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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74강
출애굽기 30:17-21
물두멍
성막에 대한 계시가 ‘언약궤(속죄소) → 진설상 → 등잔대 → 덮개(앙장) → 널판벽 → 휘장 → 번제단 → 뜰 울타리’ 순서로 주어진 후 제사장의 옷에 대한 말씀이 있었고, 위임식 제사에 대한 말씀이 주어진다. 그리고 분향단 → 물두멍에 대한 계시가 있다. 우리의 생각에는 진설상과 등잔대에 대한 말씀이 주어진 후 바로 분향단에 대한 말씀을 주시고, 번제단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물두멍에 대한 계시가 주어지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그렇게 주어지지 않았다. 성막에 대한 계시가 다 주어진 후에 분향단과 물두멍을 따로 떼어서 주신 이유는 언약궤 위 속죄소를 보좌로 삼고 거기서 이스라엘과 만나겠다고 하셨는데 그 절정을 나타내신 것이 번제단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라고 하셨고, 동일한 말씀으로 번제단에 대하여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 29:42-43)라고 하셨다.
언약궤는 대제사장만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번제단은 이스라엘이 다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번제단은 백성들이 볼 수 있는 언약궤요 속죄소였다. 하나님께서 언약궤 위의 속죄소 보좌에서 말씀하시고 만나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번제단에서 희생제물로 보여주고 또한 만나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막의 기물들을 만들라고 하신 계시의 순서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만나신다는 의미라면 반대로 분향단과 물두멍을 통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분향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성도가 기도로 합하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 백성이 내성소 분향 제단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17-18절). “물두멍”(18절)의 ‘키요르’는 ‘(둥근 혹은 도려낸) 대야, 솥, 냄비, 용광로’라는 뜻인데 한마디로 커다란 대야이다.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기에 우리 성경에는 “놋대야”(대상 18:8, 렘 52:17)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놋 바다’이다. 물두멍에 대해서는 성막의 기물 중에서 가장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두멍의 재료가 놋이라는 것과 놋 받침대가 따로 있었다는 것 외에 크기나 무게, 모양,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다. 물두멍의 제작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38장에 딱 한 절 언급한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 38:8)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아마 이들은 성막 완성 후에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미리 정해진 여인들이었을 것이다. “거울”이란 여인들이 자기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도구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선하심 아름다움을 위해 던져 넣어야 하는 자들이 교회이다.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물을 떠서 사용하기 위한 작은 바가지와 대야들이 구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18절)라고 그 위치를 말씀하였는데 내성소 입구와 번제단 사이에 물두멍을 두었다. 하나님 편에서 이 땅에 찾아오심을 속죄소 보좌에서 휘장을 찢고 나오셔서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죽음으로 이루시는 언약이 성막이라는 것을 계시하셨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감에 있어서 성막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번제단이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하는 것인데 이는 곧 물로 씻어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소로 나아가는데 이 부분에서 번제단의 죽음을 통해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을 제사장이 대신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시면서 희생제물이 되신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19-21절). 물두멍의 용도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내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는 것이었다. 물로 손발을 씻는다는 것은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에 의해 깨끗하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차원이다.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20절)라는 말씀에서 “제단”이 분향 제단인지 번제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뒤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20절)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회막에 들어갈 때에”(20절)라고 한 것을 보면 내성소에 들어갈 때라는 의미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단”은 분향 제단을 의미하고 여기서 “화제”는 ‘분향하는 헌물’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19절)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물로 씻어 죽은 상태라면 죽음을 면할 것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물로 씻는 것의 목적이 내성소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육의 죽음을 통해 다시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내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윗물과 아랫물로 갈라놓은 창조 언약을 보여주신 것은 윗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랫물처럼 오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두멍은 아랫물로 씻는 것을 통해 윗물로 정결하게 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6-8)
결국 물두멍은 물과 피, 진리의 영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다는 것은 물에 빠져 죽는 죽음을 통해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정결하게 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두멍과 같은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이렇게 나타내셨다.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 13:5-1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단순히 섬김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온몸이 정결하게 된 자는 매일 손발, 즉 자기 율법적 행위를 날마다 씻는 것으로 십자가 죽음에 동참 된 교회임을 확인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이 홍해의 죽음을 통해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은 “광야교회”가 되는 것과 같다(행 7:38). 이런 차원에서 물두멍은 홍해와 같은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모세 안에서 세례로 죽음에 동참된 것이다(고전 10:2).
성막에서는 물두멍이 하나였으나 후에 솔로몬 성전에서는 규모에 맞춰 10개가 되었는데(왕상 7:38) 이를 “바다”로 지칭하였다(참고 왕상 7:23-26, 대하 4:2-6). 즉 내성소에 들어가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온전한 성취를 요한 사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 15:2-3)
유리 바닷가에서 어린 양의 노래를 할 수 있음은 세상과 같은 바다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사장이 손발을 씻어 깨끗하게 되는 것은 번제단의 희생제물이 근거가 되는 것이고, 내성소에 들어갈 때 물두멍에서 자기 죽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살려주시는 은혜를 입은 자가 내성소에 들어가 분향 제단에서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지성소로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원이 완성된다.
물두멍까지 계시가 주어짐으로 성막의 기물과 비품의 모든 제작과 설치 그리고 배치에 대한 계시는 완성된다. 성막의 조감도와 지성소와 내성소의 배치에 대하여 다음 그림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2026070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