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여럿이 한데 나는 이유… 가지가 늦게 성장해서랍니다.
은행나무의 단지(短枝)
어느새 거리의 가로수에 연둣빛 잎이 돋아나고 있어요. 아직 새끼손톱만 한 아기 잎이지만 조금만 공부하면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느티나무, 이파리에 있는 잎맥이 잎끝에서 둥글게 말리는 듯한 왕벚나무, 이파리가 손바닥같이 넓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처럼 각각 차이가 나지요.
이 중에서도 가장 알아보기 쉬운 나무는 바로 '은행나무'입니다. 잎이 나는 방식부터 다르거든요. 일반적인 가로수는 가지를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잎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납니다. 반면 은행나무의 잎은 가지 군데군데 무리 지어 납니다. 마치 가지를 따라 연두색 동그란 꽃이 듬성듬성 핀 것처럼 보일 정도로요.
은행나무 잎이 이렇게 특이한 모양으로 나는 이유는 '단지(短枝·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로 짧은 가지)' 때문입니다. 단지는 마디가 몹시 짧아 번데기처럼 오돌토돌한 모양입니다. 은행나무 잎들은 이 단지 끝에서 한꺼번에 여러 개가 자라나 뭉쳐서 피어나지요. 단지 끝에서 자란 기다란 잎자루들 사이로 은행 암나무의 암꽃, 수나무의 수꽃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은행 암꽃은 끝부분이 노랗게 양쪽으로 갈라진 모양이고, 수꽃은 꽃이 주렁주렁 뭉쳐 포도처럼 보여요.
식물학자들은 원래는 빨리 자라야 할 가지가 천천히 자라면서 아주 짧게 압축돼 단지가 되는 거라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잎이 모여서 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 해요. 은행나무에 단지만 있는 게 아니라 '장지(長枝)'도 있어요. 단지는 몇 년 동안 2~3㎝ 정도 자라는 데 그치지만, 장지는 1년에 길게는 50㎝까지 자라죠. 은행나무도 장지에서는 다른 가로수처럼 길게 뻗은 가지에서 잎이 한 장씩 어긋나게 돋아난답니다.
사실 단지와 장지는 길이 말고도 여러 차이점이 있어요. 우선 자라는 시기가 달라요. 은행나무는 어릴 때는 장지 위주로 가지가 쭉쭉 뻗어나가다 나이를 먹거나 다른 이유로 성장이 더뎌지면서 단지가 생기기 시작한대요. 또 단지와 장지는 잎 모양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답니다. 장지의 잎은 가운데가 파여 두 갈래로 명확히 갈라진 편이고, 단지의 잎은 갈라지지 않고 끝이 물결 모양에 가깝다고 합니다.
은행나무 외에도 단지가 발달한 나무들이 있어요. 낙엽송의 가지에서는 동그랗게 보일 정도로 통통하고 짧은 단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단지 끝에서 촘촘하게 나온 가느다란 침엽이 마치 붓처럼 한데 모여 난답니다. 꽃이라도 피면 마치 직렬로 연결된 전구를 켠 것 같지요. 또 매실나무나 사과나무같이 열매가 열리는 나무에서는 꽃이 빽빽이 피어나는 단과지(短果枝)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