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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이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왔는가?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열쇠를 가진 자이므로, 생자필멸(生者必滅)로
사망과 음부에 갇혀 있는 우리를 생명(구원)으로 이끌어내신다는 말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죄와 사망은 언제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편지글에서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삼척동자라도 줄줄이
외어댈 정도로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의심없이 금과옥조로 믿어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아프거나 병들거나
쇠하거나 늙어 죽어가고 있는 그 전 과정들은 곧 죄와 사망을 뜻한다.
그런데 어느날 사람들이 어떤 불구자를 예수께 데려와서
이 사람의 병든 것이 자신의 죄로 인함인지, 아니면 조상의 죄로 인함인지를
물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심으로써 즉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던 것이다(물론 즉석에서 병든자를 고쳐주심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마지막 때에 재림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예표임).
아니, 아프고 병들고 죽는 일이 누구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시니 놀랍지 아니한가?
그렇다! 우리의 보편적 일반적 질병과 사망이 모두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인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
인간의 원수인 질병과 사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사실 하나님의 얼굴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흑암의 얼굴이요, 하나는 빛의 얼굴이다.
즉 하나는 악신의 얼굴이요, 하나는 선신의 얼굴로서 선악을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은 그 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이므로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 세상 또한
선악을 함께 하고 있는 카오스(혼재)인 것이다.
목하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셨음에도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아 창조하시는 분이다.
선악혼재의 세상을 코스모스의 세계로 옮겨가시는 창조를 하시되
그 창조의 기간은 6일동안이다. 따라서 창조 여섯째날 끝이 되면 마침이 된다.
6일창조의 마침이 되면 더는 밤(흑암) 은 없이 낮만(빛만) 있게 된다(계21:25).
하지만 창조하는 6일동안은 흑암과 빛과 환난과 평안이 함께 있다(사45:7).
우리의 태어남은 하나님의 빛이라면, 병듦과 사망이란 하나님의 흑암에 속한다.
하나님의 창조란 바로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이 같은 병듦과 사망을
도말해가시는, 즉 자신 안에 있는 흑암을 척결하기 위한 전력투구의 싸움이며
반드시 자신을 죽이는 피 흘림이 있는 고난의 과정인 것이다.
이 같은 창조의 피 흘림과 고난의 과정을 저 이천년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써 우리에게 비유로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 된다.
내 속에 있는 사망의 흑암을 던져버릴 때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영생)의 모습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멋진 분인가? 아니다, 창조 6일동안 자신 안에 있는
흑암 부분의 암 덩어리를 뽑아내야만 하는 대 수술의 메스를 들고 스스로
피 흘리시는 분이다. 피흘림이 곧 위대한 창조의 본질이다.
피 흘림이 없으면 창조도 없,고 위대함도 없고, 권능도 없고, 영광도 없다.
세상엔 공짜란 없고 일한대로 갚아지는 게 아니던가.
하면 창조 6일전, 즉 좀더 자세히 말해서 창조 첫째날 이전의 하나님의
상태는 어떠했던가? 하나님의 근본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하셨는데,
이는 성경의 총론, 즉 “성경의 제목”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천지를 창조하시고자 하신다면 그 방법론(각론)이 있을 것이고
그에 앞서 “창조의 소재” 가 있어야 할것이다.
창조의 소재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말씀,언어) 자신이 된다.
하나님은 창조의 지휘자도 되시며 창조의 소재도 되어 주신다.
창조의 소재인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은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알려 주고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창조되지 아니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때에(무창조 때에)
“흑암은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했다.
깊음 위란 물위를 뜻한다. 그리고 수면도 물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물위에 흑암도 있고 물위에 빛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신도 있다.
이것이 곧 흑암과 빛의 혼재이신 하나님의 근본이다.
하나님의 근본이 이렇게 흑암과 빛의 혼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흑암을 떨쳐버리기 시작하신다는 뜻에서 창조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 라는 일성을 발하시게 된것이다. 첫째날에 지어진
빛이라곤 하지만 마침이 되는 창조 여섯째날의 빛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최초의 흑암과의 상대적 의미에서 빛일 뿐이다.
따라서 그 빛은 빛과 어둠으로 다시 나뉘신다고 하셨던 것이다.
이 같은 어둠과 빛은 창조 6일동안 계속 싸우시게 된다.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 싸우는 전쟁이므로
하나님 자신의 죽음이요, 그 죽으심 만큼의 새로운 빛으로의 부활이 있다.
이것이 6일창조 기간동안 계속된다. 즉 자신과의 싸움을 창조 6일동안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피조물 우리인간도 자신속에
있는 흑암과 계속 싸워 이겨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싸움은 죄와 죽음(흑암)을 도말하고자 하는 싸움인데 창조 첫째날부터
있었다. 다시 말해 창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창조자체가
곧 죄와 죽음을 동반하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창조가 없었다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죄도 없고 사망도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창조 6일동안 날마다 어둠(죄와 사망)을 몰아내고 그 몰아낸 자리만큼
빛으로 충만시켜가는 창조가 있었기 때문에 감춰져 있던 죄와 사망도
동시에 불거져 나와서 권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다고 하는자 죽음을 피해가는 자 아무도 없다.
세상에 살아 있다고 하는자 모두 창조를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 반드시
죽음이 따라와 그 권세 아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은
물론이고 그에 부수적인 모든 병고와 고난과 환난들까지도
그 최초의 근원은 하나님의 창조 첫째날부터 있게 된 것이다.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시게 된 때부터 하나님을 모르는 죄와 사망이
즉 흑암(마귀)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라고 하셨던 것이다.
즉 하나님이 빛으로 생명체를 창조하시게 되자마자 그 때부터 생명체에게
어둠과 환난도(죄와 사망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같이 인간 생명체에게 드러나게 된 어둠(죄와 사망)이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며, 이러한 죄와 사망을 멸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하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했던 것이다(계1:18).
그리고 알파(창조의 시작, 처음하늘과 처음땅)와
오메가(창조의 마침, 새하늘 새땅) 라고도 하셨다.
뿐만 아니라 불구자의 원인이 인간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침이 되는 오메가일 때 불구자를
온전케 고쳐주심으로써 (온전케 창조해 주심으로써)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이 돌려진다는 뜻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사망과 음부에 갇혀 있는 우리를 이끌어내어
완전한 영생의 몸으로 바꿔주실 분이 예수님(하나님)이시다.
이때는 창조 여섯째날의 마침이 될것이다. 창조의 시작에서 그 진행까지는
알파라면 창조의 마침은 오메가 포인트가 된다.
하나님의 알파로서, 처음 하늘 처음 땅의 처음 창조였던 어둠을 몰아내고
빛만으로 완전히 지어진 새 하늘 새 땅의 오메가 포인트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왜 죄와 사망이 (에덴동산의)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는가? 바울은 성경이 비유인줄을 알지 못하고 비유를
깨닫지도 못하고 문자 그대로 믿었던 무식함으로 인하여
창2,3장의 에덴동산 기록에서 아담을 인류의 첫 조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담은 인류의 첫 조상이 아니고 믿음의 첫 조상이었음에도 잘못 깨닫고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최초의 신자부부는 지금으로부터 약6천년 전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아담과 하와였다. 창4장에서 그들이 자식들을 낳으며 예수그리스도까지
그 족보가 기록되고 그 수한이 기록된 아담과 하와였고
그들이 실제인물이다.
그리고 창2,3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에덴동산의 뱀이 실제 뱀이 아니고 사단마귀를 뜻하듯이
그들도 마찬가지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창4장에 나오는 실제 인물인 아담과 하와의 이름만을 빌려서
오늘날 우리들에 대한 사건을 기록한
창조의 각본이었음에도 바울은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그리스도인 시대는 성경이 풀어지는 때도 아니기 때문임)
즉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범죄는 저 6천년전 태고적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날 우리들이 범한 선악과 범죄를 그들의 이름을 빌려서
미리 예언한 기록이다.
따라서 아담은 인류의 조상도 아닌 것은 물론이고 아담의 선악과 범죄로
인하여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온 것도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있기 전에도, 그리고 그들이 범죄하기 전에도
세상에 죄와 사망은 있었던 것이며 창조 이래 그 권세가 독야청청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죄와 사망은, 인간 생명체의 창조가
시작됨과 동시에 세상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악과를 범하면 죽는다고 하셨으나
선악과를 범하기 이전에도 인간에게는 죄와 사망이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하나님이 자기백성에게 선악과를 보여주시고 그것을 범하지 말라고
하신 뜻은, 자기백성이 선악과를 범하는 체험을 하게 하심으로써
인간은 빛과 흑암으로 지어진
저 창세전 하나님의 근본이자 인간의 근본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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