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지난 2월 14일 안동에서 있었던 <2월 Well-Being 교양강의> 서브주제의 강의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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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들숨 긴 날숨, 호흡에도 과학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의학자 박상철 교수는 백세인들의 장수비결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건강 리듬도 깨지는데 그 생체리듬을 결정하는 게 바로 생활 리듬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백세인들을 현장에서 자주 만나본 결과 자로 잰 듯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즉 백세인들은 대부분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두어 시간 마을을 돌다가 들어와 8시쯤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마을 회관으로 나갔다가 12시경 점심을 먹고 귀가해 6시경 저녁 식사를 하고 9시경 취침하는 일상입니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3끼 식사, 8시간 수면, 아침 산책, 사람들과 어울림이라는 장수 조건이 드러난 셈입니다.
이 시간은 ‘짧은 들숨 긴 날숨, 호흡에도 과학이 있다.’라는 네이밍으로 ‘명상’을 주제로 강의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다. 생각이 적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건강의 본질을 우선 불필요한 생각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많은 생각이 괴로움을 키운다는 논리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살길은 현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유난히 과거와 미래에만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한 곳으로만 향하기 마련인데 과거에만 집착하다 보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고 미래에만 집착하다 보면 남는 것은 불안뿐입니다. 과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인과(因果)관계의 흔적일 뿐이고 미래는 다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뿐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본질을 놓쳐버리면 마침내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대안은 뭘까요? 오직 하나, 내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명상(冥想)입니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고 그래야만 내가 당면한 현재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정확하게 볼 수 있을 때 지혜가 생기고 그래야만 정확한 생각을 내 마음의 탱크에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방법 3가지를 추천합니다. 첫째, 평소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것, 즉 가급적 SNS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무의미한 것처럼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내 생각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게 무엇이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결과만 볼 뿐 과정은 살피지 않습니다. 즉 비교는 부분을 전체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착시현상 같은 것입니다. 셋째, 잠시라도 생각을 멈추는 일상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물을 가득 채운 컵을 소리내지 않고 테이블에 내려놓는 동작을 반복해 보는 것도 나름의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명상에 관한 몇가지 실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올해 75세인 대한성공회 윤종모 주교가 매일 아침과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두번 명상을 마친 후 외우는 기도문입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오늘을 살 것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해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떠나기에 좋은 날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명상의 진수를 보여 주는 기도문입니다. 그는 오랜 기간 명상 수행을 실천하면서 명상의 즐거움을 널리 대중화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또 윤종모 주교는 명상을 불교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편견을 지적합니다. 기독교 역사에도 명상의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가운데 오랜 세월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해온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거룩한 독서’를 소개합니다. 교회에서 많이 권장하는 ‘성경 묵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명상유형은 먼저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으면 읽기를 멈춥니다. 이후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 문장을 되뇌며 의미가 의식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메디타시오(Meditatio)’ 즉 묵상 혹은 명상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서 오래 묵상하다 보면 깨달은 것을 하나님께 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단계가 바로 ‘오라시오(Oratio), 즉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하지만 기도가 무르익으면 이런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는 단계, 즉 ‘콘템플라시오(Contemplatio)’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을 느끼는 단계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호흡에 집중합니다. 심호흡을 하면서 들숨에는 ‘그리스도여!’ 날숨에는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반복합니다. 들숨은 짧게 날숨은 길게 하는 명상호흡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명상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명상의 기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입니다. 요컨대 명상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자세든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누워서도 가능합니다. 하루 5분, 아니 3분 만이라도 중단없이 날마다 계속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의 명상일지라도 중단없이 반복하면 마음의 근육이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명상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호흡]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호흡명상’입니다. 본시 호흡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지표입니다. 운동할 때나 화를 내고 흥분하거나 긴장하고 두려워지면 호흡이 거칠고 빨라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호흡에 내 마음을 집중하면 요동치던 호흡이 잦아들고 이완이 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몸과 마음을 정리하는 시작은 바로 호흡에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 퇴근길도 명상이 가능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 구간을 정해 놓고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넣고 오롯이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보통 지하철 한 정거장 구간이 3분 정도니까 그 시간만이라도 호흡에 집중하면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코끝이나 인중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숨결이 잘 안 느껴지지만 날마다 반복하면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숨결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호흡에 집중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한번 숫자를 붙여보는 것도 집중에 도움을 줍니다. 불면 치료에 효과적인 이른바 ‘478 하버드 호흡법’도 활용 가능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4초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7초간 참고 8초간 길게 내 쉬는 호흡법입니다. 만약 잡념이 떠오른다면 그대로 두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호흡으로 되돌아오면 잡념은 이내 사라집니다.
명상에는 이른바 ‘동중명상(動中冥想)’도 있습니다. 먼저 걷기 명상입니다. 평소처럼 걷되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거나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잡념을 비우고 걷는 것입니다. 시선을 자기 키 정도 앞쪽 바닥에 두고 걷는데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오락가락해 마음이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걸을 때 내딛는 발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오른발을 내딛으면 오른발에 왼발을 내디디면 왼발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하면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함께 가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잡념과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러다 다시 잡념이 생기면 다시 왼발, 오른발로 되돌아옵니다. 물론 위험한 계단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복잡한 거리에서는 주의해야겠지요.
명상은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가능합니다. 식사 전 스마트 폰을 멀리하고 먼저 식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음식을 준비해 준 사람,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다음 나의 감각을 일깨워 눈으로는 음식을 관찰하고 코로는 향기를 느끼며 먹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밥을 뜨고 입에 넣고 씹는 동작에만 몰입합니다. 혀를 움직여 더 이상 씹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삼켜봅니다. 다만 음식 맛은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먹는 것과 씹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이때에도 호흡은 늘 마음과 함께합니다. 이렇게 하면 잡념과 스트레스를 비울 수 있고 비록 혼자 식사할지라도 그 시간은 아주 훌륭한 명상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명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지금 불교계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을 비롯한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른바 ‘K 명상’ 글로벌 브랜드 보급사업을 펼친다고 합니다. 또 지난 가을부터 미국 최대 학군인 뉴욕시 공립학교의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100만여 명은 매일 학교 일과시간에 명상을 합니다. 이른바 ‘마음 챙김 호흡(mindful breathing)’이라는 2~5분 정도의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음 챙김 호흡은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기 인식을 높이는 명상의 한 방법입니다. 이미 서구의 의학, 심리학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호흡법도 배워야 하고 과학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아주 안타깝고 부끄러운 세계적 기록 하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살률 1위입니다. 게다가 노인 자살률도 1위입니다. 1년에 15,400명, 하루 42명, 시간당 2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좁은 땅, 이 나라 어딘가에서 매시간 두 사람이 자살한다는 게 도대체 믿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어떻게라도 살길을 찾았을 테니까요. 나는 이같은 자살 충동은 오로지 마음의 근육이 약해진 결과라고 봅니다. 쉽게 열광하고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고 증오하고,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마음가짐은 영혼을 망가뜨리는 시한폭탄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가 이같은 불명예를 벗어나는 길은 집단심성의 프레임을 냄비형에서 무쇠솥형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을 낮추는 일도 중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성(至誠)을 다하면 하늘 아래 무엇이든 불가능은 없는 법입니다. 이제 명상을 주제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명상의 기본은 호흡입니다. 무릇 호흡은 인간의 생명현상을 상징하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호흡은 본능적인 생명유지현상 그 이상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공부해야 하고 과학적으로 호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대로 된 숨쉬기, 즉 호흡명상은 우리의 일상을 평강의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근육은 덤으로 얻는 선물입니다. 요컨대 명상은 늘 자신의 호흡을 되돌아보는 삶의 본질입니다. 명상이 생산하는 일상의 유익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2.23 , 글/최익제(敎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