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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십시오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은
짐은 내려놓고
십자가는 지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그런데 우리는 짐은 지고
십자가는 아니 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요?
인생의 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짐이고
하나는 책임과 의무입니다.
이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은 죄의 짐입니다.
예수께선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죄 짐을 벗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짐을 지고
힘들어 하면서
십자가를 져서 힘들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요?
<”짐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십시오”, 주일 설교 중>
마지막 절망으로 소망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권력자들과 종교가들의
회 칠한 무덤 같은 허위와 거짓에
구토를 느끼며 피 끓는 분노로
돌을 들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학력고하 인종을 불문하고 뭇 인간들의
육적인 어둠과 검붉은 죄에
애통해 하며 예언자의 깃발을 들고
뜨겁게 외치던 날도 있었습니다.
세월 지나 내가 나로 절망하던 날
십자가에 달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늘을 향하여 외치시는 주님의 절규를 들으며
견고히 무너지지 않던 나의 성이 무너지던 날
나는 나의 죄와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나를 못 박기를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지 아니하고 어찌 내 안에
주가 살아계실 수 있으랴
오늘 이 깊은 겨울 밤
주의 십자가로 내가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가기만을
마지막 절망으로 소망을 간구합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인간의 죄를 드러낸 것이며
인간의 죄를 씻기신 것입니다.
나의 죄를 속량한 사건임을 믿는 자에게는 <연>
그저 바라만 봅니다
십자가에서 참 사랑을 봅니다.
진정 나를 사랑하는 그분을 봅니다.
그래서 그저 바라만 봅니다.
때론 눈이 멀어 그저 가슴으로
눈을 감고 바라만봅니다.
수 많은 낱말들을 다 잊은 채
큰 그리움에 젖어
그 먼 거룩한 곳에서
이 낮고 천한 곳에
어둠과 죄에 빠져 있는 나를
찾아주신 그 님이
내 생명 구하려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홀로 흘리셨으니
입을 뗄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봅니다
그 사랑에 빠져
감사의 눈물로 바라만 봅니다
시간을 넘어 영원히
그 사랑 중에
내가 스러지기를 빌며
<이주연>
<오늘의 단상>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악의 씨가 될 수 있습니다.<연>
십자가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사랑의 사건으로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신 계시입니다.
이는 하나님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계시이기도 합니다.
그 사랑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주의 진정한 사랑의 감동을 받아 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죽은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함을 받는 큰 사랑에 감화감동되어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은
주의 절대적 사랑 안에서 내가 죽고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사랑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경험을 통하여
비로서 우리는 완전한 사랑 자체를 경험하며
그 사랑의 감동에 힘입어
그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마침내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께 이르게 됩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은
큰 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입니다.<연>
새해에는 십자가로 새롭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진정한 자유는 구원이며
구원은 십자가를 통하여 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거짓과 불의, 미움과 질투, 탐욕과 집착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육으로부터 자유케 하며
죄로부터 자유케 하며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자유케 된 삶만이
진정한 새날 새해를
누리게 됩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넘버 원이 되려 말고,
온리 원(only one)이 되십시오.
자기만의 꽃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강물 위에서
오늘도 이 밤 떠나가고 마는
시간의 강물 위에서
하루의 생애와 이별하며
날개 깃을 가다듬습니다.
다시 만나지 못할
흘러가버린 생애를
홀로 차가운 창가에서
가슴 속에서나마 품고 기리는
사랑의 순간을 주시니 은혜입니다.
흘러 돌아오지 않는 이 순간이기에
오직 영원하신 당신의 가슴 안에서
기억될 수 있기만을 갈망합니다.
오늘도 티끌을 다 벗지 못한 채 지낸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자비로
죽음과 시간의 강을 건너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당신께 이르는 강을
건널 수 없음을 아오니
주의 십자가와 은혜만을 의지하여
간구합니다. <이주연>
8복의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한파가 몰아친 겨울
큰 항아리골 산마루엔
시퍼렇게 살아있는 하늘이 열리고
깨어난 영혼은 새하얀 구름이 되어
기도로 피어 오른다.
주여,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육을 벗어난 영으로
가난한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탐욕을 벗어난 영으로
슬퍼하는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모짐에서 벗어난 영으로
온유한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교만에서 벗어난 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불의에서 벗어난 영으로
자비한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무자비함에서 벗어난 영으로
깨끗한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더러움에서 벗어난 영으로
평화를 이루는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분노에서 벗어난 영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영으로 살아있게 하소서
비굴함에서 벗어난 영으로
이 산마루 이 하늘 아래에 오르는 모든 영혼들에게
8복의 영성이 깃들어 주의 참 제자가 되게 하소서.
평창군 대화면 큰항아리골 산마루에서
<오늘의 단상>
죽은 자에게만 더 이상의 리스크가 없습니다.
리스크를 관리하십시오.
그리고 그 스릴을 만끽하십시오.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결코 꿈을 포기하지 말라
좋은 수단을 통해 좋은 목적을 이루려고 해야 한다.
즉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빨리 이루려고 하기 보다
목표가 더디 이루어지더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고 분별해서
정당한 수단 방법으로 성공하려고 해야 한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대개 꿈의 차이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지식과 지혜가 월등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다른 꿈과 환상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축복하려고 할 때 먼저 꿈을 갖게 하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을 때 그 꿈을 따라 축복하신다.
천재성이 무엇인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머리가 있는 것이다.
은혜가 무엇인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있는 것이다.
복된 가문을 여는 길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은 천대까지 복을 내려주신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재산이 아닌 믿음을 물려주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되고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되는 최적의 길이다.
크게 헌신하고도 공로의식에 젖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후퇴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된다.
자신에 대해 "나는 머리가 나쁘고 지혜가 부족해!" 라고 너무 탄식하지 말라.
남을 많이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습관을 가지면 최고의 지혜자가 되고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될 수 있다.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라
사랑한다면 계속 기대하고 쉽게 부정적인 단정을 하지 말라.
계속 믿어주라. 삐뚤게 나간다고 해서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정말로 나빠진다.
하나님이 삼손을 그 가정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믿음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상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의 신실한 믿음이다.
자녀가 현재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신실한 믿음을 남겨주며 계속 기대하면서 기다리라.
그리고 늘 기도하는 부모가 되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녀를 위해 부모가 해줄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역시 기도하는 일이다.
위기때 인물이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고 쓰시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쓰신다.
입다 이후의 사사들인 입산, 엘론, 압돈의 사적이 별로 기록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가 평화시대로서 대적과 시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보면 위기때 인물이 나온다.
시험이 없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시험이 없으면 준비도 없고, 발전도 없고, 승리도 없다.
시험이 실력 향상에 필수적이듯이 문제는 영력향상에 필수적이다.
지금 전도가 필요한 이유
드 한 박사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를 조사해 다음과 같은 통계를 냈습니다.
-35세 이후에 개종을 할 확률: 5만 명 중에 1명
-45세 이후에 개종을 할 확률: 30만 명 중에 1명
-75세 이후에 개종을 할 확률: 70만 명 중에 1명
호라티우스 보나르 박사는 아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무신론자였다가 개종을 한 사람, 혹은 교회를 그냥 다니기만 하다가 진짜 믿음을 갖게 된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총 253명 중에서 20세 이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사람은 138명, 20세부터 30세 사이에 일어난 사람은 85명, 30세부터 40세 사이에 일어난 사람은 3명, 40세부터 70세 사이에 일어난 사람은 3명이었습니다.
똑같은 진리와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는 연령대에 따라서 성공할 확률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복음을 전할 가장 확실한 기회는 언제나 바로 오늘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마음에 믿은 적이 없다면 기독교인은 될 수 있어 도 기독인(크리스천)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종교로서가 아니라, 생명으로 믿으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가장 중요한 전도를 내일로,
또 나중으로 미루지 않게 하소서.
언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작은 습관이 더 중요하다
국내에서 열리는 환경기술세미나에 참석한 한 외국의 교수가 남긴 소감 입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 환경을 보존하고자 열리는 환경기술세미나에 참여할 때마다 나는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세미나의 대부분은 고급 호텔에서 열리고 냉방은 너무 강해 추위를 느낄 정도다. 참석자 중 많은 사람들은 연비가 안 좋은 고급 세단을 타고오고 기사까지 대동을 한다. 만찬장에는 쉴 새 없이 풍성한 음식들이 나오고 대부분 절반 이상은 남겨진 채로 버려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환경을 보존할 수 있을지, 미래에 어떤 기술을 통해서 공해를 막을 수 있을지를 쉴 새 없이 토론하고 발표한다. 이처럼 환경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모순이 일어난다. 그러나 더욱 말하기 부끄러운 것은 나 역시도 때때로 이런 모순 덩어리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간디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또 그 말처럼 스스로 물레를 돌리고 옷감을 짜 입었기 때문에 비폭력무저항 운동과 함께 계몽운동인 카디, 스와데시 운동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습관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커다란 줄기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습관부터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깨달으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 주소서.
나의 작은 습관들을 통해 이웃사랑과 하나님사랑을 나타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장애물이 높을수록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다시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회기 본능이 있습니다.
평생을 하류로 내려오며 성장했던 연어가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거친 물살을 헤쳐야 하고, 높은 경사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연어의 여정에서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어는 하루에 약 15킬로미터 정도를 올라가는데 일반적으로 3달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자신이 태어난 곳을 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올라가는 길에 폭포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어는 물살을 타고 힘차게 연속으로 뛰어 오르며 폭포를 올라갑니다. 폭포가 높을수록 연어의 점프력도 더 높아지는데 통상적으로 3미터 정도를 뛰어오르는 연어는 폭포의 높이에 따라서 15미터까지 뛰어오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높은 폭포라도 연어는 이겨내고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연어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원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회개로 주님께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것과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높을수록 뛰어넘을 능력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장애물이 높을수록 내가 아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 안에 있을 때만 행복 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역경을 이겨낼 힘을 얻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믿음과 양심의 가책
미국 재무부에는‘양심을 위한 기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여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만 그것을 갚을 방법이 없어진 사람들이 보내는 기금인데, 1800년대에 이 기금이 생긴 뒤 200년이 넘게 꾸준히 모인 돈은 3백만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보통 이 기금을 내는 사람들은 간단한 사연이 적힌 쪽지를 함께 보내는데, 처음으로 기금을 낸 사람은“이제야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다. ”라는 내용과 10달러의 돈을 보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2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낸 적도 있습니다.
또 한 번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단체로 세금을 지금까지 속였었다며 남은 금액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말씀을 같은 자리에서 들었던 성도들로“나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양심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라는 쪽지와 함께 돈을 보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불의하게 축적한 재물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믿음과 양심의 사이에서 갈등하지 말고 언제나 성경에서 해답을 찾으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양심을 속임으로 주님을 기만하는 성도가 되지 않게 하소서.
오늘 해결할 수 있는 양심의 거리끼는 일들은 오늘 해결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계를 얻어도 채울 수 없는 것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16살에 장군이 되었습니다.
18살까지 수십 차례의 전쟁에 나섰으나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약관의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30살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땅을 정복했는데, 당시 알렉산더가 정복했던 영토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오히려 많은 땅을 정복했음에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기에 죽었습니다.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거두고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마음의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서 연회를 열어 술을 마셨는데, 무려 20일 간이나 계속되었고 나중에는‘헤라클레스의 잔’이라는 집채만한 잔에 술을 담았습니다. 결국 무리한 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렉산더는 연회 도중에 쓰러졌고, 열병을 앓다가 세상을 허무하게 떠났습니다. 세계를 정복했음에도 기쁨이 없었기에 결국 술에 빠져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해도, 세상의 모든 돈을 가져도 하나님의 부재로 인한 마음의 공허함은 절대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헛된 것을 바라고 꿈 꾸는 삶이 아니라 귀한 진리의 복음을 쫓는 삶을 사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풍요의 마음을 허락하소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감동이 없는 신앙생활
평생을 인도의 빈민가에서 봉사했던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녀가 빈민가에서 봉사를 하게 된 계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마더 테레사는 40살이 될 때까지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주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그 어떤 감동이나 열정,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40년 가까운 신앙생활에 큰 회의감을 느낀 그녀는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인도의 빈민가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중대한 인생의 반환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그토록
힘든 일을 평생 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
신앙생활에 감동이 없고 사랑과 용서보다 미움과 시기가 우리 마음에 가득한 이유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신 예수님, 날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매일 마주보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진실된 마음으로 조금 더 깊게 기도와 묵상을 하며 주님을 느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불행을 극복하는 꾸준함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이력만 놓고 보면 절대로 장관이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며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할렘에서 자랐습니다. 학교 성적도 평범해 우등생 대열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역경을 헤쳐내고 장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다음은 콜린 파월이 직접 밝힌‘인생 규칙’의 일부입니다.
1.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점점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2. 선택은 신중하게 하되, 일단 시작하라.
3. 다른 사람이 나의 선택을 대신 하게 하지 말라
4. 사소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라.
5. 침착하라, 친절하라!
6. 공을 절대로 혼자서 차지하지 말라.
7. 긍정적인 행동과 시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습관도 지속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영육이 풍성해지는 좋은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지혜를 위한 좋은 습관을 허락하소서.
나만의 인생규칙을 만들어 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내가 할 수 있는 일
스탠리 스테인이라는 남자는 한센 병에 걸려 시력을 잃었습니다.
살이 썩는 병에 걸린 것만 해도 괴로운데 한 순간에 장님까지 되자 남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결국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어 ‘작가가 되는 법’ 이라는 책을 한 권 사서 가족들이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며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책을 쓰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는 “나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의욕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책을 읽고, 또 쓰고자 하는 내용을 녹음해 필사를 부탁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5년 만에 ‘이제는 외롭지 않습니다. ’라는 수필집을 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한 권의 책으로 스테인은 유명한 작가가 되어 한센 병에 결리기 전보다 훨씬 유명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신 마음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면 두려움 없이 그 일을 향해 전진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마음에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용기를 얻게 하소서.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신앙의 복리법칙
‘노력의 복리법칙’은 축구선수의 연봉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A선수가 49가지 기술을, B선수가 51가지 기술을 갖고 있을 때 두 선수의 연봉 차는 얼마나 될까요.
A선수의 연봉이 3200만원이라면 기술 2개를 더 가진 B선수는 산술적으로 3600만원이면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3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치열한 승부의 순간에 0.1%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영국 탁구 국가대표 선수이자 금메달리스트인 매슈 사이드는 ‘베스트 플레이어’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A4 용지 1장의 두께는 0.1㎜입니다. 한 번 접으면 0.2㎜가 되고 두 번 접으면 0.4㎜가 됩니다. 저자는 ‘같은 방법으로 30회를 접으면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묻습니다. 제가 직접 계산해 보니 1073㎞ 하고도 741.824m가 나왔습니다.
출발은 0.1㎜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접을 때마다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한 번 더’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 2개 차이가 연봉 몇 배의 차이로 나타나듯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력의 복리법칙입니다.
노력의 복리법칙을 신앙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하나를 더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앙의 복리법칙이 인생 성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기묘한 레시피
동네 국수가게에서는 국수와 함께 매운 청양고추를 줍니다. 저는 국수를 좋아해서
별다른 찬이 없어도 잘 먹는 편입니다. 그래서 국수를 먹을 때 청양고추를 함께 먹는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투박한 된장에 고추를 푹 찍어 먹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너무 맛있는 것입니다.
오징어는 또 어떤가요. 구운 오징어는 고추장에만 찍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심방 갔던 성도의 집에서 새로운 소스를 줬습니다. 간장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였습니다. 이 조합이 어울릴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상상 밖의 고소함을 선사했습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맛은 ‘단짠’이랍니다. 달고 짠맛이 함께 있다는 의미죠. 저는 단맛을 그리 선호하지 않고 짠맛에도 너그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짠’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너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아.’ ‘환경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심지어 성격도 다르잖아.’ 이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서로 만난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 줄 기쁨을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편)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태국 유소년축구팀 소년들이 동굴에 갇혔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립된 지 17일 만에 축구팀 코치와
선수 13명이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돌아온 데는 숨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영국 전문 잠수사가 그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미군 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 90여명이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구조된 소년들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살핀 호주 의사의 도움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축구팀의 코치였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동굴에서 두려움에 떠는 소년들을 추스르며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는 소년들을 내보낸 뒤 가장 마지막으로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원로 시인 구상의 ‘꽃자리’란 시는 이런 내용입니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면 그것이 추함이고 부끄러움이 됩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할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명예로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계십니까.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오프사이드 반칙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2002 한일월드컵 때 독일의 대문호 귄터 그라스가 발표한 축시 ‘밤의 경기장’입니다. 축구공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꽉 찬 관중석. 꽉 찬 인생.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에도 인생은 언제나 단독자(單獨者).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습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골을 넣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숨 막히는 상황. 그때 심판의 호각이 울립니다. “오프사이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환호하는 관중과 골을 넣어 성공하겠다는 열망 속에 심판의 선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영적인 오프사이드가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들보다 앞서가면 방향을 상실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용사 조지 뮐러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심판이신 하나님의 호각이
울립니다. ‘오프사이드!’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창조성의 원리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성’입니다. 틀에
갇힌 생각, 과거에 매인 방식이 아니라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창조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창조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 인물로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철의 권력을 누리던 느부갓네살 왕에게조차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거룩한 영의 사람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창조적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창조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는 거룩했습니다.(단 1:8)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품고 세상과 구별되게 산 것입니다. 그는 충실했습니다.(단 6:4)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단 6:10)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창조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오늘 하루
주어진 일들을 거룩하고 충실하게 기도하며 감당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우리는 창조성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마지막 인생의 최고의 선택
아흔 살 할머니가 병실에서 “이제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는 더는 병실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난감해하는 의사에게 아들이 말했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날 겁니다.”
노마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마지막 1년을 여행하며 보냈습니다. 그의 사후에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 책에는 질병의 고통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쓰지 않았습니다. 마치 젊은 시절처럼 멋지게 파마를 한 할머니가 애완견을 데리고 낯선 세계를 흥미롭게 다니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행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 생각했습니다. 사형장의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데 2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2분, 나머지 1분은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인생에는 정한 날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때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최고의 선택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자신을 돌이켜 볼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전
12:7)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목표가 분명한 인생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의 매슈 에먼스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2위와 격차가 한참 벌어져 과녁을 맞히기만 해도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에먼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과녁을 겨냥한 다음 격발했습니다. 총알은 과녁 정중앙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녁을
맞혔다는 효과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맞힌 과녁은 다른 선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치고 8위로 떨어졌습니다.
에먼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마지막 순간 실수를 했습니다.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아홉 발까지 선두로 나서다가 최종 한 발에서 결정적 실수로 4위로 추락했습니다. 그의 사격 솜씨는 대단했으나 목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불운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체코 여자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딴 카트리나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습니다. 사격대회의 과녁은 잘 맞히지 못했지만 큐피드의 화살만큼은 제대로 맞힌 셈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인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녁을 향해 총을 쏘듯 집중력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주소서’ 기도에
대한 단상
존 달림플이 쓴 ‘단순한 기도’를
보면 기도의 형태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원의 기도’ ‘감사의
기도’ ‘회개의 기도’ ‘찬양의 기도’ 등입니다. 사실 이런 정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청원의 기도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뜻합니다.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표현하는 기도이죠. 회개의 기도란 우리의 삶과 행실 가운데서 주님 앞에 죄지은 것과 연약한 것을 아뢰고 참회하는 기도입니다. 찬양의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와 존재, 이름을 높여드리고 경배하는 기도이지요.
나름대로 기도의 구력이 갖춰지고 신앙의 연륜을 얻으면 청원의 기도보다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이게 딜레마입니다. 아무리 ‘주소서’ 기도를 하지 않는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려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달림플은 이 갈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청원이 곧 기도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청원의 제목들이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이를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달라는 위탁인 것이지요.
‘주님 들어주세요’ ‘해결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뭘 들어 달라는
것인지, 왜 해결해 달라는 것인지, 누구를 위해 달라는 것인지를
점검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지역감정을 극복하라
대통령은 여섯지역 출신의 여섯 자녀를 거느린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어느 한 자녀도 버릴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정치 리더들은 각 지역에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 개발 분야의 차이를 둘 수는 있지만
사랑과 관심의 온도는 같아야
차이를 차별로 의식하지 않게 된다.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기심만 잘 다스리면
지역감정 문제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런 불행한 감정 및 상황을 극복하는
선봉장이 되라고 부름 받은 존재이다.
축복받은 후에 잘하라
잘못된 곳을 찾아다니면
능력이 있다고 선전하는 그런 거짓 종교인에게 미혹되기 쉽다.
오히려 능력이 없어 보이는 자기 담임목사를 힘써 높여주고
섬겨주는 태도가 훨씬 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하는 태도이다.
잘못된 서원기도는 기복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왜 기도 응답이 없는가?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기도 중에 불신앙적인 잘못된 기도들도 많다.
입다의 너무나 비통해하는 모습이 자기 딸을 진짜 번제로 드린 모습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처녀로서 회막봉사자로 평생을 지냈을 것이다.
사실 번제의 의미가 '헌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 해결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문제 해결은 축복의 과정에 있는 것이고
진짜 목적지는 헌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이탈하지 않을 때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된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
후퇴해야 할 때 후퇴할 줄 아는 것이 용기이고
그렇게 후퇴하면서도 꿈과 비전을 잃지 않는 것이 위대함이다.
목표 위주보다는 사람 위주로 나가라.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면서도 선교와 나눔을 위한
달림과 걸음을 잠깐 멈출 줄 아는 절제력을 보여주라.
문제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라.
문제를 따라가면 평생 문제를 따라가다가 끝나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면 문제가 따라오다가 결국 지쳐서 포기한다.
그처럼 문제가 지쳐서 포기하고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힘이 바로 영력이다.
인생 역전을 꿈꾸라
항상 승리만 하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실패앞에서 낙심하지 말라.
패배한 인생 경기장을 나서면서 마음이 물처럼 녹지말고
패배한 인생 경기장을 다시 바라보며 새로운 투지를 불태우라.
비참한 일을 당할 때 누구나 낙심하고 절망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절망의 기간을 최소로 단축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과거에 어떤 불행한 체험을 했고 앞으로 어떤 불행한 체험을 해도
성도의 내적 가치는 잃지 않는다.
물론 남들이 자신보다 더 재능이 있고, 똑똑하고, 더 잘생길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역전 인생을 원하면 라함처럼 현재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민하게 행동하라.
과거의 직업이나 행적이 결코 성공의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또한 과거의 실패가 현재를 결코 주장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 다음에는 거룩한 자유혼을 가지고 살라.
하나님 안에서 자유혼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 결국 역전인생의 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