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32
해나가 말을 끊었다. 새벽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 햇빛이 창에 들었다.
“나도 하나만 물어볼게. 그때 내게 편지 보내던 그 시절처럼 나를 아직도 그렇게 좋아하니?”
찬희가 대답할 말을 못 찾는다.
“대답을 못하는 거 보니까 아직도구나. 그 편지 속에 내가 기억하는 말이 있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그대여. 기억 나?”
“기억나지. 어떻게 그런 말까지 했는지 몰라?”
해나가 찬희 쪽으로 돌아누웠다. 찬희 눈을 찾아 자신의 눈 속에 넣었다.
“그게 내가 너를 찾은 이유야. 아무튼 너는 나를 보고 황홀해 하니까. 물론 나도 전혀 라고는 말 못해. 조금 내 마음을 담아둔 구석도 있어. 넌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주었으니까......내가 널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 난 항상 불안해. 이젠 정말이지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지금은 모르는 게 나아. 다시 물어볼게. 날 네 목숨보다 사랑할 수 있어? 꼭 들어야겠어. 진실하게 말해.”
“왜? 지금 꼭 들어야해?”
“왜냐고도 묻지 말아.”
“그래 말할게 넌 내 사랑의 전부야.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지”
해나는 찬희의 입술을 찾아 막았다. 그리고는 제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속삭였다.
“나를 가져줄래?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줄래?”
해나는 아주 천천히 옷을 벗었다. 해나의 빛나는 몸이 아침햇살에 반짝거렸다. 찬희는 까마득한 파도가 되어 알 수 없는 곳을 떠다녔다.
“찬희야, 사랑한다고 말해줘.”
머나먼 어디선가 그 소리가 들려왔다.
“해나야, 사랑해.”
그 먼 곳에서 그 소리도 들렸다. 까마득히 너울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해나의 높은 신음이 시작되었다. 찬희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찬희야, 이제 난 니거야. 결혼하자.”
이 믿기지 않는 말을 남기고 해나는 찬희의 팔에서 깊이 잠들었다. 마치 마지막 휴식처럼......해나는 다음날 카톡에 이름을 바꾸었다. 그것은 당신의 아내였다. 충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콤하고 간지러운 카톡이 이어졌다.‘우리 결혼했으니 신혼여행 가자. 시간 만들어. 나도 만들게.’찬희는 모든 연차를 몰아 쓸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김 대표는 순순히 찬희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다음 주 금토일월 사랑해.’ 찬희는 짤막한 카톡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준비할께용.’그 다음이 걱정이었다. 해나의 말대로 신혼여행이 맞다면 모든 준비는 찬희의 몫이다.‘어디 갈까?’‘당신이 가고 싶은 곳’‘아니 해나가 가고 싶은 곳’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부부놀이를 하는 연인들 같다.‘나 제주도 갈래.’모조리 카드를 긁을 수 밖에 없다.‘오늘 우리 만난지 백일. 알아? ’이건 또 뭔가? 이 모든 것이 혹시 모두가 사실이라도 너무 급작스럽다. 해나 말대로 만난지 백일이다. 이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분명 일어나고 있다. 이 상황을 헤아리기도 전에 찬희는 해나가 가져다 주는 감당할 수 없는 황홀함에 떠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