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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경_74. 변학품(遍學品), 동요하지 않음, 희론, 여덟 가지 경지, 성스러운 법, 부서짐을 닦는 것, 유법과 무법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를 성취하고 이 깊은 법을 행하더라도, 또한 과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큰 지혜를 성취하고 이 깊은 법을 행하더라도, 또한 과보를 수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모든 법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소유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동요하지 않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물질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느니라.
4선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고, 4무량심과 4무색정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느니라.
4념처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고, 나아가 8성도분의 성품까지에서도 동요하지 않느니라.
공삼매와 무상삼매와 무작삼매, 내지 대자대비의 성품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모든 법의 성품은 바로 무소유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무소유의 법으로써 존재하는 법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하는 법은 능히 존재하는 법을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존재하는 법은 능히 무소유의 법을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소유의 법은 능히 무소유의 법을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무소유가 능히 존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존재하는 것이 능히 존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존재하는 것이 능히 무소유를 얻지 못하고,
무소유가 능히 무소유를 얻지 못한다면,
세존이시여, 참으로 도를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는 있지만 이 네 가지 구절로 표현할 것은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존재하는 것으로서도 아니고 무소유로서도 아니니, 희론(戱論)이 없는 이것을 도를 얻는다고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희론이라고 부르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물질을 관찰하되 항상하다거나 덧없다고 하면,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관찰하되 항상하다거나 덧없다고 하면,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물질을 관찰하되 괴로움이라거나 즐거움이라고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괴로움이라거나 즐거움이라고 하면,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물질을 관찰하되 나라거나 나가 아니라고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나라거나 나가 아니라고 하며, 물질을 적멸이라거나 적멸이 아니라고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적멸이라거나 적멸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고성제(苦聖諦)는 보아야 하고 집성제(集聖諦)는 끊어야 하며, 멸성제(滅聖諦)는 증득해야 하고 도성제(道聖諦)는 닦아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은 희론이 되느니라.
4선 또는 4무량심과 4무색정을 닦아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4념처 또는 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을 닦아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공해탈문 또는 무상해탈문ㆍ무작해탈문을 닦아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8배사 또는 9차제정을 닦아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초과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보살의 10지를 구족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고,
나는 보살의 지위에 들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고,
나는 중생의 이익을 성취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부처님의 10력 또는 4무소외 또는 4무애지 또는 18불공법을 일으켜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일체종지를 얻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나는 모든 번뇌의 습기를 끊어야 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이 희론이 되느니라.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을 항상하다거나 덧없다는 식으로 희론할 수 없기 때문에 희론하지 않느니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항상하다거나 덧없다는 식으로 희론할 수 없기 때문에 희론하지 않느니라.
나아가 일체종지를 희론할 수 없기 때문에 희론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성품은 성품에 대해 희론하지 못하고, 무성(無性)은 무성에 대해 희론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성품과 무성을 떠나고 다시 얻을 법이 없기 때문이니, 이른바 희론이란 희론의 법과 희론의 장소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물질은 희론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일체종지도 희론이 없는 것이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희론이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물질은 희론할 수가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희론할 수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은 성품이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성품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모든 법에 성품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희론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물질은 히론할 수가 없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희론할 수가 없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능히 그와 같이 희론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이때 보살의 지위에 들 수 있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에 성품이 없다면, 보살은 어떠한 도를 행하여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는지요?
성문의 도에 입각하여 행하며, 벽지불이 도에 입각하여 행하는지요?
아니면 부처님의 도에 입각하여 행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성문의 도에 입각하는 것도 아니고, 벽지불의 도에 입각하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이 도에 입각하는 것도 아니면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널리 모든 도를 배워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팔인(八人)이 먼저 모든 도를 배우고, 그런 후에 바른 지위에 들고, 아직 과위를 얻지 못했지만, 먼저 과위의 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은 또한 그처럼 먼저 널리 모든 도를 배우고, 그런 후에 보살의 지위에 들고, 또한 아직 일체종지를 얻지 못했지만, 먼저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일으키느니라. 그때 일념에 상응하는 지혜로써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은 널리 모든 도를 배워서 보살의 지위에 든다면, 팔인(八人)과 수다원을 향하는 자와 수다원을 얻는 자, 사다함을 향하는 자와 사다함을 얻는 자, 아나함을 향하는 자와 아나함을 얻는 자, 아라한을 향하는 자와 아라한, 벽지불도와 불도가 있으니, 이 모든 도는 각각 다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은 널리 모든 도를 배우고, 그런 후에 보살의 지위에 든 이 보살이, 만일 여덟 가지 도를 일으키면 팔인이 될 것입니다. 견도(見道)를 일으키면 수다원이 될 것이고, 사유도(思惟道)를 일으키면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이 될 것입니다. 만일 벽지불도를 일으키면 벽지불이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가령 보살마하살은 팔인이 되고, 그런 후에 보살의 지위에 든다고 하면,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보살의 지위에 들지 않고서 일체종지를 얻는다는, 그러한 경우도 없습니다.
또한 수다원이 되고 벽지불이 되고 난 후에, 보살의 지위에 든다는, 그러한 경우도 없습니다.
또한 보살의 지위에 들지 않고서 일체종지를 얻는다는, 그러한 경우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널리 모든 도를 배워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제가 어찌해야 알 수 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팔인이 되어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를 얻고, 벽지불도를 얻고 난 후에, 보살의 지위에 든다고 하면,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으며, 보살의 지위에 들지 않고서 일체종지를 얻는다고 하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가령 어떤 보살마하살이 처음으로 뜻을 일으킨 때부터 6바라밀을 행할 때까지 지혜로써 관찰하면, 여덟 가지 경지를 지나가느니라.
무엇을 여덟 가지 경지라고 하는가?
간혜지(幹慧地)ㆍ성지(性地)ㆍ팔인지(八人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이욕지(離欲地)ㆍ이변지(已辯地) 그리고 벽지불의 경지이니, 도종지(道種地)로 보살의 지위에 들고, 보살의 지위에 들고 나서 일체종지로 모든 번뇌의 습기를 끊느니라.
수보리야, 이 팔인의 지혜나 끊음이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수다원의 지혜나 끊음, 또는 사다함의 지혜나 끊음,
또는 아나함의 지혜나 끊음, 또는 아라한의 지혜나 끊음,
또는 벽지불의 지혜나 끊음은 모두 그대로 보살의 무생법인이다.
보살은 그와 같이 성문이나 벽지불도를 배우고, 도종지로 보살의 지위에 들고, 보살의 지위에 들고 나서 일체종지로 모든 번뇌의 습기를 끊고 불도를 얻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널리 모든 도 배우기를 구족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서, 이것으로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도리라는 것은 성문도 또는 벽지불도 또는 불도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을 보살의 도종지(道種智)라고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도종(道種)의 맑은 지혜를 일으켜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떠한 것을 도종의 맑은 지혜라고 하는가?
만일 모든 법의 모습과 모양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보살은 먼저 바로 알아야 하느니라. 바로 알고 나서는, 타인을 위하여 연설하고 열어 보이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해야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음성과 언어를 이해하고, 그 음성으로써 설법하여 널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기를, 메아리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먼저 모든 도를 배워 구족해야 하고, 도의 지혜가 구족되고 나서는 중생들의 깊은 마음을 분별하여 알아야 하느니라.
이른바 지옥 중생의 지옥의 길ㆍ지옥의 원인ㆍ지옥의 과보가 반드시 장애가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축생과 아귀의 길ㆍ축생과 아귀의 원인ㆍ축생과, 아귀의 과보가 반드시 장애가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용ㆍ귀신ㆍ건달바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아수라의 길과, 원인과 과보도 알아야 하느니라.
사천왕천ㆍ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ㆍ범천ㆍ광음천ㆍ변정천ㆍ광과천ㆍ무상천ㆍ무번천ㆍ무열천ㆍ이견천ㆍ희견천ㆍ색구경천의 길과, 원인과 과보도 알아야 하느니라.
무변허공처ㆍ무변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의 길과, 원인과 과보도 알아야 하느니라.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의 길과, 원인과 과보도 알아야 하느니라.
공해탈문ㆍ무상해탈문ㆍ무작해탈문, 그리고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대자대비의 원인과 과보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의 이러한 도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도 내지 아라한, 또는 벽지불도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게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맑은 도종지라고 말하느니라. 보살은 이 도종지를 배우고 나서, 중생들의 깊은 마음의 모습에 드느니라. 들고 나서는,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서 그것에 상응하는 설법을 하되, 하는 말이 헛되지 않도록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의 근기의 모습을 알고,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 또는 생사로 나아가는 곳을 알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여러 선한 조도법(助道法)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고, 모든 보살마하살ㆍ성문ㆍ벽지불이 행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4념처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이 모든 법은 모두가,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질도 없고 형태도 없고,
걸림도 없는 한 모습이어서, 이른바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 조도법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것은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도 없고 형태도 없고,
걸림도 없는 하나의 모습이고,
이른바 모습이 없는 법이어서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법의 자상은 공이어서,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중생이 모든 법의 자상이 공인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 중생을 위하여 조도법을 보여 주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해야 하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존재하는 색 또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이 성스러운 법 가운데에서, 모두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질도 없고 형태도 없고, 걸림도 없는 하나의 모습이어서, 이른바 모습이 없는 것이니라.
또한 존재하는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으니라.
또한 존재하는 내공 내지 무법유법공도 그와 같으니라.
또한 초선 내지 비유상비무상처도 그와 같으니라.
또는 4념처 내지 8성도분ㆍ3해탈문ㆍ8배사ㆍ9차제정도 그와 같으니라.
또는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대자대비 그리고 일체종지 등의 모든 법은, 이 성스러운 법 가운데에서 모두,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질도 없고 형태도 없고, 걸림도 없는 하나의 모습이어서, 이른바 모습이 없는 것이니라.
세속의 법에 의하여 중생들을 위해 설하여 알게 하지만, 제일의(第一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법 가운데 있어서, 보살마하살은 지견(智見)을 지니어 여법하게 배워야 하며, 배우고 나서, 모든 법의 응용할 것과 응용하지 못할 것을 분별해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법을 보살은 분별하고 나서, 응용할 것은 응용하고, 응용하지 못할 것은 응용하지 않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이나 벽지불의 법은 분별하여 응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일체종지는 분별하여 응용해야 한다고 아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성스러운 법에서,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이름하여 성스러운 법이라 말씀하시고, 어떠한 것이 성스러운 법이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또는 모든 보살마하살 및 모든 부처님은, 탐욕ㆍ화냄ㆍ어리석음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나의 몸이 있다는 견해, 또는 계율에 대한 잘못된 견해, 또는 의심하는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탐욕에 물듦 또는 화냄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색에 물듦ㆍ무색에 물듦ㆍ들뜸ㆍ교만ㆍ무명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초선 내지 제4선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자ㆍ비ㆍ희ㆍ사, 또는 허공처ㆍ비유상비무상처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4념처 내지 8성도분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그리고 내공 내지 대비, 또는 유위성과 무위성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법은 전부,
물질도 없고 형태도 없고,
마주할 수도 없고 한 모습이어서, 이른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니라.
물질도 없는 것은 물질도 없는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형태가 없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걸림이 없는 것은 걸림 없는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하나의 모습이란 것은 하나의 모습이란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그리고 모습이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것에 있어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러한 물질이 없고 형태가 없고, 걸림이 없고 하나의 모습이어서, 이른바 모습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보살마하살은 배워야 하며, 배우고 나서는, 모든 법의 모습을 얻지 않아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물질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눈의 모습 내지 뜻의 모습을 배우지 않고, 물질의 모습 내지 법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지대종(地大種)의 모습 내지 식대종(識大種)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단나바라밀의 모습, 또는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내공의 모습 내지 무법유법공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초선의 모습 내지 제4선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자(慈) 내지 사(捨)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무변공처의 모습 내지 비유상비무상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4념처의 모습 내지 8성도분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공삼매의 모습 또는 무상삼매의 모습 또는 무작삼매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8배사 또는 9차제정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부처님의 10력의 모습, 또는 4무소외의 모습ㆍ4무애지의 모습과, 18불공법의 모습과, 대자대비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고성제의 모습ㆍ집성제의 모습ㆍ멸성제의 모습ㆍ도성제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역과 순으로 12연기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그리고 유위성의 모습과 무위성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지요?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의 모습을 배우지 않는다면,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유위 또는 무위 등 모든 법의 모습을 배우는지요?
그리고 배우고 나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과하는지요?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살의 지위에 드는지요?
그리고 만일 보살의 지위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체종지를 얻는지요?
그리고 만일 일체종지를 얻지 않는다면, 어떻게 법륜을 굴리고, 만일 법륜을 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3승으로써 중생들을 생사에서 건지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법에 진실로 모습이 있다면, 보살은 그러한 모습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런데 수보리야, 모든 법은 진실로 모습이 없으니, 물질이 없고 형태가 없고, 걸림이 없는 한 모습으로서, 이른바 모습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습을 배우지 않고, 모습 없음[無相]도 배우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계시든 계시지 않든 모든 법은, 한 모습의 성품으로 항상 머물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모습이 있음도 아니고, 모습이 없음도 아니라면,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닦는지요?
만일 반야바라밀을 닦지 않는다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과할 수 없고,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과할 수 없다면, 보살의 지위에 들 수 없습니다.
만일 보살의 지위에 들 수 없다면,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고,
만일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면, 보살의 모든 신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보살의 신통을 얻지 못하면,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의 이익을 성취할 수 없고,
만일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의 이익을 성취하지 못하면, 일체종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일체종지를 얻지 못하면, 법륜을 굴릴 수 없고,
만일 법륜을 굴리지 않으면,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얻게 할 수가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복을 얻게 할 수도 없고, 또한 계를 지니는 것과 선정을 닦는 복도 얻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모든 법은 모습이 없고, 하나의 모습도 아니고, 다른 모습도 아니니, 만일 모습 없음을 닦으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습 없음[無相]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부서짐[壞]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모든 법의 어떠한 부서짐에 이르기까지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눈의 부서짐, 또는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물질의 부서짐, 또는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부정관(不淨觀)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초선의 부서짐과 2선ㆍ3선ㆍ4선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자ㆍ비ㆍ희ㆍ사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무변공처ㆍ무변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부처님을 기억하는 것ㆍ법을 기억하는 것ㆍ승단을 기억하는 것ㆍ계율을 기억하는 것ㆍ보시를 기억하는 것ㆍ천상을 기억하는 것ㆍ죽어 없어짐을 기억하는 것ㆍ호흡의 출입을 기억하는 것 등이 있는데, 이들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덧없다는 행상(行相)ㆍ괴로움이라는 행상ㆍ나가 없다는 행상ㆍ공이라는 행상ㆍ집(集)이라는 행상ㆍ원인이라는 행상ㆍ생(生)의 행상ㆍ반연[緣]이라는 행상ㆍ고요하다는 행상[閉相]ㆍ소멸이라는 행상ㆍ미묘하다는 행상ㆍ떠났다는 행상ㆍ길이라는 행상ㆍ바르다는 행상ㆍ나아감이라는 행상ㆍ출리(出離)라는 행상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12연기ㆍ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영혼이라는 생각의 부서짐을 닦고, 나아가 아는 자ㆍ보는 자라는 생각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항상하다는 생각ㆍ즐겁다는 생각ㆍ청정하다는 생각ㆍ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4념처와 나아가 8성도분의 부서짐까지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8배사와 9차제정의 모습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거친 생각 있고 미세한 생각 있는 삼매[有覺有觀三昧]ㆍ거친 생각 없고 미세한 생각 있는 삼매[無覺有觀三昧]ㆍ거친 생각 없고 미세한 생각 없는 삼매[無覺無觀三昧]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고성제ㆍ집성제ㆍ멸성제ㆍ도성제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가 있는데, 이들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법지(法智)ㆍ비지(比智)ㆍ세지(世智)ㆍ타심지(他心智)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단나바라밀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내공ㆍ외공ㆍ내외공ㆍ공공ㆍ대공ㆍ제일의공ㆍ유위공ㆍ무위공ㆍ필경공ㆍ무시공ㆍ산공ㆍ성공ㆍ제법공ㆍ자상공ㆍ불가득공ㆍ무법공ㆍ유법공ㆍ무법유법공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에 이르기까지 그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그리고 일체지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모든 번뇌의 습기를 끊는 것의 부서짐을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물질의 부서짐을 닦고, 나아가 일체번뇌의 습기를 끊는 것의 부서짐까지 닦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라고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일체번뇌의 습기를 끊는 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법이 있다는 생각은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법이 있다는 생각은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사람은 법에 집착하여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향하여 갈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와 같이 집착하는 자에게는 해탈이 있을 수 없고, 도가 있을 수 없고, 열반이 있을 수 없느니라.
법이 있다는 생각은,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과, 공삼매 내지 일체종지를 닦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은 법에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유법(有法)이라 하고, 무엇을 무법(無法)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둘인 것은 유법이고, 둘이 아닌 것은 무법이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을 둘인 것이라고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의 모습은 곧 둘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모습은 곧 둘이니라.
눈의 모습과 나아가 뜻의 모습은 곧 둘이고,
색 내지 법이라는 것은 곧 둘이니라.
단나바라밀 내지 부처님의 모습,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습, 유위와 무위의 모습은 곧 둘이니라.
수보리야, 일체의 모습은 모두 둘인 것이고, 일체의 둘인 것은 모두 유법이니라.
때마침 유법이 있으면, 나고 죽음이 있고,
때마침 나고 죽음이 있으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그리고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뇌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수보리야, 둘인 것의 모습에는,
단나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있을 수 없고,
도가 있을 수 없고,
과보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순인(順忍)도 있을 수 없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런데 어찌 하물며 물질의 모습과, 나아가 일체종지의 모습을 보겠느냐. 만일 도를 닦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수다원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온갖 번뇌의 습기를 끊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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