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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일지|최덕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된 비정규직 이야기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작가, 사계절, 2012)
색다른 평화 책을 만들자고?
재작년 평화 책이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펴낸 적이 있다. 십시일반으로 작가들이 그동안 써 놓았던 원고 중에 취지에 맞는 단편이 있으면 모았고, 없으면 새로 작업해서 낸 책으로 인세 전액을 평화박물관에 기부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하 더작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 번째 책 『박순미 미용실』이었고,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 기운을 이어받아 두 번째 평화 책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설쳐 대는 더위를 피해 한 카페에 모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먹고사는 작가 입장에서 인세 전액을 뜻깊은 곳에 기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개인 성향이 강한 작가들이 공동 작업이란 이름으로 첫 기획부터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많이들 모였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건 다름 아닌 두 번째 평화 책의 주제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이 아니란 얘긴데……. 직업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나? 그럼 지식 정보책? 우선 비정규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문제였다. 몸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이지 싶었다. 나 또한 10여 년의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취업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의욕은 앞서 무턱대고 뜻있는 사람들이 카페에 둘러앉아 편하게 자기 생각을 토해 내 보기로 한 것이다. 과연 두 번째 책도 순조롭게 탄생할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리 일상이 되어 버린 비정규직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그 개념도 낯설기만 한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인가? 그것은 거리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경동 시인을 용산 4가 남일당 골목 용산참사 현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박순미 미용실』에 추천사를 써 주시기까지 한 인연 때문이다. 송경동 시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KTX의 여승무원들, 이랜드 비정규직 사람들,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 콜트콜텍 노동자들, 재능교육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송경동 시인을 만나면 우리와 상관없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나 자신의 양심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상임활동가 분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중에 대부분이 비정규직일 것이다.’라는 김혜진 활동가 분의 말 한마디는 우리 사회가 어느새 이렇게 열악해졌는지, 비정규직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에, 작가의 무관심에 반성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랬다. 새벽 첫차를 타고 나온 청소 노동자도, 따끈한 피자 배달에 분주한 아르바이트생도, 자동차 공장의 전문 생산직 근로자도(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로 두 분이나 철탑 위에 올라가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내려오셔야 할 텐데) 심지어 우정사업본부의 집배원 중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란 제도에 갇혀 지속적인 고용 불안에 떨며, 정규직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저임금의 굴레를 힘겹게 이겨 내고 있다. 그렇게 ‘불안과 차별’ 속에 살아 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 중심에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김혜진 활동가 분이 주시기로 약속을 받았다. 의미심장하게 모였던 첫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비정규직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 또한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노동의 가치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출판업 쪽에서도 제본소 직원은 이주노동자인 걸로 알고 있다.
-미래노동자인 우리 아이들 삶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공부를 한다니 안심이 된다.
-요즘 어린이는 일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심지어는 노동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개인적인 문제에서 잠시 눈을 돌려 함께하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단지 정규직이 되기 위한 과정, 투쟁이 아닌 우리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당당하고 즐겁게 내 일을 선택했다는 가치관을 심어 주고 싶다.
-어린이 책에 대한 편견=아름다운 사람들, 순진무구한 동화작가라는 편견 때문에 동화작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는 줄 안다.
-비정규직 하면 다소 무거울 것 같아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다. 함께 공부하며 내 안의 이야기를 발전시켜 보고 싶다.
-비정규직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임에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노동하면 벽돌 나르는 노동자라는 부정적인 교육을 받으며 컸다.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 어둡지 않고 무겁지 않게 다루고 싶다.
-밥벌이의 신성함, 어떤 식으로 아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고민된다.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발언에 관심이 있다.
-기존의 접근 방식을 버리고,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는 외국의 사례가 부러울 따름이다.
-새롭게 접근하고 싶다. 기발하고 섹시하게…… ㅋㅋㅋ
-한겨레 르포를 보면 위장 취업의 생생한 재미가 있다.
-직접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가 설문 조사를 해 보면 좋겠다. 의사, 변호사, 선생님, 작가, 축구선수, 환경미화원 등의 직업별 소득을 적어 보며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도대체 비정규직이 뭐야?
우선 책의 기획회의에 앞서 김혜진 상임활동가와 3회에 걸쳐 비정규직이 왜 생겼고, 비정규직의 문제점, 그리고 비정규직이 걸어온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가졌다. 토론회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
첫째, 비정규직 하면 저임금과 차별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는 것은 고용 계약서상의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인데 계약서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동일 노동을 하면서 임금의 50%를 적게 받고 있다고 했다. 기간을 정해 놓고 계약하게 되면 노동자의 권리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언제라도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리는 비상식적인 계약서를 당연하게 여기는 비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비정규직 이야기를 하면 약자의 문제로 본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 그래서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약자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셋째, 자본은 정규직, 무기 계약, 기간제, 파견, 용역 등 고용 형태를 더욱 다양화하고 세분화하며 위계를 만들어 노동자의 단결권을 해체하고 있다. 노동권이 훼손당하여 가난과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우리나라 노동자의 현실인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노동자들은 분노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 분노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과 자신보다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한 분노가 긍정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 아래로부터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라고. 홍익대 비정규직 해고 철회 투쟁을 하신 청소노동자 또한 정부 통계상에선 법인 용역회사의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1,600일이 훌쩍 넘은 재능 농성의 학습지 선생님 또한 사업자 등록을 한 자영업자로 취급하여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고.
비공식 통계로 900만 정도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대다수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적은 임금도 문제지만 불안정하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쌍용의 22번째에 이은 죽음의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목숨을 잃는 극단적인 형태로밖에 노동자의 입장이 알려지지 않는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태를 방치하는 사회적 살인인 것이다. 우리는 꿈을 꾼다. 적은 월급에 생계도 꾸리고 심지어 저축도 하며 소박하지만 미래를 꿈꿔 본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비정규직이란 제도에 갇혀 지속적인 고용 불안에 떨며, 정규직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한다. 그렇게 ‘불안과 차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현주소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겐 말한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런 사람처럼 된다고. 아이와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며 경비 아저씨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길거리 상점의 점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KTX의 여승무원들, 이랜드 비정규직 사람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 콜트콜텍 노동자들, 재능교육비정규직들이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있다. 저 사람들이 우리고, 우리가 곧 저 사람들이란 걸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99%이지 1%가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비정규직!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노동이 신성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정말 아이들에게 노동이 신성하다고 당당하게 말해 줄 수 있을까? 참 가슴 아프고 답답한 현실이다. 비정규직에 관한 두 번째 평화 책, 알면 알수록 막막해져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괴리감만 커질 뿐이었다. 어떻게 지금의 팍팍한 현실을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얘들아 노동은 신성한 거란다.’라며 교과서적인 얘기만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노동이 신성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세상 모르는 순진한 생각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동을 왜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되냐고 묻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 아닐까? 그나마 다니던 비정규직을 잃거나 어딘가 아프게 되는 불행이 닥치면 어찌 손써 볼 수도 없이 가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마당에 노동의 가치가 중요할 리 없다. 오직 돈의 가치만 있을 뿐. 정직한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가 말했던가? 하지만 정직한 땀이 거짓말을 한다. 땀 흘리는 노동은 신성한데 왜 땀의 대가는 초라하기 그지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 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 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소설가 김훈의 말이다. 그렇다. 노동을 신성화시킨 사람들은 자본가들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시간이 남아돌면 불안하고, 일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여가는 죄책감마저 들게 교육받아 왔다. 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죄책감을 갖게끔 교육받았는가? 그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다. 누군가는 노동을 해야 자본주의 시스템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한 근대 교육의 시작도 공장의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교육이란 미명 아래 우리는 평생 1%를 위한 노동에 복무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
토론회 이후 평화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댔다. 첫째는 비정규직에 대한 알찬 내용, 가감 없이 현실을 드러내 놓고 싶은 욕심과 그것을 아이들에게 부담 없이 재밌게 전해 주고 싶은 작가적 욕심에 의기투합했다.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해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오갔고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단지 정규직이 되는 과정, 투쟁이 아닌 우리 삶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치하게 됐다.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다양한 비정규직의 구체적 삶을 통해 인간이 중심에 서는 노동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처럼 투명인간과도 같은 비정규직……. 내 문제가 아닌 불쌍한 사람들의 문제라는 잘못된 생각을 일깨울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노동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노동의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받을 수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더 나아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을 그려 보고 싶다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렇다면 어떤 형식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막연했다. 아이디어 회의는 횟수를 거듭했지만 제자리를 맴돌았다.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차피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비정규직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 보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했다 퇴근하면 잠만 자는 곳,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 이모 그리고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는 곳, 그것은 도심 어딜 가도 볼 수 있다. 반지하에 3가구가 있고 1층에 2가구 그리고 2층에 주인집이 살고 있는 도심의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단독 주택을 모델로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비정규직 가정을 꾸려 보기로 의견이 모였다. 각 호수마다 가족 구성원을 설정하고 작가가 생각했던 비정규 직업을 정했다.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몇 개월 만의 고민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반지하 101호는 60대 간병인 할머니와 방송국의 구성작가(비정규직)인 딸 그리고 시간 강사와 그녀의 아이가 월세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설정을 잡았다. 아이의 그림일기로 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소개하고 운동회에 가족들이 와 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시간을 낼 수 없게 되고 운동회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아이 혼자 뛴다. 동화작가 양지안 님이 방송작가를 맡았고 만화가 김윤정 작가가 간병인 할머니와 시간 강사의 현실을 만화로 유쾌하면서도 적나라한 현실을 그려 냈다. 그리고 그림일기를 김윤정 작가의 아이 최여름 군의 도움을 받았다. 방송작가와 시간 강사는 전문직임에도 그분들과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해 보니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지하 102호는 아빠가 민영화된 기업에서 해고되고 치킨집마저 문을 닫아 이사 온 좁은 집에 자리만 차지하는 소파 등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아이의 이야기를 이퐁 작가가 글을 박종채 화가가 삽화를 맡아서 단편 동화를 만들어 냈다. 동화작가와 화가가 주거니 받거니 의기투합해서 동화 한 편을 완성했다.
201호 우혁이 이모는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없어져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엄마는 학습지 교사로 힘겹게 이겨 내는 이야기를 양지숙 작가와 김아인 그림책작가 분이 의기투합했다. 강렬하고 개성 강한 삽화로 인상 깊은 이야기가 됐다.
202호는 현관 열쇠를 잃어버려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은수를 통해 가족의 바쁜 일상을 들여다보는 설정으로 숙희 씨는 동네 마트 직원으로 손님들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웃을 수밖에 없는 엄마 이야기를 이잠 작가가 썼고 아들 또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만화를 최덕규 작가가 그렸다. 박서영 작가는 고속도로에서 밤을 새우는 화물차 운행을 하는 아빠를 맡아 주셨다.
301호는 주인집으로 프리랜서 디자이너, 아파트 경비원, 비정규직 공무원의 이야기를 재밌는 설정으로 풀었다. 김해원, 양지안 작가분이 수고해 주셨다. 그리고 무협 소설 작가를 꿈꾸는 강대희는 강정연 작가가, 옥탑방 미미는 장인영 작가가 힘써 주셨고. 간간이 번역일로 용돈 벌이를 하는 강대희나 인형을 만들며 행복해하는 미미 씨나 모두가 우리네 사는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화 형식의 이야기와 만화 그리고 인터뷰와 신문 지면 형식 등 다양하게 구성하여 아이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냈다. 처음 비정규직에 대해 어린이 책을 만들자고 할 때만 해도 막연하던 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모양새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기획 회의를 통해 전체 포맷과 각자의 역할 분담이 정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취재와 자료 조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만들어 보자는 의욕이 앞섰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구상한 이미지와 실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접한 현실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컸다. 쉽고 편하고 달달해서 먹기 편한 음식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알찬 내용의 사랑받는 책이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는 데도 큰 보람을 느꼈다. 눈물과 한숨 대신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 갔지만 노동 현실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야 하는가? 라는 부분에 대해선 독자의 몫으로 돌리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만들었지만 실상은 생각 없이 급하게 커 버린 어른들이 봤으면 하는 욕심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고단하고 암담하기까지 한 노동 현실을 드러내 놓는 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꽃일수록 뿌리를 내린 흙 속에 냄새 나는 퇴비를 자양분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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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규 : 같은 일을 하는 아내와 함께 ‘뻔뻔한 가족전’ 그림책 전시를 2회 열었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작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책 『여름이네 육아 일기』, 『아버지 돌아오다』와 그림책 『나는 괴물이다』가 있으며, 『할머니의 보물을 찾아서』, 『착한 아이 사탕이』,『치우 탐정단이 달려간다』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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