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은 신숙주에서 비롯한 이름일까
녹두 나물을 달리 숙주나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세조 때의 공신인 신숙주가 유별나게 녹두 나물을 좋아하였는데, 이를 본 세조가 앞으로 이것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라 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세종의 고명(顧命)을 어기고, 세조의 편이 되어버린 신숙주를 못마땅히 여겨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변절한 신숙주를 미워하면서 그 나물을 질근질근 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다 근거가 있는 것일까?
세종의 명을 받들어 사육신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는데, 함께 세종의 사랑을 받던 신숙주는 수양의 참모가 되어, 그의 집권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충성하였기 때문에, 세인들이 그의 변절을 미워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민심을 반영한 것이 신숙주 아내의 자살 설화다. 신숙주가 세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를 안 그의 아내가 신숙주에게 침을 뱉으며, “어찌 죽지 않고 비겁하게 살아왔느냐?”며 꾸짖고는 이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후세 사람들이 신숙주를 미워하여 빗대어 꾸며낸 이야기다. 춘원이 소설 단종애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삽입하였으나, 실제로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병사하였다. 아내까지 죽일 만큼 신숙주의 변절은 증오스럽다는 것을 뭇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비난을 집약한 것이, 조선말 이건창(李建昌)의 장편시 고령탄(高靈歎)이다.
세조에 의해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져 갖은 영화를 누렸던 신숙주(申叔舟)가, 죽음에 임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한(恨)을 스스로 탄식하는 내용으로 구성돤 작품이다. 이 시는 “인생이 결국 여기서 그치는구나(人生會止此).”라는 자탄사로 시작하여 “온 세상 사람들아, 다시는 나 같은 탄식의 길 걷지 말지라(願世爲臣者 勿復有此歎).”로 끝난다.
세종이 자신에게 단종의 보위를 부탁하였던 일을 상기하면서, 그러한 부탁을 저버린 채 세조의 왕위찬탈 음모에 가담하여, 옛 집현전 동료였던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유성원, 이개(李塏) 등을 죽게 하고, 홀로 살아남아 수십년 동안 부귀를 누렸다고 고백하고, 죽어서 어떻게 세종과 집현전 동료들을 대할 수 있겠는가고 괴로워한다. 후반부에서는 이 같은 자신의 일생을 거울삼아, 세상에서 신하 노릇하는 자들은 자기처럼 변절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숙주를 미워한 데서 숙주나물이란 물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숙주나물이란 이름은 전국적인 분포를 갖고 있지 않다. 경기도, 충청도 일원에서는 숙주나물이라고 하지만, 전라도, 경상도 등 다른 자방에서는 이 말을 쓰지 않고 녹두나물이라고 한다. 만약에 신숙주를 미워하여 생긴 이름이라면, 일부 특정 지역에서만 그 말을 쓸 리가 없다. 숙주나물은 그저 경기, 충청 지방의 방언이요, 녹두나물은 전라, 그 외 지방의 방언일 뿐이다.
또 언어는 사회성이 있어서 어느 한 개인의 힘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설령 세조가 그런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녹두 나물이 숙주나물로 변할 수는 없다. 또 그때 사람들이 변절을 미워해서 나물을 씹었다면, 허다한 나물을 다 남겨 두고 왜 하필이면 희귀한 녹두 나물을 택하였을까? 그렇게 미웠다면 오히려 일상으로 먹는 흔한 나물을 택하였을 것이다.
굳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원래 있던 숙주나물이 다른 나물보다 잘 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신숙주 이전에 숙주나물이란 말이 이미 쓰이고 있었는데, 숙주란 말이 신숙주의 이름과 공교롭게도 음이 같은데다가, 숙주나물이 잘 쉬고 변하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에 신숙주의 변절과 맞추어 사람들이 그렇게 관념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숙주나물이 신숙주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먼저 있었고, 후대에 와서 신숙주의 변절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똑같은 ‘숙주’란 이름에다 또 둘 다 잘 변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를 관련지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