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교이든 시설 관리와 인건비 등이 들기 때문에 마땅히 헌금을 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생산에는 규모가 커지면 원가가 낮아지는 법이지만 종교에서만은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교회가 클수록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운영하기 때문에 원가가 더 들어가지만 생산 하는 부가가치는
떨어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회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가가치가 높은 작은
교회들도 많다.
종교의 부가가치는 헌금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달렸다. 건물을 짓거나
교역자의 생활비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면 종교로서의 부가가치가 낮은 것이고 세상을 섬기는데 돈이 들어간다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다.
원래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했을 때는 나쁜 뜻이 아니었다. 1844년 당시 아편은 대중적으로
활용하는 유일한 진통제이었다. 당시 종교가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 후 아편이 인간을 몽매하게 만들고 중독이 되면 헤어날 길이 없고 심지어는 중독이 되면 죽게 된다는
것이 들어났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를 보면 처음에 마르크스가 한 말과는 다른 의미로 진짜 아편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 기독교를 보면 '인민의 아편'이 아닌 '인민의 암'이다.
계랑경제를 전공한 아들에게 설득력이 있으려면 통계와 수치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신앙에 대해서도 “예수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몇 % 기여를
했다.”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통계에 100% 라는 것도 있냐?”
“100% 확실하면 통계를 낼 필요가 없죠. 통계는
미리 가설을 정해놓고 정말 그런지를 수치를 통해서 입증하는 거니까.”
“100%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통계도 결국 믿음이구나?”
“그렇죠. 과학적 믿음, faith가 아니고 belief이라고 할 수 있죠.”
엘빈 토플러가 낸 새 책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프로슈머'라는 개념을 제시했단다. 생산(PROduce)
하면서 동시에 소비(conSUME)하는 행위(-ing)를
프로슈밍(Prosuming)이라고 한다. 지금도 아마존 강
유역 깊숙이 정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나 아프리카 내륙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는 토인들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그들은 세계 화폐경제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간다. 화폐경제 이면에
측정되지 않는 숨은 경제를 프로슈머경제라 하는데 선진국에서는 후진국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프로슈머 경제활동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주부들의 활동, 각종 자원봉사자들, 수많은 비영리단체의 활동은 모두 프로슈밍 경제에 속한다.
프로슈머 개념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부모가 부모로서
역할을 못했을 때 화폐 경제의 생산성이 입게 될 손실은 생각해 보자. 부부싸움이 잦아 가정이 깨져 자녀가
삐뚤어져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가정하자. 그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기 위해서 상담전문가, 경찰, 교도소 등등에 돈이 든다.
브라질 같은 경우는 거리에서 헤매는 불량 십대들을 경찰이 총으로 쏘아버리면 끝나지만 선진국일수록 돈이 많이 든다. 시드니에 재소자는 18명인데 직원은 20명인 소녀교도소가 있는데 그 시설을 운영하려면 년 간 수 백 만 불의 예산이 소요된다. 18명의 불안한 청소년 때문에 거대한 시설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PROSUMING 개념을 기독교에 적용한다면 제사장 중심의 유대교에서 만인제사장 중심으로
옮긴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가톨릭의 유통체계에는 여전히 사제라는 중간 상인이 있어서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지만 원래 개신교는 소비자 직거래가 아닌가? 이론은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브로커가 끼어들어
가톨릭을 무색하게 자기 몫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인류는 이미 중세기 1,000 동안 종교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았다. 종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즉, 사회의 각 부문이 건강하게
발전하는 길에 저해가 될 때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유럽 여러 나라에는 자신이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신자라고 정부에 등록하면 정부가 그 사람의 소득에서 세금을 떼어 각 교단에 주는 이른바 “종교세”(교회세) 제도가 있다.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소득세에 종교세가 부가로
8-9%로 월급의 3-4%. 다른 나라들은 대략 1-2%,
이탈리아는 0.8%.
서유럽에서의 교회세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전 게르만 부족 수장이 (부족) 종교 사제의 생활을 책임지던 관습에서부터 유래했고 이런 관습헌법(?)이
중세에는 영주와 황제가 로마 교황과 대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변해가면서 교회가 어떻게 변모해갔는가 하는 경험은 과거 쏘련, 중국, 동구권, 북한에서 많이 경험한 바가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의 교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변모하는가 하는 실험은 통일 독일에서 벌어졌었다.
‘서독의 통합으로 동독에서도 서독 법에 의해 91년 1월 l일부터 종교세가 부과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 천여 명의 동독인들이 교회의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하기 위해서 공증사무소로 몰리고 있다. 앞으로 서독의 법률이 동독에서도 적용되게 될 것임으로 세례를 받은 모든 교인은 수입의 9%를 종교세로 납부해야 한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공증사무소에서
종교와 단절했음을 증명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동독의 교역자들은 연방헌법에 따라 하루 아침에 많은 봉급을 받고 풍요한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자들은 종교세를 내기가 싫어 교회를 빠져나가고 목사들은 국가로부터 종교세에 의한 봉급을 충분히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의 생각 있는 목회자들이 “우리는 공산당 치하에서도 살아왔고 선교를 해왔는데
통일된 후 못 살 일이 없지 않느냐?”면서 종교세에 의한 교회유지가 아니라 교인들의 신앙에 의한 헌금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선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근래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 수가 더욱 줄고 종교세 납부등록을 철회하는 사람이 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10년에는 등록 철회자가 18만 명이 넘었는데, 2014년도에 다시 이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앙은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교회세 등록을 철회하고 개별적으로 교회에 헌금을 내기를 원한다. 이에 대해 독일 주교들은 2012년 9월에 교령을 발표하고 이러한 등록 철회는 “심각한 (신앙의) 일탈”이라며
이럴 경우 신앙생활을 금지 당하는 여러 가지 예를 들었다.
프랑스 사회 안에서 신부가 그리 존경을 받지 못한단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신부들은 일반 직장인들과 똑같이 직업을 가진 한 부류일 뿐이다. 신부에게 더 이상 성직이란
단어를 붙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반성직주의자들은 신부들에게 적대심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신부들은 할아버지 신부님들을 제외하고 거의 로만 칼라를 하고 다니지 않는다. 프랑스 교회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혁명에는 갈아엎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당시 프랑스에는 앙시앵 레짐이라는 하는 구체제의
틀로 묶여 있었다. 구체제의 첫 번째 계급인 10만 명 정도의
성직자들은 국토의 십 분의 일을 소유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6년 동안 극심한 추위와 기근에 시달리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오히려 세금과 종교세를 걷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가장 추웠던 1789년 5월에 결국 봉기를 시작했고, 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뚜와네트를 단두대에서 목을 잘라버리고
성직자와 귀족들도 눈에 띄는 대로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외면한 교회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철저한 배격을 받고 교회 재산은 몰수당하게 된다. 부가가치가 낮은 교회의 끝이 어떤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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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앙인 이시네요.
저는 무신론자 입니다만,
진정한 신앙인은 존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