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어울리는 음악가를 꼽으라면 단연 브람스다. 그럼 브람스의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는? 커피보다는 홍차다. 홍차는 낙엽의 색과 가을의 향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가을이 오면 항상 브람스 음악과 홍차를 듣고 마셔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 홍차를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 홍차 전문점 '티 부띠끄'(051-740-0615)의 설명으로 살펴봤다. 부산에는 홍차 전문점이 드물어 그간 종류별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많았으나 최근 티 부띠끄가 들어서 7개국 60여 종을 선보이고 있어 홍차 마니아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티 부띠끄는 1880~1900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홍차 주전자인 '사모바르'를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도 제공한다.
■발효·제다과정 따라 맛 천차만별
홍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동백나무과)라는 차나무에서 채취된 찻잎을 발효시켜서 만든 차다. 하지만 발효나 제다 과정에 따라 수많은 종류로 달라진다. 발효를 시킬수록 녹차→백차→황차→청차(우롱차)→홍차→흑차 등 전혀 다른 풍미의 차가 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다 보니 브랜드마다 홍차 맛이 신기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커피만 아메리카노 라테 카푸치노 마키아토 등 다른 맛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1837년 시작된 싱가포르 브랜드인 'TWG'는 유럽 홍차의 전통에 아시아 차의 역사를 가미해 800여 종의 홍차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아침 점심 저녁 등 시간대별로 먹는 차의 종류를 분류해 여러 홍차를 내놓고 있다.
아침에 먹는 차로는 '싱가포르 브랙퍼스트'가 대표적이다. 적당한 향이 자극적이지 않아 아침 음료로는 제격이다. 시간에 관계 없이 먹을 수 있는 블렌딩차 종류 중 TWG의 '얼그레이 젠틀맨'은 백차다. 백차는 다른 홍차에 비해 향취가 약해 첫맛은 밋밋하지만 계속 마시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중독된다. 홍차의 지나친 향취가 거슬린다면 이러한 백차가 권장된다. TWG의 '레드 오브 아프리카'는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은 홍차다.
'마리아주 프레르'는 파리 여행을 가면 꼭 사오는 프랑스의 대표 브랜드로 여행자들에게 익숙하다. 17세기 차와 식료품을 취급하는 상점으로 출발한 마리아주 프레르는 1854년 헨리 마리아주에 의해 홍차 전문점으로 재출발한 뒤 현재 450여 종의 차를 취급하고 있다. 기본적 홍차 메뉴인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가 유명하다. 강렬한 꽃향의 상큼함이 돋보인다. 티베트의 꽃과 과일향이 가미된 '마르코폴로', 허브 종류인 하이비스커스가 들어간 '에로스' 등이 대표적이다.
140년 전통의 프랑스 '쿠스미'는 러시아 스타일이어서 특이하다. 러시아인 파벨 쿠스미초프에 의해 만들어져 제조사는 프랑스지만 러시아식으로 차를 생산하고 있다. 홍차 종류별 이름도 '아나스타샤' '프린스 블라미르'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으로 러시아식이다. 향취를 가감하지 않은 씁쓰레한 홍차 본연의 맛을 원한다면 마셔볼 만 하다.
홍차를 고급 귀족문화의 상징으로 전승하고 있는 영국 국민의 홍차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이러한 '홍차의 나라' 영국의 브랜드인 '포트넘'은 1707년 시작돼 지금도 영국 왕실에 납품하고 있다. 강한 차(스트롱거 티)와 가벼운 차(라이터 티)로 크게 종류가 나뉘어 취향에 맞게 골라 마실 수 있다. 정통 홍차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로얄 블렌드'와 '얼그레이 클래식'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티 포르테'는 홍차 브랜드로는 역사가 짧다. 뉴욕현대미술관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휴잇이 2003년에 만든 것으로 피라미드형의 티백으로 디자인상을 받는 등 젊은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다즐링' 등 종류가 있다. 스리랑카에도 '베질루르'라는 홍차 브랜드가 있다. '실론티의 나라'답게 '리브 오브 실론티'라는 차가 인기가 있다. 적당히 씁쓰레하고 향이 나는 것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홍차의 종가는 중국이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이 동양 약탈을 시작하던 16~17세기 중국사람들의 차문화가 서양에 자연스레 전해졌다. 차문화는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귀족문화의 상징이 됐고 유럽의 주도로 상품화가 시도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중국은 우롱차 보이차 등 여러 발효차를 생산한다. 이 중 '철관음'은 찻잎의 모양이 관음과 같고 무겁기가 철과 같다고 해서 청나라 건륭황제에 의해 이름 붙여진 희귀한 차다.
■이렇게 즐기자
홍차 속 카페인을 우려해 꺼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홍차의 카페인은 폴리페놀이라는 성분 때문에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특히 이 폴리페놀은 노화방지를 비롯해 치매예방, 시력회복, 항바이러스와 항암 작용을 하는 성분으로 유명하다.
홍차 잘 우려내는 법은 간단하다. 티스푼 하나 가득 홍차 잎을 담고 끓인 물 한잔에 3~5분간 우렸다 빼낸다. 잔은 미리 따뜻한 물로 데워두면 즐기기에 더 좋다. 홍차를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위스키 몇 방울을 떨어뜨려 마시면 좋다. 상큼한 홍차를 즐기고 싶다면 얇게 자른 레몬을 넣는다. 시원하게 마시려면 차가운 물 한 통에 홍차 티백 두어 개를 하루 동안 넣어둔다.
홍차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타면 '밀크티'가 된다. 여기에 꿀을 넣으면 달달한 밀크티가 된다. 설탕 대신 꿀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 부드럽고 깊은 꿀의 단맛이 씁쓸한 홍차, 고소한 우유의 맛과 함께 어우러져 기분 좋은 맛을 낸다. 밀크티로 만들어 먹을만한 홍차 종류로는 TWG의 '미라큘러스 만다린'이 추천된다. 이 홍차 특유의 상큼한 귤향이 밀크티의 맛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