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칼럼] (48) 교회는 새로운 허파가 필요하다 / 윌리엄 그림 신부
지난 11월 19~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과 일본 사목 방문에 나는 일본주교회의의 초청을 받아 기자단의 일원으로 함께했다.
과연, 아시아 가톨릭교회의 심장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양한 민족 출신의 태국 신자들을 비롯해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여러 동남아 국가의 신자들, 붉은 국기를 흔드는 중국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한국인들과 필리핀인들과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체로 그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종교적 소수였고 더러는 억압받는 상태에 있었기에, 교황은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더 큰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고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사실 세계 가톨릭 신자 대부분은 교황이나 그의 언행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미사 중 감사 기도에서 교황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교황의 가르침이나 관련 뉴스를 실제로 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교황은 그저 신화 속 인물에 가깝다. 그러나 교황은 그들이 속한 더 큰 공동체와 동일시되는 상징이다.
도쿄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교황청과 그들이 펼치는 활동이 사실은 가톨릭교회와 얼마나 관련이 적은가를 깨달았다. 교황, 그리고 서류 가방을 들고 그를 수행하는 추기경들과 대주교와 주교들과 사제들은 흥미로운 볼거리이지만, 진정한 교회는 태국의 뙤약볕과 일본의 빗속에서도 교황 집전 미사가 거행되는 경기장들이나 행사장들로 오가는 길에 드문드문 서 있던 군중 안에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전자담배 때문에 허파가 망가진 미국의 열여섯 살 소년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 소년은 살아나려면 양쪽 허파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다행히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활력이 있어서 수술 예후는 아주 좋다는 내용이었다.
허파 이식 수술이라고 하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자주 언급하곤 했던 ‘서방과 동방, 두 허파로 숨 쉬는 교회’가 생각났다. “교회는 두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한다!”(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 54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말한 서방은 크게 보면 유럽의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동방은 정교회를 가리킨다. 둘 다 그리스도교의 꺼져가는 불꽃이다. 둘 다 완전히 망가진 허파들이다. 새로운 허파로 교체하는 일이 그 소년만큼이나 시급하다.
물론 두 허파는 적어도 1500년에 걸쳐 신학과 영성과 전례, 미술과 음악, 선교와 사목과 봉사에서 심지어 의복 양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다. 지금 두 허파는 회복 불능 상태로 병들어 있다.
두 개의 병명이 있다. 하나는 ‘홀로코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온갖 잔학무도한 만행의 대명사인 ‘굴라크’(소련의 교정노동수용소 관리국)이다. 동서방 그리스도교가 1500년 이상 이어온 뒤에도 여전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잔학 행위가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었다면, 분명 그 허파는 실패한 것이다.
물론 그 가해자들은 동서방 어느 쪽 그리스도인도 아닌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의 극악무도한 짓은 그리스도교의 영역 안에서 계획되어 일어났고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두 허파가 진정으로 성령을 들이쉬었더라면, 1500년이 지나 내쉰 날숨은 세상 누구도 그런 행위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도 없게 만들었어야 옳았다.
아우슈비츠 이후, 그리고 소련의 마가단 수용소 이후, 서방과 동방의 두 허파 모두 더는 건강하지 않으며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식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 덕분에 수술은 시작됐다. 우연의 일치이자 섭리인 듯,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지역에 초점이 맞춰진 최근의 아마존 시노드는 쪼그라들어가는 동서방 그리스도교의 허파가 교체되는 출발점이었을지 모른다.
이번 시노드는 서방의 관례가 아닌 아마존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생생한 현실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며 새로운 교회 리더십의 시작을 알렸다. 아직 시작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이식 수술이 어떻게 시작되어 펼쳐질지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까지, 최근의 교황들은 아시아를 교회의 미래라 일컬어 왔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에게 그 말은, 본토에서 시들어가는 서구 그리스도교가 이식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와 남반구를 가난과 억압, 폭력과 차별과 몰이해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충실하게 이끌어 주시리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성장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낡은 허파들이 처음에 숨을 고르던 것도 실은 그런 환경이었다.
서방과 동방, 또는 로마나 콘스탄티노플에 본보기나 승인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는 제시할 본보기도, 결정할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 더 큰 몸인 교회에 속해 있음을 상기시키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몇몇 사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들은 실패했다. 이제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성령의 숨을 내쉬도록 숨을 고르고 힘을 되찾을 곳을 찾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변두리’라고 부르는 곳을 겸허하게 바라볼 따름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UCAN 발행인)
※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