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링크의 전문가 칼럼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떠한 잣대도 들이대고 싶지 않은 사랑스런 영화 ‘아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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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에 이은 장진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 <아는 여자>는 어떠한 잣대도 들이대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영화다.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을 내놓을 당시 낯선 얼굴의 배우들을 등장시켜 그보다 더 낯선 화법의 유머를 구사했던 장진은, 언제나 관객이 잘 알고 있는 길을 우회해 가는 것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 왔다.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자장 안에 포함된 탓에 <아는 여자>는 그의 전작들보다 친숙해 보이긴 하지만, 낯설긴 마찬가지다. <아는 여자>가 낯선 이유는 정재영과 이나영이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여자를 시치미 뚝 떼고 연인으로 맺어놓았기 때문이다. 정재영은 장진과의 오랜 작업에 동반해온 이른바 ‘장진 사단’의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다. 그에게 멜로란 가당치도 않은 장르다. 이나영은 어느 영화에 대입시켜도 한 박자 느리거나 빠르게 달려가는, 규정 자체가 모호한 배우다. 이 둘이 멜로의 주인공이라니, 장진의 그 어떤 전작보다 낯설다. 그런데 <아는 여자>가 사랑스러운 것은 실은 바로 이 불협화음 때문이라는 것을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눈치 챌 수 있다.
소통하지 못하는 연애와 만남 … 장진 식 코미디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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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정재영은 별 볼일 없는 프로야군 2군 외야수 동치성으로 등장한다. 야구도 그저 그렇고 연애에도 재능이 없고 친구도 없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혼자 웅얼거리는 게 이 남자의 인생이다. 동치성이 자주 들르는 선배의 바에 이나영이 연기하는 젊은 여자 바텐더(그녀의 이름은 마지막 장면이 되어서야 나온다. 그때까지 그녀는 ‘아는 여자’로 불린다)가 있다. 대화보다 독백을 즐기고 다른 사람 하는 말엔 딴 소리 늘어놓는 게 이 여자의 인생이다. 치성과 그녀의 사랑이 막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는 여자>의 줄거리다. 가만 보면 같은 종류의 인간형인 탓에 둘의 대화는 거의 한번도 매끈하게 이어지지 않고 서로 등 돌려 중얼거리거나 면박주기 일쑤다. 이걸 멜로드라마의 정상적인 연인 관계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치성과 그녀의 삐걱거림이 등장할 때마다 웃음과 함께 애정도 느껴지는 것은(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기묘한 완결성이 느껴지는 것은) ‘소통하지 못하는 자들’이야말로 장진 세계의 골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진의 영화는 서너 명, 넓혀선 열 명에 가까운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해 웃음을 조합해가는 일종의 집단 코미디다. 하지만 <기막힌 사내들>의 엉터리 도둑들이나 <간첩 리철진>의 택시 강도단, <킬러들의 수다>의 청부살인 청년들 중 어느 누구도 동료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장진식 집단 코미디는 역으로 각각의 주인공들이 자기 말만 늘어놓는 가운데 그 말들이 충돌하는 데에서 웃음을 빚어내는 1인 코미디다. 그래서 장진 영화의 캐릭터들은 대개 몽유병 환자이거나 수다쟁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장진 코미디의 본질이다. 소통하지 못할수록 웃음은 강화된다. 더불어 소통하지 못하는 자들이 집단으로 어울려 살며 만들어내는 변종 문화는 웃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장진의 영화를 완성시킨다. 이것은 <아는 여자>의 정재영과 이나영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통하지 못할수록 웃음은 증폭되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창조되는 변칙 사랑이 두 배우의 낯선 만남으로부터 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장진 식 영화는 흔적을 찾아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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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들은 서로 자기 얘기를 하느라 샛길로 빠지기 일쑤다. 소통하지 못하는 자들의 코미디는 장진 영화의 또 다른 특징과 연대하는데, 그것은 중심 줄거리보다 곁가지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참 기막힌 노릇이다. 웰 메이드 영화의 진보는 불필요한 드라마의 가지들을 세련되게 쳐내려가는 데에 있음을 최근의 영화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장진은 도리어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따라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여러 명의 인물들 각각의 사연과 공상과 일상을 따라 영화는 수없이 많은 가지를 뻗는다. 그 사이 기둥 줄거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거나 잔가지의 배경으로 후퇴해 버리고도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현대 영화의 흐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 도발적 연출 태도는 종종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드라마들이 서로 낯설게 뻗어가는 장진의 잔가지치기 이야기 구조는, 실은 중심 이야기로 통합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장진의 영화는 기둥 줄거리를 두어 말하고자 하는 종국의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장진의 영화는 본질을 찾아가는 영화가 아니다. 장진이 집중하는 것은 거기에 이르는 표피적인 매력들, 바로 ‘흔적’들이다. <아는 여자>의 주제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흔적이다. <아는 여자>는 사랑의 정답을 찾아가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길 위에 식탁 위에 눈동자에 허공에 뿌려놓는 숱한 흔적들을 추적하는 영화다. 흔적들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왜냐면, 모아지는 흔적은 한 가지 형태로 기획된 사랑을 강요하지만,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의 매 순간을 행복으로 채우는 흔적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감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흔적들이 장진이 생각하는 세상사는 즐거움의 요체다. 그는 과감히 알맹이 대신 표피적 감각을, 본질 대신 흔적의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다. 본질을 버리고 흔적을 짚기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여자는 최고의 무대다. 멀리 있는 그들이 소통하기 힘든 상대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숱한 흔적들의 교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재영과 이나영의 불협 캐스팅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또 하나의 핵심이 있다.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어울리는 커플이 바로 그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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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의 영화는 종종 여성 캐릭터를 세심히 그리는 데 무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 그렇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야기의 주체, 시선의 주체는 동치성이다. 바텐더는 치성의 시점에서 치성이 ‘아는 여자’다. 치성의 시선에 갇힌 아는 여자는 영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사건에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는 채 치성의 드라마를 관람하고 흡수한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장진의 무심함이 반대로 강한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그녀들의 눈으로 바라본 남자 주인공들은 한없이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진의 남자 주인공들은 성장하지 못한 소년성에 근간을 두고 있다.
유약한 남성들과 중심이 되지 못하는 여성들. 장진의 영화는 약자들의 영화다. 약자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어렵사리 서로의 실 한 오라기씩을 건네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풍경은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정재영과 이나영은 연약한 품성의 약자들을 연기하고 있기에 그 어울리지 못함이 더욱 보기 좋다. 정재영과 이나영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어울리는 <아는 여자> 최적의 캐스팅이다.
<필자 소개> 이지훈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스크린' 기자로 영화판에 접속했다. 이후 '네가' '아이씨네' 편집장을 거쳐 현재 'FILM2.0' 편집장으로 재직중이다.
첫댓글 첨엔 드릅게(?) 안어울린다고 생각 했었어요..지금도 그생각엔 변함 없지만.. 근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살짝 미소를 짓게하는 커플....참 묘해요..^^
난 2년전 여기카페 가입하자마자 정재영이란 인물에 독불이에 매료되던그 즈음.. 벌써 이나영과 영화 찍으면 참 괜찮겠다란 생각을 친구와 나눈적있음..역시 난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는 똑똑이;
자꾸보다보니까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요 두분. ㅋㅋ
치성과 이연.. 재영오빠와 나영.. 너무너무 잘어울려요...
기자분,,글 너무 잘 쓰시네요,,,~
마지막 사진에서 재영님 표정 정말 귀여워요♡ 옆에서 환하게 웃는 나영님도 너무 예쁘고 ^^ 안 어울릴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상당히 어울리는 커플! ㅎㅎ
"최적의 캐스팅" 요말 상당히 기분좋아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