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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아이들이 살아남아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모두 데리고 가련다.’
비극적 최후로 세상을 끝낸 나찌 선전 부장 괴벨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던 괴벨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의 인생은 숭배의 연속이었다. 1차 대전의 영웅 루덴도르프를 직접 만난 후, 자신을 칭찬하자, 곧바로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기초’를 쓴 스튜어트 체임벌린이 자신의 말에 경청하자 그를 세상의 선구자라고 칭송했다.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 (1897-1945)
괴벨스는 의심할 바 없이 나치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선전의 천재였다. 히틀러가 그를 만들었듯이, 그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알베르트 슈페어 (나치 군수장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독특한 제복, 거창한 행사 등을 통해 대중을 최면상태로 몰고 가는 기술을 개발한 20세기 최고의 정치 연출가였다. 언론매체와 대중연설을 통한 선동기술로 독일국민을 나치즘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희대의 인물이다. / 네이버 용어사전
나치당의 뇌라고 불릴 만큼 나치당의 지식인 이였던 그는 나치당의 제복 대신 양복을 주로 입었고 선전 방법뿐만 아니라 유창한 말솜씨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광신자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라디오와 TV를 통해 정치 선전을 했었는데. 정기적인 TV방송으로 선전을 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그의 선전 방송을 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 위키피디어
20세기, 최악의 인간, 악의 화신, 절름발이 악마라고 불리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 가난하고 허약한 장애 소년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을 참조해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시대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영토의 일부를 점령당했고, 경기도 매우 나빴다. 1929년 겨울에 이미 실업자가 300만이 넘었다. 실업자는 점점 늘어났고, 치안은 나빠졌다. 1931년부터는 길거리에서 패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깡패들이 설치고 다녔다. 괴벨스도 집에 돌아오다가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런 깡패와 악명 높은 돌격대는 대부분 실업자 출신이었다.
경제 위기는 심각했고, 대통령은 너무 노쇠했다. 시민들은 처절하게 가난했지만 귀족들은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술집을 습격해 나치 돌격대를 암살하는 등, 폭력을 많이 휘둘러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나머지 사회주의 정당들도 국민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국민들은 나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점점 다가오는 분위기였다. 독일인들은 전쟁이 어떤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괴벨스도 그랬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자 정치적인 고향을 잃어버린 보수주의자들은 무솔리니 흉내내는 이 깡패들(나치)에게 달려갔다.
IOC는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올림픽 개최를 허용했고, 올림픽 준비 공사로 실업자가 실제로 줄어들기도 했다.
장애
몸이 약한데다 만곡족(발바닥이 안으로 심하게 굽은)이라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소년 괴벨스는 제대로 걷지 못해 친구들에게 절름발이 취급을 당했다. 이 때문에 2층 다락방에 혼자 틀어박히곤 했다.
괴벨스의 같은 반 학생들은 머리가 크고 체격이 작은 괴벨스를 업신여겼고, 괴벨스가 쓴 연애편지를 빼앗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절름발이라고 놀려댔다.
괴벨스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고, 다른 아이들은 뛰어노는데 자기를 이렇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 괴벨스의 일기.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예프스키, 신비주의, 종교적인 러시아 사회주의 성향을 책을 읽어댔고 이 때문에 몽상가 소년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가 쓴 모든 글은 타락한 사회를 비난하고,
세상을 구원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했다.
학교
초등학교 때, 숙제를 안 하고 반항하다가 교사들에게 얻어맞았다.
괴벨스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학대한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신체적인 열등감을 학교 성적으로 커버하고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괴벨스의 부모는 빠듯한 살림에도 중고 피아노까지 사주면서 공부 잘하는 괴벨스를 격려했다.
괴벨스는 역사수업, 특히 전쟁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알렉산더, 마케도니아 대왕과 같은 ‘영웅’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이 때부터 조국과 민족,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16세에 이르러, 이 지옥 같은 세상은 전쟁이 해결해주며, 처자식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났다.
청년 괴벨스는 감성이 대단히 예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단순히 기분 나쁜 사건에도 그는 처절하게 절망할 정도였다.
박사 논문에는 운명, 민족, 애국심, 위대한 정신이라는 단어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을 박사님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쌍한 실업자’에 불과했다
가난과 고독
대학생이 되었지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옷과 손목시계 팔아야 했다. 차비가 없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돈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언제나 ‘빌어먹을 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 괴벨스의 일기
부잣집 출신의 애인은 괴벨스의 장애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해 괴벨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괴벨스는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 협박으로 넘어가곤 했다. 부잣집 애인은 결국 ‘돈 많고 멀쩡한’ 사내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그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차비도 없는 자신과 부잣집 애인의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세상에 분노했다.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출세한 후,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이면서,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분노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인간 혐오
본래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의 괴벨스는 장애와 가난, 사람들의 무시, 부잣집 애인과의 이별로 인해,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
‘나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완전히 이사를 하고 나서 개를 한 마리 구했는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개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너희들에게 내 부하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 이제 너희들은 목이 잘리게 될 것이다.’ - 패전 후 자신의 부하들에게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인간에 대한 증오는 그동안의 무시와 신체적인 장애를 보상받으려는 야망과 결합했다.
새로운 시대를 평정할 강력한 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 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는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베풀어 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할 줄 알았고 히틀러는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생각이 달라도 히틀러에게 복종. 단 둘이 있으면, 히틀러는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자기 의견에 따르게 했다.
괴벨스는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괴벨스 자신도 히틀러를 구원자로 믿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4월 29일, 무솔리니가 사살되어 시체가 주유소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히틀러와 괴벨스는 자살을 결심한다. 히틀러가 먼저 자살한 다음날, 괴벨스는 아이들의 입에 청산가리를 밀어 넣은 후,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1945년 5월 1일)
괴벨스의 선전 전략
괴벨스가 구사한 선동 전략의 특징을 몇 가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입던 옷도 팔아야 했던 박사 실업자에서 제국 선전장관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메시지를 가장 단순하게 가공하고, 이것을 끝없이 반복한다.
같은 메시지를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선전하고, 대중의 분통이 터질 때까지 절대 가만 두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유대교의 가축 도살 장면을 수집해 유대인이 잔인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사소한 일을 과장하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방금 전에 일어난 일로 포장한다.
이러한 과장법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던 괴벨스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자신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처질의 선전 방식에도 장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처칠을 높이 평가했다.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하나로 통일한다. 그것이 유대인이었다.
선전 부대가 전투 부대와 같이 움직였던 것도 그의 공로였다.
오로지 총통(히틀러)만이 유대인으로부터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영웅으로 주입한다.
일상생활에서 낙인찍기 분위기를 조성한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유대인을 낙인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 단체는 무조건 힘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교회가 신자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교회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면서 고사시켜갔다. 성당의 소식지를 폐간하고,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 천 명의 선동가를 양성했다.
여성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존재로 각인 시켰다. 금발에 백인이었던 아내를 전형적인 독일 여성상으로 내세웠고, 아이들도 히틀러 생일에 얌전히 모여 앉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자신의 가족을 국가 행사에 동원하면서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연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놈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일기
재향 군인 회관 등의 여러 무대에서 연설을 하면서, 자신이 연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주 연단에 섰다. 대부분 실업자인 청중과 자신의 처지가 같았기 때문에 그의 연설은 호소력이 있었다.
연설하는 괴벨스
괴벨스는 청중의 감성에 호소하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쉽고 명확하게 연설했다. 그의 연설을 들은 군중은 완전히 술에 취해 미친 상태가 되었다.
괴벨스는 입으로 청중을 펄펄 끓게 만들었다. 그의 연설을 듣고 흥분한 사람들은 궁전 밖으로 몰려나가 공산주의자들과 육탄전을 벌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괴벨스는 황홀해했다.
괴벨스는 고위관료로는 유일하게 폭격으로 불타는 시내에서 직접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곡사포 사병들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서 관에 훈장을 놓아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도 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괴벨스의 활약은 대단했다. 사랑스럽게 미소 짓는 외교관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타임즈 기자조차도 세련되고 예의바른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평화주의자로 가장.
베를린 올림픽 때, 유대인 반대 구호를 철거하고 평화로운 제국의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했다.
그 음흉한 난쟁이가 나타나면, 어디서나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인을 부탁하거나 악수를 청했고 그렇게 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 헬도르프(베를린 경찰청장)
사회주의
사회주의 사고방식, 직업과 신분에 관계없는 민족주의가 괴벨스가 활용했던 선전 전략이었다. 사회주의를 통해 부자, 유대인에 대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민족주의로 세력을 단결 시켰던 것이다.
괴벨스는 파시즘과 소련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뛰어난 웅변가들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이 선동적이라는 점을 알았다. 그는 연설가와 정치가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괴벨스가 직접 만든 섬뜩한 투쟁가도 좌파의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이 노래들은 애국가만큼 유행했다.
히틀러 역시 붉은 글씨 포스터를 붙여 좌파를 자극해 집회에 몰려오게 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회주의자들도 유대인과 한 패였다. 결국 그는 좌파의 전략을 이용해 좌파를 공격했다. 특히 사회주의 세력이 저질렀던 잔혹한 폭력은 괴벨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는 계층에 맞게 선전 전략을 짰다. 노동자에게는 끔찍한 가난과 중노동을, 여자들에게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높은 이혼율, 아이들의 타락한 이미지를 줄기차게 주입해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을 조장했다.
행사
유대인들을 때려잡던 돌격대의 죽음을 선전에 이용했다. 그는 나치 당원을 의장병으로 세우고, 히틀러를 참석시키면서 장례식을 ‘연출’했다. 장례식은 전국에 방송되었다. 괴벨스는 장례식 전문가였다.
사이비 종교를 방불케 하는 대중 집회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런 집회가 줄기차게 방송되었다.
행사용 음악은 몇 시간을 들여서 신중하게 골랐다. 파이프 오르간, 베토벤의 에로이카, 합창, 바그너 행진곡 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히틀러가 등장한다. 행사가 끝나면, 민족의 승리를 기원하는 감사기도를 드린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장하기 전, 괴벨스는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라디오는 국민의 정신을 장악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였다. 그는 1934-35년엔 국가 보조금을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값싼 라디오를 전국에 보급했다.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주둥이'이라고 불렀다.
독일군이 프랑스에 입성하기 전, 괴벨스는 라디오를 이용해 은행이 돈을 압류한다면서 프랑스 군인들에게 탈영하라고 선동했다. 이는 의도적인 오보였으나 프랑스 북역은 이미 완전히 마비되었다.
언론은 정부의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 괴벨스
영화
괴벨스는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고, 영화의 모든 장면은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미도 있으면서, 똑같은 메시지를 계속 주입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괴벨스가 보기에 영화는 ‘정치적인 오락’이다.
괴벨스는 인간의 무의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가 영화라고 보았다.
영화 촬영장에 자주 방문하면서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 읽고 뜯어 고쳤고, 배우도 직접 골랐다.
파리 점령 후, 극장을 운영해 엄청난 돈을 긁어모아 빈민복지기금으로 사용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애인을 전쟁터에 보내는 독일 소녀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무려 2300만 명이 관람했다. 독일의 병사를 국민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품이 많았다.
마음에 드는 영화배우를 소위 ‘국민 배우’로 만들고, 교수 자리도 주었다.
괴벨스는 정치적이지 않고 부담 없는 연예인들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배우들과 숱한 관계를 맺었다.
나치 선전 장관 괴벨스가 독일 사람들을 어떻게 주물러놓았는지 보라.
실제로 독일인 대부분이 ‘총통’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는 거의 초인 대접을 받았다.
여자들은 히틀러 초상화를 집 안에 걸어두고 기도했다. 매일 수천통의 편지와 꽃이 히틀러의 저택에 날아들었다.
거리에서 유대인들이 끌려 다니고 유대인처럼 보이면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곳곳에서 유대인 점포가 박살났다.
패전 직전, 6살 소년병 뿐 만 아니라, 나치당 기숙사의 젊은 여성들이 ‘우리 남편을 위한 복수’를 위해 베를린 시가지 전투에 나서게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은 전사했다.
베를린은 귀하의 작품입니다. -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의 역사적 의미는 히틀러 신화의 창시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을 광신자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 랄프 로이트 (괴벨스 평전)
그러나 괴벨스의 선동이 통했던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나치당의 지지자가 늘어난 것은 현실의 고통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 고난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도움을 약속하는 자들에게 기울었다.
괴벨스의 가장 강력한 동맹자는 다름 아니라 독일의 고난이었다. 실업자들은 더 나은 상황을 약속하는 자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괴벨스의 말
‘중요한 것은 오로지 믿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 괴벨스
신문 기사는 모호하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목표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독자의 모든 생각을 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복잡한 이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매우 분명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담아야 한다.
선전은 복잡한 사상을 단순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임무 뿐 아니라, 국민의 영혼을 흔드는 정치적 예술이다.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반복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즘은 국민의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서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도구다. 이 도구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갖고 놀 수 있다. 서투르면 절대로 안 된다.
가장 단순하게 가공하고, 이것을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자만이 여론을 휘어잡을 수 있다.
대중에게 결코 두 가지 이상의 적을 제시하지 말라.
거리를 정복하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으며,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
신문 기사는 모호하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목표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독자의 모든 생각을 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복잡한 이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매우 분명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담아야 한다.
지식인들은 한 가지 주제를 자주 다루면, 사람들이 점점 무관심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같은 내용을 계속 새롭게 주입하고, 새로운 증명 방식을 찾으며, 점점 강렬하게 주입하면 청중은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괴벨스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워했던 세력은 ‘현실에 눈을 감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잘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 랄프 로이트 (괴벨스 평전)
*참고글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나의 투쟁(Mein Kampf)>을 읽기란 무척 버겁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부터 숨이 막히는데다가, 내용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투쟁>은 1925년 발간... 게시판 : 연금술방의 문화이야기 |
성공의 연금술사는?운명상담과 자기계발교육프로그램이 있는 2004년에서 2012년까지 8년 역사를 가진 카페입니다.
첫댓글 오오~좋은글감사!!!!!^^* 이사람 이전에 히틀러관련책읽으면서 본기억이나요.
괴벨스 뭐하는 사람인지 참 괴뢰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