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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불교사 >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 (38)
이 글은 199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미주현대불교에 번역 연재되었던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인‘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 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한국어로는 이야기 미국불교사로 출판',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 불교 Buddhism in America'를 토대로 하여 이 책들을 다시 인용하여 재구성하여 쓴 글이다.
전체적인 방향은 아래와 같은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 것이다.
미국에 도래하는 불교는 뉴잉글랜드의 초월주의자들이 동양의 대안적 영성을 찾아 나섰던 이래로 150년간 지속되었던 구도역정의 종착지였다. 유럽계 지식인 미국인들의 내밀한 관심사로부터 이른바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변화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사회의 흐름에 대한 반발과 그 대안으로 불교가 당시의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글 | 김형근
미국불교사 밖의 있던 사람들 (1)
미국불교사를 2017년 2월부터 오랫동안 연재하고 있다.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재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바탕으로 그 시기의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배경에 관한 글을 함께 소개하여왔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불교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1893년 세계종교회의를 주장하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진 주장이다. 미주현대불교는 토마스 A. 트위드(Thomas A. Tweed) 노스 켈로라이나 종교학과 교수가 ‘미국과 불교의 만남(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에서 주장한 1844년을 채택하고 있다.
1844년은 보스톤 근교 콩코드지역에 사는 초월주의자들의 내는 잡지‘다이얼-Dial'에 프랑스어 불경을 번역하여 실고, 또 예일대 교수인 에드워드 엘브리지 솔즈베리가 미국인 동양학회(American Oriental Society)에서 불교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한 해이다.
이후 1893년에 시카고 종교회의가 있었는데 이 회의에 스리랑카, 일본에서 불교대표들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이차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선의 대유행 시기인 1950년대의 잭 켈루악, 알렌 긴스버그 등 비트세대, 1960년대의 반전세대와 히피세대등과 샌프란시스코 선원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스즈키 순륜와 일본인 여러 스님들, 북가주에 만불사를 건립한 중국인 선화선사 등을 소개했다. 이어서 1970년대에는 삼발라센터와 나루빠 대학교를 건립한 티베트인 초감 트룽파 린포체가 활동한 시기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중요단체와 인물, 그리고 불교출판사 등을 두루 소개했다. 미국의 타민족 불교계 소개 뿐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미주 한국불교계 활동과 기록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지금까지는 연대순으로 소개하였다면 이제는 미국 불교의 특성이나, 쟁점, 미국의 주요 선원 등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소개에 앞서 미국에서 활동하지 않았지만 미국불교사 책에 언급된 인물 중 불교사에 중요한 인물인 막스 밀러와 팔리성전협회를 만든 토마스 윌리엄 리스 데이비스와 그의 부인 케롤린 리스 데이비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세 사람과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에 참가한 힌두교인 비베카난다(Vivekananda, 1862년~1902년)를 소개한다.
종교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
-비교언어학에서 비교종교학으로 -
인도 연구에 관한 학문 분야를 서양에서 창시한 사람중의 한 명이다.
뮐러는 인도사상에 관한 학술서적과 대중서적을 썼다.
동양학, 비교언어학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막스 뮐러는 1823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유명한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나 <겨울 나그네>의 노랫말을 쓴 독일의 낭만주의 서정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학자이자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어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뮐러는 1841년 18세에 이미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해 인도어 강사를 하면서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뮐러의 뛰어난 언어능력은 계속적으로 그의 학문 여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도어를 배우면서 그는 점차 인도의 다른 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뮐러는 고대 인도의 정신이야말로 인류 본래의 특성을 고스란희 담고 있는 보물창고라고 생각하였다. 뮐러는 고대 인도의 종교 사상 속에는 신이 인간에게 주었음직한 계시의 본래 모습이 손상없이 담겨있다고 굳게 확신했던 것이다. 이후 그의 학문적 여정은 바로 이 인도의 신비를 캐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쇼펜하우어 등 대사상가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하며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는 뷔루느프라는 학자가 활동하는 1845년 파리로 이주한다. 부뤼누프는 <리그베다>를 강의를 하고 있었다. 뷔르누프의 강의에 큰 감동을 받은 뮐러는 <리그베다> 전체를 서구어로 번역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결국 1846,1853, 1856그리고 1862년에 각 한권씩 4권의 <리그베다>의 독일어판을 펴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계속 <동방성전-The Sacred Books of the East> 시리즈를 통해 이어간다. 이 시리즈는 총 5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그리고 중국의 경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중 31권까지가 인도의 경전이다. 이 작업은 1875년 부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에 그는 다시 런던에 유학하여 동양학의 대가가 되었다. 1848년에 산스크리트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옥스퍼드로 거처를 옮겼다가 영국으로 귀화하였으며, 1850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인도-게르만어의 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및 비교신화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한 비교언어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성장하였다.옥스퍼드 시절 뮐러는 본격적인 연구의 꽃을 피우게 되는데 특히 비교 종교학, 비교 문헌학, 비교 신화학이라 불리는 새로운 근대 학문들이 태동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공헌을 하였다. < 동방성전>을 통해서 한 엄청난 번역사업을 위해 다양한 언어학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지만, 그 자신도 베다와 우파니사드, 그리고 대승불교 겅전과 그 밖의 다른 몇 개의 문헌들을 직접 번역하였다. 당시에 그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은 런던이었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세계 각지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었던 영국은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국가들 보다 이방세계에 대하여 많은 문헌과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었고, 거기에다 스페인으로부터 확보한 대서양 해상권은 영국을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다. 또 영국의 잘 정비된 은행제도는 투자집약적인 문화사업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런던은 뮐러의 번역 계획에 최적의 장소였다. 뮐러의 이 작업을 당시 프로이센의 대사였던 분젠(Baron Von Bunsen 1791-1860)의 도움으로 뮐러는 동인도 회사의 재정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인도 고전인 법구경 등 여러 불경과 사서삼경을 번역하였다. 지금도 그가 번역한 불경이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 대표 저서로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가》, 《신비주의학》, 《종교의 기원과 생성》, 《동양 고대 성전 전집》 등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출간한 《리그베다》 등이 있다. 한 평생 성실한 학자였던 그는 평생 오직 한 편의 소설만 남겼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다. 한 인간정신의 자서전적 기록이자, 산업혁명 절정기의 영국과는 또 다른 독일식 낭만적 사랑을 문학 형식으로 보여준 사랑의 지침서로 평가받는다.
막스 뮐러
-김용표 글/ 전 동국대 교수
극동 근대 불교학 태동 이끈 대표 동양학자
‘동방성서’에 ‘법구경’등 10여권 경전 수록
불교 평등·무아사상의 윤리적 탁월성 찬양
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er, 1823~1900)는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태어나 그의 학문적 생애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산스크리트 언어학자이자 근대 종교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이나 음악가가 되고자 했으나 1843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에서 셸링 아래에서 일을 하며 인도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쇼펜하우어와도 만나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인도의 고대 경전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산스크리트 문헌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1845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그는 당대 산스크리트 불교학의 대가였던 유진 뷔르누프(Eugene Burnouf, 1801~1852)의 제자가 되었다. 뮐러를 처음 본 뷔르노프는 “나는 브라만이며 불교도이며 조로아스터교도”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한다. 뷔르누프는 뮐러에게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수집한 『리그베다』사본을 번역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 번역 작업의 완성을 위하여 영국에 건너가 전4권의 교정 번역본을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서구에 인도종교 문화를 소개하는 초석이 되었다.
梵語에 정통한 비교종교학자
영국에 귀화한 뮐러는 1850년부터 옥스퍼드대학의 교수가 되어 인도-유럽어족을 중심으로 한 언어학과 비교신화학을 통하여 종교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신화와 언어와 인간의 심성에 깃들어 있는 종교성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해석하는 작업이 그의 평생의 학문적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1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이 보여주듯 뮐러는 다방면의 학문에 관심이 있었고, 47세 때는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소설 작품도 출판하였다.
1870년 뮐러는 영국왕립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 신학이나 종교철학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인 종교학(Science of Religion)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이는 종교를 모른다(he who knows only one, knows none)”는 말은 그 후 종교학도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뮐러는『종교학입문』(1873)에서 종교의 비교 연구는 종교 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지 않고 여러 종교를 비교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종교의 궁극적 본질을 해명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였다.
뮐러는 종교는 태양과 같이 자연현상 뒤에서 이를 초월하여 있는 무한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무한에의 탐구를 뮐러는 “내 생각에 담을 수 없는 것을 생각에 담으려는 투쟁,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노력, 무한에 대한 열망, 신의 사랑에 대한 추구, 곧 영의 절박한 신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에게 종교 경험은 다른 이름과 형태를 지닌 무한한 것(the infinite)을 인식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뮐러는 베다시대의 종교를 통해 이러한 종교의 본질과 기원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베다의 종교는 자연현상의 배후에서 무한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을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뮐러는 이른바 사제적 종교를 비종교적이라고 비판한다. 사제의 권력으로 발전한 종교는 종교의 제도화와 함께 자연종교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참된 종교는 유한한 자연과의 접촉을 통하여 무한을 인식하는 것이며, 무한에의 인식이 인간의 도덕적 특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양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뮐러는 여러 종교의 신들은 주인 없는 가면이며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지 인간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신화는 언어의 왜곡에 의해 창조된 언어질병으로서의 신들은 누미나(Numina, 신성) 자체가 아니라 노미나(Nomina, 명칭)일 뿐이라고 하였다.
뮐러는 아리안계, 셈계, 투라니안 어계 등 어족에 따라 종교를 분류하였다. 또한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의 어원이 동일함을 알고 따라서 인도신화와 서구 아리안족의 신화의 연계성을 밝힘으로서 인도-유럽어족에 의해 형성된 신화와 종교문화의 유사성을 해명하였다. 이와같이 언어학의 창을 통해 종교를 바라보고자 했던 뮐러의 종교 읽기는 종교 간의 우열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나 종교의 내적 구조와 특성을 간과하는 과단순화의 오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막스 뮐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70년부터 시작한 동방성서 시리즈의 편찬 작업이었다. 당대의 동양학 분야의 대가들이 대거 참가하여 완성한 『동방성서』(SBE)의 출판은 19세기에 이룩한 동양종교학에 대한 금자탑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동방성서』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막스 뮐러의 주요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동방성서』50권 가운데 인도고대종교 관련 문헌이 20권이며 불교문헌은 10권이다. 그 외에 조로아스터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경전 등이 약간씩 수록되어 있다. 뮐러는 인도의 종교 고전 가운데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을 번역하였으며, 다수의 불교 경전도 직접 번역하였다.
제도화된 권위적 종교 비판
뮐러는 1881년에 『동방성서』 제10권으로 출판된 『법구경(Dhammapada)』과 제49권에 수록된 『금강경』, 『대품반야심경』, 『소품 반야심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등 산스크리트 대승경전도 번역하였다. 제49권 가운데 『관무량수경』은 대정신수대장경의 편찬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가 번역한 것이다. 이 밖에도 『동방성서』에는 『법화경』(제21권), 『불소행찬』(제19권), 그리고 『율장』(제13, 17, 20권)과 『미린다왕문경』(제35, 36권)등이 수록되어 있다.
막스 뮐러의 대승경전 번역은 난죠 분유(南條文雄, 1849~1927) 등의 일본 유학생 협조로 이루어졌다. 난죠는 서구의 문헌학을 수용한 최초의 동양의 불교학자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1880년부터 막스 뮐러로부터 서구의 산스크리트와 불교문헌학을 공부하였다. 뮐러는 난죠에게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산스크리트 불교문헌 사본의 입수를 부탁하였다. 난죠는 자신의 출신 종파인 정토진종 동본원사 계통의 여러 사찰에 의뢰하여 다수의 범본 불경을 구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불전 가운데 뮐러는 1880년 아미타경을 먼저 교정 번역하였다. 이 때 밀교 계통의 『불정존승다라니』(The Ushnisha-vigaya-Dharani) 도 범본 교정본과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각 종교를 언어에 따라 분류
베다와 비교종교학에 대한 업적에 비하여 뮐러의 불교학 연구에 대한 기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뮐러는 빨리본 『법구경』을 비롯한 다수의 범본 불경을 직접 교정 편집하고 번역하였으며, 「열반의 의미」, 「붓다와 불교」,「불교의 순례자들」, 「불교 허무주의」, 「비밀불교」 등의 논문을 통하여 서구사회에 불교를 소개하는 데도 노력한 불교연구가였다.
뮐러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다음의 네 차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불교를 윤리체계로 보았다. 특히 불교의 자비사상에서 기독교와의 공통 연결요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둘째, 불교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브라마니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였다. 셋째,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라는 점이다. 넷째, 불교의 열반은 절대 허무주의라는 해석이다. 뮐러는 불교를 브라마니즘에의 반작용과 그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종교라고 보았다. 이러므로 불교를 독립된 종교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붓다를 당시 인도인을 억누르고 있던 윤리적 정신적 삶의 올가미를 풀어준 성인으로 평가했다. 붓다의 위대한 성취는 계급제도와 특권층에 억눌려 있던 인도인에게 참된 평등과 자유의 길을 가르친데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뮐러는 붓다가 가르친 자비의 윤리가 내포한 사회복지적 의미를 주목하고, 평등과 무아의 윤리적 탁월성을 찬양하였다.
1868년 타임(Time)지에 처음 발표된 「열반의 의미」에서 뮐러는 열반을 ‘신과의 합일과 교통’이 아닌 ‘궁극적 소멸(utter annihil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뮐러는 불교의 열반관을 이해하는데 다소 혼란과 난해함을 느낀 듯하다. 영원한 존재자로서의 신과 영혼을 부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뮐러는 절대무의 가르침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뷔르누프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불교연구가들처럼 뮐러도 불교를 무신론이며 허무주의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종교로 이해한 듯하다. 뮐러의 이러한 불교관은 신과 같은 영원한 존재와의 재결합이나 그의 은총을 통해 구원의 성취를 염원하는 서구의 종교적 환경에서는 불가피했던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뮐러는 열반을 단순한 염세주의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열반을 탐진치가 소멸된 정적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윤리적 정신으로 이해하였다. 막스 뮐러는 기독교를 넘어선 지구상의 여러 진리에서 도출된 새로운 형태의 진정한 인간성의 종교의 도래를 희망하였다. 기독교를 상대화하며 종교학이야 말로 인간이 발전시킬 마지막 학문이라고 확신했던 뮐러의 태도는 그 시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에게 뮐러는 모든 종교의 바탕에는 공통적인 성스러움이 있으며 이방인의 종교에 숨겨진 진리의 보고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참된 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오래된 동전이나 비석에 수백 년이 지난 녹이 다 털어내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광채를 드러낼 수 있듯이 모든 종교 안에 숨겨진 비문을 읽을 수가 있다면 모든 종교의 동일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가 단순한 인도 문헌학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모든 종교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노력은 후에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케 했던 것이다.
“모든 종교는 성스럽다”주장
막스 뮐러는 19세기 말 동서종교문화의 교류와 이해에 공헌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다수의 불교 경전을 번역 출판하여 불교를 서구사회에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산스크리트 문헌학 방법론을 일본의 유학생들에게 전수하여 극동의 근대 불교학 태동에도 기여한 동양학자였다.
- 동국대 김용표 교수
김용표 교수는 미국 템플대 대학원 종교학 박사이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하였다. 한국종교교육학회장, BK21세계화시대불교학교육연구단장, International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Editor를 역임하였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첫댓글 서양의 막스뮐러 동방성전 50권
동서양학자들의 수고한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재가불자지만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고로
불교적 사유를 청화스님과 법능스님과
금타대화상님의 예언말씀과 금강심론의
생활화를 위한 보리살타 운동을 통하여
요익중생 사상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