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 부제:행원의 노래 머리말
힘들고 외로울 땐 화엄경을 읽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경(經) 어느 하나가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만, 유독 화엄경은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화엄경에는 부처님의 세계가 한량없이 펼쳐집니다. 부처님의 끝없는 자비, 끝없는 사랑, 끝없는 긍정, 끝없는 믿음, 끝없는 밝음, 그 끝없는 광명이 펼쳐집니다. 그와 함께 저를 끝없이 사로잡는 아픔과 어둠도 함께 사라집니다.
화엄경에는 오직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 중생을 향한 그 애닯은 마음, 간절한 아픔, 끝없는 서원만 가득합니다. 중생의 고통이 한량없어도, 중생의 어리석음이 말을 못해도, 부처님은 오로지 희망과 자비, 그리고 서원을 발(發)하십니다. 그리고 끝없이 우리를 믿으십니다.
화엄경엔 중생의 고통이 가감없이 설해집니다. 중생의 서러운 모습, 부끄러운 마음,안타까운 삶이 조금도 더함도 덜함없이 설해집니다. 그와 함께 저 중생이 아무리 어리석고 저 중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기어코 큰 보리, 큰 깨달음 이루어 저 중생의 아픔, 그리고 어린 마음을 기어코 밝게 만들어 마침내 저들을 구제하리라는 끝없는 보살의 서원이 지칠 줄 모르고 피로해 하지 않는 그 서원이 서럽도록 사무칩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그 끝없는 광명, 밝음의 펼침! 그 끝없는 광명, 그리고 희망 앞에 저의 어둠, 저의 아픔 모두 사라집니다. 아득하게 이어져 오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던 저의 서러움, 근원을 알 수 없던 그 힘든 몸부림이 대방광불화엄경, 그 일 곱 자에 모두 사라집니다.
이 책은 화엄경과 보현행원품에 관한 개론서입니다. 화엄에 관한 연구는 예로부터 많이 이루어졌으나, 화엄을 보현행원의 관점에서 본 것은 제가 알기로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화엄을 보현행원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까지 보던 화엄과는 많이 다른 면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기존 화엄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다룰 때 예술, 철학, 과학, 종교 등의 입장이 다른 것과 비슷합니다. 예술만 하더라도 문학, 음악, 미술이 같을 수가 없으며, 문학만 하더라도 시와 소설, 희곡 등이 다루는 형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보현의 시각에서 화엄을 본다함도 그런 의미로,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관점의 차이에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보현행원의 관점에서 본 것이 이 책입니다. 또, 보현행원을 화엄경의 관점에서 본 것 역시 이 책입니다. 따라서 화엄경과 보현행원이 함께 있는 것이 이 책으로, 왜 화엄이 보현이며 보현이 화엄인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화엄은 불교의 여러 사상에서도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희유한 가르침입니다. 불교 중 적지 않은 가르침이 어둡고 부정적인 면이 강한데 비해, 화엄불교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습니다. 또 다른 불교가 정적(靜的)인 면이 강한 것과 달리, 화엄불교는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그리고 화엄은 언제나 전체적 입장에서 사물을 관조합니다.
이런 화엄불교는 21세기에 딱 알맞은 가르침으로, 화엄을 공부하면 현대과학의 첨단 사상인 양자역학, 끈이론, 다중우주, 복잡계 과학 등의 이론이 함께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로 화엄은 일부 과학자나 화엄학자들의 말씀처럼, 현대과학이 부딪힌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탓인지, 예전과 달리 이제는 화엄강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보현행원강의도 꽤 자주 열립니다. 그런데 아직도 화엄강의에 보현행원이 없고, 보현행원강의에는 화엄이 없는 듯합니다.
화엄강의에서 보현행원은 맨 나중에 따로 결론으로 설해지는 경우가 많고 처음부터 화엄과 보현행원이 함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화엄에서 보현을 봐야하는데 보현은 어디까지나 맨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뿐입니다. 또 보현행원강의는 보현행원품만 붙잡습니다. 행원품에 설해지는 보현행원이 화엄의 어느 부분과 연계가 되는지 연결을 시켜야 하는데, 그냥 행원품의 열가지 행원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저 광활한 화엄의 소식이 보현행원 강의에 실리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보현행원과 연계되지 못한 화엄, 또 화엄과 연계되지 못한 보현행원은 반쪽 화엄 반쪽 보현행원이라 할 것입니다. 화엄은 보현행원과 연계되어야 하고 보현행원은 화엄과 또한 연계 되어야 참으로 밝고 원만한 화엄, 보현행원이 되리라 봅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이 책은 제가 울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부처님 스승님 은혜가 사무쳐서 울었고, 알게 모르게 저지른 저의 지난 날 숱한 잘못이 안타까워 울었고, 풀리지 않는 금생의 제 모습이 처량해서 울었고, 힘든 이웃들에게 별 도움 못되는 저의 무능력이 한심해서 울었고,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공업(共業:중생들이 함께 짓는 업)의 어둠이 슬퍼서 또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고, 그때마다 화엄경을 읽고 보현행원을 서원하며 어둠을 탓하지 말고 밝은 등불을 가져오라는 스님 말씀을 생각하며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 그리고 중생 부처님들께 저의 작은 정성 공양 올립니다.
이 인연 이 공덕으로, 부디 저같이 모자란 이가 아니라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난 분들이 나오셔서 보현행원을 설해 주시기를. 그리하여 행원의 노래가 온 국토 온 세계에 울려퍼지이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불국 이루리
나무보현보살마하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https://youtu.be/4TaYcphfA-w?si=-52jliDD8OKusTBE
https://youtu.be/frQKiUDy-mk?si=03ApCipe-CwlzaUm
첫댓글 올 1월부터 시작한 5개월의 작업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6월 초에 원고를 넘겨줄 것이므로 다음 주까지 끝내야 합니다.
실지로 대부분 끝나고, 이제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쓰고 싶은 것은 한량없지만, 지금까지 쓴 것만 해도 A4 용지 400매가 조금 넘습니다.
물론 글자 크기가 11이라 10으로 줄이면 몇 쪽 나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무리 해야할 듯합니다.
이 원고를 완성하는데, 카페 불자님들이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화엄경보현행원품강의를 마치며 시방의 모든 선지식에게 발원을 드려본다. 부디 저같이 모자란 이가 아니고, 훌륭하고 뛰어난 분들이 나오셔서 보현행원을 설하셨으면... 아는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부족한 것 투성이인 저같은 사람이 보현행원을 떠드니 보현행원이 제대로 전달되었을 리가 없다. 큰스님 떠나신 후 거의 아무도 설하는 분이 안 계시는 것 같아 저라도 나서야겠다 싶어 밑도 끝도 없이 보현행원을 말씀드렸지만,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드렸을지, 생각만 해도 부끄럽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행원을 전하면서 저보다 뛰어난 분들의 보현행원 강의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저보다 수행도 깊고 공부도 많이 하신 분들이 행원을 설하시면 더 많은 분들이 감동하고 발심하실텐데, 그러면 공부도 수행도 일천한 저같은 사람이 보현행원을 설한다고 나서지 않아도 될텐데... 그리고 저는 선지식이 설하시는 보현행원을 가만히 듣고 찬탄만 하면 될텐데... 어쨌든 저의 행원의 노래는 끝나고 이제 다시는 노래 부를 일 없을 것 같다. 부디 많은 선지식들이, 보현행원을 설하시길 발원드린다. 그리하여 온 누리 온 곳 방방곡곡에 보현행원의 노래 가득 울리기를...
보현행원은 실천 불교 입니다
재가불자로서, 생활인으로서 일상의 해결하고 신경써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난관을 이겨내시고,
부지런히 정진바라밀을 닦으셔서
이 귀한 법문이 책으로 출간되니 얼마나 희유하고, 큰 공덕일지 모르겠습니다.
방일하지 않고 한시도 쉬지 않고 정진하며
모든 부처님 모시는 일에 매진하고
두려움과 나태함과 좌절과 두려움과 분노와 치심에 물들지않고
보현행원의 전법과 실천에 일생을 바쳐오신
보현선생님의 깊은 원력에 찬탄, 감사드리며
진정한 보현행자로서 보여주시는 모습에 기뻐합니다.
모든 불보살께서도 큰 가피 주실 것이며 함께 기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불국 이루리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