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가는 길

[미르]

팽목항 가는 길

                                                                        미  르

    팽목항으로 가는 길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예정된 차편이 무산되는 바람에 부랴부랴 다른 차편을 대기시켜야 했다. 게다가 다음 주 모임에 맞춰 도착하기로 한 거제도 멸치가 오늘 오후에 배달 예정이라고 문자가 뜨는 것이 아닌가? 몸담고 있는 예수성심 부산친교회에서 조그만 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멸치판매 사업인데 선장님이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출발도 하기 전에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더운 날씨와 습한 기온에 며칠을 그대로 묵힌다면 멸치의 상태는 불을 보듯 뻔한 일, 무작정 택배차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도착 예정지인 푸른 나무 교육관으로 차를 몰면서 선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택배회사와 송장 번호를 알아내 물류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그리로 직접 가지러 갈 참이었다. 그러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열 상자를 건네받아 우주선보다도 빠르게 남천동 일대를 누볐다. 나머지 세 상자는 거리가 멀어 신부님과의 약속 시간을 감안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쩌겠는가? 별수 없이 아내의 양념 통들이 줄줄이 쫓겨나간 냉장고 자리로 멸치 상자를 밀어 넣었다. 나중에는 결국 내가 쫓겨나겠지만!

  진도에서 신부님과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한 약속은 이미 가망이 없어졌고 단지 궂은 날씨에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문제였다. 상황을 말씀드리려 해도 운전 중인지 도무지 전화가 불통이다. 구포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낙동강 물에 겨우 한숨을 돌리며 가속페달에 힘을 실었다. 우리네의 삶이 본시 이러한 것이다. 예정된 순서란 우리의 의지일 뿐 어떤 변수가 곳곳에 숨어 계획을 털어 버리고 뒤틀리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 닥칠 일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이리라. 비가 내리고 그치길 반복하는 고속도로에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광양을 지나며 어렵잖게 신부님과 통화가 되었다. 사정을 들으시고 빗길에 너무 서둘지 말고 안전하게 오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매년 해오던 ABO 의료봉사가 올해는 팽목항에서 3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동거차도란 섬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의료진의 구성이 어려워 내년으로 연기되고 대신 이 일정에 현지 답사를 하게 된 것이다. 오늘 진도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일찍 팽목항으로 이동해 배를 타야 한다. 

  순천을 지나자 폭우가 더 심하게 내리면서 야간 시야를 가린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의 마지막 변덕인지 날씨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마치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한 점이 되어 삼라 속을 떠도는 그런 기분이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순천에서 접어든 국도는 차들이 한산하기 그지없다. 스산한 날씨에 안개마저 내려 길도우미가 아니면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 인지 종잡을 수도 없는 암흑천지다.

  5시간 가까이 단내가 나도록 닫힌 입은 아직 시간 반을 더 달려야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사람들이 얼마나 그리운가? 숱하게 만나고 헤어졌던 일상의 그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그들이라도 내 삶의 갈래를 하나하나 이어주는 소중한 말벗들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독백이 아닐 바 에야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이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무수히 내뱉은 말의 성찬 속에 누구는 기대가 무너지는 실망과 상처로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위로와 격려를 느끼며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아니면 위로를 주었을까?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소중한 말벗의 가치를 떠올리는 동안 진도의 입성을 확인해 주는 웅장한 진도대교가 훤히 불을 밝힌 채 낯선 이방인을 맞아 준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멈칫했던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말벗에 자신이 없어 움츠려졌던 마음이 어느새 글 벗으로 옮겨가며 회심을 재촉한다. 말벗들에게 이러했으니 글벗 에게야 오죽했을까? 곱씹는 수고도 없이 종이만 축내는 나부랭이 몇 자 적어 놓고 글이라 떠들었으니 글 벗에게 면목이 없기도 매한가지다. 작두에 단박 잘려 나가고도 남을 설익은 생각과 조악하게 나열된 문장은 글 벗들을 얼마나 당황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한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했으니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마음의 벗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일상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에 나는 얼마나 인색했던가? 이 선명한 부끄러움에 양심의 가책 마저도 사치로 여겨져 혼자 마른 침만 꼴깍 삼킨다. 말이든 글이든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 되는 것인데 마음의 평정을 다스리지 않고 지금까지 뱉아낸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 공분을 자아 내었을까?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미숙의 결과요 겸손하지 못한 자만의 소치일 것이다. 

  세 벗이라 불러도 좋을 말벗과 글 벗 그리고 마음의 벗, 어느 벗에게도 성숙하지 못했던 가벼움에 심사가 뒤틀린 탓인지 툭툭 애매한 운전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쳐 댄다.

  빗속이지만 에어컨을 끄고 잠시 창을 열었다. 조수석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불빛을 보아 저곳은 필경 바다일 것이다. 바다가 맞 다면 저 어디쯤 한숨과 비탄과 울분이 어우러진 절망 같은 분노가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고 있을 것이다. 

  떠나간 청춘들! 겁에 질린 촌각의 시간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유도 모르며 속수무책 짧은 생애를 마쳐야 했던 그들이 탐욕에 찌던 기성세대를 향해 던지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결코, 믿기지 않는 일! 믿기지 않은 사실이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비정상적인 채 또 다른 희생양을 담보하며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 아이들의 눈빛 같은 불빛이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진도의 목적지에 다다랐다.

  가는 비가 뿌리는 낯선 진도 시내가 짙은 어둠에 싸여 있다. 곧 소중한 말벗을 만나게 된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진솔한 말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길 바라며 부지런히 약속 장소로 향한다. 정중하게 절제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글 한 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정으로 소통될 때 세상은 더욱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작은 깨우침이 가져다준 기쁨이 운전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했다. 이 기쁨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다면 이번 팽목항으로의 여행은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더구나 동거차도로 가는 잔인한 길목에서 꽃잎처럼 쓰러져간 아이들의 영혼을 잠시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상당한 덤일 것이다.

  날이 밝아 팽목항으로 달리는 길에는 노란 리본 같은 호박꽃이 물방울을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의료봉사를 위한 사전답사를 작년 8월에 했으니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6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이야 나르고 거치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이 

좀더 편리하게 주민들을 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ABO 단원들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성원 바랍니다.                      

[마음지기]

미르님, 도대체 못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빨에, 부지런함에, 글빨까지 갖추었으니 가이 천하무적입니다!!

[강엘리]

강베드로님!
쵝오~~~~~^
ABO봉사 단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요.

[명금당]

베드로형제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말없이 묵묵히 말보다 몸으로 행동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올 해도 의료봉사 잘하고 올 수 있도록 수고해 주심에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oon2]

항상 부지런하고 우리들의 귀감이 되시는 베드로님.
그리하여, 자연스레 모든 것을 떠나 "오빠야."라고 불러드리는 분.
존경하며 따르는 우리를 대신하여 의료봉사까지 나서시니
부디 잘 다녀오십시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키아라]

미르님~ 대단하십니다. 고생하신 팽목항 가는길, 의료봉사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 속에 함께하겠습니다.

[참나리]

미르님 봉사에 박수를 보냅니다.^^
(나는 요리봉사 하겠다 했는데 신부님이 안낑가주시더라구요.ㅎㅎㅎ)

[안창호 신부]

다음에 딱 한 번만 낑가드릴께요~^^*

[yagoba]

강 베드로 오빠야 ! 팔방미남(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고가 많으십니다 의료봉사 무사히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요 사랑합니데이

[안나킴]

베드로 형제님! 동서남북 부지런히 다니시는 열정이 대단하십니다~~은총과 축복 많이 받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