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꾸물꾸물 거리더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쇠라의 그랑 자트의 오후 같은 날이었다. 멀리서 공장, 배, 연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 하나가 된다. 딸바보 아빠는 "중구"라는 글자가 선명한 초록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 난 돈줘도 저런 모자 절대 사양한다.)
새마을 운동의 부활인 줄 알았다. 레트로 감성의 끝판왕이다. "봉사활동"을 해서 받은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말이 없다. 엄마는 아빠의 대변인이다. 아빠는 말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 같다. 난 효녀도 불효녀도 아닌 혼란스러운 딸이다.
왼쪽 아래, 민소매 옷을 입은 남자는 아빠의 나 몰라 패션과 비슷하다. 미술사에서 그는 당시 파리의 하층민을 상징한다고 했다. 갤러리 도슨트들의 어려운 설명은 언제나 별로이다. 그림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배경 없이 추측해 보는 게 더 재미있다. 미술사에 있어서 적어도 난 독자 중심주의 비평을 좋아한다.
엉덩이에 뽕을 과도하게 넣은 여자의 패션은 기묘하다. 애플 히프를 자랑하는 흑누나들도 울고 갈 정도이다. 조련된 원숭이는 음란함의 상징이라는데 여자의 사생활이 의심스럽다. 여자와 남자는 설레는 키 차이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저들도 시간이 멈추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든다. 모든 것들이 정지된 풍경,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신인상주의 조르주 쇠라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 많이 해보았던 "얼음"이라는 놀이가 생각난다.
다양한 색채와 빛, 형태를 그렸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점묘 화법(點描畵法)으로 무수한 점으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점이다. 이어지고 엉키고 섞이고 겹쳐진 무수한 빛들의 시간이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 하루의 점을 잇고 또 잇는다.
순자 여사는 쉬지 않고 뺀질거린다. 그게 엄마의 매력이다. 노랑 모자를 쓰고 왔다. 난 엄마랑 정반대의 딸이다. 늙을수록 사이가 좋아지는 엄마, 아빠 신기하다. 다행히 졸혼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듯하다. 둘이서는 하루 종일 떠든다고 했다. 증인이 없어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순자 여사의 말은 50%만 믿어야 한다. 스카프를 사줬더니 자랑이 시작되었다. 여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작고 반짝이고 보드랍고 매끄럽고 소소한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랑한다.
매력적인 외모와 패션 센스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모님과 후덕한 교장선생님 부부는 그린 썸(Green thumb, 식물을 키우는 손)이다. 부부는 그렇게 일상이 닮아 있다. 유럽식 주택의 소유자분이다. EBS 건축 탐구 집에 출연했다.
난 하늘이 내린 올 떰스 (All thumbs, 똥 손)이다. 알로에, 행운목, 고무나무 심지어 선인장도 죽였다. 이 정도면 살인마 "테드 번디"가 나를 식물계의 연쇄살식마 형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흙에 젖은 발은 점점 푹신해진다. 우린 너무 자주 만나지 못했다. 후회스럽다.
음식은 나누는 것이다. 오늘 캔 고구마를 나눠주기 위해 달리고 달릴 것이다. 아빠의 즐거운 소일거리 때문에 이십 년 넘게 땅을 팔지 않았다. 바로 앞에 아파트가 생겼다.
서투른 내 손가락은 이제 내 나이도 못 센다. 파킨슨 환자 아빠는 두더지보다 더 집요하고 노련하게 땅을 팠다. 아빠는 말 없는 고집쟁이 당나귀이다. 한마디도 안 한다. 침묵의 고수이다. 교묘한 질문에도 낚이지 않는다. 오늘도 침묵 중이다. 아빠는 존재를 무엇으로 나타낼까? 모임에도 출석체크나 회비를 걷지 않으면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 파티가 끝나고 나서 아빠가 왔는지? 안 왔는지를? 내기할 정도이다. 존재감 0%이다.
땀과 흙이 섞인 이 밭엔 다양한 먹거리들이 나왔다. 초록 초록 세상은 바라만 봐도 힐링의 느낌이 든다. 햇살과 콜라보 해서 잿빛 우울증을 날려 버린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캐는 그 순간, 삶의 소용돌이와 암흑들이 다 사라졌다. 나는 왜 그토록 땅에 집착했을까? 흙냄새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펄 벅의 "대지"를 읽은 그 순간부터였다. 멋진 펄 벅 여사!
고구마, 부추, 호박, 팥, 파, 가지, 방풍나물, 감, 땅콩, 고추.. 있을 건 다 있다. 종의 다양성이 최고이다. 농약을 전혀 쓰지 않았다. 감나무, 태양, 지렁이, 달팽이, 모기.. 내가 그토록 걷고 싶었던 바닥은 차디찬 흰 대리석이 아니었다. 에프람, 알프람, 로라, 쿠에타핀은 항우울의 전사들이 아니었다. 내가 싸워야 하는 벽이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바람이 불었다. 혀 없이 허밍 하는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나는 땅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낭만 또는 싸구려 탐욕을 소유한 것이었다. 땅은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라지는 존재는 땅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땅은 인내의 상징이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기회를 허락한다
속옷까지 보여주는 아빠의 헌신, 귀염 뽀짝 패션, 진심 넘나 사랑스러움
아낌없이 속옷(빤쓰) 까지 보여주는 아빠의 뒷모습은 장욱진 화가의 "가족"이라는 그림이 생각나게 한다. 수백 년이 흘러도 저런 패션이 유행하거나 칭송받지는 않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타인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저 옷차림은 할배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얘기를 했다. 지난여름이 너무 더웠다고 했다. 우리가 지구를 집요하게 괴롭혀 왔다고.. 난 그냥 우연히 지구에 온 방랑자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어쩌면 인간은 지구의 기생충일지도 모른다! 지구가 어느 날, 갑자기 기지개를 켜고 벼룩 같은 인간들을 떨쳐버릴지도 모른다. 인류의 멸망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나의 영원한 First이 자 Last인 남편의 명언
인류는 절대로 멸망 안 해. 대신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아."
S.J Moon
고구마 배달 시작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