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성구에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십몇년전의 일을 꺼내들고 굳이 말하려는것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일들이 시종 나의 머리속에서 생생하게 기억되기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일요일날 아침이였다. 교원공작을 하시는 어머니가 타향에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뼈마디가 울뚝뿔뚝 삐여져나온 야윈 손에는 귤 한구럭이 들려있었다.어머니께서는 귤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막내딸한테 손수 귤을 먹이려고 병환의몸임에도 마다않고 불원천리 찾아오신것이다.나는 살이 통통 오른 먹음직한 귤을 보고 저모르게 스르르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너무도 좋아서 환성을 지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나를보고 빙그레 웃으시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귤을 먹고싶어하던차라 귤을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했다.어머니께서는 나의 모습을 대견스레 보는것이였다.
나는 귤 한개를 발라서 또 먹으려다가 문뜩 어머님한테 권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들고있던 귤을 어머님한테 권했다. < 너나 많이 먹어라. 나는 이가 시려서 못먹는다.네가 잘 먹는것을 보니 내마음도 포근해진다.> 어머님께서는 두손으로 나의 손을 밀막으며 극구 사양했다.나는 년세가 많아지면 이가 시려서 새콤한 과일들을 못드시나부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더 권하지 않았다.귤을 먹다보니 귤씨가 적잖이 나왔다.나는 불시로 귤씨를 버리지 말고 심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나는 그 나이가 되도록 귤나무를 구경한적이 한번도 없었다.우리 이고장은 사계절의 기후차이가 너무도 심하여 귤나무를 재배할수 없었다.나는 이 기회에 귤씨를 심어서 귤나무가 어떤 모양인지 알고싶었다.
어머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신후 나는 빈 화분통을 가져다 부식토를 꽁꽁 눌러담고 크고 오동통한 귤씨를 골라서 정성들여 심었다.그리고 부식토가 촉촉히 젖어나도록 물을 주었다.나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자바람으로 잠자는 어린아기 들여다보듯이 화분통을 들여다보았다.나는 귤씨가 싹터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그 기다림은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했다.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다.화분통에서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를뿐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또 닷새가 지났다. 나의 궁금증은 극도에 달했다.나는 미세한 변화마저 보여주지 않은 귤씨의 행적을 추적하고 싶었다.나는 나무꼬챙이를 가져다 부식토를 마구 파헤쳤다.순간 나는 멍해지고말았다. 아무것도 없으려니만 여겼던 부식토속에는 길게 뿌리를 내린 귤싹들이 들어있었다.생명의 기운을 한껏 품은 귤싹들은 파르스름한 색을 띠고있었다.귤싹들도 다른 씨앗과 마찬가지로 성장을 하고 열매를 맺는 본능적인 과업을 리행하려면 튼실한 자리붙임이 필요했기에 내가 모르는사이에 만단의 준비를 한것이다.나는 바삐 금방 파헤쳐놓은 부식토를 다시 잘 덮어놓았다.며칠이 지난후 부식토우로 연하디연한 파아란 귤싹들이 여기저기서 숨박곡질하듯 고개를 내밀었다.금방 태여난 새 생명들은 더할나위없이 신선하고 생기가 있었다.나는 귤싹들을 보면서 기쁨의 희열을 느꼈다.
귤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연한 잎들은 한잎두잎 수효가 늘어나고 짙은 파란색을 띠였다.귤나무의 가지는 바늘처럼 가늘던것이 손가락굵기만큼 실해졌다.나는 귤나무가 한뽐두뽐 커가는것이 재미나서 날마다 공기바꿈,해볕쪼임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물주기,비료주기를 거르지 않았다.이외에 가장 중요한 보살핌과 사랑을 주었다.나는 귤나무를 키우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였다.맑은 정기를 품은듯한 귤나무는 대도시의 혼탁한 흐름에 오염되여 리기와 탐욕에 절어있던 나의 정신세계를 순화시켜주었고 실의에 빠져있을때 억센 귤나무를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재충전하군 하였다.
귤나무가 드디여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나는 새파란 귤이 조롱조롱 달린 귤나무를 보니 로동의 결실이 이제야 맺어지는가부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기만 했다.수확철이 되자 나는 온집식구들을 나의 숙소에 초대했다.어머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했지만 귤나무를 키워낸 나를 대견스레 여기고 오시였다.내가 귤이 소복히 담긴 바구니를 상우에 올려놓자 어머님께서 한알을 집어서 드시였다.< 어머니,이가 시려서 못 드신다고 했잖아요?> 나의 의아스런 물음에 어머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 순간 나는 모든것을 알아차렸다. 아, 어머니, 나의 가슴속으로 따스한 난류가 굽이쳐흘렀다. 귤을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였다.내가 귤나무를 키우듯이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않고 자식을 위해 몸을 소진시키고 노심초사하신 어머니의 하늘같은 은혜...아무런 보상과 대가도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그 사랑에 목이 메이는것은 그날 처음이였다...
귤나무는 창턱우에 조용히 서있다.그동안 이쁜 귤들을 키워내느라고 쉴짬마저 없었으리라. 품었던 귤들을 모두 주었음에도 겸허한 빛을 잃지 않은 귤나무는 경건하고 숙연한 모습이다.가진것을 다 주었음에도 여전히 행복해하는 그 모습, 이는 자식을 둔 어머님들만이 할수있는 마음가짐이리라! 창밖에서 비춰들어오는 가을날의 해살이 귤나무를 비춰준다. 어머니의 서리내린 머리칼과 주름이 잡힌 얼굴모습이 떠오른다.또 한해가 여물어간다.
2008년 송화강잡지 12월호에 기재되였음
파랑새(200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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