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요당리 성지
9월의 마지막 날, 가을이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와 있다.
성지 탐방을 위해 나선 길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시원하게 뚫려있는 고속도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농익은 황금색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황금빛으로 수놓은 평택벌판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들 즈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번 달 성지 탐방 목적지를 결정하기 위해 주님께 의탁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성지가 없어 고심하던 중
한 자매님이 마침 수녀님을 동행하여 요당리 성지순례를 가신다고 하신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주님의 역사하심”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불꼬불 좁은 길로 들어서니 요당리 성지를 알리는 큰 바위의 이정표가 나온다.
잘 다듬어진 잔디에 깔끔한 입구가 성모님의 자애로운 눈빛처럼 아름답고 여유롭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에 한가로이 잠자리가 바람결에 몸을 내맡긴 채 광장 위를 날아다닌다.
넓은 잔디광장에 하얀 성모상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된 묘지와 대형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묘지를 내려다보시며 순교자들을 지켜주고 있다. 오른쪽으로 나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 성지 사무실로 향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11시에 미사를 올린다고 한다.
미사시간까지는 1시간여 시간이 남아있어 남은 시간동안 카메라를 들고 전담 신부님의 열정이 녹아있는 성지모습을 담았다.
요당리 성지는 기해년(1839년), 병인년(1866년)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로써 장주기 요셉 성인과
125위 시복추진자인 장토마스의 출생지이며, 지타대오, 림베드로, 조명오 베드로, 홍원여 카를로와 장주기 요셉 성인의 친, 인척인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순교하였고, 교회재정을 맡아 전답을 운영하시다 순교하신 민극기 스테파노 성인과 이곳 공소회장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께서 활동하셨던 곳이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셨다가 끝내는 순교하신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성인과
이분의 피신을 돕다 순교하신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의 얼이 서린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장주기 요셉 성인의 출생지이며 교우촌이 있었던 곳, 정도로 치부되어 오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덕기 바오로 주교의 뜻에 따라 2006년 9월 성지개발을 위한 성지전담 사제를 파견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늦게 개발된 만큼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요당리 성지를 알리고 싶다는 말로 설명을 마무리 하신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잔디광장과 대성당의 십자가의 길 조각상을 보며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각가인 최의순 수녀님의 손과 발만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또 잔디광장 한가운데 모신 성모상은 남양성지의 신부님이 봉헌하여 주신 것으로 은혜가 많은 남양성모마리아님이다.
성지 곳곳마다 정성이 깃든 예술 작품으로 꾸몄으며, 대성당과 소성당의 제대 십자가는 흔히 보기 어려운 놋쇠 조각 작품으로 모셔져 있고,
부속 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화재로 소실된 성당의 폐자재로 만든 수녀님의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많은 순교성인과 순교자들이 배출된 성지의 역사를 들으며, 목숨으로 지켜 온 신앙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가를 느낀다. 그러나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희망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지면을 빌어 성지 설명을 위해 직접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김대영 베드로 신부님의 열정에 감사드리며, 함께 동행하며 많은 도움을 주신 세실리아 수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