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내 생명의 원천이고 내 문학의 모태
노향림
아주 어린 시절 바다는 나의 놀이터였고 원시성이고 나의 시가 태동하고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 내 유년을 거쳐간 바다는 전쟁을 거치면서 제자리 걸음으로 멈춰 서 있다가 쏴아 쏴아-파도소리가 밀려오듯 학창시절에 소설에 흥미를 느끼고 짧은 단편 하나를 掌篇처럼 짧게 써서 교지에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왔어도 가난한 나의 유학시절은 역시 가난한 오빠집에서 보내느라 마포 종점에서 촌뜨기가 전차타기가 겁나 결석하기가 일쑤였다.
오빠가 읽다가 둔 싣다르타‘, 까뮈의 ’이방인‘, 유치환의 시집들을 읽고는 했다. 당시엔 책밖에 읽을 거리가 없고 유일하게 나의 십대를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요인들이 거기 있었다. 일찍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등단을 하지 않았지만 영원한 문학청년과 문학소녀여서 서가엔 책들이 많이 꽂혀 있어서 원하는 책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병약해서 누워만 있던 나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유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막내딸인 나의 앞에서도 그 연세에 아직도 시인이 되겠다고 그 어려운 단테의 ‘神曲’을 읽고는 했다. 일본어판 밖에 없어서 일본어로 된 ‘신곡’을 이따금 꺼내보시곤 했다. 나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시인은 늦게 되어도 상관이 없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당시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어려운 시집부터 읽어서 시인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단테의 시집은 문득 포옴으로 더욱 꺼내보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걸맞게 이광수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누구나 어렵던 시절 밤에는 전기 사정을 초숩ㄹ을 켜게 했는데 촛불 아래서도 이광수의 ‘무정’이런 류의 소설을 읽는 했다.그런 모습들이 그런 집안의 분위기가 나를 문학적 분위기에 물씬 젖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오빠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아무리 서울생활이 가난해도 책은 꼭 사들고 다녔다. 한국일보에 당시에 연재했던 김래성 소설의 ‘애인’을 열심히 읽는 것이 낙이었던 것 같았다. 도저히 그 월급으로는 감히 신문조차 볼 수 없었는데도 용돈을 아껴서 연재소설을 읽기 위해 신문을 보았던 것이었다. 그 ‘애인’을 기다리며 초조히 셋방에서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났던 오빠! 그 오빠도 결국은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미국에 이민을 갔다
나는 철저히 혼자서 문학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안에 배태되고 있던 문학에의 열망과 자그마한 천성의 기질은 아주 늦게 나타났던 것. 문학을 하고 싶어서 했다기 보다 어쩔 수 없는 숙명감이 항상 나를 늘상 따라다녔던 것이다. 늘 혼자였던 나를,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것이 문학이어서 당연히 또 해야하는 것으로 나는 믿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은 홀로 걸어갈 줄도 알아야 하고 긴 방황도 해야하는 것을 가르쳐주던 싣다르타는 겉읽기식으로든 어떻든 책을 읽게 만들었던 것이다. 유치환의 시가 좋아서 고등학교 때 단 한 구절이라도 외울 수 없으면 문예반에 낄 수도 없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대학을 들어간 것도 고등학교때 나에게 들이닥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내가 학교에도 못가고 긴 투병생활을 하던 중 영원한 문학청년이었던 아버지가 어느 날 나의 병상 머리맡에 신구문화사에서 막 펴낸 ‘한국 전후문학전집’을 놓아두고 가셨다. 병상에 누워서 나는 내노라 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오래 오래 들여다 본 전집 속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 그 속에서도 특히 김춘수 시인의 시 세계가 나에게 와 닿았다. 또 이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유년시절엔 문학이란 말을 못 들어보았고 들어보았다 해도 그 뜻을 모르고 먼저 책과 가까이 해왔을 뿐이었는데도 무언지 모를 그리움같은 것아 나를 따라다녔다. 늘 책과 가까이 했던 식그들 덕분이었을까. 그때의 분위기가 지금 생각해보아도 차라리 복막염으로 누워 지내던 시절이 있었기에 문학을 하게 만든 어떤 숙명감이 있었지 않았나 하고 막연히 생각하게 된다.
온 식구가 둥근 저녁밥상에 둘러앉기만 하면 가난한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뀔 정도로 아버지는 식사 중에도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꺼내놓으셨고 오빠들을 향해 소설꺼리 간은 얘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그리곤 입성 먹성은 가난해도 책이 가난하면 안된다고 나가시면 어디선가 구한 책을 들고 들어 오셨다. 끼니는 굶어도 책은 굶지 말라며 돈만 생기면 책을 사는데 다 허비해서 어머니로부터 지청구를 듣곤 하시던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문학에의 향수를 일찍이 심어놓은 것은 아닌지. 집안 분위기에도 혹은 매사에 조금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나에게 문학 하나만은 버리지 않고 영원한 공허감을 안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이러게 붙들고 있으니 문학을 택했던 나를 지금 돌아보아도 신기할 정도다. 왜 버리지 못한 그 무엇이 문학일까. 본격적으로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에 입학한 때부터일 것이다.
내가 대학에서 당시 헤밍웨이 통이라 부를 정도로 헤밍웨이를 연구했던 김병철 선생을 만난 것도 인연이었다. 헤밍웨이는 짧은 대화체에서 은유나 암유를 찾아내느라 밤을 지샌다는 말이 퍽 감동적이었다. 종군작가였다는 것과 하나의 문장을 찾아 고뇌하고 고뇌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 나는 시에다 대비시키고는 했다.
수많은 영미 시인 작가들을 비록 피상적이긴 했지만, 아우트라인이나마 나는 대학에서 배울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나의 기억 속에 헤밍웨이는 생생히 살아서 시를 쓰게 만들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땐 헤밍웨이는 실제로 생존해 있었다.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신문 문화면을 장식해서 나에겐 그 모습조차 기인 기질로 비쳐져서 나의 시 쓰기를 자극하고도 남았다. 엘리엍나 에즈라파운드 보다도 더 나를 자극했던 것이었다. 큐바의 카스트로와 친분이 있어서 큐바의 해안에 집필실을 만들어 세번 째 부인인가와 살고 있었다.
그가 엽총 자살하기 직전까지 살고 있었던 그곳의 지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사냥과 낚시로 소일했던 바닷가, 그곳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지면에 소개되곤 했다. 당시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노인이 밤세워 잡아온 온 고기가 형체를 알 수 없이 상어에게 다뜯겨서 무위로 끝나고 소득이 없었지만 큐바 해안에서 이따금 낚시를 하는 모습이 마치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 자신이 주인공처럼 비쳐졌고 내가 태어난 바닷가 목포 앞바다 압해도를 점점 더 생각나게 했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문학의 그 깊이와 넓이의 성찰을 바다에서 찾는 거나 다름없다. 바다에 관한 시가 많음도 그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어떻든 문학을 꿈꾸는 나에게 무척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도 내가 문학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고 그런 나를 자극하는데 충분했다.
문학의 길이 어디 끝간 데가 있으랴. 그런 정처 없는 채울 수 없는 공복감이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며 막연히 소설도 써보았고 산문을 극적거리며 문학의 길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대학생활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교내 콩쿠르만 응모하다가 졸업 후 영문과 학생들이 꿈꾸는 유학을 꿈꾸다가 본토 영어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기에 을지로 3가에 있는 로버트 박 영어 학원에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모든 방황 중에도 문학만이 살아서 나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심으로 기다려 주었다. 대학 때부터 몰래 응모해 본 신춘문예에 몇 번 떨어지고 나니 공부나 하자고 미국유학을 꿈꾸었던 것도 한때였다. 결국 친구들을 만나도 문학을 하거나 시를 쓰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커피집을 까페라고 부르거나
외국 기업의 커피집 이름을 그대로 부르지만 하나같이 ‘다방’이라 부르던 곳에서 시로 이미 등단한 친구가 미니 책을 보고 있던 나를 카메라로 한 컷을 찍어 주었다. ‘로버트 박’ 영어 학원을 다니던 무렵이었다. 그 시절 사진을 보면서 나는 어딘가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 것도 당시에도 문학을 향한 열정에서 비롯되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의 속에서 치미는 문학에의 열정을 어쩌지 못하고 뒤늦은 나이에 월간문학에 등단을 하게 되었다. 조금은 유치하고 다 영글지 못한 시를 써서 나는 다시 나의 길을 다지며 시에 열중하기 시작해서 오늘 날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문청시절은 어줍지않은 진로를 정해놓고 무작정 유학을 꿈꾸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의 길을 다시 찾기시작한 것이었다. 그곳이 어디인 줄 모르고 끝간 데 없이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허방다리인줄 모르고...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