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30일 - 젊게 사는 사람이 젊은 거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보다 빠르다. 시간은 총알 보다 빠르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고단했던 항해를 끝내고, 마리나에 쉬는 중인데 묘하게도 시간에 쫒긴다. 제네시스의 잔 고장들을 최대한 고치고, 특히 윈디 인디게이터를 고쳐야 안전하게 항해를 떠날 수 있다. 어제는 잠수도 하고 하루 종일 택시로 부품 가게들을 찾아 다녔다.
지금까지 수리 완료 내용
냉장고 수리 = 완료
메인시트 줄 끊고 다시 엮기 = 완료
급수 호스 교체 = 완료
텐더 좌석 구하기 = 완료
콕핏 시트 세척 = 완료
0 오늘 할 일
윈드인디게이터 수리
항해등 2개 교체
빌지 펌프 호스 교환 및 교체
화장실 전동 변기 분해 청소
스피드 센서 수리
유수 분리기 오물 다시 한 번 빼기
0 내일 할 일
디젤 값 돈 찾기.
엔지니어 만나기
발전기 임펠러, 오일 교환.
오후 2시 디젤유 공급.
0 출발 전 스스로 할 일
붐 볼트 교체하기(매우 중요!)
엔진 오일 및 기어오일 체크
해치 방수 작업
선외기 오일 교환
임펠러 교환(?)
시동 스위치 커버
이외에도 수십 가지 일들이 남았다. 가능하면 임대균 선장팀이 오기 전 마무리 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특히 윈드인디게이터 작업이 마무리 되어야 할 텐데... 또 걱정이다.
여기 장기 계류 중인 외국 선장들은 느긋하다. 언제까지! 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배를 고치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 세일요트 선장의 삶이다. 노동이 아니라 누리는 삶이다. 누구라도 인사하면 즉시 멈추어 서서 잡담을 나눈다. 비즈니스에 얽힌 사람들이 아니고, 같이 바다를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니 반갑다. 작은 정보라도 서로 나눈다. 시간에 쫒기는 바쁜 선장은 오직 나 하나다. 낙원 같은 랑카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BIOS가 한국인으로 프로그램 되어서 그렇다.
오전 7시 30분. 시리얼로 간단히 식사하고 오늘의 수리 작업을 시작한다. 먼저 스피드 센서 청소. 스피드 센서를 꺼내보니, 이런! 해조류가 단단히 들러붙어 있다. 다 긁어내고 칫솔로 깨끗이 닦아낸 다음, 다시 조립하고 수건으로 들어 온 물을 퍼낸다.
오전 8시 30분. 김석중 선장님이 오셨다. 일단 윈디인디게이터와 마스트 등의 작업에 대해 의론한다. 문제는, 내가 더 젊지만 기술이 없다는 것. 결국 김석중 선장님이 마스트에 올라가시고 내가 밧줄 조정과 필요 물품을 올려주는 보조를 하기로 한다. 이런 작업을 몇 번 하시고, 본인의 요트에 전자 장비는 직접 설치 하셨다니 대단하다. 역시 익숙한 솜씨로 배선을 점검해 나가신다.
오전 9시 김석중 선장님께서 마스트를 타신다. 중간에 stream 등을 먼저 수리하신다. 등 커버가 다 깨져서 임시로 전기 테이프를 감사 놓고 전등을 교환하신다. 더 올라가서 윈드인디게이터까지 가셨다. 대단하다. 누가 70대 중반으로 볼 건가?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윈드인디게이터, 이거 커넥터가 깨지고 빠졌어!”
“고치는데 얼마나 걸리시겠어요?”
“5분!”
정말 다행이다. 커넥터 끼우고 에폭시 접착제와 검정 전기 테이프로 마무리 하신다. 마스트 등도 교체하시고, 드론으로 촬영까지 하라고 하신다. 작업과 촬영이 다 끝난 후, 여유있게 마스트에서 내려오신다. 나이가 젊어서 젊은 게 아니다. 젊게 사는 사람이 젊은 거다. 나이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또 하나 배운다.
윈드인디게이터 수리 뒷정리를 하고, 김석중 선장님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한다. 김선장님이 쿠쿠 밥솥에 밥을 짓고, 내가 감자볶음을 한다. 간장 양념인데, 다행히 잘 드신다. 배터지게 점심을 먹었다. 이제 나는 빌지 자동 펌프와 화장실 전동 변기를 수리한다.
그러나 오후 내내 해도 잘 안 된다. 기술자를 불러야 한다. 빌지 호스에 하도 숨을 불어 넣었더니 어질어질 하다. 어차피 수요일 오전에 기술자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 보자. 대신 김석중 선장님께 빌지 펌프를 얻고, 물 배출 호스를 4미터 사서 비상용으로 준비하자. 또 마스트 램프도 몇 개 구매해 두자. 마스트 램프가 언제 또 나갈지 모른다.
내 작업이 끝나면 김석중 선장님의 오일과 연료 필터 교환을 도와드릴 예정이다. 만약 내일 기술자가 오지 않거나 지나치게 가격을 높여 부르면 할 수 없이 또 변기를 왕창 뜯어야 한다. 해보자 안 되는 일은 없다. 너무 지쳐 내가 안하는 것이지.
오후 4시에 김선장님과 마리나 요트 용품점에 간다. 거기서 마스트 등 2개를 샀다. 한 개 65링깃 (18,614원) 비싸다. 택시 (6링깃 : 1,718원) 를 타고 멀티 샵에 간다. 호스 4미터를 사는데 45링깃 (12,886원)이다. 실수로 고압호스를 샀다. 상식이 없으니 이런 실수를 한다. 거기서 메인세일 시트가 꼬이지 않도록 양쪽으로 돌아가는 튼튼한 고리를 산다. 이제 시트가 꼬이면서 감기거나 닳아 없어지지 않을 거다. 수도 호스에 대한 상식은 없어도, 내가 요트 운영방식에 대한 상식은 좀 있는 편이다. 라며 자위한다.
저녁에 Charlie's Bar and Grill Langkawi 에서 김석중 선장님과 멋진 저녁 식사를 한다. 말레이시아니까 가능한 일이다. 한국 같으면 어마 무시한 가격이 나올 거다. 진짜 신밧드의 모험 같다. 3일전까지 죽을 고생을 하며 항해하고, 오늘은 오아시스 같은 랑카위에서 마리나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며 김석중 선장님의 세일링 이야기를 듣는다.
젊은 독일 친구인데, 두 다리가 없어. 그런데도 기어 다니면서 세계일주 세일링을 하는 거야. 그때 나는 진짜 행복한 세일링을 하는구나 하고 느낀 거야. 사지가 멀쩡한 채 세일링 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오만에서 스리랑카까지 범주로만 항해 했다고 했지? 실은 그때 엔진이 고장이었어. 그러니 기주로 갈래야 갈수가 없었던 거야. 확실히 진짜 세일링을 했지. 발전기 동력으로 충전하면서 항해 장비를 사용했지. 발전기 없었으면 아마 그때 죽었을 거야. 세일 요트니까 가능한 일이지.
58세 때 였나? 항해 도중에 어떤 마리나에서 한 아줌마가 저녁에 포트럭 파티를 하자고 배들 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으는 거야. 저녁이 돼서 나는 와인 한 병 들고 갔는데, 내가 제일 막내더라고. 보통 60~70대고 80대도 있었어. 세일링은 보통 그런 나이 대가 되야 제대로 하는 거더라고
저녁 식사 도중에 스코틀랜드 터그보트 선장 ‘존’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엔 존의 팀 모두 휴가를 떠나는 모양이다. 나와 화상통화를 하다가, 뒤에 Charlie's Bar의 여 종업원이 지나가니까, ‘잠깐 여자다! 저 여자를 비춰!’ 하고 한국의 예비군 아저씨들처럼 난리다. 세계 어디나 남자들은 다 똑 같다.
저녁에 리나와 통화를 한다. 행복하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 귀여운 내 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지도 멀쩡하다. 그러니 즐기자. 내일이면 한국에서 아우들도 온다. 이정도면 제대로 멋진 항해다. 내일 화장실 전동 변기와 빌지 펌프만 수리되면 거의 완벽한 항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0 오늘 한 일
윈드인디게이터 수리 완료
항해등 2개 교체, 및 구매 완료
스피드 센서 수리 완료
유수 분리기 오물 다시 한 번 빼기 완료
메인세일 시트 꼬임방지 회전고리 구매 완료
비상 빌지 펌프(김석중 선장님 희사) 및 호스 구매 완료.
빌지 펌프 호스 교환 및 교체/실패
화장실 전동 변기 분해 청소/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