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양한 감각어의 활용
1) 의미 부여의 감각 작용
-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의미 찾기
· 대상의 가치나 의미를 이해. 비슷한 것을 유추하거나, 유사성/연속성을 본다. · 일상적인 것을 거리가 먼 대상으로 변용, 융합 → 시적 긴장감 생성
· 환유와 제유에서 드러나는 인접성과 직유, 은유, 상징 등 유사성 원리를 활용
· 이질성 속의 동질성, 동질성 속의 이질성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표현이 만들어진다. 신선한 감동이 크게 다가온다.
· 상상력 : 유추적 대상을 발견하여 그 발견 행위를 이끌어주는 것이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에 따라 시적 표현의 깊이가 달라진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 권혁웅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대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그는 눌린 머리 고기처럼 얼굴을 눌러
눈물을 짜낸다
새우젓이 짜부라든 그의 눈을 흉내 낸다
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
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다 잘게 썰린
옛날 일이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되었지
융털 촘촘한 세월이었다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지금 마늘과 깍두기만 먹고 견딘다 해도
동굴 같은 내장 같은
애인의 목구멍을 다시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만다
휴지를 든 손이 변비 앞에서 멈칫하고 만다
일상적인 음식 ‘순대’를 통해서 이별의 순간을 묘사한다. 애인이 우는 청각적 이미지에서 순대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순대는 긴 시간 추억이 축적된 대상이 되고, 마치 변비처럼 압축되어 있다. 애인의 울음통이 순대처럼 토막나더니, 변비처럼 힘겹게 짜내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다발을 떠올리면 나는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촉각적 이미지로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멈칫하는 순간 깨닫는다.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는 것은 미래를 사는 방법으로서의 의미 부여로 심층적 층위가 드러난다.
다음 작품에서도 평범한 사물이 특별한 의미나 효과를 얻는 것을 본다.
1에서 싹이 난 감자는 근육감각 이미지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2에서 구체적으로 뿔 난 아버지의 시각적 이미지는 가정의 부조리, 상처받은 남동생까지 고통을 그려낸다.
이러한 시적 대상의 의미 부여는 의인법보다 의물법으로 표현할 때 결합이 새로워진다.
의물(儀物)법은 인간을 사물에 비유하는 것, 혹은 인간이나 생물을 무생물화하는 것을 말한다.
싹이 난 감자
박연준
1
감자를 꺼내다 떨어뜨렸다
무서워서 온몸이 떨렸다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몸 곳곳에서 뿔이 뻗어나왔을까?
2
나는 무당처럼 몸을 떨며 발작을 했고
아버지가 나를 향해 엎드려 절했다
아버지의 이마에서 뿔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버지 뿔을 저리 치워요! 저리 가서 혼자 죽어요!
......
아침이 오면 순하게 구겨진 어린 남동생은
가방을 메고 등교했다
우리는 모두 흙속에 있었고, 밖에서는 간혹 꽃이 핀다고도 했다
2) 초점화의 감각 작용
초점화는 특정 대상을 감각적으로 강조하여 독자에게 명확한 심상을 제공한다. 이는 ‘감각의 지각’이 상상력과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되며, 초점화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감정과 의미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감각적 상상은 초점화 전략의 중심이다. 시인은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감 나는 형상을 창출하며, 이를 통해 독자가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 시각적 초점화 : 특정한 장면, 대상을 세부적으로 조명 → 독자가 그 이미지를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도와줌
* 청각적 초점화는 감정의 강도를 조절 .
* 이에 따라 개인적 체험을 공적인 언어구조로 승화 → 집중화된 감각으로 의미의 변형을 가져옴.
꽃 / 문인수
말이 되지 않는다. 손아귀에 꽉 꽉 꽉 구겨 쥔 에이 포 용지를 냅다 방구석으로 던졌다. 어, 처박힌 종이 뭉치에서 왠 관절 펴는 소리가 난다. 뿌드드드 드드 부풀어오르다, 부풀어오르다, 이내 잠잠해진다.
종이도 죽는구나
그러나 입 꽉 틀어 막힌 그 마음의 밑바닥에 얼마나 오래 눌어붙어 붙어먹었으면, 그리고 그 무거운 암흑의 산도(産道)를 얼마나 힘껏 빠져 나왔으면 그토록 환하게
뼈 부러지게 기뻤을까
누가, 날 구겨 한 번 멀리 던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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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말이 되지 않더라도 한참을 책상에 앉았다가 ‘관절 펴는 소리’가 나도록 시를 쓴다. 이런 청각적 이미지에는 시인이 쓴 시가 ‘꽃’이 되길 희망하는 감정이 담겨 있다. 시인은 죽음과 해산의 고통 속에서 하얀 ‘A4’ 용지와의 싸움을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창작의 고통이 들어간 꽃의 시각적 이미지로 변주되고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백지의 공포가 구겨지는 청각적 이미지로서 ‘뿌드드드 드드’ 부푸는 시각적 이미지로 피어나다가 곧 역설적인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무거운 암흑의 산도를 빠져나와 기쁨을 누리기 위해 구겨지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꽃이 피는 과정과 연결하여 시각적 효과로 초점화시겨 준다.
* 관절 펴는 소리 뿌드드드 드드 ▶ 잠잠, 종이가 죽는 소리 ▶ 산통 ▶ 꽃
시를 초점화시켜서 묘사할 때는 입체적이어야 한다.
* ‘거리의 악사가 노래를 부른다’(평서문) → ‘악사의 노래가 거리를 출렁이게 한다’,
‘거리의 악사가 노래 속으로 들어간다’로 시각 이미지, 근육감각 이미지로 형상화하면 더 초점화시킬 수 있다.
3) 재해석의 감각 작용
재해석은 기존의 의미에 전혀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삶의 체험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낯설고 새롭게 묘사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마리 젖은 뻐꾹새가
무너진 산을 추슬러 바로 세울 때가 있다
- 김완하, <뻐꾹새 한 마리가 산을 깨울 때> 부분
* 청각 이미지를 담고 있는 ‘한 마리 젖은 뻐꾹새’ 울음 소리의 강렬함은 무력한 현실에 지친 대상에게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한 마리 젖은 뻐꾹새’의 울음 소리가 무너진 산을 추슬러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래 시는 삶의 공간에 있어야 할 ‘의자’가 자연 공간에 놓이면서 이루어지는 감각의 재해석을 보여준다.
저수지에 빠진 의자
유종인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 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여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속에라도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 그림자를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 사물에 표정이 있다면 특히 정든 물건일수록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안락을 주던 다리가 부러진 나무 의자가 저수지에 버려졌다. 시인은 ‘물속에라도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고 자연이 품어줌을 알아본다. 위로의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하다.
‘저수지에 빠진 의자’에 물이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하고, 물수제비 뜨던 하늘이 슬며시 산그늘을 데려와 앉히고, 등을 기댄 물에 물고기가 찾아들어 함께 휴식을 취한다. 많은 자연물들이 스며들어 새로운 삶을 찾는 ‘의자’. 다시 이웃의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의자야말로 외롭지 않은 우리 세상의 존재다.
4) 연상 이미지의 감각 작용
이미지는 각각의 동질성 속에서도 이질적인 이미지를 추출할 수 있도록 연상(聯想)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신선미가 없고, 극적 이미지 효과를 주려면 낯설더라도 언어적 질감을 잘 찾아서 연상이 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9×9 단어 연상법 참조]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전봉건, <피아노> 전문
단 2연의 이 시는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바꾸는 연상이 가득한 시다. 피아노를 치는 여자의 두 손은 건반을 튕기는 손가락이 열 마리, 스무 마리의 물고기가 춤추는 것 같다. 경쾌한 피아노 연주 소리가 시각적으로 ‘신선한 물고기’로 연상된다. 곧 이어 물고기가 많아질수록 ‘나’는 신선한 생명력의 공간인 ‘바다’를 떠올린다. 피아노 소리가 ‘파도의 칼날’이라는 감동적인 선율로 확장된다.
연상에 의한 시상의 전개과정은 피아노→여자의 두 손→손가락→튀는 물고기→바다→파도→칼날로 이어진다.
연상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 훈련은 연속을 통해 주제는 하나로 하고 그에 대한 행위는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 여러 감각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사물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