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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선생문집(濯纓先生文集)
제6권(卷之 六) 시(詩) 2)
1. 謹和呈耕隱李先生(근화정경은이선생) 孟專(맹전) 戊戌(무술년,1478)
경은 이선생 맹전[1]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드리다.
先生韜晦久盲聲 선생께선 은둔한 채 문 귀 먼 양하시니
小子何知意欲同 소자 무얼 알아 뜻을 같이 하오리까마는
夜夜子規啼不盡 밤마다 소쩍새 울어울어 그칠 줄을 모르니
九疑山色月明中 구의산 산색이 달빛 속에 아련 하오이다.
[1]이맹전(李孟專) : 세조 때의 문신으로 호는 경은(耕隱),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거창 현감을 지낼 때 청백리로 이름났으나 세조의 득세를 보고 눈이 멀고 귀가 먹었다는 이유로 선산에 은둔하였다.
2. 奉和李耕隱及鄭漁隱(봉화이경은급정어은) 仲虔(중건)
이경은 · 정어은 중건[1] 선생에게 삼가 화답하다.
雙鴻一擧避矰多 기러기 쌍으로 날아 주살 피할 장한 데다
溪北溪南處士家 시내 남쪽 시내 북쪽 처사의 집 되셨구려
客至莫言虞夏事 객이 와서 우하(虞夏)의 일[2] 말하지 말고
塵囂不敢耳邊加 시끄러운 세상일로 귀를 더럽히지 말지어다
[1] 정중건(鄭仲虔) : 탁영선생의 외조부로 호가 어은(漁隱)이다. 계유정남 때 집현전 전한(集賢殿典翰)으로 있다가 비안 현감(比安縣監)을 자청하여 나갔는데, 곧 사직하고 경은과 함께 은둔하였다.
[2]우하(虞夏)의 일 : 유우(有虞)의 순(舜) 임금이 하(夏)의 우(禹) 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한 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빗대어 이른 말로 보인다.
3. 附耕隱韻(부경은운)
경은의 시를 붙임.
宅邊淸澗夢行多 집 언저리 맑은 시냇물[1] 찾아가는 꿈길 잦았으나
俄覺燈明在我家 꿈을 깨어 등 밝히면 내 집 안에 그대롤세
惆愴音容違咫尺 슬프다 음성과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니
只因衰病日來加 다만 늙고 병듦이 날로 더해지기 때문이어라
[1]맑은 시냇물(淸澗) : 시의 내용으로 보아 단종(端宗)이 유폐되었던 영월의 청령포(淸泠浦)를 암시하는 듯하다.
4. 附漁隱韻(부어은운)
어은의 시를 붙임.
老病偏驚歲月多 노병으로 지낸 세월 놀랍게도 적잖아서
席門誰復問貧家 누가 이 누추한 집 다시 찾으랴 여겼더니
忽然牀上風雷動 홀연히 책상 위에 바람과 천둥이 동하는 듯
手跡依然月露加 솜씨 따라 의연한데 월로마저 더했구려
5. 次金大猷 宏弼 上畢齋先生韻(차김대유 굉필 상필재선생운) 丙午
김대유 굉필 가 필재 선생에게 올린 시에 차운하다. 병오년(1486)
夏忠那可語寒氷 여름 벌레가 어찌 찬 얼음을 말할 수 있으리오
大聖猶謙一未能 공자도 외려 한 가지도 능치 못하다 하셨거늘
欲識古人無犯隱 고인의 범은(犯隱) 없음을 알고 싶어 하거들랑
莫將牛馬說耕乘 소로 밭 갈고 말은 탄다 말하지 말지어다.
其二 둘
人於處世戒淵冰 사람이 처세함에 연빙의 경계[1]가 있어니와
用舍行藏久鮮能 벼슬길의 진퇴(進退)를 항상 잘한 이 적었다네
縱使幽蘭蓬艾混 가령 그윽한 난초를 숙과 섞어 둔다면
芳香肯被臭蕕乘 꽃다운 향기가 어찌 나쁜 냄새를 덮어 가리리
其三 셋
藍出其靑水出冰 쪽에서 청색 나오고 물에서 얼음 나오는 법이니
立言休道覓吹能 굳이 흠집을 찾아 말을 만들어 하지는 말아야지
淸夷和惠俱先覺 청절의 백이[2]와 온화한 유하혜[3]는 모두 선각자
進退中間時各乘 진퇴의 때를 각기 잘 탔었다 하겠네
其四 넷
空山花落月如冰 빈산에 꽃이 지고 달은 얼음 같은데
蜀魄聲中哭未能 소쩍새 우는 소리에 통곡조차 할 수 없네
自是無心人世事 이제부터 세상일에 뜻이 전혀 없어지니
帝鄕何處白雲乘 신선 사는 어느 곳에서 흰 구름 타고 놀까
其五 다섯
道亦多岐似炭冰 도란 여러 갈래에다 빙탄(氷炭)[4]과도 같은지라
身家日用世皆能 자기 가정의 일용은 세상사람 모두가 능하네
也知心性非空寂 마음의 본질이 공허한 것이 아님을 또한 아니
頓悟何須效演乘 깨달음에 어찌 승화[5] 본받기를 기다리랴
[1]연빙(淵冰)의 경계 : 임심이박(臨深履薄)을 이르는 말로, 깊은 못에 다다른 것과 같이 하고,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함을 이른다.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詩經 小雅 小泉》
[2]백이(伯夷) : 옛 상(商)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아들로, 동생 숙제와 왕위를 서로 양보하여 도망친 바 있고, 주 무왕의 상나라 정벌을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절조를 지켰다.
[3]유하혜(柳下惠) :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 전획(展獲)으로, 시호가 혜(惠)이고 사사(士師)로서 유하(柳下)라는 식읍을 받아 유하혜라 일컫는다. 세 번이나 쫓겨났으나 바른 도리를 지키며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4] 빙탄(氷炭) : 얼음과 숯불이란 뜻으로, 서로 성질이 상반하여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군자와 소인을 비유하지도 한다.
[5] 승화(乘化) : 불교에서 중생을 피안의 연반(涅槃), 즉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을 가리킨다.
6. 附大猷韻(부대유운)
대유의 시를 붙임
道在冬裘夏飮冰 도란 겨울엔 갖옷 여름엔 얼음 마시는 데도 있거늘
霽行潦止豈全能 갤 때 가고 올 때 멈추는 걸 어찌 모두가 능하랴
蘭如從俗終當變 군자가 세속을 좇다 보면 필경엔 변할 것이니
誰信牛耕馬可乘 소는 밭을 갈고 말은 탄다는 것 누가 믿겠나
7. 附畢齋韻(부필재운)
점필재의 시를 붙임
分外官銜到伐冰 분에 넘친 관직 이름 대신(大臣)가지 되었건만
匡君救俗我何能 임금 보필 세상 구제에 내 무엇을 능히 했나.
縱敎後輩嘲迂拙 우졸하단 후배들의 비난만 사게 했으니
勢利區區不足乘 권세와 이익이란 하찮은 것 족히 탈 것이 아니었네
佔畢先生答金大猷 이 시는 점필재 선생이 김대유(김굉필)에게 회답한 시이다.
8. 奉和文斗成先生(봉화문두성선생) 聃壽 ○丁未
문두 성 선생 담수[1] 의 시에 삼가 화답하다 정미년(1487)
鷗鷺忘機護兩邊 갈매기 해오라기가 세상일 잊고 양쪽에서 호위하며
茵沙枕石共閒眠 모래 자리에 돌베개로 한가로이 한잠 잤네
知君一夢遊何處 한바탕 꿈속에서 그대 어디서 노셨는지 알 만하니
只在淸風北海天 그 북해의 하늘에 청풍(淸風)[2]만 불고 있었네
[1]성담수(成聃壽) :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성삼문(成三問)과는 재종간으로 사육신 사건 당시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이때 파주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탁영선생이 추강 선생과 함께 방문하여 10일간 묵으며 창수하였다.
[2]청풍(淸風) : 청고한 풍격을 지닌 사람. 즉 문두(文斗) 선생을 지칭한다.
9. 附文斗韻(부문두운)
문두의 시를 붙임
把竿終日趁江邊 낚싯대 들고 강가에 나가 하루해를 보내다가
垂足滄浪困一眠 창파에 발을 드리운 채 곤히 한잠을 잤네
夢與白鷗飛海外 백구와 함께 바다 멀리 나는 꿈을 꾸었건만
覺來身在夕陽天 깨고 보니 이 몸은 석양 아래 누워 있네
10. 謹和漁溪趙先生 旅 寄遠(근화어계조선생 려 기원) 戊申
어계 조 선생 려[1] 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멀리 부치다 무신년(1488)
幽花一朶向誰開 그윽한 한 송이 꽃 누굴 향해 피었는가
膓斷春林蜀魄哀 창자를 에는 듯 봄 숲의 두견새 소리 애달프다
縱被東風零落盡 봄바람에 꽃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守紅不許嫁蜂媒 벌 중매로 시집 안 가고 붉은 절개 지키시네
[1] 조려(趙旅) : 조선 단종(端宗) 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함안(咸安)에 은거하였다.
11. 附漁溪韻(부어계운)
어계의 시를 붙임
一去天涯遂不來 하늘 끝에 한번 가신 임 끝내 아니 오시고
更無消息竟何哀 다시는 소식도 없으니 슬퍼한들 무엇 하리
如今獨立漁溪畔 지금은 어계 언덕에 홀로 서서
不怨伊人却怨媒 그분을 원망 않고 중매한 이를 원망하네
12. 與鄭伯勖 汝昌 同遊頭流歸泛岳陽湖(여정백욱 여창 동유두류귀범악양호) 己酉
정백욱 여창 과 두류산을 구경하고 돌아와 악양호에서 배를 타다. 기유년(1489)
滄波萬頃櫓聲柔 푸른 물결 드넓고 노 젓는 소리 부드러운데
滿袖淸風却似秋 소매 가득 맑은 바람은 마치 가을 같구나
回首更看眞面好 고개 돌려 다시 보니 그 참모습 아름다운데
閒雲無跡過頭流 한가한 구름은 자취도 없이 두류산을 지나가네
13. 附伯勖韻(부백욱운)
백욱의 시를 붙임
風蒲獵獵弄輕柔 바람결에 부들잎 살랑살랑 가벼이 흔들리고
四月花開麥已秋 사월의 화개 땅엔 벌써 보리 익어 가네
看盡頭流千萬疊 천만 첩 두류산을 다 구경하고
孤舟又下大江流 외딴 배 타고 다시 큰 강 따라 내려가네
獵獵或作泛泛 원문의 엽렵(獵獵)은 범범(泛泛)으로 쓰기도 한다.
14. 梁山郡澄心軒謹次畢齎先生韻(양산군징심헌근차필재선생운)
양산군 징심헌에서 점필재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郡則新羅揷良州朴堤上以州干使倭迎訥祗王弟末斯欣逃歸堤上遂死于倭○癸丑
군은 곧 신라의 삽량주이다. 박제상이 주간이 되어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눌지왕의 동생 말사흔을 맞이하여 도망오게 하고 박제상은 왜국에서 죽었다. 계축년(1493)
一帶長江萬古流 한 줄기 장강은 만고토록 흐르는데
蕭蕭竹葉幾經秋 쓸쓸한 저 대숲은 가을 몇 번 지냈는가
忠孝洞裏今無主 효충동 골 안은 이제 주인이 없건마는
綠草年年暗喚愁 해마다 푸른 풀만 그윽이 시를 부르네
忠孝洞, 在郡西五里, 堤上及其子婁琅所居處云
충효동은 군의 서쪽 5리쯤에 있으며 박제상과 그의 아들 누랑이 살던 곳이라 한다.
15. 附畢齎韻(부필재운)
점필재의 시를 붙임
人物當時第一流 당시의 제일류의 인물이었거늘
貞忠空想割雞秋 그의 정충을 작은 일로 가벼이 생각하네
分明寃血蒹葭上 갈대 위엔 원통한 피의 흔적 분명하고
猶帶滄溟萬古愁 푸른 바다는 아직도 만고의 수심 띠었네
16. 渡漢江(도한강)
한강을 건너며
一馬遲遲渡漢津 필마 타고 느릿느릿 한강 나루 건너가니
落花隨水柳含嚬 꽃잎 져서 흘러가고 버들잎은 찌푸린 듯
微臣此去歸何日 소신이 이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리까
回首終南已暮春 남산을 돌아보니 벌써 이 봄도 저물었구려
17. 留別螺和尙(유별라화상) 庚戌
나 스님과 이별하며 경술년(1490)
萬疊孤雲洞 첩첩 산중의 고운동
名藍據上頭 이름난 절이 꼭대기에 자리했네
螺鳴驚宿鳥 소라고동(法螺)을 불면 자던 새도 깨고
劍化蟄寒虯 보검은 용이 되어[1] 쓸쓸히 숨었도다
眼界江山盡 눈앞에는 강과 산이 다이지만
胸襟天地流 가슴속엔 천지가 유동하리라
橋邊花欲語 다리 가에 핀 꽃이 말을 하려는 듯
應笑虎溪遊 아마 호계의 놀이[2] 를 비웃으려 함이리
[1]보검은 용이 되어 : 《진서(晉書)》〈장화전(張華傳〉에 보검이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나 화상(螺和尙)이 거처하는 조현당 앞 득검지(得劍池)에서 검을 얻어 조현당에 걸어 둔 것을 두고 나 화상의 쓸쓸한 칩거를 말한 것이다.
[2]호계의 놀이 :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이다. 진(晉)나라 때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찾아온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전송하는데 저도 모르게 호계를 건너 범이 우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안거금족(安居禁足)의 맹세를 깨뜨린 것을 깨닫고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는 고사를 말한다, 여기서는 나 화상과 탁영, 한훤당(寒暄堂) 등 선비들의 모임과 혜어짐을 호계의 고사에 비유한 것이다.
18. 宜寧駁川與許上舍 元輔 同遊(의녕박천여허상사 원보 동유)
의령 박천에서 허 진사 원보 와 함께 놀며
移牀坐坡面 평상을 옮겨 제방 위에 앉으니
冷氣透衣裳 냉기가 옷자락에 스며드네
白石留佳客 하얀 괴석은 시객(詩客)을 머무르게 하고
靑山易夕陽 푸른 산은 석양 되기 쉬워라
金尊滴寒露 금빛 술통엔 찬 이슬 방울지고
銀鯽斫飛霜 은빛 붕어는 뛰며 날리는 서리 치네
共作臨流會 모두 함께 흐르는 물가에 모였으니
如何曲水觴 곡수유상(曲水流觴)[1] 놀이와 어떠한가
[1] 곡수유상(曲水流觴) : 옛날 문인들이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보내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고 그 술을 마시던 풍류(風流) 놀이를 일컫는다.
19. 追附李退溪先生 滉 韻(추부이퇴계선생 황 운)
이퇴계 선생 황의 시를 추후하여 붙임
萬古英雄逝 만고의 영웅들이 떠나신 이곳에서
追思淚滿裳 지난 일 생각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當時留醉墨 당시의 취묵이 그대로 남아 있어
此日媚韶陽 이날의 화창한 봄볕이 곱기도 하네
爲國腸如鐵 나라 위한 심장은 강철 같았고
誅奸刃似霜 간흉 베던 칼날은 서릿발 같았도다
花明駁川上 꽃이 핀 박천 언덕에서
慷慨一揮觴 강개하여 술잔을 비우도다
20.追賡魯陵御製子規詩(추갱노릉어제자규시) 庚戌
노릉이 지는〈자규시〉에 추후 화운하다 경술년(1490)
錦水眉山憶舊宮 금강과 미산(촉나라 땅)의 옛 궁을 그리는데
一聲聲在亂樹中 소쩍새 소리만 어지러운 숲 속에서 들릴 뿐이니
佳人停繡驚春暮 고운 임 자수 놓다 봄 저물어 깜짝 놀라고
孤客挑燈坐夜窮 외론 나그네는 등불 돋운 채 범을 지샌다.
萬里愁添芳草綠 푸른 방초 위엔 만 리의 시름만 더허고
千年淚灑落花紅 떨어진 붉은 꽃잎엔 천년의 눈물 뿌린다.
不如歸去歸何處 돌아가야 한다지만 가면 어디로 가야 하나
叫閤無由達帝聰 대궐 향해 외쳐 보나 임금님 귀엔 이를 길 없네
21. 敬附魯陵宸章(경부노릉신장)
삼가 노릉의 시를 붙임
此魯陵御製而依上子規詞例謹附之於此
이는 노릉의 어제인데 <자규사>를 실은 예에 따라 여기에 삼가 붙인다.
一自寃禽出帝宮 원금이 되어 제궁에서 한 번 쫓겨 나온 뒤로
孤身隻影碧山中 외로운 그림자와 함께 푸른 산 속에서 사네
假眠夜夜眠無假 밤마다 잠을 청하건만 잠은 이루지 못하고
窮恨年年恨不窮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하나 한은 그치지 않네
聲斷曉岑殘月白 소쩍새 소리 끊긴 새벽 산 위엔 지는 달이 희고
血流春谷落花紅 피 흐른 봄 골짝엔 떨어진 꽃잎 붉더니만
天聾尙未聞哀訴 하늘(임금)은 귀가 먹어 애달픈 호소 듣지 못하는데
胡乃愁人耳獨聰 어찌 유독 시름하는 이의 귀만 밝단 말인가
22. 同南伯恭 孝溫 送金悅卿 時習 歸雪嶽(동남백공 효온 송김열경 시습 귀설악) 辛亥
남백공 효온 과 같이 설악산으로 돌아가는 김열경 시습 을 전송하다. 신해년(1491)
三月楊花洌水灣 삼월의 양화진 한강의 물굽이에서
片雲孤鶴送君還 조각구름에 학이 날듯 돌아가는 그대를 전송하네
芝蘭風入秋江室 지란의 향기가 추강의 방에 스몄으니[1]
薇蕨春生雪嶽山 설악산에도 봄 고사리는 나겠구려[2]
五歲神童猶靖節 다섯 살의 신동인 것은 도연명(陶淵明)과 같고
百年淸士可廉頑 평생 청렴한 선비로 탐욕스러운 자 감화시키네
聯筇他日金剛去 훗날 금강산에 함께 가게 되거든
鳳頂源頭叩石關 봉정의 샘가에서 돌문(은자의 거처)을 두드리리라
[1]지란(芝蘭)의 ……스몄으니 : 김시습이 남효온의 집에 머물다가 갔으므로 지란의 향기 즉 김시습의 체취가 스며있다는 뜻이다.
[2]설악산에도 …… 나겠구려 :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절의를 지키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을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던 백이숙제에 비유하였다.
23. 兪氵雷溪 好仁 挽(유뇌계 호인 만) 甲寅
유뇌계 호인 를 애도함 갑인년(1494)
一代文章伯 문장은 한 시대의 으뜸이셨는데
半生寵辱身 몸은 영욕(榮辱)의 반생을 살으셨고
有原埋玉樹 옥수를 묻은 언덕은 있다지만
無伐記貞珉 기록하여 세울 만한 비석조차 없구려
自昔騷人困 예로부터 문인들은 곤궁하였거니와
于今志士貧 지금도 뜻있는 선비는 가난하지요
諸公皆袞袞 여러 높은 이들은 하는 일 없이 보냈지만
夫子獨恂恂 스승께선 홀로 공근(恭勤)하셨구요
乞郡辭鑾殿 한원(翰苑)을 사직하고 군수를 자청하여
分符爲老親 부절(符節)을 찬 것은 늙으신 부모 위함이었고
全家資薄廩 박한 녹봉으로 집안을 보전하고
闔境望深仁 높은 덕으로 관내 백성들의 우러름 받았습니다.
未見生祠立 생사당(生祠堂)[1] 세우는 것 보기도 전에
先敎墮淚頻 먼저 눈물 자주 흘리게 하였더이다.
無人窮本化 사람은 본성(本性)의 닦음 다하지 못하나
造物斲元眞 조물주는 그 본성을 부여했거늘
南紀奎星落 남쪽의 규성(문운을 관장하는 별) 떨어지니
東方大雅淪 동방의 큰선비가 돌아가셨습니다.
斯民泣慈父 백성들은 인자한 부모 가심에 흐느껴 울고
星主失詞臣 성주께선 문장에 능한 신하를 잃으셨습니다.
老弱無歸處 노약한 자들은 의지할 곳 없어 하고요
朋交盡斷神 친구들까지도 모두가 가슴 아파 합니다.
恨添氵雷水上 뇌수의 언덕엔 한(恨)이 더 쌓이고
吟廢鉢山春 발산에 봄이 와도 읊조림 관두었나이다.
痛哭蒼煙瞑 푸른 연기 속에 눈감으심을 통곡하옵고
傷心白日窀 백일 아래 장사 지냄에 상심할 뿐입니다.
九原呼不起 무덤을 향해 불러 봐도 일어나지 않으시니
誰復此懷陳 누구에게 다시 이 마음 털어 놓으리까
[1]생사당(生祠堂) : 백성들이 수령(守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생전부터 화상(畵像)을 그려 놓고 제사하던 사당을 일컫는다.
출전 : 탁영선생문집, 중간본, 역주본
편집 : 2015.01. 01. 죽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