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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양사>는 이미 동명의 소설과 만화로 대단한 명성을 낳았다. 일본에서는 최근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한 바 있다. 드라마 역시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폭주하는 접속과 메일로 NHK 사이트가 정지하는 사태까지 빚었다고 한다. <음양사>의 가장 잘 알려진 원작은 유메마쿠라 바쿠(1951년~)의 소설 <음양사>. 최근에 한국에서도 그의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소설을 원작으로 그린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로 친숙하다. 만화 음양사는 소수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우아한 어둠의 시대"를 흘러가는 구름: 아베노 세이메이
이 이야기는 일본 헤이안 시대 실존했던 일본 최고 최강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921年~1005年)가 주인공이다. “음양사”란 일종의 ‘소환사’로서, 음양오행의 원리에 통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술과 주문, 소환술, 천문학 등을 이용, 국가와 국가 요인의 안녕을 수호하던 직책의 주술사들을 지칭한다.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가 피리의 명수이자 착한 성품을 가진 친구 미나모토노 히로마사와 함께 나라를 위협하는 갖가지 요괴와 음모에 맞서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 영화에서는 친황의 반대세력인 '도손'에 대항하여 황실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세이메이와 친구 히로마사의 활약이 펼쳐진다.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는 헤이안 시대를 “우아한 어둠의 시대”라 표현한 바 있으며, 아베노 세이메이는 세상사와 그 이치에 정통하고 풍류를 알며 교양 있는 미남자로서, 헤이안 시대라는 우아한 어둠 속을 “바람에 떠도는 구름처럼 헤쳐갔을 것”이라고 표현한다. 곱고 단정하며 은근한 매력을 갖춘 아베노 세이메이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이후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미지로 고정되면서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도 충실히 이어지고 있다.
원작자의 이런 해석 외에도, 아베노 세이메이에게는 실제로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 온다.
세이메이는 여우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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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가 반은 여우고 반은 사람이었다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아버지가 숲에 살던 여우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이 여우가 은혜를 갚기 위해 여자로 변신해 나타나 그와 결혼하게 된다. 둘은 세이메이를 낳고 살았지만, 여우의 정체가 탄로나게 되면서 여우는 숲으로 돌아가게 된다. 세이메이는 어머니가 그리워 숲으로 찾아갔고 어머니 여우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강력한 주술의 힘을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그에게 꼬리가 달려 있다던가, 동물의 털이 나 있다고 하는 설을 비롯, 그가 만화에서“나는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키가미 소환술
아베노 세이메이에 대해 또하나 잘 알려진 이야기는 그가 자기 집에서 시키가미를 집에서 부렸다는 것이다. 만화에서는 그와 똑같이 닮은 시키가미를 두고 이런저런 일을 대행하게 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시키가미들을 그의 식구들이 두려워하자 결국은 필요할 때마다 소환하는 것으로 바꾸고 집에는 두지 않았다고 한다.
시키가미란 음양사의 대표적 기술 중 하나로, 일종의 소환술이다. 주문과 의식을 통해 시키가미는 소환되는데, 일반적으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특히 종이인형으로 만든 시키가미를 잘 부렸는데, 종이인형 시키가미는 보통 종이새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종이인형 시키가미의 모습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마법 도장을 훔쳐간 용 하쿠를 잡기 위해 수없이 밀어닥쳤던 흰 종이새떼들이 바로 종이인형 시키가미다. 사람의 형상을 닮게 만든 이 시키가미는 <센과 치히로…>에서도 보듯이, 술력으로 날려보내 조종할 수 있으며, 술법이 끝난 후에는 종이로 되돌아가버리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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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사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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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특징은 그가 요괴나 악령을 대할 때의 주술이 지극히 합리적 대화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음양사”라는 것 자체가 귀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무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기도 하다.
아베노 세이메이도 주술로 요괴를 “격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한을 위로하고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더는 인간 세계를 어지럽히지 않고 편안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한다. 결국 음양사는 세상의 이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즉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요괴들은 요괴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며, 서로의 영역과 일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천문과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 즉 음양오행도를 깨치고 있다는 것도 이런 그들의 역할과 상통한다.
세이메이는 이렇게 말한다. "악령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두려움과 공경이 아니라 이해"라고. 아베노 세이메이와 친구 히로마사는 귀신을 추모하는 시를 지어 달래거나 그의 능력이나 슬픔을 인정해주는 다정한 말을 해주고,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졌던 수달 귀신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물고 돌아가게 해주는 등, 인간이 가진 감정을 귀신도 가졌다는 전제 아래 행동한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아픔과 한에 공감해줌으로써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갖가지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요괴들이 출몰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펼쳐지는 이런 인간적인 주술의 면모와, 소심하고 고지식한 성격의 히로마사와 이런 그를 은근히 놀려대며 능청스럽기까지 한 세이메이간의 성격 대조로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는 점도 음양사 특유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