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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해일륜_육조단경요역_12. 모든 근숙정사(根熟正士)들이 참청(參請)하는 것
성사께서 소주韶州의 조후촌曹侯村으로 돌아오시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오직 유지략劉志略이라는 사람이 예로써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 사람의 고모가 있어 비구니가 되었는데, 이름이 무진장無盡藏이었다. 항상 『대열반경』을 독송하였는데, 성사께서 잠깐 들으시고 오묘한 뜻을 통달하시어 깊은 취지를 강설하시니, 비구니가 책을 펴서 글자를 물었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문자를 알지 못하니 경의 뜻이나 물어라.”
비구니가 대답하기를,
“문자도 모르는데 어찌 뜻을 알겠는가?”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대각의 진리는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니가 크게 놀라서 경의 뜻을 물으니 간략하고 분명하였다. 비구니가 각 촌락에 다니며 두루 거룩한 도덕을 찬송하니, 그 지역 주민들이 다투어 서로 와서 예배하고 도를 물었다.
이때에 보림도량寶林道場이 있었는데, 수隋나라 말년에 병화로 폐지된 것이었다. 이 보찰寶刹을 다시 건축하고, 성사께서 9개월을 계셨는데, 또 북방의 신수의 문도들이 성사를 해하고자 왔는데, 성사께서 항거하지 아니하시고 안산으로 가서 은신하셨다. 그 악인들이 온 산에다 불을 놓아서 수천 년 동안 묵어 있었던 산림이 불이 붙어서 불빛이 하늘에 가득 차 벼락같이 불이 몰아왔는데, 성사께서 신통으로 큰 바위를 밀고 들어가서 결가부좌하고 엄연히 앉으셨다. 지금까지도 큰 바위 속에 성사의 전신의 인상이 박혀서 의복의 문양까지도 완연하므로 세인이 이 바위를 이름하여 피난석避難石이라고 하였다. 성사께서 오직 5조 홍인 대사의 말씀에 의지하여 회懷땅과 회會 땅 두 고을로 옮겨 가서 은신하셨다.
법해法海는 소주韶州의 곡강曲江 땅 사람이다. 처음으로 성사에게 참배參拜하고 곧 물어 말하기를,
“마음(心)에 상즉(卽)한 것이 곧 각覺이라고 하시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뜻이 있습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앞 생각(前念)이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이 곧 마음(心)이고, 뒷생각(後念)이 멸滅하지 아니하는 것이 곧 각覺이며, 일체상一切相을 이루는 것이 곧 마음이고, 일체상을 여의는 것이 곧 각인 것이다. 내가 만일 모두 갖추어 설한다면, 궁겁窮劫이라도 다 할 수 없으니 나의 게송을 들어 보아라.
마음에 상즉한 것이 혜慧이고
각覺에 상즉한 것이 정定이니
정과 혜를 등등等等이 지니면
뜻이 청정해지는 것이니라.
이 법문을 깨친 것은
다생에 네가 많이 익혔던 성품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본래 무생無生을 쓰면
쌍으로 이 정혜를 닦는 것이라네.”
(용성이 말하기를,
“앞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모든 법의 당처가 공적하여 일정하게 요동치 아니한 것이고, 뒷생각이 멸하지 아니하면 각혜원명覺慧圓明한 것이니, 이것은 정定에 상즉한 혜慧라는 말이다. 또 일체상을 이룬 것이 마음이라는 말은 앞 구절을 뒤집어 놓은 것이고, 또 일체상을 여의는 것이 곧 각覺이라는 말은 둘째 구절을 뒤집어 놓은 말이니, 이것은 혜에 상즉한 정이라는 말인 것이다. 이것은 정혜로써 분석하였거니와 또다시 다른 한 뜻이 있는데, 물은 곧 젖는 것이니, 마음 전체가 곧 각이라는 말이고, 젖는 것이 곧 물이니, 이것은 각의 전체가 곧 마음이라는 말이다. 이 비유를 깨치면 범부와 성인을 물론하고 둘 없는 것을 요달할 것이다.”)
법달法達은 홍주洪州 사람이다. 7세에 출가하여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성사에게 예배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거늘 성사께서 법달의 마음을 알고 묻기를,
“너의 마음 가운데에 필연코 한 물건이 있도다.”
법달이 여쭈기를,
“『법화경』을 삼천 독이나 넘게 하였나이다.”
성사께서 송頌하여 말씀하기를,
“예는 본래 아만의 당幢이 끊어졌는데
머리가 어찌 땅에 닿지 아니하는가?
아가 있으면 곧 죄가 생겨나는 것이니
공덕 되는 것을 잊어버리면 복을 견줄 데 없는 것이다.”
다시 송하여 말씀하기를,
“너의 이름이 법달이라
부지런히 지송하여 쉬지 아니하였으나
공연히 음성만 쫓았도다.
마음을 밝힌(明心) 사람을 정사正士라 하는 것이다.
네가 이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설명할 것이다.
다만 대각께서 말없는 것을 믿으면
연꽃이 입으로부터 피어나리라.”
법달이 지성으로 참회하여 말하기를,
“이 뒤에는 일체 사람에게 공경하고 하심을 하올 것이니, 불쌍하게(哀愍) 여기소서.”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글을 배우지 아니하였으니, 경문 일편을 외우라.”
법달이 「비유품」까지 외웠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만 그치라. 이 경은 원래 대각께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하여 출세出世하셨다’ 하시니 일대사는 곧 대각의 지견이다. 세상 사람이 밖으로 미혹하여 상相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여 공空에 집착하는데, 만일 저 상에서 상을 여의고, 공에서 공을 여의면, 곧 내외를 미혹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을 깨친 자는 각覺의 지견知見이 열린 것이니 네 가지로 분석할 것이다.
각覺의 지견知見을 여는 것(開)과 각의 지견을 보이는 것(示)과 각의 지견을 깨친 것(悟)과 각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入)이니, 만일 열어 보임(開示)을 듣고 문득 깨치면 곧 각의 지견이어서 본래 참된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삼가하여 경의 뜻을 그릇되게 알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각의 지견을 열어 보임(開示)을 듣고, 이것이 대각의 지견이어서 우리는 알 길이 없다고 하는 자는 경전과 각을 비방하는 것이다. 대각은 이미 깨치셨는데, 어찌 다시 열어 보일 것이 있겠는가? 네가 마땅히 믿는다면, 다만 너의 마음이어서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이다.
대개 일체의 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리고 진경塵境을 탐하여 밖으로 반연하고, 안으로 분주하여 달게 고뇌苦惱를 받으므로 대각께서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입이 쓰도록 권하여 모든 고통을 침식케 하시니, 간절하게 밖으로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도 또한 사람에게 권하여 자심 가운데 각의 지견知見을 열게 하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삿되고 어리석고 미혹하여(愚迷) 죄를 지으며, 입은 착하고 마음은 악하여 탐진과 질투와 첨곡과 아만으로 사람을 침노하고, 물건을 해롭게 하여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만일 마음을 바르게 하여 항상 지혜를 일으켜 자심을 관조觀照하여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각의 지견知見을 여는 것이다.
너는 항상 각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라. 각의 지견은 곧 출세간이고, 중생의 지견은 곧 세간인 것이다. 네가 경을 외우기만 하여 한갓 공과功課를 삼는 것은 물소가 꼬리를 사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곧 경을 굴리는 것이고,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곧 경의 굴림을 입는 것이다.”
송하여 말씀하기를,
“마음을 미혹하면 『법화경』에 굴림이 되고
마음을 깨치면 『법화경』을 굴리는 것이다.
경을 외우되 오랫동안 밝지 못하면
뜻과 더불어 원수 집을 짓는도다
생각이 없으면 생각이 바르고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사邪를 이루는도다.
있고 없는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면
길이 백우거白牛車를 몰게 될 것이다.”
법달이 법을 듣고 크게 깨닫고 다시 묻기를,
“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문聲聞에서부터 정사正士들까지 다 한결같이 생각하여 헤아리더라도 대각의 지혜를 측량치 못한다’62)고 하시니 오직 원컨대 성사는 가르쳐 주소서.”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대각의 본연성품은 일체一切의 계교사량計較思量으로 헤아려도 알 수 없으니, 그 허물이 재고 헤아리는(度量) 데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다 생각하여 아무리 측량側量하여도 전전輾轉히 도로 더불어 멀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 이치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곧 이 자리에서 물러갈 것이다. 백우거白牛車를 타고 앉아서 다시 문밖을 향하여 세 수레를 찾는 것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오직 일승一乘만 있고, 나머지 수레(乘)가 이승(二)도 없고, 삼승(三)도 없다’63)고 하시며, 내지는 ‘수없는 방편方便과 언설言說이 다 일승一乘을 위함이다’64)라고 하였다. 삼거三車는 거짓된 것이니 옛적에 미혹할 때를 말씀한 것이고, 일승은 깨쳤을 때를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거짓된 것을 버리고, 진실한 데로 돌아오면 진실한 이름도 없는 것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칠보진재七寶珍財를 너에게 부촉해 줄 것이니 오직 네가 쓸 것이다. 다시 아비와 자식 생각이 없으며, 또한 쓰는 생각도 없으니, 이것이 『법화경』을 수지하는 것이다. 이 이치를 깨치면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도록 『법화경』을 잠시라도 놓지 아니할 것이며,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법달이 크게 기뻐하여 게송을 지어 찬탄하였다.
“『법화경』 삼천 번 독송한 것이
조계曹溪의 한 말씀으로 없어졌도다.
세간에 출현하신 뜻을 밝히지 못하면
어찌 다생에 얽힌 소견을 쉬리오?
양거·녹거·우거는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처음·중간·나중도 잘 드날렸도다.
누가 화택 가운데에 원래로
법왕이 있음을 알았으리오?”
지통智通은 수주壽州의 안풍安豐 사람이다. 처음에는 『능가경楞伽經』을 천 번이나 보며 그 깊은 뜻을 궁구하였으나 오묘한 진리를 알지 못하여 매우 답답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성사께서 세간에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와서 예배하고 경의 뜻을 물었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청정법신淸淨法身은 너의 성품이고, 원만보신圓滿報身은 너의 지혜이며,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은 너의 행이니, 만일 본성을 여의고 따로 삼신三身이 있음을 말하면 곧 삼신이 있고, 사지四智는 없는 것이며, 만일 삼신이 자성 없음을 알면 곧 이름이 사지보리四智菩堤인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자성에 삼신을 갖추었으니
발명發明하면 사지四智를 성취하는도다.
보고 듣는 것을 여의지 않고
초연超然히 각지覺地에 오르는도다.”
지통이 다시 여쭈기를,
“사지四智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
성사가 대답하기를,
“이미 삼신三身을 알았다면, 문득 사지를 밝게 알 것이니, 어찌 다시 묻는가? 만일 사지를 여의고 따로 사지를 말하면, 이 이름이 사지는 있고, 삼신은 없는 것이니, 곧 사지가 있으나 도리어 사지가 없는 것이다. 다시 나의 게송을 들어라.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성품이 청정하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마음이 병病 없고
묘관찰지妙觀察智는 견見이 공功 아니며,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대원경지(圓鏡智)와 같도다.
전오식과 제8식은 과상果上에서 굴리고(轉) 육식과 칠식은 인중因中에서 굴리니
다만 이름과 언설言說만 있을지언정 모두 진실한 성품 없도다.
만일 굴리는 곳에 망정만 없으면
번거로이 일어나되 항상 내가 정定에 처하도다.”
(용성이 말하기를,
“팔식을 굴리어 법신法身을 발명發明하고, 제7식을 굴리어 보신報身을 발명하며, 제6식을 굴리어 화신化身을 발명하는 것이다. 전오식前五識을 굴리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이룬 것은 제8식第八識과 동체同體이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갈라설(各立) 것이 없는 것이다.
삼신三身을 발명하면 사지四智가 되는 것이니, 따로 분석할 것이 없다. 제8식 자체自體가 허공과 같으며, 세계 천지의 만유萬有를 머금어 있는 것이니, 이 팔식을 굴리면 온전히 법신이 독로獨露하는 것이고, 칠식의 자체(七識自體)는 항심사량恒審思量하는 것이다. 이것을 굴리어 보신報身을 성취하는 것이며, 육식은 판사식辦事識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을 굴리어 화신을 성취한 것이고, 제8식이 오근문두五根門頭에 비친 것이 전오식前五識이니 이 오식은 제8식과 동체(五識與八識同體)이기 때문에 따로 분석할 것이 없는 것이다.”)
지통이 삼신과 사지를 깨닫고 게송을 바쳐 말하기를,
“삼신이 원래부터 나의 체이고,
사지가 본마음에 밝았도다.
삼신사지三身四智가 융통融通하면
응應함을 따라 자유自由롭도다
닦을 마음을 내면 다 망상妄想이고
공적을 지키는 것은 진정이 아니로다.
사師를 인하여 묘지妙旨를 깨달으니
마침내 자성을 염오染汚치 아니하도다.”
지상智常은 신주信州 귀계貴谿 사람이다. 일찍이 대통 선각大通先覺에게 도를 묻기를,
“어떤 것이 나의 본마음이며 본 성품입니까?”
대통이 대답하기를,
“네가 허공을 보느냐?”
대답하기를,
“보나이다.”
“허공이 무슨 생김새(相貌)가 있느냐?”
대답하기를,
“생김새가 없습니다.”
대통이 말하기를,
“너의 본성도 허공과 같아 한 물건도 볼 것이 없는 것이 정견正見이고, 한 물건도 알 것 없는 것이 참다운 지견智見인 것이다. 청황적백장단靑黃赤白長短이 없으니, 다만 본원本源이 청정淸淨하고 각체가 원명(覺體圓明)한 것이 정각正覺을 성취한 것이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알지 못하오니 성사께서는 자비로 가르치어 주옵소서.”
성사께서 곧 게송으로서 보이시기를,
“한 법도 볼 것 없다는 것은 그 병이 볼 것 없는 소견所見을 둔 것이니
비유하자면 크게 뜬 구름이 태양 광명을 가리는 것과 같이
한 법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비었다는 알음을 지키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큰 허공에 번개가 생生하는 것 같도다.
이와 같이 지견知見이 문득 일어나면
그릇 아는 것이니 어찌 일찍이 방편을 해득하리오?
네가 마땅히 그릇됨을 알면
자기의 영광靈光이 항상 현전現前하리라.”
지상은 뜻이 활연豁然하여 게송을 지어 말하기를,
“무단無端히 지견知見을 내어
상에 집착하여 보리를 구하였도다.
정견情見 둔 것을 한 생각 깨달으니
어찌 미혹한 때와 다르리오.
자성각 근원의 본체(自性覺源體)는
알음을 따라 그릇 윤회하는도다.
조사의 집에 들지 않았다면
두 머리에 나아가 망연할 뻔하였도다.”
지도智道는 광주廣州 남해南海 사람이다. 『열반경涅槃經』을 10여 년이나 궁구하여도 대의를 알지 못하여 성사에게 경의 대의大意를 묻는데, 성사께서 대답하기를,
“네가 어느 대문大文을 알지 못하는가?”
지도가 말하기를,
“경에 말씀하시길,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으므로(無常) 일어나고 멸하는 법이니,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멸하여 마치면 적멸寂滅이어서 낙樂이 된다’65)고 하시니 이 대문大文에 의심이 있나이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
지도가 말하기를,
“일체중생이 색신과 법신이 있으니, 색신은 멸함이 없어 생멸이 있는 것이고, 법신은 떳떳하여 지각知覺이 없는데, 경의 말씀이 ‘생멸生滅이 멸하여 마치면 적멸寂滅이 낙이 된다’고 하시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몸이 적멸하고 어떤 몸이 낙을 받는 것인가요?
만일 색신色身이 낙을 받는다고 한다면, 색신은 멸할 때에 지·수·화·풍 사대가 흩어질 때에 온전히 고통뿐이므로 그 고통을 낙이라고 할 수 없고, 만일 법신이 낙을 받는다고 하면 법신은 적멸하여 목석과 같을 것이니 누가 낙을 받을까요?
또 법성法性은 이 생멸生滅의 체가 되고 오온五蘊은 생멸의 용이 된 것이니, 체體는 하나인데 용用은 다섯이라 생멸이 떳떳할 것이니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생겨나는 것은 체體로부터 용用이 일어나는 것이니, (마치 물로부터 파도가 일어나는 것과 같고) 멸하는 것은 용을 거두어서(攝) 체로 돌아가는 것이니 마치 파도가 멸하여 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나는 것은 용을 거두어서 체로 돌아갔다가, 다시 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파도가 물로부터 멸하였다가 다시 물로부터 일어나는 것과 같고, 사람이 태어났다가 다시 죽는 것은 체로부터 용이 생겨났다가 다시 용을 거두어서 체로 돌아가는 것이니, 파도가 일어났다가 다시 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태어나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니,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생멸이 떳떳한 것이다.
유정의 무리와 같이 생사가 상속相續되어 단멸斷滅이 없을 것이다. 만일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영원히 적멸에 돌아가 무정의 물체와 같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일체 모든 법이 열반에 금복禁伏한 바를 입어 오히려 생겨날 수도 없으니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성사께서 말하기를,
“네가 대각의 제자로서 어찌 외도外道의 단멸斷滅과 상견常見 두 가지 사견을 익혀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의론하고자 하는가? 네 말과 같다고 한다면 색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고, 생멸을 여의고 따로 적멸을 구하는구나. 또 열반의 상락常樂은 몸이 있어 수용함을 말하니, 이것은 생사를 집착하며 세락世樂을 탐착한 것이다.
네가 마땅히 알라. 대각께서 일체 미혹한 사람들이 오온의 화합함을 그릇 알아 자신상自身相으로 삼으며, 일체법을 분별하여 외진상外塵相을 삼아 살기는 좋아하고, 죽기는 싫어하여 생각생각이 천류遷流하되, 헛된 것을 알지 못하여 그릇 윤회를 받아 상락열반常樂涅槃으로써 도리어 고상苦相을 삼아 날이 마치도록 치구馳求함을 불쌍히 생각하신 까닭으로 대각께서 열반진락涅槃眞樂을 보이신 것이다.
이것은 찰나刹那라도 생겨나는 상相이 없으며 찰나라도 멸하는 상이 없어서 다시 생멸生滅을 가히 멸滅할 것이 없는 것이 곧 적멸寂滅이 현전現前한 것이다. 현전할 때를 당하여 또한 현전한 상량商量이 없어 이것이 떳떳한 낙이다. 이 낙樂은 받는 자도 없으며 또한 아니 받는 자도 없는데, 어찌 일체오용一體五用의 이름이 있겠는가? 하물며 다시 말하기를, ‘열반이 모든 법을 금복禁伏하여 영원히 생겨나지 못하게 하리오?’ 이것은 대각을 비방하고 법을 파괴하는 것이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위없는 큰 열반이
뚜렷이 밝아 항상 고요히 빛나거늘
어리석은 범부(凡愚)는 죽는다고 하고
외도外道는 단견과 상견에 집착하네.
모든 이승二乘이 구하는 것은
천진무작天眞無作이라고 명목하는데,
다 망정妄情으로 헤아린 것이며
육십이견六十二見이 근본이라네.
망령되이 허망한 이름을 세운 것이니
어찌 진실한 뜻이 되리오?
즉 정량情量에 뛰어난 사람이라서
취사取捨 없음을 통달하여야
오온법五蘊法을 아는 것과
오온 가운데에 나와
밖으로 여러 가지 상相을 나타내는 것과
낱낱 음성의 상이
평등하여 몽환 같아
범부나 성인의 소견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열반의 지혜를 일으키지 아니하여
이변과 삼제가 끊어졌으며
항상 육근을 응하여 쓰되
쓰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일체법을 분별하되
분별한다는 생각 일으키지 아니하니라.
겁화劫火가 바다 밑을 불태우며
바람북이 수미산왕을 치더라도
진상眞常의 적멸락과
열반상이 이와 같으니라.
내가 이제 강연히 말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사견을 버리게 하노니
네가 너의 말만 따라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하면
네가 조금이나마 안다고 허락할 것이다.”
지도智道는 게송을 듣고 크게 깨달아 환희용약하며 예배하고 물러갔다.
행사行思는 성이 유劉씨이고 길주吉州의 안성安城 사람이다. 성사에게 묻기를,
“마땅히 무엇을 하여야만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아니하오리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슨 계급에 떨어졌는가?”
행사行思가 말하기를,
“성제聖諦도 하지 아니하거니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성사께서 법기法器로 여기시고 대중의 상수로 삼으셨다. 성사께서 어느 날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마땅히 일방에 분화分化하여 나의 법을 끊이지 않게 하라.”
행사가 드디어 길주吉州의 청원산靑原山에 가서 도를 폈다.
회양懷讓은 금주金州의 두씨杜氏 아들이다. 성사에게 예배하니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고?”
대답하기를,
“숭산嵩山으로부터 왔습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말고 다시 대답하여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대답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하여도 곧 맞지 아니합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어 닦고 증득함을 할 수 있다고 하는가?”
대답하기를,
“닦고 증득하는 것은 곧 없지는 아니하지만, 물들어 더럽혀짐은 얻지 못하나이다.”
성사께서 크게 인가認可하여 말씀하시기를,
“단지 이 오염汚染치 아니하는 것이 모든 대각께서 호념護念하신 것이니 너도 이와 같고 나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서천西天의 반야다라般若多羅(Prajñātāra)께서 미리 예언을 하시기를, ‘너의 족하足下에서 한 송아지가 태어나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하시니 (이것은 회양의 문하에 마조가 나서 설법으로 도생度生하되 그 법을 쓰는 것이 매우 고준高峻하다는 말인 것이다.) 너의 마음에 갈무리해 두고 속히 설하지 말라.”
라고 하시니 회양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성사를 좌우에 모시고 15년을 지내시니 도가 날로 더욱 깊어 갔다. 뒤에 남악산南岳山에 가서 도를 크게 천양하였다.
영가 현각永嘉玄覺은 젊어서 경론經論을 익히고, 또 천태지관 법문을 정밀히 닦아 가다가 『유마경維摩經』을 보고 심지心地가 밝아졌다. 성사의 제자 현책玄策이 천하에 두루 노닐다가 영가와 서로 담론談論하여 보니 말마다 조사의 도에 계합되었는데 현책이 묻기를,
“그대(仁者)의 선생은 누구이신가요?”
영가가 대답하기를,
“나는 선생이 없고 다만 『유마경』을 보다가 도를 깨쳤으나, 아직 증명할 선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현책이 말하기를,
“위음왕威音王이 출세하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위음왕이 출세하신 뒤에는 선생 없이 스스로 깨친 자는 다 천연외도天然外道이다.”
영가가 말하기를,
“그러면 그대가 나를 위하여 증명하소서.”
현책이 말하기를,
“나의 말은 오히려 가볍거니와(輕) 조계에 육조 성사가 계셔서 천하의 수도인이 운집하여 다 도를 받으니 그대도 뜻이 있으면, 나와 같이 가서 법을 받는 것이 어떠한가?”
영가가 기뻐하여 현책과 같이 가서 성사를 뵈올 때 위로 성사의 주위를 세 번 돌고(三匝) 석장錫杖을 떨치고 엄연히 서 있었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대개 도를 닦은 자는 삼천 가지의 위의威儀와 팔만 가지의 세행細行이 구족하였는데, 대덕은 어디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일으키는가?”
영가가 말하기를,
“생사의 일이 크고(生死事大) 무상이 매우 빠릅니다(無常迅速).”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무생無生이 마침내 빠름(速)이 없는 것을 체달體達하여 취取하지 아니하는가?”
영가가 말하기를,
“체體는 곧 무생無生이므로 근본을 요달了達하면 빠름(速)이 없습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옳고, 옳다!”
라고 하시니, 영가가 다시 위의威儀를 갖추어 예배하고 조금 있다가 하직하였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어 가장 빠르지만, 본래 움직임(動)이 아닌데, 어찌 빠름이 있겠는가? 누가 움직(動)이지 아니하는 것을 아는가?”
영가가 말하기를,
“성사가 스스로 분별分別을 내나이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깊이 무생無生한 뜻을 얻었도다.”
영가가 말하기를,
“무생이 어찌 뜻에 있으리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없다면 누가 마땅히 분별分別하는가?”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하룻밤 머물고 가라.”
라고 하시니, 세상이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부르더라.
지황智隍은 20년을 장좌長坐하여 선정(定)에 들었는데, 성사의 제자 현책이 하삭河朔 땅에 이르러 지황의 세상에 알려진 명성(聲華)을 듣고 처소에 나아가 묻기를,
“네가 이곳에 있어서 무엇을 하는가?”
지황이 대답하기를,
“나는 항상 선정(定)에 드노라.”
“네가 선정에 든다고 하니 있는 마음(有心)으로 드는가? 없는 마음(無心)으로 드는가? 만약 없는 마음(無心)으로 선정에 든다고 한다면, 일체의 무정無情한 풀과 나무와 기왓장과 조약돌(草木瓦礫)이라도 다 선정을 얻을 것이고, 있는 마음(有心)으로 선정에 든다고 한다면, 일체의 유정함식有情含識의 무리라도 다 선정을 얻을 것이다.”
지황이 대답하기를,
“내가 바르게 선정(定)에 들 때에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현책이 말하기를,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을 보지 아니하면 곧 항상 선정일 것인데, 어찌 출입出入이 있겠는가? 만약 출입出入이 있으면 대정大定이 아니니라.”
지황이 대답하지 못하고 오래 있다가 묻기를,
“그대의 선생은 누구이십니까?”
현책이 말하기를,
“나의 선생은 조계 육조曹溪六祖 성사입니다.”
“육조께서는 무엇으로 선정禪定을 삼던가요?”
현책이 말하기를,
“성사께서 말씀하신 것은 오묘하고 맑으며 둥글고 고요하며(妙湛圓寂), 체와 용이 여여如如하며, 오음이 본래 공本來空하며, 육진六塵이 있는 것이 아니며, 출입出入이 없으며, 고요함과 어지러움(靜亂)이 없으며, 선의 성품(禪性)은 머문 것이 없으므로(無住) 선적禪寂에 머무는 것을 여의었으며, 선의 성품은 생겨남이 없으므로(無生) 선상禪相을 여의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지만, 또한 허공과 같다는 것이 없는 것이다.”
지황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성사에게 예배禮拜하고, 지황과 대담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자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현책이 말한 것과 같아서, 네가 다만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빈 소견(空見)에 집착하지 말고, 응하여 쓰는 데 걸림이 없으며, 움직임과 고요함에 무심無心하여 범부이다, 성현이다 하는 뜻을 잊으며, 능소能所가 함께 없으면 성상性相이 여여하여 선정定이 아닌 때가 없는 것이다.”
지황이 크게 깨쳐 20년간 얻은 것이 모두 영향도 없더라. 그날 밤에 하북 하남에서 민중民衆들이 들으니 공중에서 크게 외쳐 말하기를,
“지황이 금일에서야 도를 얻었다.”
라고 하였다. 어느 날에 신수가 지성志誠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너는 지혜가 많고 총명하니 남방의 조계에 가서 육조가 법을 설하거든, 네 마음을 다하여 자세히 기록한 뒤에 속히 돌아와 내게 이르라.”
지성이 분부를 받고(稟命) 조계에 와서 법좌 아래에 참례參禮하였다. 성사께서 대중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법을 도적질하러 온 사람이 회중에 숨어 있도다.”
지성이 곧 나와 예배하고 있는 대로 그 일을 아뢰니,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스승이 어떻게 대중에게 보이던가?”
지성이 여쭈기를,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하되 장좌불와長坐不臥하라고 하였습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하는 것이 병이 되는 것이고 선이 아니며, 장좌는 몸을 구속하는 것이므로 저 이치에 이익이 없는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살아서 늘 앉고 눕지 아니하면
죽어서는 눕고 앉지 아니하도다.
한낱 냄새나는 백골白骨을 갖추어
어찌 공과工課를 세우리오.”
지성이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제가 신수에게 아홉 해나 도를 배웠지만, 조금도 계합한 것이 없다가 이제 성사에게 한 말씀을 듣고 본심에 계합합니다. 제자 생사의 문제가 크니 다시 대자비로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선생은 어떻게 계戒·정定·혜慧를 말하던가?”
지성이 대답하기를,
“신수神秀께서 말씀하되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 계戒가 되고, 모든 선善을 행하는 것이 혜慧가 되며, 뜻을 청정히 하는 것이 정定이 된다’고 하더이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스승이 말한 계·정·혜는 사의思議하기 어려우나 내가 설한 계·정·혜와는 다르니라.”
지성이 말하기를,
“계·정·혜는 한가지인데, 어찌 다른 것입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스승에게 계·정·혜는 소승인小乘人을 제접提接하는 것이고, 나의 계·정·혜는 대승인大乘人을 제접하는 것이니66) 자세히 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설한 법은 자성을 여의지 아니한 것이니, 심체心體를 여의고 법을 설하면 이름을 상설相說이라고 하니 자성을 미혹한 것이다. 일체 만법이 자성으로부터 일어남을 깨치면 참다운 계·정·혜법을 알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심지가 그릇됨 없는 것이 자성계自性戒이고,
심지가 어리석지 아니한 것이 자성혜自性慧이며,
심지가 어지럽지 아니한 것이 자성정自性定이고,
증감增減이 없는 것이 자성금강自性金剛이며,
몸이 가고 오나 본래 삼매이니라.”
지성이 뉘우쳐 사례하고 글귀를 바쳐 말하기를,
“오온으로 된 허깨비 몸뚱아리
환이 어찌 구경究竟 되오리까?
돌이켜 진여로 나가려 한다면
법이 오히려 부정不淨합니다.”
성사께서 그렇게 여기시어 다시 말씀하시기를,
“만일 자성을 깨치면 또한 보리 열반과 해탈지견을 세우지 아니하는데, 한 법도 없음이 없어야만 바야흐로 만법을 건립하는 것이다. 만일 뜻을 알면 또한 이름이 각신覺身이고 보리菩堤와 열반涅槃이며 해탈지견解脫智見이니, 견성見性한 사람은 세워도 옳고 세우지 아니하여도 옳은 것이다. 가고 오는 데 자유로워 거리끼거나 막힘(礙滯)이 없으며, 용에 호응하여 따라 지으며, 말에 호응하여 따라 대답하며, 여래화신이 자성을 여의지 아니함을 보아 곧 자재신통自在神通과 유희삼매遊戲三昧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지성이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세우지 아니한 것입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성이 그름 없고 어지러움 없고 어리석음 없어서 생각생각마다(念念) 반야를 관조觀照하여 항상 법상을 여의며, 자유자재하여 이러나저러나 다 이것이어서 무엇을 가히 세울 것인가? 자성을 깨치되, 단박에 깨치고(頓悟) 단박에 닦아(頓修) 점차漸次가 없기 때문에 그런 까닭에 세우지 아니하노라. 일체 제법이 항상 적멸한데 무슨 차제가 있으리오?”
지성이 예배하고 시자가 되기를 원하여 조석으로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때에 신수의 문도들이 신수를 세워서 6조를 삼고자 하였으나, 5조 성사께서 법과 의발을 혜능에게 전하였다는 소문이 천하에 널리 퍼짐을 꺼리어 협객 장행창張行昌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네가 가서 혜능을 찔러 죽이고 의발을 빼앗아 오라.”
라고 하니 이 장행창은 본래 검술을 배워 칼 쓰는 법이 매우 뛰어났었다. 비수검을 싸 가지고 갔는데, 이때에 성사께서 숙명통으로 보시니, 과거 몇 생 전에 장행창의 금전 열 냥을 갚지 아니하였었다. 그 혐의가 있어 행창이 ‘내가 가서 죽이겠다’고 편을 들어 동의한(左袒) 것이며, 또 타심통으로 역력하게 그 간사함을 아시고, 미리 금전 열 냥을 구하여 좌복 사이에 갈무리하여 두고 행창을 기다렸다.
밤이 이슥해지자 행창이 비수검을 끼고 들어왔는데, 성사께서 머리를 늘이고 앞으로 나아가며,
“네 마음대로 베어 가라.”
라고 하셨다. 행창이 비수를 날리어 세 번이나 쳤지만, 털끝만큼도 머리가 상하지 아니하였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올바른 칼(正劍)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올바르지 못하는데, 내가 전세에 너에게 금전 열 냥을 빚지고 갚지 못한 일은 있어도 내가 너의 목숨을 죽인 일은 없노라.”
라고 하시고, 금전 열 냥을 내어 주며 어서 가져가라고 하시니 행창이 크게 놀라서 땅에 꺼꾸러졌다가 다시 깨어나서 슬퍼하고 잘못을 뉘우쳤다. 성사께서 금전을 집어 주어 말씀하시기를,
“어서 가지고 가라. 만약 나의 문도가 알면 너를 해칠 것이다. 네가 다른 날에 얼굴을 고쳐 오면 내가 마땅히 거두어들일 것이다.”
행창이 그날 밤에 멀리 도망하였다. 뒤에 얼굴을 고쳐 출가하여 성사에게 예배하였는데,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생각한 지 오래되었는데, 네가 어찌 늦었는가?”
행창이 말하기를,
“성사께서 죄를 용서하심을 입어 출가出家하였지만,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일찍이 『열반경』을 보았으나 상常과 무상無常의 뜻을 알 수 없으니 성사께서 자비로 설하여 주옵소서.”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떳떳함이 없는(無常) 것은 곧 각성覺性이고, 떳떳한 것은 곧 일체의 선악제법이 분별심인 것이다.”
행창이 말하기를,
“성사의 말씀이 크게 경문과 어긋납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각의 심인心印을 받았는데, 어찌 감히 경전을 어기겠는가?”
행창이 말하기를,
“경에는 ‘각성이 떳떳하다(佛性是常)’ 하셨는데, 성사의 말씀은 도리어 떳떳함이 없다 하고 선악제법과 보리심까지도 다 무상하다고 하셨는데, 성사는 도리어 떳떳하다고 하시니, 이것이 경과 서로 어긋나는 것이므로,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의심만 더하여 줄 뿐입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알지 못하겠는가? 참된 성품이 매우 깊고 미묘하여 인연을 따라 일체의 사법事法을 성취하였는데, 네 말과 같이 각성이 떳떳하여 변치 아니한다면, 다시 무슨 선악제법을 설할 수 있겠는가? 성인은 영원히 성인이 되고, 범부는 영원히 범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겁을 다 지내기까지 하여도 한 사람도 보리심을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하므로 내가 무상을 설한 것이 대각께서 올바르게 이 진상眞常의 도를 설하신 것이다.
또 일체 제법이 만일 무상하다고 한다면, 곧 물물이 자성이 있어서 생사를 포용하여 받아들일 것이니(容受) 무상한 모든 법과 떳떳한 참 성품이 서로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떳떳하여 변치 아니하는 성품이 일체의 선악 모든 법에 원만히 두루 주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일체법이 떳떳함을 설하는 것은 대각께서 올바르게 참으로 무상한 뜻을 설하신 것이다.”
(용성이 말하기를,
“내가 이 대문이 대단히 어려워서 알기는 지극히 어려우므로, 여러 말을 많이 보태어 번역하였으니 그리 알고 보시오.
비유하자면 대해 바다가 변치 않고 움직이지 아니한다면 파도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고, 또 바닷물이 전체가 파도이며, 파도가 전체로 물이고, 또 바닷물도 전체가 젖고 파도도 전체가 젖는 것이다. 파도는 제법에 비유하고, 바닷물은 각성에 비유한 것이다. 바닷물이 떳떳함이 없어서 무량한 파도를 일으키고, 또 파도마다 전체의 바닷물이며, 전체가 젖는 것이다. 참되고 떳떳한 성품이 일체 제법에 두루한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대각께서 범부와 외도는 삿되게 항상함(邪常)을 집착하고, 모든 이승은 저 상常에서 무상無常을 헤아려 한 가지 팔전도八顚倒를 이루기 때문에 저 열반 요의교了義敎 가운데에 저들이 치우친 소견을 타파하고 진상眞常·진락眞樂·진아眞我·진정眞淨을 설하셨는데, 네가 이제 말만 듣고 뜻을 배반하니 천 편을 본다고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행창이 활연 대오하여 게송을 바쳐 말하기를,
“무상심을 지킴으로 인하여
떳떳함이 있는 성품을 설하였도다.
방편을 알지 못한 자는
봄 못에 자갈을 주는 것과 같도다.
내가 이제 공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각성이 눈앞에 나타나도다.
성사께서 서로 주는 것도 아니고,
나도 또한 얻은 것도 없도다.”
성사께서 게송을 보시고,
“네가 이제 뜻에 사무쳤으니 너의 이름을 지철志撤이라고 하라.”
지철이 예배하고 물러갔다.
신회神會 동자는 이때가 나이가 13세였는데, 옥천玉泉으로부터 와서 성사에게 예배하였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어 본래면목을 가져 왔느냐? 만일 근본이 있다고 한다면 합당하게 주인을 알 것이다.”
“신회로 근본을 삼으니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성사가 말씀하시기를,
“이 동자가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며 주장자로 세 번을 쳤는데, 신회가 묻기를,
“성사가 마음공부(心功)를 하심에 도리어 보십니까?”
성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치니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
신회가 말하기를,
“또한 아프기도 하고, 또한 아프지 아니하기도 합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또한 보기도 하고, 또한 보지 아니하기도 하노라.”
신회가 묻기를,
“어떤 것이 보기도 하고, 또한 보이지 아니하기도 합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항상 내 마음의 허물을 보고, 타인의 시비와 선악을 보지 아니하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또한 보기도 하고, 아니 보기도 하는 것이지만,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는 말이 어찌 그러한 것인가?
네가 만일 아프지 아니하면 목석과 같을 것이고, 만일 아프다고 한다면 곧 범부와 같아서 성내는 마음(瞋心)을 낼 것이니, ‘네가 보느냐, 아니 보느냐?’라고 하는 것이 이변二邊이고, 아프고 아프지 아니한 것이 생멸生滅이니, 네가 자성도 보지 못하고 감히 논하는가?”
신회는 백배 사례하고 부지런히 좌우에서 모시고서 잠시라도 떠나지 아니하였다.
성사가 어느 날에 대중에게 보이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지만 천지를 버티는 큰 기둥이 되고, 해와 달같이 밝으며 칠흑같이 검어 항상 동용動用 가운데에 있지만, 거두어 찾아본다면 얻어 볼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모든 사람은 알겠느냐?”
신회가 나와 말하기를,
“모든 대각의 본원이고, 신회의 각성입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름이 없고 글자도 없다고 하는데, 너는 본원각성이라고 이름하니 네가 이 뒤에 종사관을 쓰고 중생을 제도할지라도 다만 지해종도知解宗徒가 될 것이다.”
신회가 훗날에 경락京洛에 들어가 조계종曹溪宗을 크게 천양하였다.
당나라 중종中宗 황제가 조서를 내리시어 내시 설간薛簡을 보내어 성사를 청하였는데, 성사가 병으로써 사표辭表를 올리어 굳이 사면辭免하셨는데, 경성京城의 선덕들이 말하기를,
“도를 얻고자 한다면 좌선하여야만 성취한다고 하니 성사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성사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도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어찌 앉는 데 있겠는가? 경에 말씀하시길, ‘대각이 만일 앉고 눕는다고 하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다’67)라고 하였으니, 가고 오는 것이 없으며, 나고 멸하는 것이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며, 모든 법이 공적한 것이 대각의 청정좌淸淨坐이니, 어찌 앉는 것으로 도를 삼겠는가?”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서울로 돌아가면, 황상이 반드시 물을 것이니, 성사는 자비로 심요법을 가르쳐 주소서. 경성의 도학자에게 전하여 한 등불이 전함에 백천 등불로 옮겨져 어두운 자가 밝을 것입니다. 함이 없는 것과 같이 하겠습니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는 밝고 어두운 것이 없는 것이다.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두운 것이 오나니, 밝고 밝음이 끝이 없음(明明無盡)도 또한 다함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마경(淨名經)』에 말씀하시기를, ‘법은 견줄 데가 없으니 서로 상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68)라고 하신 것이다.”
설간이 말하기를,
“밝은 것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운 것은 번뇌에 비유합니다. 수도인이 지혜로써 번뇌煩惱를 비추어 파괴하지 아니하면, 무시의 생사를 어떻게 해탈하겠습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번뇌가 곧바로 보리이고, 무명이 곧바로 지혜이어서 둘이 없으니, 만일 지혜로 번뇌를 비추어 파괴코자 하는 자는 이승의 견해인 것이다.”
설간이 말하기를,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밝고 밝지 못한 것을 범부는 둘로 보겠지만, 지혜가 있는 자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요달하니, 둘 없는 성품이 곧 진실한 성품(實性)인 것이다. 이 진실한 성품은 범부에게 있다고 하여서 덜하지 않고, 현성賢聖에 있다고 하여도 고요하지 아니하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아니하고, 선정禪定에 거居하여도 고요하지 아니하며, 단상斷常과 거래去來와 중간中間과 내외內外와 생멸生滅이 없어 성상性相이 여여하여 항상 머물러 옮기지 아니하기 때문에 억지로 이름하여 도라고 하니라.”
설간이 말하기를,
“성사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씀하시는 것이 어찌 외도와 다르리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외도의 불생불멸을 말하는 것은 멸滅을 가지고서 생生을 그치고,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니 불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불멸이 아니고, 불생이라고 하지만 불생이 아닌 것이다.
내가 불생불멸을 말하는 것은 본래 스스로 무생無生이므로 이제 또한 멸이 아니다. 그러한 까닭에 외도와는 같지 않은 것이다. 네가 심요를 알고자 한다면, 다만 일체의 선악을 도무지 사량하지 말라. 자연히 청정한 심체에 들어가 담연히 항상 고요하면, 묘용妙用이 항사恒沙와 같다고 할 것이다.”
설간이 활연대오하여 예로써 사례하고 황궐皇闕에 돌아가 성사의 말씀을 황제에게 아뢰었다. 또 그해 구월 초삼일에 조서詔書를 내려 성사를 장려하여 말하기를,
“성사가 늙고 병듦(老疾)으로 사례하고 짐朕을 위하여 도를 닦으라고 하니 나라의 큰 복전福田이로다. 성사는 마침 정명淨明(유마힐) 거사가 비야리毘耶離성에서 병을 핑계를 대어서(稱託) 대승을 천양하여 모든 대각의 마음을 전하며, 불이법不二法을 말하는 것과 같도다. 설간에게 성사가 전하여 주신 대각의 지견을 받으니, 짐朕이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후대에 전할 경사가 있음(積善餘慶)과 전생이 심은 선근(宿種善根)으로 성사가 세상에 출세함을 만나 최상승법을 들으니 성사의 은혜를 감하感荷하여 마지아니합니다.”
하고 마랍법의(磨衲袈裟)와 수정법기(水晶鉢)를 올리며 소주자사를 조칙하여 성전도량聖殿道場을 새롭게 보수하고(一新修補) 이름을 국은정사(國恩寺)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