샤티용쉬르마른(Eudes de Chatillon-sur-Marne)은 1035년경 샹파뉴(Champagne) 지역 샤티용쉬르마른에서 태어나 랭스(Reims)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성 브루노(Bruno)로부터 신학을 배웠으며, 이곳에서 1055년경부터 대부제로 일하였다. 1070년경 클뤼니(Cluny) 수도원에 입회하여 성 후고(Hugo)의 지도하에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요청으로 로마(Roma)로 파견되어 교황의 교회 개혁 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1078년 오스티아(Ostia)의 주교 추기경이 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수석 보좌관이 되었다. 또한 1082-1085년에는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교황 특사로 파견되었다. 이때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1088년 3월 12일 빅토르 3세(Victor III, 9월 16일) 교황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또는 우르바노)로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의 등장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1089년 가을 70명의 주교들이 멜피(Melfi)에 모여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성직매매와 성직자 혼인을 반대하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1090년 마침내 로마의 교황좌에 착좌하였다. 1095년 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에서 개최된 시노드는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내린 파문이 정당함을 확인해주었다. 교황은 그해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Clemont)의 노트르담 두 포르(Notre-Dame du Port) 성당에서 개최된 시노드에서 1089년의 칙령을 재확인하는 한편 ‘신의 휴전’(Treuga Dei)을 처음 선언하였다. 또한 본처를 두고 재혼한 프랑스의 필리프 1세를 간통죄로 파문하였다. 그는 클레르몽에서 제1차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호소하고 격려함으로써 십자군 규합에 성공하였다. 그 후 그는 그 사이 다시 클레멘스 3세가 차지하고 있었던 로마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이리하여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교황권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결국 하인리히 4세 황제는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1098년 10월 그는 바리(Bari)에서 시노드를 소집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교황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2주일 전인 1099년 7월 29일 피에르레오네(Pierleone)에 있는 자신의 후견인의 저택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였고, 그의 재임기간은 세속의 통치자인 하인리히 4세와 필리프 1세와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교황의 시복식은 사후 800여 년이 지난 1878년 7월 1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