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입니다."
형사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여의도 고층 오피스텔 32층.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희미한 선을 그었다.
시신의 주인공은 박재훈, 45세. 중견 투자자문사 '퀀텀캐피탈'의 대표였다. 책상 앞에 쓰러져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여전히 뉴욕 증시 차트가 떠 있었다.
**'S&P 500 +0.65% 사상 최고치 경신'**
민혁은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녹색 막대들이 위로 솟아 있었다. 다우지수 +0.48%, 나스닥 +0.82%. 모든 지표가 상승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후배 형사 이수진이 말했다.
"뭐가?"
"증시가 이렇게 올랐는데, 왜 죽은 거죠? 대박 나서 기절한 건 아닐 테고."
민혁은 책상 위를 살폈다. 커피잔, 노트북, 펜. 그리고 찢어진 메모지 한 장.
메모지에는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6847.25 → 6891.43'**
**'비 / 상승 / 패턴'**
**'누군가 알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수진이 물었다.
민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웅덩이에 떨어진 빗방울이 동그란 파문을 만들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이 사람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아."
민혁은 박재훈의 노트북을 열었다. 암호가 걸려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보기를 원하는 것처럼.
최근 검색 기록을 확인했다.
- "S&P 500 강수량 상관관계"
- "기상 데이터 시장 예측"
- "뉴욕 서울 동시 강우 패턴"
- "누가 날씨를 조작하는가"
"미쳤나?"
수진이 중얼거렸다.
"날씨로 주식을 예측한다고? 그게 말이 돼요?"
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메일함을 열었다. 받은 편지함에 제목 없는 메일 하나가 있었다. 발신자는 익명이었다.
**'당신이 발견한 패턴, 혼자만 아는 게 좋을 겁니다.'**
메일이 온 시간은 어제 밤 11시 47분. 박재훈이 죽기 약 2-5시간 전이었다.
"협박 메일이네요."
수진이 말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밖을 다시 보았다. 비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수진아, 혹시 지난 6개월간 뉴욕 증시 상승일과 서울 강수일을 비교해볼 수 있어?"
"네? 그게 무슨…"
"일단 해봐. 그리고 기상청 데이터도 구해."
수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꺼냈다.
두 시간 후, 수진이 결과를 가져왔다.
"형사님, 이거… 좀 이상해요."
그녀가 내민 자료에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지난 6개월간 서울에 비가 내린 날과 뉴욕 증시 상승률을 비교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상관관계가 있었다.
서울에 비가 내린 날, 뉴욕 증시는 평균 0.4-0.7% 상승했다. 맑은 날에는 거의 변동이 없거나 소폭 하락했다. 확률은 약 78%.
"우연이겠죠?"
수진이 말했다.
"78%는 우연치고는 너무 높아."
민혁은 그래프를 응시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날씨와 주가. 대체 무슨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가?
"박재훈이 이 패턴을 발견했고,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데 문제는…"
민혁은 메모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누군가 알고 있다'**
"누군가가 이미 이 패턴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박재훈이 그걸 눈치챘고."
"그래서 죽였다?"
"가능성은 있어."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퀀텀캐피탈 사무실로 가자. 거래 내역을 확인해야 해."
퀀텀캐피탈은 여의도 증권가 중심부에 있었다.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직원은 세 명뿐이었다.
"대표님이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아요."
비서 김유리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최근에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나요?"
민혁이 물었다.
"글쎄요… 한 달 전부터 뭔가에 몰두하시더라고요. 날씨 데이터를 계속 보시고, 새벽까지 차트를 분석하시고."
"거래는 어땠나요?"
"수익률이 굉장했어요. 지난 3개월간 거의 매번 수익을 냈어요. 마치 미래를 아시는 것처럼."
민혁과 수진은 눈빛을 교환했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자, 패턴이 명확했다. 박재훈은 서울에 비가 예보된 날마다 뉴욕 증시 선물을 매수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수익을 냈다.
"대박이네요."
수진이 감탄했다.
"너무 대박이야. 그게 문제지."
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수익률이면 누군가 눈치챘을 거야. 특히 같은 패턴을 쓰던 사람이라면."
"그럼 범인도 이 패턴을 이용하던 사람이란 얘기네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민혁은 창밖을 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뉴욕 증시, 장 시작 30분 만에 0.3% 상승'**
다음 날 아침, 민혁은 또 다른 신고를 받았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 31세 김현우. 개인 투자자.
사인은 박재훈과 동일했다. 책상 앞에 쓰러져 있었고, 모니터에는 뉴욕 증시 차트가 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메모지.
**'패턴 / 누군가 / 위험'**
"연쇄살인이에요."
수진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혁은 김현우의 거래 내역을 확인했다. 역시나. 지난 2개월간 서울 강수일에 맞춰 매수했고, 높은 수익을 냈다.
"두 사람 다 같은 패턴을 발견했어. 그리고 둘 다 죽었어."
"그럼 범인은…"
"이 패턴의 원조. 가장 먼저 발견하고, 가장 오래 이용해온 사람."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융감독원에 연락해. 지난 1년간 비슷한 거래 패턴을 보인 투자자 리스트를 요청해."
그날 오후, 리스트가 도착했다. 총 7명의 투자자가 해당 패턴을 보였다. 그중 가장 오래된 거래 기록을 가진 사람은 한 명이었다.
**'정우진, 52세. 전직 기상청 연구원. 현 프리랜서 투자자'**
"이 사람이에요?"
수진이 물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부터 이 패턴으로 거래했어. 수익은 연간 약 20억.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같은 패턴을 쓰기 시작하자…"
"패턴이 알려지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시장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입을 막으려 한 거지."
민혁과 수진은 정우진의 집으로 향했다. 서초동의 조용한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민혁은 관리실에 연락해 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서재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컴퓨터 소리가 들렸다.
민혁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정우진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응시한 채.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민혁이 말했다.
정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체념이 어려 있었다.
"알고 있었어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언젠가는 들킬 줄."
"3년 전, 우연히 발견했어요."
정우진이 말했다.
"기상청에서 일할 때, 뉴욕과 서울의 기압 패턴을 연구하고 있었죠. 그러다 이상한 상관관계를 발견했어요. 서울에 비가 내리는 날, 뉴욕 시장이 특정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걸요."
"왜죠?"
수진이 물었다.
"기압 변화가 투자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있어요. 비 오는 날엔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맑은 날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경향. 하지만 시차 때문에, 서울의 날씨가 뉴욕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전에 매수할 수 있었죠."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재훈과 김현우를 죽인 겁니까?"
정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뭐라고요?"
"저는 안 죽였어요."
민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 누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우진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 패턴을 아는 사람이 더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저보다 더 먼저 알았을 거예요."
화면에는 거래 내역이 떠 있었다. 하지만 정우진의 것이 아니었다.
"이게 뭐죠?"
민혁이 물었다.
"한 달 전부터 추적하고 있던 계좌예요. 익명 계좌인데, 저와 똑같은 패턴으로 거래하고 있어요.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제가 이 사람의 패턴을 따라 한 거죠."
"더 먼저?"
"네. 이 계좌는 5년 전부터 활동했어요."
민혁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래량, 타이밍, 패턴. 모두 완벽했다.
"계좌 주인을 추적할 수 있나요?"
"불가능해요. 역외 계좌거든요. 추적할 방법이 없어요."
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때, 수진이 뭔가를 발견했다.
"형사님,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다.
**'미팅 - 4월 12일, 오후 3시, 여의도 IFC몰'**
오늘 날짜였다.
오후 2시 50분. 민혁과 수진은 IFC몰 3층 카페에 잠복해 있었다.
정우진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미끼였다. 범인을 유인하기 위한.
"나타날까요?"
수진이 속삭였다.
"나타날 거야. 정우진이 패턴을 알고 있다는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시계는 3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깔끔한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는 정우진 옆에 앉았다.
민혁은 귀에 꽂은 무전기로 신호를 보냈다.
"타겟 확인. 대기."
남자와 정우진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민혁은 입술을 읽으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5분 후, 남자가 서류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병이었다.
"지금이야!"
민혁이 소리쳤다.
경찰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남자는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경찰이다! 움직이지 마!"
남자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병을 확인했을 때, 민혁은 확신했다.
독극물이었다.
경찰서 조사실. 남자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신원 확인 결과, 그의 이름은 최동훈, 48세.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였다.
"왜 그들을 죽였습니까?"
민혁이 물었다.
최동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패턴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당신만의 비밀을."
침묵.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이용했던 패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어요. 박재훈, 김현우, 정우진. 모두 당신의 패턴을 따라 했죠."
민혁은 테이블에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패턴이 알려지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요. 시장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제거한 거죠."
최동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당신은 몰라요."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5년 동안 혼자 발견하고, 혼자 검증하고, 혼자 위험을 감수한 게 무슨 의미인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놈들이 공짜로 따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내 것을 훔쳐 가는 거죠."
"그래도 사람을 죽일 순 없죠."
"시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예요. 그들이 살면 내가 죽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움직인 거예요."
민혁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탐욕이었군요."
"탐욕?"
최동훈이 비웃었다.
"생존이에요. 생존."
사건은 해결되었다. 최동훈은 구속되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혁은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그쳤다. 거리는 서서히 마르고 있었다. 웅덩이도, 빗방울도,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증권사 앱 알림이었다.
**'뉴욕 증시 혼조세. S&P 500 -0.12%'**
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패턴은 깨졌다. 너무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시장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비밀은 비밀로 남아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
"형사님."
수진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다음엔 무슨 패턴을 찾을까요? 달의 위상? 별자리?"
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패턴을 찾아. 우주의 질서를, 시장의 법칙을. 하지만 결국 가장 예측 불가능한 건 사람의 마음이야."
창밖으로 햇살이 비쳤다. 젖었던 거리가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비는 그쳤다. 차트는 다시 움직였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패턴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