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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산 용샘의 전설
우리 진도 초등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철마산(鐵馬山, 해발 295m)은 또 다른 이름이 망적산(望敵山)으로
읍에 사람덜은 걍 북산(北山)이라고덜 불렀어라만, 우리 어릴 때도 거가 망대(望臺)가 있었고
그 쪼깐 아래쪽에 원래는 짚운(깊은) 샘인데 맹헤져가꼬(막혀져서) 그랑가 원래 그랑가는 몰루제만
째깐한 둠벙(웅덩이)같은 용샘이 한나 있었는데, 거그서넌 항상 물이 흘러 나왔으며,
뱌지(배)가 삘가고(빨갛고) 끄만(까만) 점이 있는 무당 깨고락지덜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누란 참깨구락지는 잡어가꼬 대가리를 발로 볿고(밟고) 다리만 쑥 뽑아서 뀜지(꿰미)에다 껴가꼬
여러 마리 모테지믄(모아지면) 궈먹고 했었제만 그 무당 깨꾸락지는 독(毒)있다고 안 먹었지라.
그란데 또 어떤 이는 북산(망적산)이 주봉(主峯)이고 철마산(鐵馬山)은 재경동 쪽에 있는 봉우리라고
그케 말하는 이도 있드구만이라.
하여튼 오눌은 그 북산에 있는 용샘에 얽힌 옛날 깐날의 전설 야그를 잔 해 볼랍니다.
저도 에릴찍에 울 함씨한테서 들었든 야그제만 지끔의 후배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얘기겄지라?
1982년에 진도군에서 발행된 <옥주의 얼>이란 책자에 자세히 나와있고 최근의 <디지털진도문화대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올라 있으나, 옥주의 얼에 쓰여있는 얘기를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옛날에 깐날에 호랭이 담부먹던 시절에 진도 섬골 중에 섬골이었던 -예전에는 고성(古城)에 진도의 관아(官衙)가 있었으며,
현재의 진도읍이 관아(官衙)로 자리 잡은 것은 조선 세종 이후의 일임.- 현 진도읍 주산인 해발 295m 높이의
망적산 산정에서 갑자기 산더미만큼 큰 청룡이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폭음소리와 함께 한낮에 하늘을
치솟아 오르더니 진도읍 서북쪽 부지산 넘어 청룡마을 쪽으로 날며 하늘 높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라 망적산 남쪽 군강골(현 진도공원에서 개천재 아래 사정리까지 산줄기였는데
그 서편인 현 성안을 말함)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놀라, 논,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나 산에서 나무를 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뛰어가는 소동을 벌였고 용이 폭음과 함께 치솟은 망적산 용샘에서는 수십 길 되는
물길이 솟아오르며 남녘 산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수 십일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모르더랍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망적산 남쪽 들녘은 완전히 물속에 잠기게 되었고
군강골에 사는 사람들도 군강산정(현 진도공원)으로 대피하였으나 모든 것이 말이 아니었기에,
당시에 10여 채도 안되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걱정을 하게 되고, 막상 의논을 해보았으나
해결할 수 있는 별 방법이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남동리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용샘에서 치솟는 물과 함께 금세 군강골 전역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는데 다시 바닷물이 조금씩 아래로 빠지면 들녘이 물 위에 나타났다가
다시 잠기곤 하여 농사는 완전히 망치게 되었고 그나마 집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답니다.
그러던 중에 이곳 군강골에서 사는 마음씨 착하고 금슬이 좋은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그날도 땔감을 할 양으로 남편 되는 옥쇠가 군강 뒷산으로 올라가 물바다가 된 남쪽 들녘을 던 중
갑자기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짙은 안개가 눈앞을 가리더니 흰 수염을 한 도사가 나타나
“옥쇠야” 부르면서 “저렇게 치솟는 물길을 잡는 방법이 있다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하였답니다.
옥쇠는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 “도사님 가르쳐만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논과 밭을 구하고 물속에 잠기는 집들을 찾아야 하겠습니다”고 빌었다.
“그러면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하면서, “지금 망적산 용샘에서 솟구치는 물길을 잡는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있다.
그 용샘 밑을 깊이 뚫어 물길을 바다로 돌리는 방법이다.
그것도 다른 것으로는 안되고 오직 도굿대(절굿공이)로 절구통에 보리쌀을 찧듯이 용샘밑을 힘껏 쳐서 뚫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저 용샘은 바다로 나가게 되니 물길도 잡히고 앞으로 망적산 남녘에는 진도 전역을 호령할
큰 읍성이 들어설 것이다만 어려운 일이다.” 하더니 금세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옥쇠는 곧장 군강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본대로 들은 대로 말했더니
“밭과 집을 잃더니 젊은 옥쇠도 정신이 돌았구만” 하면서 혀를 찼다.
그런 후 또 며칠이 지났으나 뾰쪽한 수도 없는 마을 사람들은, 옥쇠를 불러
되든 안되는 간에 하는 데까지 결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또 문제가 있으니 어느 장사가 그 일을 해내겠는가 걱정만 하고 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육지 장사 세 사람이 딱한 사연을 듣고 불쑥 나서며 하는 말이
“좋소! 우리 육지장사 세 사람이 해볼 테니 동편 바다(울돌목)까지 쳐넣을 수 있는 수백 개의 도굿대를 만드시오,
그리고 물길을 잡는 날이면 당앞에 들녘(현 남산마을 앞 들녘)을 우리 세 장사에게 주시오.”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다 내어 주겠소.”하고.
마을 사람들은 한패는 산으로 나무를 베러 가고 한패는 군강에서 그 나무로 도굿대를 만들기 시작하여
망적산 산정 용샘을 파는 육지 세 장사에게로 도굿대를 옮겼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치솟은 용샘 속으로 도굿대를 계속해서 쳐넣으니 3자 (1m 정도 길이) 짜리 도굿대가
30개 정도 들어가더니 거기서부터는 강한 암반이 깔려 아무리 육지장사라 하더라도 단 한치를
더 밑으로 뚫지 못하고 시작한 지 3일 만에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쉬지 않고 밤낮으로 만든 수백 개의 도굿대를 망적산 용샘 옆에 쌓아 놓았으나
만사가 허사가 되고 말아서 낙담을 하고 있는 중에 망적산 남쪽 기슭 구기자골 (현 북상리)에 사는
70세 늙은 노인이 망적산정에 올라와서 하는 말이 “어쩌겠오! 내 늙어 비록 힘은 없지만 하는 데까지 내가 해보겠소.
그러니 모두 한마음 되어 도와주시오.” 하니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웃으면서,
“평소 힘이 센 줄은 알고 있지만 어림없는 짓이요, 산길이 험하니 조심히 내려가기나 하시오.” 하였다.
그러나 구기자골 노인은, 팔뚝을 걷어붙이고 도굿대를 집어넣은 후 다시 세 개의 도굿대 한쪽 끝을 두 손으로 잡고
쳐들어 후려치니 주위가 흔들리는 듯 쨍하는 소리와 함께 움쩍도 않던 도굿대가 들어가버리니,
한번 내려치는데 도굿대 한 개씩 푹푹 들어가기 시작하였답니다.
수백 개의 도굿대를 모두 쳐넣어 시작한 지 33일 만에 망적산 용샘 줄기가 동편 바다 울돌목까지 뚫려
바닷물이 솟구치고 깨어지며 온 바다가 용트림하는 듯 빙빙 돌더니 용샘에서 넣었던 도굿대가
울돌목 여기 저기서 치솟기 시작하였다 합니다.
그러더니 용이 승천한 지 몇 달째인지 그렇게 무섭도록 치솟던 망적산정 용샘물이 그만 뚝 그치고
군강골에는 예전처럼 물은 바다로 빠져나가고 잠겼던 당앞 들녘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합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하도 신기하여 구기자 노인의 뒤를 따라 노인이 살고 있는 구기자 골로 내려가서 보니,
노인의 집은 벽이고 지붕이고 간에 글자 그대로 수 백년 묵은 구기자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마당에 있는 우물을 들여다보니 구기자 뿌리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육지장사 세 사람도 못해 낸 일을 70 노인 혼자서 해냈으니 그 힘 엄청나며 그 힘은
오직 구기자 물을 마시며 구기자 열매만을 먹고 살아왔기에 생긴 힘이었으므로,
이로부터 진도 구기자의 효험이 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진도 구기자 중에도 북상리 구기자를
최고로 치게 된 연유가 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집어넣으면 3일 만에 울돌목 바다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도
이제 손주들에게 전해 주는 이들마저 없어져 가는 전설 속 이야기일 뿐인데,
어찌 되었든 그 후 하늘도사의 예언대로 이곳 망적산 군강골에 진도읍성이 건설되었고
본 군 진도읍 소재지인 옥주골 성곽도 비록 허물어져 그 자취는 퇴락하였지만
민속의 보고 풍류의 고장 진도는 영원히 발전하리라. < 1982년 간행 옥주의 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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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샘 *
용샘은 진도읍의 주산인 망적산[철마산, 해발 295m] 산정에 있는데,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은 채 흔적만 남아 있다.
* 망적산 *
[정의]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
[개설]철마산에는 산성터가 있는데 옛날 『옥주지』 산천조에 의하면 “진도의 주산으로서
진도의 북쪽 2리 지점에 있는데 옛날 뇌산현(군) 때 산성을 쌓아서 관방처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곳은 지형이 북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하단으로는 암벽이 곧추서 있다.
여기에서는 신안군의 여러 섬들뿐만이 아니라 진도군과 해남군의 북쪽 해안지역이 잘 조망된다.
철마산은 북산 또는 망적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망적산 산정에서 갑자기 큰 청용이 폭음소리와 함께 하늘을 치솟아 올라 하늘 높이 사라졌다.
그 이후 망적산 용샘에서는 수 십 길 되는 물길이 솟으며 남쪽 산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수 십 일이 지나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이에 진도읍 군강공원의 군강골 전역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집과 논밭을 잃고
걱정하던 중 흰 수염을 한 도사가 도굿대(절구대)로 용샘 밑을 뚫어야 물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힘센 장사도 그 일을 하지 못해 걱정하는데 구기자골(현 북상리)에 살고 있는 70세의 늙은 노인이
용샘에 도굿대 몇 개를 집어넣자 용샘 줄기가 동편바다 울돌목까지 뚫려 바닷로 빠져 나갔다.
신기한 마을 사람들이 노인이 살고 있는 구기자골로 가보니 노인의 집엔 수백 년 묵은 구기자나무가 있고,
그 뿌리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노인의 힘이 구기자 물을 마시며 구기자 열매만을 먹고 생긴 것으로 이때부터 구기자의 효험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명칭유래]
진도 고을의 진산 이름 원래 북산 또는 망적산(望敵山)이라 하지만 흔히 주민들은 철마산이라 한다.
지형도 상에는 별도로 북산과 철마산의 봉우리가 별도로 표시되었다.
철마산의 유래는 원래 북산에서 고을 수령이 매년 정한 날짜에 말 목장의 원활한 마정을 위해서
철마신상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마조단(馬祖壇)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망적산은 읍 전체를 한눈에 바라봐 침입하는 적들을 살펴 확인할 수 있다 하여
그 시대의 북산을 '망적산(望賊山)'이라고 하였으며, 정상의 봉우리를 망적봉,
정상에서 지금의 진도 향교 방향 쪽으로 골이 진 곳을 망적곡(망적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위치와 교통]
진도군 진도읍성으로부터는 2㎞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산으로, 읍내 성터에서 곧장 북쪽으로 가면
철마산과 북산의 능선에 도달할 수 있고, 진도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진
도로 들어오는 길은 이 산줄기로 모두 동서 방향으로 돌아서 진입하고 있다.
절대적 위치는 북위 34°29′46″, 동경126°16′7″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북산에 마조단을 설치하여 철마신상을 모시고 있는 곳에 유래한 철마산은
현 지형도 상에 북산에서 서쪽으로 1㎞ 정도에 떨어진 304m 봉을 말하고 있다.
현재 과거 진도읍 장터를 철마광장이라고 하며 이곳이 진도의 중심광장이다.
철마산은 진도의 주산이므로 진도읍성과 함께 철마산성이 세워져 있다.
성은 둘레가 250m에 불과한 소규모 산성이지만 진도읍을 비롯한 진도 남부지역과 신안군 및
완도군의 섬들이 잘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의
한라산 정상이 바라다 보일 정도로 뛰어난 전망을 가진 곳이다.
이런 점에서 진도 주변 해안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쌓여진 산성이다.
철마산성 지형조건을 이용하여 산 정산부분을 위요한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삼태기 형태이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
<진도초 59회 조병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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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이야기 들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옛날옛날이 됐네요.
소인은 당동리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소인이 어릴적 철마산에 올라가면
그 용샘이란게 있었고, 진짜로 물이 가득 차 있었지요. 또 가을이나 겨울에
철마산 자락에서 칡을 캐다보면 부서진 기와 같은 게 나왔었는데, 그게 바로
산성이 있어서였네요... 그 용샘은 왜 현재는 물이 말라버렸는지 다시 물이
나오게 할수는 없는지... 전설속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란 숫자가 많네요.
고운말씀 잘 들었습니다.
요근자에 새로 용샘을 복원했다등만
저도 가보진 못했구만이라.
용샘으로 빠지면 울돌목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막상 한 번 가 보고는 그럴까 싶더니 아득한 옛날의 전설이 흘러 오네요.
우리 것에 대한 애정으로 많은 글을 찾아 쓰시는 조 후배님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왐마! 성님 암쭝마나 여까장 발걸음재 주솄구만이람짜?
우덜은 누렸던 것덜이 잊혀제 가능 것, 사라져 가능 것에 대한 애착이구만이라.
늘 건강하시길 기원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