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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과 삼팔광땡
마 5:3-12
두 번째 주 오늘이 목요일입니다. 그런데 목요일, 금요일까지 8복을 주제로 한 내용을 계속해서 2주간 진행하는 걸로 지금 생각하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12절까지 8복의 전체 내용을 우리가 함께 읽고 그 8복을 또 다른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 같이 읽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의 8복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오복과 삼팔광땡》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여러분, 8복을 전체적으로 한번 봅니다.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바라보느냐 하면 5복과의 연관 하에서 봅니다. 기존에 있던 이 세상의 5복에 주님께서 8복을 가지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8복을 새 복이라고 제가 명했습니다. 새 복을 헌 복과의 관계에서 한번 살펴보면서 아! 8복의 의미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우리 마음에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약에도 복의 개념이 많아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의 8복과는 차이가 있고, 구약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5복과 더 깊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마는 사실은 구약의 복 개념도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깊이 깊이 들어가면 예를 들어 장수다, 물질적인 축복이다, 높아진다, 머리되지 않고 꼬리되게 하신다 이런 말씀들이 있지 않습니까?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성읍에 들어가면 성읍이 복을 받고, 밭에 가면 밭이 복을 받는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 또 자손이 많아진다. 이게 다 5복 중의 하나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서 특히 구약에서 5복처럼 보이는 이런 현세적인 복들이 그 내용을 깊이 들어가면 세상에서 말하는 5복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福의 根源이 되겠다 라고 하는 것에 연관이 되는 거예요.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 구약에 나오는 5복의 의미는 세상의 5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그거는 일단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저절로 깨달아지기를 바라고 세상의 5복과 8복을 집중적으로 한번 비교를 해본다는 겁니다.
우리기 세상에서 보통 亨通이라고 말하잖아요? 형통이라고 하는 것은 사전에 보면 아마 뜻하는 모든 일들이 다 뜻대로 잘 되는 것 이런 정도로 풀이해 놨을 거예요.
그러나 오늘 우리 문맥에서 한번 형통이라는 걸 정의해보자면 모든 일이 5복 중에 어느 하나로 연결돼서 끝나는 것 이게 형통 아닙니까?
성공이 뭡니까? 성공도 목적하는 바를 잘 이루는 것이 성공이에요. 그런데 복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도 틀릴 게 아닌 것이 5복의 성취로 끝나는 것이 결국은 성공입니다.
그간에 혹시 장인정신을 가지고 예를 들어 교수가 되었다 그러면 교수가 됨을 통하여 얻게 되는 명예 이런 것이 아니라 공부 자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요. 연기자가 되어서 대종상을 받고 스타가 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 자체를 좋아하는 장인들이 따로 있습니다마는 99%는 성공이라 그러면 5복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해요. 수백 수천 가지의 직업이 있듯이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또 자기개발서의 단일한 주제를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단 하나로서 주제를 말할 수 있는 그 수천 권의 자기개발서들이 지향하는 단 하나는 결국은 五福의 爭取입니다. 어떻게 5복을 빠르게 확실하게 쥐는 사람이 되느냐 라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느느 게 자기계발서가 아니겠느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 집을 새로 짓잖아요? 그러면 『上梁式』을 합니다.
대들보에다가 상량식의 몇 년도 몇 월 몇 시에 이 대들보가 올라갔다 라는 그 시간을 기록하고 그 밑에다가 써놓는 글귀가 있다고 그래요. 5복이라는 말을 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인터넷 사전마다 이 얘기가 없는 게 없더라구요. 대들보에다 한자를 써놓는데 뭐라고 써놓느냐 하면 應天上之三光 하늘에 삼광 세 개의 빛이 있다. 해 달 별을 말하지요. 하늘의 세 개의 빛에 상응하여서, 備人間之五福 인간의 세계에는 5복이 있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의 세 개의 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그 빛에 상응해서 이 인간 세상에는 5복이 준비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5복이라는 게 뭐냐?
이 땅에 있는 빛의 덩어리들이라 이겁니다. 빛의 덩어리들이 바로 5복이에요. 그러니까 5복을 가지면 사람이 빛이 나는 것이고 5복을 많이 갖게 되면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좋아서 미쳐버리는 것이지요. 빛 光자인데 미칠 狂자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 이 말이 참 재미있는 말이에요. 하늘이 태양과 달과 별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들에게 어떤 ideal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상징 아닙니까? 그 이상적인 세계 속에서 반짝거리고 보이는 것이 세 개의 빛인데 그것에 상응하는 것이 바로 이 땅의 5복이다, 빛 덩어리들이다, 땅에 있는 빛이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복이 너무 너무 좋으니까 밥 먹을 때 숟가락에 복이 들어오라고 숟가락에다 복자를 써놓지요. 젓가락 위 손 잡는데 복을 쥐라고 복 자를 써놓지요. 입고 다니는 옷에 복 자 무늬가 들어가지요. 베개에 복을 베고 자라고 베개에 복 자가 들어가지요.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복이 들어오라고 문에다 복 자를 쓰지요. 복 자가 없는 데가 없어요. 온통 복 복 복 복 합니다.
이러한 5복의 왕국에 8복이 뛰어 들어왔습니다. 주님께서 8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No problem. 기존의 5복에 8복이 더해진 거예요. 다다익선이지요. 13복이 생긴 겁니다. 13복을 가능케 하신 분이 주님이세요. 그러니까 주님의 사역이 복음인 거지요.
그런데 이상한 거예요. 13복이면 복을 갖게 되는 확률도 이전보다 거의 세배 가까이 늘어나는 거 아닙니까? 5복일 때보다는 13복일 때가 13복 중 어느 하나가 걸려드는데 확률이 더 늘어나지요. 그런데 13복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8복으로 멈춰버리고 맙니다.
이 8복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복이라고 하는 개념이 삶에서 누리고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이라고 했더만요. 좋고 라는 단어는 그렇게 좀 뉘앙스가 합당하지 못해요. 약해요. 복은 좋다는 말 가지고는 안 되고 뭐라 그래야 될까요? 짱이다! 또 뭐가 있나? 하여간 너무 너무 좋은 거지요. 좋다란느 말도 만족하다 라는 말도 안 되고 째진다! 배가 불러서 배가 터진다!
그런데 이렇게 짱이고 정말 기가 막히게 좋고 배가 터지는 만족감을 주는 5복이 8복이 오면서 땅의 빛 덩어리들이 아니었습니까? 빛을 잃어버린다 이겁니다. 5복이 더 이상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나를 만족시켜 줄만한 것도 아닌 것으로 落後되어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유가 뭐냐 하면 8복을 주님께서 갖고 오셨다는 것은 어제 말씀 드린대로 천국이 開通이 되었다는 거예요.
제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칼스루에(Karlsruge)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 선배 목사님이 계셔서 그 선배 목사님 집에 방문을 했어요. 그랬는데 칼스루에에서 차를 타고 프랑스에 쉬트라스부르크(Strassburg)라고 유명한 도시가 있습니다. 칼빈이 그 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우리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 들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저의 장로들 목사들한테는. 그래서 쉬트라스 부르크를 방문하는데 자동차로 15분 정도 밖에 안 걸려요. 마음 먹으면 걸어서도 가요. 프랑스 국경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프랑스 국경 너머 그 쉬트라스부르크에 있는 편의점이나 미트에 가서 이 독일보다 싼 것은 거기가서 사람들이 사 가지고 오더라구요. 왔다 갔다 해요.
그런 것처럼 주님께서 이 곳에 오신 것은 천국과 개통이 됐는데 도대체 이 천국 안에 누가 계셨냐 하면 하늘의 세 빛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아들 하나님이 계셨어요. 그 세 빛 이 땅에 내려와 버린 겁니다. 5복이 이 땅의 빛이었는데 천국이 개통되면서 세 개의 빛이 이 땅에 내려오신 거예요.
주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내 안에 아버지가 계셔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도 이 땅에 주님을 통해 내려 오신 거지요?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십니다.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도 주님 안에 계신 거지요?
세 개의 빛이 내려와서 여덟 개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삼팔광땡이잖아요. 하나님이 세 분이 빛덩어리이시고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주님께서 오신 사건을 빛이 어둠 가운데 내려왔고 비추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상량식에서 대들보에 뭐라고 써요? 하늘 위의 세 빛이 상응해서 인간 세계에는 5복이 있다 인간 세계에 5복의 빛의 덩어리가 있다 이 땅에는 5복이 빛이다. 그랬는데 그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늘의 세 빛이 이 땅으로 내려와 버렸어요. 그런데 하늘의 세 빛이 내려왔을 때 어떻게 5복이 빛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세 복이 천국이 개통이 되면서 이 땅에 내려와서 8복을 얘기하시면서 삼팔광땡의 세계가 열렸는데 어떻게 5복이 복일 수가 있겠어요?
삼팔광땡 여러분 저는 사실 삼팔광땡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 삼팔광땡을 안 들어본 사람이 없고 삼팔광땡이 뭔지 몰라도 섰다라는 도박판에서 좋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삼팔광땡을 찾아봤더니 야! 이런 사람이 있더만요. 초등학생이 질문을 뭐라 했냐면 삼팔광땡과 삼팔선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 물어보더라구요. 정말 저보다 더 모르더만요. 삼팔광땡과 삼팔선이 아라비아 숫자가 같다는 것 말고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삼판선은 38선이지요. 삼팔광땡은 3광과 8광을 쥐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는 알아요.
그런데 8복이 주어졌다는 게 바로 뭐냐 하면 그게 인생의 삼팔광땡이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왜냐? 빛의 세계인 빛으로 이루어진 새 빛의 인격이 계시던 천국이 개통이 되어 버렸어요.
여러분!
혹시 가독도라고 들어 보셨어요? 울릉도 들어보시고 제주도 들어보시고 독도 들어 보셨잖아요? 그리고 완도도 있고 섬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독도라는 섬 들어 보셨어요?
부산 서쪽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적한 섬이였습니다. 그 가독도가 지금 난리가 났어요. 어떻게 난리가 났느냐? 그 가독도가 한국의 남단 남해권에 내륙 교통의 관문이 될 뿐만 아니라 부산 신항과 연결이 되면서 세계적인 해양 레저타운이 거기 형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가독도가 동북 아시아의 제 2의 허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농사짓고 그냥 가만히 있던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한 가독도가 갑자기 난리가 나 버렸어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거가대교라고 여러분 뉴스에서 들어 보셨지요? 해저에 터널을 뚫고 길을 낸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이 가독도가 뒤집어진 거예요.
開通이 되면 變化가 일어납니다.
이 지상에서의 내 삶이 천국과 개통이 됐는데도 이 지상에서의 나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거는 개통된 천국 안으로 들어가고 왕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삶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뭐냐?
꿈에도 소원인 5복이 완전히 빛을 바래게 되는 거 이게 바로 천국이 개통되면서 이 빛의 나라인 천국과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8복이 주어지게 되고 삼팔광땡의 역사가 이 천국 개통을 통해 우리 삶에 일어나면서 5복은 더 이상 복으로 간주가 될 수 없게 돼 버린다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의 대변혁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이라는 건 천국과 개통된 삶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천국과 개통이 되면 가독도의 변화는 비교가 할 수 없을 만큼 복의 의식과 복의 개념 자채가 다 뒤집혀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너무나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하늘의 세 개의 빛이 땅에 내려와 버리고 내 삶의 현장에 내려와 버렸으니까 그 동안 빛으로 역할을 했던 5복이 빛을 발 할 수가 없지요.
그 예가 뭡니까? 여러분?
아주 가장 두드러진 예가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던 有無相通.
유무상통은 있는 사람들의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로 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5복을 추구하는 사회구조는 있는 한 사람에게 100사람의 없는 사람들의 돈이 모아져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대혁명 아니에요? 이 혁명을 보고 마르크스는 공산당 혁명을 일으켰습니다마는 그 공산당 혁명과는 관계가 없지요. 형식적인 틀만 보고 제 멋대로 갖다가 적용을 한 거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없는 사람에게 흘러가요. 이것은 신라 명가 아니면 조선시대 명가 경주 최씨 인가요? 그 사람들이 몇 대에 걸쳐서 재산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는 부유한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근 100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굶주림이 없게 했다 유무상통은 이런 덕스러움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유무상통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돈에게도 생각이 있고 인격이 있었다 그러면 인류 역사상 돈이 물질이 이렇게 대우를 못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무시당헤본 적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에요. 물질이 복이 아닌 거 이었다는 거예요. 마음에서 붙잡을 만한 복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습니다.
천국을 들락거리는 모든 사람들 예수님이라고 하는 천국과의 접점을 통해서 천국을 들락거리면서 그 빛의 나라에서 빛에 쏘인 모든 사람들의 특징이 집을 빼앗깁니다, 가족이 이별합니다, 사자 밥이 됩니다, 불에 타 죽습니다, 그래도 웃습니다. 카타콤 동굴에 들어가서 250년 동안을 대대로 물려가면서 아들 낳고 손자 낳고 증손 고손 낳고 하면서 살아가도 웃고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삼팔광땡을 붙잡은 자들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였다는 겁니다. 5복이 더 이상 좋은 것도 아니고 만족하게 해 줄만한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는 거예요. 아! 대단한 거 아니에요?
여러분!
여기서 8복이 처음과 끝이 천국을 갖는 것으로 끝이 나요. 이 천국은 신학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통치 메시아의 통치를 말합니다. 메시아 왕국을 말합니다. 그러나 통치라는 것은 왕과 백성,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를 설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8복이 말하는 것은 이 개념 갖고 이 천국, 하나님의 통치라는 하나의 개념 가지고는 다 붙잡을 수가 없어요. 왕과 통치가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니라 넘어 섭니다.
예를 들어 위로의 복.
위로가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옆자리로 나를 부르신다는 겁니다.
제가 말씀 드렸지요? 교육전도사 때 어쩔 줄 모르고 너무 민망해하고 쩔쩔 매고 있을 때 담임 목사님께서 태전도사 이리 와 옆에 앉히실 때 그 감격과 그 고마움 이게 바로 복이라는 거예요. 8복이 갖고 온 복이 이런 식의 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마음이 가난한 자가라는 게 뭐라고 그랬지요?
이 세상에 지불될 마음이 없는 것이에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5복에 대하여 가난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5복을 맛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다는 거예요. 하늘의 복을 갖게 된 사람들의 특징이 5복을 맛보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천국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그저 맛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기 때문에 통치라고 하는 개념 하나만 갖고는 다 싸잡을 수가 없어요.
따라서 천국이 뭐냐?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봤던 그 하늘나라. 보좌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우편에 인자이신 주님께서 서 계신 그 나라. 천군 천사가 있는 그 나라. 그나라가 지금, 내가 죽어서 갈 그 천국이 내 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지금 개통이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일 경험한 삼층천국 그 천국이, 요한 계시록의 요한 사도가 봤던 그 천국이 지금 실제로 개통이 돼 있다는 거예요. 다른 차원의 공간입니다마는 시공의 차이를 달리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마는 그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인 천국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한 그 곳이 지금 개통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주님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누리게 되는 복들이 8복이라는 겁니다.
아까 위로라는 말도 그랬잖아요. 하나님 옆으로 부르는 겁니다. 하늘에 떠 있던 세 개의 빛이 나에게 다가 온 것이고 나를 그에게 당겨주신 거예요. 주님을 통해서 그 빛 덩어리 옆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서 돈이 빛을 발할 수가 없어요. 오래 사는 게 빛을 발할 수가 없어요. 건강이 대단한 게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얘기 하잖아요? 내가 몸에 가시가 있다. 아! 이유를 알았다. 내가 삼층천국을 보고 나니까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몸에다 가시를 주셨다. 삼층천국을 본 자의 마음을 유지하게 해주시려고, 받은 바 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고해질 까봐 그랬다는 겁니다.
건강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제 삼층천국을 경험한 그 마음과 행복함과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내 몸에 아픔이 있더라도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
여러분!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크리소스톰Chrysostom)(AD 346-407). 아주 정말 강렬한 사자 설교를 한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직설적으로 가감없이 선포하고 강직하게 선포했기 때문에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이 괴로워했어요. 도저히 못 듣겠어서 아카디우스 황제(AD 395-408)가 불렀습니다.
“야! 너 그런 식으로 설교를 계속 하면 완전히 이 세계에서 추방을 해버리겠다.” 그랬더니 이 사람 하는 말이,
“황제시여, 저를 추방하실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왜 너를 추방을 못하느냐?”
“어디를 추방해도 다 아버지가 계신 아버지의 집인데 온 세계가 다 아버지의 집인데 나를 어디로 추방하시겠다는 겁니까?”
약이 바짝 올랐어요. 말에 벌써 약이 오르잖아요.
“내가 너와 관계된 모든 사람의 인간관계 친구관계 다 끊어버리겠다.”
그랬더니 크리소스톰이 한 말이,
“황제시여, 죄송하지만 절대 저에게서 제가 꼭 필요로 하는 친구를 끊어내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했던 나의 영원한 친구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지금 이게 다 하늘나라가 개통된 사람의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카디우스 황제가 또 화가 났습니다. 그래가지고 네 재산을 몰수해버리겠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내 재산은 몰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뚫고 들어와 훔쳐갈 수 없는 하늘나라에 내 재산이 있거든요.”
정말 화가 나서 마지막으로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하니까 하는 말
“아! 저를 죽일 수 없는 이유는 제 생명은 몸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 안에 숨어 있거든요.”
죽여도 못하고 살려도 못하고 추방도 못하고 때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재산을 몰수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이게 누구냐?
천국의 개통함을 백분 이용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위로의 얘기를 했으니까 한 마디 더 하면, 우리가 평소에 원하는 게 뭐에요?
5복을 먼저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 옆에 가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에요. 그걸 승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것을 세상 5복의 말로 하면 貴라고도 말해요. 대통령 옆에 수석비서관 되면 존귀하게 된 거지요. 국무총리 되면 존귀하게 된 거지요. 그렇지요?
불행한 게 뭡니까? 국무총리로 천거받았는데 떨어지는 겁니다. 감사원장으로 천거받았다가 합당치 않다 그래가지고 사퇴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옆으로 가는 게 존귀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천국이 개통돼가지고 하나님이 너 내 옆으로 와! 하나님 옆에 있게 됨을 마음이 느끼게 되고 제대로 실감하게 됩니다. 이때에 대통령이 옆으로 오라 그럴 때 대통령님 죄송하지만 제 일이 좀 바쁘거든요. 귀찮기만 한 그런 상태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예수님 믿고 천국 개통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더라 이겁니다.
이게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 불쌍하거든요.
8복 중에 긍휼이 여기심을 받는다. 긍휼이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이 뭐라구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처지까지 나를 끌어 올리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파티 석상으로 올라간다는 거예요. 천국의 파티 석상에 올라가 있는 자가 궁궐 안 아그립바 왕 앞에 놓여 있습니다. 아니 이 초라한 왕궁에서 자기가 제일인 줄 알고 살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
천국이 개통되면서 일어나는 역사가 이렇게 실질적으로 내 마음에 5복이 추구하는 모든 방면에서 그 5복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도저히 더 이상 좋다고 느끼지 없을 만큼 마음이 하늘의 빛으로 만족하고 기쁘게 된다는 거예요. 5복으로부터의 자유. 이게 바로 8복이 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교회를 가만히 봐요.
여러분 이 5복이 8복으로 극복된 게 아니고, 13복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누리지 못했어도 그걸 이상적으로 삼을 수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8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천국 개통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해도 주님이 말씀하신 8복이니까 5볼 플러스 13복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13복인 교회도 많지 않아요.
8복을 갖고 오셨는데도 교회 안에서도 5복이에요. 8복을 갖고 오신 주님을 주님이라고 믿으면서도 13복도 아니고 8복도 아니고 5복으로 머물러 있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모든 기독교의 진리를 천국을 개통시키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천국 개통 이전에 예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 하늘의 빛이 있는 것으로 하늘로 치부해놓고 하늘로 갈라놓고 하늘로 분리시켜놓고 이 땅에서 바글바글 거리면서 5복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그 5복이 여전히 그 천국이 개통되었다고 교회 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복의 문제이기 이전에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 잘 믿으면 5복 받습니다. 이건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이제는 더 이상 긴가 민가 미루지 말고 단호하게 얘기해야 돼요. 아직도 우리 마음이 돈을 추구하고 있고 재산을 추구하고 있고 건강을 추구하고 있고 오래 사는 걸 좋아하고 있고 높아지고 귀하게 되는 거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교히가 그런다고 그러면 그건 사이비 교회입니다. 이제는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인도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럼 죄를 죄로 인정하고 타락을 타락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돼요.
그런데 지금 교회의 문제가 뭐냐?
5복을 추구하고 있으면서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고 소리쳐 외치고 있습니다. 5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교회 안에 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이유가 뭔지 아느냐? 바로 너희들에게 이 세상 삶에서 모든 저주로 인해 주어진 5복의 빈약함 5복의 박복함이 사라지고 5복을 넘치도록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만 하기 미안하니까 영생을 얻고 죄 사함을 받고 갖다 붙입니다. 그러나 진짜 마음이 어디 있어요? 마음의 소재가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정말 영혼에 있어요?
여러분!
마지막 복이 뭐냐 하면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아들이라는 이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단어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역사가 깁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영원하신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단어보다도 오래된 단어이지요.
그런데 그 단어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입으로 내 마음에다 대고 너는 내 아들이야! 라는 그 아들이라는 영원한 의미가 담긴 아들을 쓸 때 내 마음이 영원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죽음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려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립니다. 영원성을 갖게 되면 크리소소톰처럼 내가 너를 죽이겠다 하는데 나를 죽일 수가 없다 사람이 이렇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죽는다 산다 오래 산다 짧게 산다 부자로 산다 이런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려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왜 그걸 추구해요? 뭣 때문에? 누가 그걸 추구하라고 그랬어요?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도대체 5복은 뭐냐?
5복은 복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것은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품목으로 바뀌었어요. 필요에 따라 기능할 뿐입니다. 8복이 진행되는 가운데 천국이 개통되어서 주님을 접점으로 삼고 주님을 관문으로 삼아서 마음이 천국을 왕래하는 자들이 그 삶에서 8복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그랬잖아요.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게 뭐라구요? 내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 세상에서는 내 명의로 올려놓으신다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필요하면 하나님의 손이 5복을 동원하시는 겁니다.
쓰시는 것 뿐이에요. 기능할 것 뿐이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이루실 때 필요한 대로 썼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면 됩니다. 왜 돈을 안 주십니까? 필요 없으니까. 아! 나는 빚도 많고 뭐도 많고 그런데...
5복에 묶여 있는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시기 위해서 돈을 다 거둬가시는 거라고 보면 돼요. 헌 복에 매여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새 복인 8복으로 천국 개통된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5복에서 목을 졸라대시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딱 맞아요.
이제는 진짜 이렇게 말합시다. 저 역시 당장에 먹고 살 돈이 없으면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존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8복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그런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유무상통의 관계, 집과 재산을 다 몰수하면서도 기쁨으로 안디옥까지 쫓겨 가면서도 직업을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먹고 살 것을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고 다녔던 그들의 천국 개통을 100% 활용하는 삶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천국이 바로 임한 거예요.
여러분!
교회는 천국 개통의 수혜자들의 모임이에요. 그
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이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일은 어떻게 그 8복을 실제로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느냐? 8복과 십자가와 성령님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하게 될 것이에요.
오늘은 8복만 했잖아요. 예를 들어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오늘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다, 위로를 받을 것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배 부를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 복에 해당하는 면을 5복과 비교를 했다면, 내일은 그 8복이 주어지기 위해서 앞에 조건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의에 주리고 이 조건을 염두에 두고 조건이 맞아야 8복을 누리니까. 천국 개통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 주님의 십자가와 8복과 성령님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5복과 삼팔광땡.
하늘에는 세 개의 빛이 있고 그 세 개의 빛에 상응하여서 인간 세상에는 5복이 있었지마는 하늘에 있는 세 개의 빛이 이제 땅에 내려와서 8개의 복을 우리들에게 허락하고 계십니다. 삼팔광땡의 삶 안에서 이 세상의 5복은 마땅히 더 이상 복으로 느껴지지 않는 마음 상태라야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마음 상태인 것입니다.
5복과 삼팔광땡.
8복의 의미가 바로 삼팔광땡이고 8복의 의미가 바로 5복을 빛을 바래게 만든다고 하는 것이 내 삶의 마음에서 느껴지고 있는가 한번 확인해보시는 2011년 새해 벽두가 되시기를 바래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헌 복, 어둠의 세계에서 그나마 그것이 빛이라고 느끼며 추구하고 의지했던 5복을 이제는 하늘의 세 빛이 땅에 내려와 허락하시는 여덟 개의 복을 받음을 통하여 마음에서 떠나 보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2011년 온전히 삼팔광의 복이 가득한 삶이 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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