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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5일 Asan UBF 주일메세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
말씀 / 마가복음 10 : 1-31
요절 / 마가복음 10 :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육체의 정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과 영적 자만심!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방해되는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육체의 정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과 영적 자만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맛보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1. 결혼의 진리 (1-16) Asan UBF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시험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큰 시험이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동생인 빌립의 아내를 부도덕하게 취하였습니다. 이 죄를 책망하였다가 세례 요한은 죽임 당하였습니다. 대답하기 부담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24장 1절을 들어 대답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이혼증서만 써주면 자유롭게 이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신명기 24:1절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바리새인들의 대답을 보면 모세가 이혼을 허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이혼을 허용한 것이 아닙니다. 이혼을 감정적으로 하거나 무절제하게 하지 말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불가피하게 하게 될 때는 법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는 후대에 와서 이런 선의의 절차를 이혼합리화에 이용한 것입니다. 힐렐파는 여러 가지 사소한 문제까지 수치되는 일에 포함시켰습니다. 밥을 태운다든지, 목소리가 크다든지, 잠 잘 때 코 고는 것까지 수치스러운 일로 포함하여 이혼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당시 수치되는 일을 근거로 하여 쉽게 아내를 버리고 새 장가를 들었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 이혼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완악함이란 배우자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은 부부가 서로에 대하여 이해와 긍휼이 사라지고 감정적이 되어서 적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에게 대단히 적대적으로 아픔을 주며 이별합니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이혼증서를 써주는 절차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쓰게 한 것은 이혼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고 악의적인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성경적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6절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창조시로부터 인간을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음을 보시고 친히 하와를 지으셔서 맺어주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스트의 동역자를 예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Asan UBF
또한 결혼은 자립과 연합입니다. 7~9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때가 되면 부모를 떠나 자립하여야 합니다. 인격이 자립하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야 합니다. 연합은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한 인격체가 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연합, 인격과 영혼의 전인격적인 연합 입니다. 이혼은 이렇게 연합하여 하나가 된 몸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부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삶을 함께 영위하여야 합니다. 부부관계를 사람이 임의로 나눌 수 없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이혼은 간음으로 연결됩니다. 무서운 죄로 빠져들어 징계와 심판을 초래 합니다. Asan UBF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설하셨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설하셨으므로 그런 가정을 깨는 것은 죄악인 것을 몰랐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들이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이 이혼을 허용하거나 이혼을 지지해주는 것이 아닌 것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을 완전히 암송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성경을 깊이 공부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말씀조차 억지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다른 여자를 탐하는 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고 다른 여자를 가지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면에 솟아나는 욕심, 안목의 즐거움, 육체의 소욕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는 그대로 둔 채, 죄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죄와 싸우지 않으면 죄가 그 마음에 자리를 잡습니다. 마음에 자리를 잡은 죄는 인생을 지배합니다. 죄와 싸우지 않을 때, 사람과 싸우고 환경 탓, 상황 탓하며 살아갑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죄와 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하고만 싸웠습니다. 그들은 죄 속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san UBF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와 싸우는 일은 말씀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심겨진 말씀으로 죄를 몰아내 주십니다.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다고 해도 죄와 싸워서 지면 허사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죄에 지면 쪽박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살아서도 죄가 주는 열매로 인하여 상처와 곤고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13-16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히 여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든다는 말은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은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어린 아이는 가르쳐 주는 대로 배웁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어린 아이를 안으시고 저희에게 안수하시고 축복을 하셨습니다. Asan UBF
바리새인과 예수님 말씀의 어린아이는 서로 대조가 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아멘! 하여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아내를 버려서는 안된다. 어린아이 같이 받드는 사람은 아멘! 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버려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안된다는데 왜 묻고 다닙니까? 모세가 이혼증서 써주지 않았나요? 이혼하라고 써준 게 아닌데 왜 거기다 갖다 붙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자기 죄와 싸우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모습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들은 오지마라! 생명 중심이지 않았습니다. 애들은 가라! 어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고 예수님 주위에 장벽을 치고 담을 쌓으며 바리새인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히 여기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지 않고 사람의 성을 쌓고 그 속에 들어가 숨고자 하면 예수님께서 분히 여기십니다. Asan UBF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시대에 ‘영생’에 관심을 갖고 ‘영생’에 이를 길을 여쭙고 나오다니 이 사람은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좋은 질문으로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생에 대한 기본적인 오류를 지적하십니다. 영생을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행하여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경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구체적인 길로 십계명을 제시하십니다. 특히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들을 지켜 행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청년이 대답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런 노력이 오랫동안 쌓여서 자신 있게 이런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san UBF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많은 수고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돈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그가 가진 돈에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질 탐욕이 그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가 계명을 지키고 행하고도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 행하고 선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기쁨 대신 불안과 근심이 가득하고 지나온 삶이 허무하며 영혼의 공허만이 더 커졌던 것은 돈이 많았고 그 돈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돈에 신경을 쓰느라 평안이 없었습니다. 도둑이 들면 어쩌나, 혹시 자신이나 가족이 갑자기 아프면 어쩌나 공연한 근심, 알 수 없는 걱정, 일상적인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가 진정으로 영생을 체험하고 얻을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은 그를 생명의 길로부터 아득히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에 대한 소원이 있었지만, 물질에 대한 집착이 그 소원보다 더 강했습니다. 물질욕은 그를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돈에 대한 탐심이 그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Asan UBF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순종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그 축복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유대인들은 부자들을 부러워하고 선망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확실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천국가기 어렵다는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충격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로 거의 확정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니 자기들 같이 허물 많고 가난하고 약점 많은 사람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방금 돌아갔던 그 사람은 모든 계명을 다 지키었다고 자신할 만큼 경건하게 살았는데도 못 들어간다니! Asan UBF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이 노력과 힘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무슨 수로 노력하고 애를 써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의에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 많은 아브라함을 구원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욕심 많은 야곱도 12지파를 세우는 영적인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습니다. 죄지은 다윗왕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메시야의 그림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할까요? 돈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돈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우리를 들어가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어린아이와 같이 영접하여야 합니다. Asan UBF
2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과 달리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생계수단이던 배를 호숫가에 놔두고 왔습니다. 아버지를 두고 왔고, 가족들을 두고 왔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품꾼을 두고 일을 하는 집이었고, 마태는 벌어놓은 돈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함께 가난과 부족함을 맛보며 생활하였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주와 복음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백배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내세에는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만 버릴 때에 아픔이 따르며 핍박이 따르는 것은 각오하여야 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Asan UBF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자만심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과거의 결단과 희생, 과거의 실적과 성과에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을 받드는 어린아이의 특징은 끊임없이 배우고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라 자만할 때, 성장이 멈춥니다. 예수 안에서 성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영적인 투쟁에 힘써야 합니다.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방심하다가 나중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정욕과 탐욕과 영적 자만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먼저 자신의 죄와 싸워야 함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붙잡고 죄와 싸워서 우리의 인생길에 죄의 열매가 맺히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물질을 우선하고 돈을 숭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물질을 드릴 줄 알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사도 바울과 같이 이전에 이룬 것을 자랑하지 말고 저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푯대를 향하여 나가는 주의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san UBF
결론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신 것을 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일러주신 것을 어린아이와 같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배운 바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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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