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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語 敎育과 外來語
이준석
60년대 들어서 漢字는 落後(낙후)되고 쓸모 없는 문자로 인식되어 국어 교육에서 忽待(홀대) 받았다. 그 결과 우리말의 반 수 넘게 차지하는 漢字語들이 점차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사라지고 있다. 분명 우리말인데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반드시 알아야 할 基礎 語彙(기초 어휘)마저 정확한 의미와는 달리 엉뚱하게 사용하는 예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없어지는 漢字語들을 대신해서 토박이 말들이 새로 발굴되고 다듬어져 순수하고 멋스러운 우리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생겨나는 말들 가운데 토박이말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國籍(국적)을 알 수 없는 외래어들이나 우리말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新造語(신조어)들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外來語(외래어)와 新造語(신조어)가 범람하는 걸까?
97년에 國立國語硏究院(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현대시 10,886편을 대상으로 여기에 쓰인 말들 가운데 辭典(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단어들을 現代的(현대적)인 時點(시점)에 생성된 新語(신어)로 개념짓고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된 신어 1,166項目(항목)을 시대별로 분류하고 어휘 특성별로 분석하면서 그 意外(의외)의 결과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한문에 눌리고 事大主義(사대주의)에 젖어 우리 토박이 말들은 숨도 못 쉴 거라고 생각하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현대시에서는 사투리를 포함한 토박이말의 쓰임이 각각 38.6%, 39.7%에 달하였으나 終戰(종전) 후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 문화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던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는 고작 9.0%, 7.0%, 8.3% 정도의 낮은 사용 頻度(빈도)를 보였고, 우리 것의 소중함에 눈을 뜨는 80년대와 90년대 ─엄밀히 말하면 1994년까지─ 詩(시)에서는 비로소 16.2%와 13.0%로 토박이말의 사용 빈도가 조금 높아지고 있었다.
이 統計 數字(통계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漢文에 억눌리고 事大主義(사대주의)에 찌들어 우리말의 소중함을 모르리라 생각했던 30년대와 40년대 현대시에 나타난 고유한 말들은 40% 이상되는데 한글 전용이 주요 어문 정책의 기조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광복 이후 현대시에서 한자어와 외래어의 빈도가 높아지는 이 수치를 접하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에 뭔가 잘못이 있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10,886편의 시에서 모아진 1,166개의 신어만을 대상으로 통계낸 결과만으로 어떤 결론에 성급하게 도달한다는 것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국한문을 혼용하던 30년대와 40년대의 사람들이 漢字와 漢文의 사용에 억눌렸다 하더라도 우리말을 외면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漢字의 중요성을 논하고 한문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말과 글의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으로 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적 풍조에 비추어 볼 때 30년대와 40년대의 현대시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 정말 뜻밖이었다. 이들 시에서 토박이 말의 사용이 낮아야 하는데 실제는 그와 정반대였다. 오히려 지금은 그 의미마저 희미해져 버린 토박이말들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 情緖(정서)를 수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자고 목청 높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국어 생활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만큼 新造語(신조어)와 外來語(외래어)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외래어란 외국에서 새로 文物(문물)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와 쓰이는 말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문물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어서 함께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된다. 이들은 비록 처음에는 外國語(외국어)로서 들어왔으나 우리말 체계에 흡수되면서 同化(동화)되어 國語化(국어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담배’나 ‘구두’가 국어처럼 쓰이는 외래어들이고, ‘남포’와 ‘라디오’가 우리말의 音韻 體系(음운체계)에 완전히 同化(동화)되어 외국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말들이다. 이들은 딱히 대상을 가리킬 말을 국어에서 찾지 못해서 함께 들어와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요즈음 일상 생활에서 넘쳐나는 외래어들은 이런 외래어적인 본래 특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대부분 꼭 代替(대체)할 말이 없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한자로 쓰였던 말들이나 한자로 쓸 수 있는 말들을 제치고 들어온 말들이다. ‘自動(자동)’이란 말 대신 쓰이는 ‘오토’가 그렇고, ‘機械(기계)’라는 말을 대신하는 ‘머신’이 그렇다. 특히 영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세종문화회관의 ‘會館(회관)’을 ‘센터’로 바꾸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회관이란 명칭에 문화 관련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고, 일제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유였다. ‘회관’이란 명칭이 냉면이나 갈비집의 이름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회관’에 문화 관련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면 ‘카센터’나 ‘회센터’ ‘농수산물유통센터’의 ‘센터’에서 도대체 어떤 문화성이 있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다. 이런 점을 모르지 않을 분들이 굳이 ‘회관’ 대신 ‘센터’를 선호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더욱이 ‘會館(회관)’이 일제의 ‘府民館(부민관)’에서 시작된 말이라는 데에 이르러서는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논리라면 開化期(개화기) 이후에 들어온 한자어들 가운데 일본어와 겹쳐지는 한자어들이 다 日帝(일제)의 殘滓(잔재)가 되는데, ‘自動車(자동차)’, ‘會社(회사)’ 등이 일제 殘滓(잔재)라는 데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漢字語를 忽待(홀대)하고, 몰아내어 外來語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경향은 사실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漢字語는 우리말이 아니라는 뿌리깊은 생각과 ‘문화적 허영심’이 어우러져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獻身(헌신)했던 先覺者(선각자)들의 本意(본의)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된다. 그분들은 ‘自動(자동)’이나 ‘機械(기계)’란 말 대신에 ‘오토’나 ‘머신’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이런 현실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말에서 나름대로 문화 관련 명칭으로 생명을 얻어가는 ‘會館(회관)’을 몰아내고 ‘센터’로 바꾸기를 바랐던 바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한글 사용에 보인 熱情(열정)은 漢文이나 漢字 뒤에 가려진 지나친 形式主義(형식주의)를 경계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當爲性(당위성)을 직시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漢字와 漢文을 배우기 위해 보내야 하는 그 오랜 시간과 정열이 새로운 학문 체계와 기술의 습득으로 昇華(승화)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先覺(선각)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렇게 외래어와 新造語(신조어)가 氾濫(범람)하는 지금의 상황을 전적으로 한글 專用(전용)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들이 점차 우리들의 日常(일상)에서 잊혀지고, 초보적인 어휘마저 그 정확한 의미가 혼동되는 현실은 漢字와 漢文을 소홀히 하고 교육에서 홀대한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없어지거나 혼동되는 漢字語들을 대신해서 급속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말들은 외래어들이나 우리말의 造語法(조어법)에서 벗어난 신조어들이다.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口號(구호)에 편승해서 저질러진 ‘한자어 몰아내기 운동’이 결국 외래어들을 우리 일상 생활 속에 급속히 퍼뜨리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외래어의 남용을 지적하려면 스스로 우리가 국어에 저질러온 이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말에서 반 수 넘게 차지하는 漢字語가 지금처럼 위기에 빠진 것은 국어 교육에서 漢字 교육을 소홀히 한 데에 원인이 있다. 漢文과 漢字語 교육은 漢字를 철저히 가르치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어에서 漢字 교육을 강화한다면 늦었다고만 할 수 없다.
國立國語硏究院(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漢字 사용 실태 조사를 이년 동안 준비하여 얼마 전에 마무리한 적이 있다. 현행 漢文 교육용 기초 漢字가 漢文이나 국어 교육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었기에 객관적인 빈도 조사를 통해 가장 많이 쓰였던 漢字가 어떤 것들인지, 교육에 필요한 漢字의 범위가 얼마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大學校 中文學科(중문학과)의 許性道 敎授(허성도 교수)께서 漢文 典籍(전적)에서 구백오십만 자를 電算的(전산적)으로 처리하여 漢文 敎育에 필요한 漢字의 빈도 통계를 내었고, 高麗大學校(고려대학교) 國文學科(국문학과)의 金興圭 敎授(김흥규 교수)께서 팔천오백만 語節(어절)의 漢字語를 電算的(전산적)으로 처리하여 현대 국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한자의 빈도를 조사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학습 내용의 95% 정도의 이해를 위해서는 古文眞寶(고문진보)를 비롯한 敎材類(교재류)에서는 2,038자, 諸子集成(제자집성)에서는 1,809자가, 十三經(13경)에서는 1,791자가, 四書(4서)는 이보다 훨씬 적어서 1,080자가 필요하였다. 韓中 總合 資料(한중 총합 자료)라 하더라도 漢字 2,000자 정도면 95.59%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결과만으로 볼 때 현행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의 字數(자수)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겠으나 이 가운데 대략 이삼백 자는 漢籍(한적)에서 낮은 빈도를 보이므로 한문 교육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중에도 이백여 자가 현대 문헌에서 조사된 한자의 빈도에서 上位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敎育用 基礎 漢字 再調整案(교육용 기초 한자 재조정안)에는 순수하게 한문 교육을 위한 漢字 1,800자와 국어 생활에서 필요한 漢字 200자로 구분하였고, 2,000자의 교육용 基礎漢字 再調整案을 교육부에 넘겨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말 사랑을 實踐(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학교의 국어 교육에서 漢字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初等學校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큼 국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漢字와 漢文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