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윤석호
실종된 우편 비행기는 결국 페루 해안까지 가서 추락했다 목숨 건 야간비행**은 종종 이른 새벽 페루의 어느 해안에서 끝이 난다 어둠을 헤치고 맞이한 새벽, 남은 생을 걸고 도박장 같은 해안에 몸을 던진다 삶은 죽음을 만나고 나서야 영원으로 비상한다
야간비행을 끝낸 새들은 터져버린 풍선처럼 해변에 흩어져 있고 밤새 빠져나간 호흡을 보충하듯 바람 한 모금 삼킨 새들은 몸을 부풀리며 이륙을 준비한다 태양은 시간을 쏟아내고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며 시간만 배달할 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날개를 달고싶어 가벼움을 택한 새들은 미치도록 팔랑거리는 얇은 영혼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가볍다는 것은 늘 쓸쓸함의 찌꺼기를 남기고 표정지을 수 없는 얼굴을 가진 새들은 종일 물속으로 뛰어들며 삶을 씻어내고 있다 날고 있는 것들은 슬퍼하지 못한다 어떤 날개도 슬픔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다
조명탄 두 개와 단발 엔진으로 세상의 어둠을 뚫을 수는 없지만 새가 날개짓이 아니라 속도로 날듯 빛의 간절함은 지구를 돌리고 결국 새벽을 불러온다 마지막 비행은 추락으로 끝나지만 추락사는 아니다 몸이 바닥에 닿기전에 생은 벌써 영원으로 비상했다 새들은 페루의 한적한 해안으로 날아가 새벽의 모래 위에 두려움을 버린다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제목을 빌려옴.
**쌩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에서 이미지를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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