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몽과 아로미
최 화 웅
오늘은 손녀딸 리아가 오는 날이다. 지난여름 다녀간 뒤 일곱 달 만의 만남이다. 나는 아장아장 입국장을 걸어 나올 리아의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동안 내내 행복했었다. 설레는 마음에 리아가 그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할아버지”라고 말하면서 달려 나올까? 하는 갖가지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상은 현실보다 부풀게 마련이다. 손녀 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멋진 상봉을 기대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리아가 첫 손녀라 나에게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공항에 나오기 전 백화점으로 달려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산 개구쟁이 코코몽과 예쁜이 아로미 인형을 안고 나갔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리아가 걸어 나오기는커녕 깊은 잠에 빠진 채 유모차를 타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 갇혀서 지쳤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곤히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더 할 수 없이 행복했다. 순간 느끼는 충만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달으며 감사할 뿐이었다.
공항에는 친가와 외가에서 많이들 마중을 나왔다. 리아가 오기 전에 가구를 재배치하고 손이 닿을 만한 높이의 콘센트에는 모두 덮개를 씌웠다. 넘어지고 떨어질 위험이 있는 물건은 안방과 서재로 옮겼다. 리아 방은 라텍스를 깔아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쾌적하게 꾸몄다. 거실의 오디오도 손이 닿지 않도록 앰프와 플레이어는 종이박스로 가리고 거실에는 놀이매트를 깔고 현관으로 나가는 턱에 쿳션을 씌워 두꺼운 러그를 깔았다. 방문은 안전핀을 달고 끼웠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손님들에게는 리아를 보기 전에 외투를 벗고 손을 씻도록 권했다. 집안에는 노래하는 그림책과 인형, 장난감, 스케치북과 무공해 크레용이 마련되었다. 부엌은 리아의 이유식과 식기, 하이체어 등 유아용품이 들어서고 욕실과 싱크대는 리아에게 먼저 내어주기로 했다.
노부부가 살던 집의 질서는 순식간에 깨어졌다. 집안 분위기가 몇 시간 사이에 딴 세상이 된 것이다. 밤새 혁명군이 들이닥치면 이렇게 될까? 태어난 지 15개월 난 리아가 두 번째 만나서 하는 말 중에 또렷한 발음이 “빠, 아빠, 엄마, 음매, 아니야, 아찌야, 아야”가 전부다. 리아는 ‘엄마’라고 해도 ‘아빠’라고 응답할 만큼 첫 음을 밝은 모음으로 쉽게 소리를 낸다. ‘아니야’라고 말할 때는 고운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면서 반복해 귀여움을 떨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모른다. ‘아찌야’는 외갓집에서 기르는 개 이름 ‘하찌야’를 ‘아찌야’로 부르는데 잦은 화상채팅 때문인 것 같다. 소가 울 때 내는 소리 ‘음매’는 그대로 흉내 내는 것으로 봐서 소리 나는 그림책을 보고 학습한 덕이리라. 코코몽 동영상이나 ‘뽀롱뽀롱 뽀로로’를 볼 때는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을 마늠 재미를 붙여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달라붙어 있다. 기분이 좋으면 온 집안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소리 질러 주위의 귀를 모은다. 리아는 우리 집의 주연배우다. 리아가 웃으면 따라 즐겁고 징징거리거나 울면 비상이 걸린다. 그만큼 리아의 일거수일투족이 집안 분위기와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리아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손녀이자 우리 집의 귀한 보물이 되었다.
리아가 감기를 들어왔다. 애비가 리아에게 감기를 옮겼단다. 첫날밤부터 열이 나고 콧물이 비쳤다. 더구나 응가를 쉽게 하지 못해서 아프다고 울어 대곤 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부산 탈핵학교 수업을 받기 위해 집을 나설 때 리아의 소리가 귓가에 남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전화를 걸어 리아의 동태를 일일이 묻고 점심시간에는 집으로 달려왔으나 리아는 단잠에 빠져있었다. 집을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리아 방을 기웃거렸지만 끝내 눈을 맞추지 못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시집간 딸이 리아를 보기 위해 와 있었다. 열은 내렸으나 표정과 몸짓은 전과 같이 않았다. 오늘밤은 리아를 위해 모두가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그러나 건넛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리아의 투정과 울음소리에 잠을 설쳤다. 몇 차례를 뒤척이다 일어나 서제에서 밤 깊도록 책을 읽었다. 우리 집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는 집이 되었구나 싶어 대견스러웠다. 리아의 울음은 30여 년 전 아이들을 키우던 젊은 날의 추억을 더듬게 했다. 그리고는 이내 어린 날 나를 길러주신 어버이를 향한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들었다. 밤에 듣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가슴속 깊숙이 묻어둔 슬픔을 되살려주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문득 그 시절의 감성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자문했다.
귀국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도 리아는 미열 탓에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프지만 않으면 밝은 표정에 거침없는 몸짓으로 춤을 추며 흥얼거릴 모습이 줄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는 주위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받기를 반복한다. 오늘 아침에는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 할아버지 곁에서 코코몽 동영상을 보면서 이유식을 먹었다. 리아는 나에게 코코몽이라는 인형과 동영상을 처음 접하게 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응가를 쉽게 하고 잠까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났다. 리아는 우리 집을 환히 밝히는 등불이다. 오늘 낮에는 손녀가 보고 싶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오시겠다는 전갈이 있었단다. 리아는 어느새 집안을 아우르는 고운 천사가 되었나 보다. 저녁때가 되면서 다시 열이 오르고 콧물이 나며 기침이 잦아졌다. ‘아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며 다닌다. 마음이 몹시 쓰인다. 몸이 편치 않은지 낮잠을 자다가도 깨어나서 운다. 저녁에 다시 놀러온 딸이 귀에 꽂는 체온기를 사왔다. 타이레놀을 먹였는데도 아직 37도가 넘는 미열이 있단다. 몸이 아픈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더욱 걱정스럽고 애타게 했다. 리아가 태어난 이후 다니는 병원에 전화로 걸어 증상을 설명하고 상담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로 자세한 답변을 받았다. 원격진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에 아프고 나면 더 많이 자라 있을 리아를 그려본다. 손녀와 더불어 코코몽과 아로미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은하철도를 타고 희망의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첫댓글 리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얼마나 이쁘실까...귀염둥이 리아가 저도 보고싶네요...리아가 빨리 감기 나아서 고운 천사되기를 기원합니다...아름다운 글...가족의 일원이 된듯한 마음으로 즐감했습니다..^^*
리아를 사랑하는 그리움 할아버지^^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 옵니다.. 그사랑을 함께 느낄수있게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감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공감글이예요. 저도 함머니 된지 9개월 되었습니다. 매일 보고 싶어 시간만 나면
카톡하며 사진을 본답니다. 정말 그렇게 예쁠수가 없어요. 지방에 내려와 있어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할아버지손녀사랑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마음과 같아보입니다,,,
리아를 향한 가족들의 사랑, 특히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애뜻한 사랑이 저희의 가슴까지도 훈훈하게 전해져옵니다.
리아의 감기가 빨리 낫길 기도하며 리아와 함께 선생님 가족 모두 행복한 나날 되세요.
그리움님 오랫만에 사람사는 댁 같았겠습니다. 손녀와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십시요.
딸바보..아들바보..손녀바보..손자바보..요즘 TV를 통해서 많이 들어 본 말이예요~^^
그리움님의 글을 읽다보니 어느분의 글이 생각납니다.
아주 무뚝뚝했던 친구가 손녀를 봤는데, 휴대폰에 모습을 담아,등산 할 때도 꺼내보고 웃는다고요~
친구에게 팔불출이라고 놀렸었는데 칠십이 훨씬 넘어 손자를 보게 된 그 할아버지께서...그리움님과 비슷한?
상황이 된 이야기를 쓰셨더라구요~글을 읽다보니 그 할아버지가 생각나네요~!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