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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우촌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봉암공소 신자들.(봉암공소 제공) |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정광열 신부 / 청주 봉암성지 담당 겸 맹동본당 주임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충북 음성 맹동면 봉암성지, 순교자 6명 배출한 신앙 터전
최양업 신부 방축골·계마대 교우촌 방문하고 신학생 선발
청주교구, 지난해 봉암공소를 성지로 선포
신앙 전통 덕에 맹동면 일대 신자 비율 타지역보다 높아
옛 교우촌 성지 개발하기 위해 ‘땅 한 평 사기운동’ 벌여
코로나 시대의 힐링센터 같은 성지로 개발하고 싶어
[인터뷰 전문]
한국교회의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증거자로 기억되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
올해는 탄생 200주년이자 선종 160주기가 되는 해인데요,
최양업 신부의 주요 사목지로 순교자 6명의 신앙과 삶의 터전이었던 교우촌이 지난해 성지로 선포됐습니다. 바로 충북 음성 맹동면에 위치한 봉암성지인데요.
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맹동본당 주임 정광열 신부 연결해 봉암성지의 역사와 교회사적 가치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정광열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올해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과 함께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지내고 있는데요, 신부님께서는 특별히 어떤 의미를 더 새기며 지내고 계십니까?
▶이곳에 본당 신부로 와서 봉암공소가 순교자들을 배출한 순교지라는 것을 알았어요. 또 조사하다 보니까 최양업 신부님과 깊은 연관성이 있더라고요. 최양업 신부님께서 전국의 신앙촌(교우촌)을 방문하면서 사목하실 때 아주 가까운 봉암성지를 통해서 오며가며 쉬시고 사목을 하시던 곳이었습니다. 200주년을 맞이해서 이곳이 성지가 돼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했어요. 여기서 여섯 분의 순교자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봉암성지가 지난해 성지로 선포됐는데요, 어떤 곳인가요?
▶봉암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부터 박해를 피해서 천주교 신자들이 이주해 살던 교우촌입니다. 신자들이 방축골과 계마대라는 두 곳에서 신앙촌을 이루면서 살던 곳입니다.
▷교우촌의 흔적은 어떻게 발견이 됐고 지금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요.
▶교우촌의 흔적 같은 거는 농사를 지을 때 구들장이나 기와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또 여기에 90살이 넘으신 어르신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의 구전을 통해서도 방축골과 계마대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순교하신 분이 6명이나 된다고 하셨는데요, 이분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까?
아니면 그냥 구전으로 남아 있는 겁니까?
▶그 자료는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 박사님이 순교자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찾아낸 겁니다. 예를 들어서 충주 관아에 붙잡혀서 돌아가실 당시에 소속되어 있던 관아 자료에서 찾아낸 것으로서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는 분들입니다.
▷현재 봉암성지에 있는 봉암공소가 1897년부터 이어져오는 공소인데요, 신자들이 몇 분이나 계세요? 옛 교우촌의 후손들이신가요?
▶공소 설립은 1897년 감곡성당으로부터 됐습니다. 이곳의 신앙 공동체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박해로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건데요. 다행히 30년 뒤에 배티성지에서 세례를 받은 정모선 요셉 형제님이 이 동네에 신앙을 전수해 줘서 그때서부터 신자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50가구 중에 반은 신자들입니다.
▷병인박해 때 진천 배티에서부터 음성 방축골까지 깊은 골짜기 골짜기마다 형성된 교우촌이 15개나 되는데요, 다른 지역에 비해 대대로 이어져 온 순교자 후손들의 믿음과 신앙이 남다르다고 느끼실 때가 있으세요?
▶제가 와서 순교자들이 여기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재조명을 해 왔습니다.
봤더니 음성 지역은 주민의 15%가 천주교 신자입니다. 일반적인 복음화율이 10% 정도인데 여기는 15%나 됩니다. 그리고 여기 맹동성당, 부촌성당, 꽃동네성당 이렇게 해서 성당이 준본당 이상이 3개나 있습니다. 그리고 맹동면만 보면 복음화율이 최소 25%가 넘습니다. 신앙의 깊이나 넓이로 보면 그런 데이터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특별히 순교자들의 순교 신앙을 이어받아서 그게 삶에 남아 있는 거죠. 이렇게 높은 복음화율은 순교의 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성지가 선포가 됐는데 성지 조성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저희는 열악한 상황이니까 신자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시간을 내서 도와주시거나 본인들이 돈을 모아서 도와줍니다. 저는 또 예수의꽃동네형제회 소속 신부니까 꽃동네에서 장비도 빌려다가 기초를 조금씩 다지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한 평 기부운동’의 첫 번째 기부자셨더라고요. 어떤 바람으로 가장 먼저 마음을 보태셨습니까?
▶제가 이곳이 성지가 돼야한다고 생각하고 나서 영명 축일을 맞이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축일을 맞이해서 들어온 축일 예물을 몽땅 성지에 ‘땅 한 평 사기운동’에 봉헌했죠.
▷성지를 조성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만 앞으로 어떤 작업들이 더 필요한가요?
▶공소 위치가 성지로 지정이 됐습니다만 실제로 신앙촌이 있었던 자리는 방축골과 계마대입니다. 그래서 성지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신앙촌 자리였던 방축골과 계마대의 부지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갖춘 성지로 조성이 되고 후대에 전해지길 바라십니까?
▶2021년의 삶은 코로나로 인해서 상당히 각박하고 힘들잖아요. 이런 삶 속에서 과거의 순교자 분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살아가던 봉암성지의 신앙 정신을 이어 받았으면 합니다. 코로나 사태에 직면한 신자들이 순교 정신을 가지고 산다면 이런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정신적, 영적 힐링센터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싶고 그렇게 개발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성지 순례나 미사가 가능한가요?
▶순례는 언제든지 가능하고요. 지금도 청주교구민 위주로 하루에 세 분, 네 분 정도 방문하시고 주말에 더 많이 방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지에서 미사는 공소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봉헌하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에 많은 신자들의 순례와 기도가 이어졌으면 좋겠는데요, 신앙 선조들이 순교로 세운 한국교회의 후손들로서 오늘의 모든 신앙인들이 어떤 자부심과 믿음으로 살아가길 당부하고 싶으세요?
▶최양업 신부님께서 힘들고 어렵게 말 타고 걸어 전국의 교우촌을 다니시면서 사목을 하셨잖아요. 특히 봉암성지는 신부님께서 자주 다니셨고 자주 방문을 하시면서 기도와 미사를 하셨던 곳입니다. 또 여기서 신학생(*순교자 김백심 암브로시오의 막내아들 김 사도요한. 김 사도요한도 1868년 서울에서 순교)을 선발하셨어요. 최양업 신부님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봉암성지에서 순교 신학생(김 사도요한)이 나왔으니까 성소의 묫자리 역할도 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순교적인 마음,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봉암성지를 사랑한 만큼 이제 이곳을 방문하는 신자 분들이 최 신부님의 열정과 사랑을 배우고 느꼈으면 합니다. 또한 봉암 출신 순교자 여섯 분이 계시는데 여섯 분들의 신앙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터전이 될 거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난해 성지로 선포된 청주교구 봉암성지 담당 정광열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인터뷰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cpbc 김원철 기자(wckim@cpbc.co.kr) | 입력 : 2021-06-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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