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鋒의 妙理(중봉묘리)
宣柱善: 中鋒(중봉)은 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붕을 흔히 필봉이 획의 중간을 지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왜냐하면 붓을 똑바로 뉘어 붓 허리로 획을 그어도 붓끝은 획의 중앙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봉의 오른 개념은 획을 지나는 붓끝이 펴져서(平鋪) 붓끝의 선이 수평이거나 수직, 또는 斜線(사선)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붓이 펴진 넓이가 곧 획의 굵기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써서 나온 획들이 서예에서 요구하는 살아있는 획으로 마치 획의 양면을 면도날로 싹 찢어나간 것 같은 질감이 난다. 중봉을 연구하다 보면 붓이 약간 꼬여 平鋪(평포)가 약간 斜線일 때 훨씬 힘 있는 획이 나오는 경험을 한다. 漢(한) 이후의 글씨는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쓰여 진 것으로 여겨지며, 이 법으로 필력이 생기면 부드러운 획과 거친 획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偏鋒(편봉)은 특히 초보자에게는 꺼리는 방법이다. 이는 붓을 뉘어서 붓끝으로 쓰지 않고 붓 허리로 잘못 쓰는 방법으로 생기 있는 획이 되지 못한다. 편봉으로 그은 획은 획의 한 면이 먹이 잘 묻지 않는다. 글씨 쓴 것을 뒤집어서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보통 이런 획을 죽은 획이라 표현하는데 飛白(비백)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심자에게 금기의 편필도 전문가의 글씨에는 자주 나타나 어울린다. 宣柱善,『書藝槪論』(美術文化院,1986), p.145~147.
朴炳千: 中鋒(중봉) · 正鋒(정봉): 중봉은 1개 획을 쓸 때 筆鋒(필봉)을 서선의 중간으로 行筆(행필)한다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붓의 털 부분을 전부 가지런히 하여 필봉의 위치를 항상 서선의 중간에 가게 하여 써 나가는 방법을 중봉용필 또는 중봉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용필을 하면 먹물이 종이 뒷면까지 힘 있게 침투하여 雄勁(웅경)하고 절대로 경박하거나 태만해 보이지 않으며 병든 글씨 같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서체의 용필은 대부분 중봉을 위주로 해야 한다. 흔히들 中鋒用筆을 중국서법의 기본 필법이라고 하는데 특히 篆書(전서)를 쓸 때는 반드시 중봉으로 써야 한다. 한글서법도 이와 똑같은 것이니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側鋒(측봉), 偏鋒(편봉): 측봉을 편봉이라고도 하는데 엄격하게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편봉이란 획의 가장자리 한편으로 필봉이 움직이는 것이고 측봉은 필봉을 어느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듯 行筆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측봉으로 쓴 것이고 편봉으로 쓴 것인지 구분은 확실치 않다. 측봉으로 운필하면 서선의 한쪽은 매끈하고 다른 반대쪽은 서선이 거칠게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 글씨는 획형이 평평하고 가벼우며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봉으로 쓴 글씨는 입체적이며 서선이 살아있는 듯하다. 대개 중봉으로 글씨를 쓰는데 행서와 초서는 부분에 따라 측봉, 편봉으로도 쓴다. 그래서 옛 서가들 중에는 측봉으로 글씨를 즐겨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진나라 왕희지는 항상 편봉을 써서 서선의 미를 추구하였고, 狂草書家(광초서가)인 張旭(장욱), 懷素(회소) 등은 어떤 때는 편봉, 측봉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익히고 그런 연후에 편봉으로 써야 神韻(신운)을 더욱 나타낼 수 있다. 측봉은 글자를 더 아름답게 쓰기 위하여 취하기도 하지만, 글자의 점획 중 서선을 꺾거나(折), 돌리기(轉)를 할 때에 취하는 방법이다. 대개 중봉운필은 붓대를 지면에 대하여 80~90° 정도를 유지하여 쓰지만 측봉으로 운용을 할 때에는 45~50° 정도로 비스듬히 누운 듯 쓰게 되는데 이렇게 나타나는 서선은 힘이 약하고 획형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朴炳千,『書法論硏究』(일지사,1985), p.88.
劉熙載: 中鋒 側鋒 藏鋒 露鋒 實鋒 虛鋒 全鋒 半鋒 似乎鋒有八矣 其實中藏實全 祇是一鋒 側露虛半 變祇是一是鋒也 (중봉 측봉 장봉 노봉 실봉 허봉 전봉 반봉 사호봉유팔의 기실중장실전 기시일봉 측로허반 변기시일시봉야) 중봉 측봉 장봉 노봉 실봉 허봉 전봉 반봉 등과 같이 필봉의 움직임에는 8종류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중봉 장봉 실봉 전봉 등이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측봉 노봉 허봉 반봉 등은 또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中鋒?圓 側鋒?偏 舍鋒論? 足外固有迹耶.(중봉획원 측봉획편 사봉논획 족외고유적야) 直筆(직필)로 하게 되면 필봉의 중심이 필획의 중앙을 통과하며 둥근 형을 지닌 필획이 되고 붓을 높여서 側筆로 하면 필봉의 중심이 필획의 한쪽만을 통과해서 네모난 필획이 된다. 필봉의 방향을 무시하고, 필획의 모양만을 문제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발의 외측에 족적이라도 생긴다는 말인가? 書用中鋒 如師直爲壯 不然如師曲爲老 兵家不欲自老其師 書家奈何異之 (서용중봉 여사직위장 불연여사곡위노 병가불욕자노기사 서가내하이지) 直筆을 사용해서 書를 쓰면 마치 군대가 똑바로 줄지어 섰을 때에 강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에 직필을 사용하지 않으면 군대가 구부러지게 줄지어 섰을 때에 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兵法家는 스스로 군대를 약하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書家의 경우도 이와 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劉熙載 著 李宜炅 譯,『書槪』(운림필방,1986), p.187~188.
金膺顯: 운필 또한 中鋒(중봉)을 생명으로 하여 陰陽(음양)을 따지게 되며 氣韻生動(기운생동)하는 활기를 논하게 된다. 입체적이고 생동적이 아닌 筆劃(필획)은 벌써 서예가 아니기 때문에 경구 이전의 문제로 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方圓(방원)이 논의되어 高雅(고아)와 端嚴(단엄)과 强力(강력)과 ?勁(주경)과 媚麗(미려) 등이 여기서 표현되며, 또 輕重(경중)과 遲速(지속)과 滑澁(활삽)과 頓提(돈제) 등을 말하게 된다. 金膺顯,『書如其人』(민족문화문고간행회,1987), p.564.
蔡邕(채옹): 필봉의 중심이 항상 필획의 중심에 있도록 한다. 필봉의 움직임이 유연하면 뛰어난 풍취가 생긴다.
王羲之(왕희지): 第一로 ‘筋(근)’은 있어도 필봉은 감추도록 하고 기필과 종필의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康有爲,『廣藝舟雙楫』(운림필방,1983), p.182.
宣柱善(선주선)선생은 『書藝槪論』(서예개론)에서, “중봉의 오른 개념은 획을 지나는 붓끝이 펴져서(平鋪) 붓끝의 선이 수평이거나 수직, 또는 斜線(사선)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붓이 펴진 넓이가 곧 획의 굵기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써서 나온 획들이 서예에서 요구하는 살아있는 획으로 마치 획의 양면을 면도날로 싹 찢어나간 것 같은 질감이 난다”고 하였는데, 붓이 펴진 넓이가 획의 굵기라는 것은 方筆(방필)의 필법을 말한 것이지 圓筆(원필)로 운용하면 중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朴炳千(박병천)선생은『書法論硏究』(서법론연구)에서, "중봉은 1개 획을 쓸 때 筆鋒(필봉)을 서선의 중간으로 行筆(행필)한다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붓의 털 부분을 전부 가지런히 하여 필봉의 위치를 항상 서선의 중간에 가게 하여 써 나가는 방법을 중봉용필 또는 중봉법이라고 한다"고 한것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표현이나 중봉의 실체는 아니며, 또 "왕희지는 항상 편봉을 써서 서선의 미를 추구하였고, 狂草書家(광초서가)인 張旭(장욱), 懷素(회소) 등은 어떤 때는 편봉, 측봉을 썼다고 한다”고 표현하였는데, 왕희지의 필법이 항상 편봉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 하겠다. 孫過庭(손과정)의 『書譜』에 “至如初學分布 但求平正 旣知平正 務追險絶 旣能險絶 復歸平正(지여초학분포 단구평정 기지평정 무추험절 기능험절 복귀평정)-처음에는 分間布白(분간포백)을 배우되 평정을 구하고, 평정을 알게 되면 험절을 힘써 배워야 한다. 이미 험절을 능히 알면 다시 평정에 돌아오게 된다.”고 하였듯이, 처음의 平正과 險絶(험절)을 거친 나중의 平正과는 風味(풍미)가 엄연히 다르다고 하겠다. 즉 나중의 平正은 서법의 묘리를 체득한 후의 것인바, 만약 왕희지가 편봉으로 썼다고 가정 한다면 그것은 서법의 묘리를 깨달은 뒤라 중봉이든 편봉이든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할 것이다.
劉熙載(유희재)선생은『書槪』(서개)에서, “中鋒(중봉)으로 하게 되면 필봉의 중심이 필획의 중앙을 통과하며 둥근 형을 지닌 필획이 되고 붓을 높여서 側筆로 하면 필봉의 중심이 필획의 한쪽만을 통과해서 네모난 필획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타당하다고 하겠지만, 중봉은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金膺顯(김응현)선생은『書如其人』(서여기인)에서, “운필 또한 中鋒(중봉)을 생명으로 하여 陰陽(음양)을 따지게 되며 氣韻生動(기운생동)하는 활기를 논하게 된다. 입체적이고 생동적이 아닌 筆劃(필획)은 벌써 서예가 아니기 때문에 경구 이전의 문제로 되어 있다”고 하였는바 이것은 중봉이라는 것은 이론의 입장에서 설명할 개념이 아니라 기운생동의 묘리를 체득한 후의 일이라고 논한 것은 중봉의 개념을 알게 하는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즉 중봉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론적으로는 붓을 수직으로 세워 붓의 끝인 筆鋒(필봉)이 획의 중앙으로 통과하여야 하여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중봉은 이론만으로는 절대로 체득할 수 없고 오직 온 몸으로 체득하여야만 한다. 중봉의 묘리를 온 몸으로 체득하게 되면 붓을 사용함에 있어서 편봉이나 측봉이나 아무런 제약이 있을 수 없으며,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쓴다고 하여도 중봉의 필법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中道思想은 출가자의 도의 체득을 위한 방편이고, 中庸思想은 사람이 사람됨으로서 살아가는 방편을 제시한 것이라면, 中鋒의 체득은 서화가들이 예술의 妙理(묘리)에 이를 수 있는 방편의 길인 것이다. 중봉의 묘리를 체득하지 않고서 쓰는 글씨나 그림은 한갓 먹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중봉의 체득은 오직 끊임없이 연구하고 탁마하여야 하며, 그리고 어느날 무릎을 ‘탁’하고 칠 날이 도래한다면 모든 의문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우남 조승혁 (20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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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효재묵방(墨房) 원문보기 글쓴이: 曉 齋
첫댓글 중봉! 누구나 중봉을 말하지만 중봉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구사하는 이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지요.
하여 서예가 독학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중봉은 필봉이 八面出鋒되어야 하는데 이는 현완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획이 진행되면서 붓끝을 추스리고 세우는 일이 澁인데 일과삼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힘, 속도 그리고 박자 혹은 리듬을 節奏라고 하며 그 중에서 속도와 관련된 것을 疾이라 하는데 澁과더불어 중봉의 요체입니다.
따라서 중봉은 위 본문의 <중봉의 체득은 예술의 묘리이며 방편>처럼 서예가는 몸으로 체득해야 할 기본인 것입니다!
우리 서예하시는 회원님들께서는 중봉을 체득하시어 대성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중봉...疾澁...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