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질서에서 창조주를 바라보다
물리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질문이 있었다. 빅뱅 우주론과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함께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현대 과학은 우주의 팽창과 우주배경복사 등을 통해 빅뱅 우주론을 발전시켰다. 특히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기 위해 우주의 물리적 조건과 여러 상수들이 매우 정교한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중력과 전자기력, 핵력의 세기, 우주의 팽창률, 우주상수, 초기 밀도 요동 등 생명과 별과 원소의 형성에 관련된 다양한 조건들이 논의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 정교한 질서는 누구의 것인가?
과학은 그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질서를 존재하게 한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지는 과학의 측정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가톨릭 성경의 지혜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마다 그분께서 만드신 것들을 보고 그분을 알아볼 수 있으니,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비추어 그 창조주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혜서 13:5
개신교 성경에서도 같은 방향의 증언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
성경은 자연을 하나님과 경쟁하는 독립적인 실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가리키는 표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이 발견하는 우주의 정교한 질서는 신앙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주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인류원리가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 발견되는 정교한 조건으로부터 곧바로 하나님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견한 질서와 정교함을 바라보면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신앙적 해석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계의 물리적 상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인가?
성경은 노아 시대의 홍수를 단순한 지역적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 지구적 심판으로 묘사한다. 이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신다.
여기에서 하나의 창조신학적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심판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구와 우주의 물리적 질서까지 재편하셨다면 어떠한가?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이 관측하는 우주는 하나님의 최초 창조 상태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심판을 거쳐 하나님께서 재편하신 현재의 우주일 수 있다.
이 가설에서는 빅뱅 우주론을 버릴 필요가 없다.
과학은 현재 우주의 팽창과 물리적 질서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빅뱅 우주론이라는 모델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 과학적 설명이 곧 “하나님 없이 우주가 존재한다”는 철학적 결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현재의 우주를 관찰한다.
신앙은 그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이 둘은 반드시 충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해석의 출발점이다.
과학이 성경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과학이 발견한 자연의 질서를 바라볼 수 있다.
이때 우주의 광대함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수많은 은하 가운데 작은 지구 위에 살아간다. 우리가 속한 은하조차 거대한 우주 속에서는 하나의 작은 구조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인간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교만을 깨뜨린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아담의 후손에게 우주의 광대함은 하나의 영적 교재가 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신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주의 크기를 알수록 인간은 작아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수록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참된 위치를 발견한다.
따라서 우주는 단순히 인간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창조의 교실로 바라볼 수도 있다.
과학은 별의 수를 세고,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고, 자연법칙을 수학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신앙은 그 모든 발견 앞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누구인가?”
그리고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답을 가리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빅뱅을 인정한다고 창세기를 버릴 필요가 없다. 현대 과학을 받아들인다고 창조주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과학이 피조 세계의 질서를 깊이 밝혀낼수록, 신앙인은 그 질서 너머에 계신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더욱 겸손하게 바라볼 수 있다.
다만 노아 홍수 이후의 우주적 재편이라는 생각은 현재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성경의 계시를 바탕으로 한 신학적 가설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설이 던지는 신앙적 질문은 분명하다.
우주를 연구하면서 우주만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볼 것인가?
지혜서는 이미 오래전에 그 방향을 제시했다.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바라보며 그 창조주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이 우주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