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22
믿음의 정절을 지킵시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보일 듯 말 듯 꾸준히 말씀하시고 있는 것, 그것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라는 것입니다. 범죄 후에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편을 사모하라고 명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우리에 대한 관계를 감추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대한 이 관계의 명령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출애굽을 해서 광야로 나온 후에 계약을 체결한 후에 법을 세우시는데 그 일 계명부터 말씀하시기를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절하지 말라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신명기에 가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십니다. 신 54:5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호 2:16절“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바알이나 일컫지 아니하리라”
고후 11:2절“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우리는 약혼한 상태입니다. 이땅에서 믿음으로 정절을 잘 지키면 계19장에서 결혼식을 할 때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왜 첫 번째 이적이 결혼식을 치루는 잔치집일까, 묵상을 하였는데 그때 주신 감동은 나도 내 신부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엡4:5절에 보면 ‘주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이 말씀은 우리의 참 생명이시며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한분, 그 진리의 사랑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한몸을 이루는 그 하나라는 것이고, 믿음이 하나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의 믿음도 진리의 사랑안에서 우리와 하나라는 것이며, 세례도 하나라는 것은 하나님이 영적인 세례를 통하여 육적인 것을 죽이고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신 그 진리의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약혼한 관계에 있습니다. 약혼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든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약혼을 하고 난 후에는 정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끊임없이 행음하지 말라고 지적을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도 또 경계의 말씀을 하십니다.
1. 우상숭배를 피하라(14~15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피할 수 없는 죄나 시험은 없다고 13절에서 언급을 하시고 다시 우상 숭배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로마의 도시에는 어디에나 우상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상업 중심지 고린도에는 각 지역 사람들이 섬기는 다양한 우상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4~22
특히 고린도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이 있어 음란함의 극치를 달리던 도시였습니다. 신전에 여 사제가 1000명이라 하니 엄청난 신전인 것이죠, 고린도라는 도시는 우상 숭배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도시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고린도 교인들은 우상 숭배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실 것이니 지혜롭게 각자의 방식으로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15절에서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도 포함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무슨 우상숭배야 하고 반론할수 있겠으나, 가볍게 생각해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위험한 곳은 최대한 피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연탄가루를 쌓아놓은 곳에 가면 아무리 조심하여도 묻게 되니까요, 그러므로 죄를 지을 위험성이 높은 환경에 굳이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2.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16~18절)
고대 로마 사람들은 그 도시에 세워진 신전의 우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삼았습니다. 신전에서 이루어지는 우상숭배와 그 제물,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 사회를 결속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반면에 16-17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의 떡과 잔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한 몸과 한 공동체가 된다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또한 유대인들도 성전의 제물을 먹음으로써 제단에 참여한다고 18절에서 말합니다. 이처럼 음식과 신앙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우상 제물은 그저 고기일 뿐이지만, 그것을 먹는 것이 신앙 정체성을 흔드는 요소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 고기를 먹는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기까지 하겠는가 싶지만, 신앙인이라면 비록 작은 영향력이라 하더라도 악한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런일이 반복되면 경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3. 작은 위험이라도 경계하라 19~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19~20절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행위가 된다고 지적합니다. 우상 제물을 먹으면서 성찬에도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잔과 귀신의 잔, 주님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함께 참여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다고 어떤 영적 문제가 일어날까 하겠지만 처음에는 작지만 그것이 쌓이다 보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우상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별로 문제를 삼지 않는데도 저희 작은 숙부께서는 어떤 집에 들어갔는데 상을 차려서 내오면서 어제 우리 제사 지냈어요, 한다면 그 앞에서 아~ 죄송합니다. 저는 제사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거절하라고 제게 일러 주었습니다.
또하나 예를 들어보면, 조류 독감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이 닭고기나 오리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익혀서 먹으면 인체에 무해함에도 불구하고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먹었다가 혹시라도 불행한 일이 생길까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가 심각한 범죄임을 알고 있다면 꺼림칙해서라도 우상 제물을 먹지 않고, 그 신전 주위에 가는 것 자체도 꺼리게 됩니다. 죄가 될 수 있고, 형제가 실족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자제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죄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로 이끄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나는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내려오는 속담에 오얏나무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일 때문에 거룩한 삶이 무너지고 세상의 영향력에 노출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권면했던 것처럼, 죄의 위험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멀리하고 피하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합니다.
이제 마치려합니다.
우리는 믿을때에 주님과 약혼했습니다. 혹은 우리는 주님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약혼자로서 계약체결자로서 그 계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혹은 다른 표현으로 우리의 피 남편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실까요? 바울은 우리를 정결한 신부로 그리스도께 중매한다 하였습니다.
주님이 남겨주신 이 편지들을 읽으며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그날에 기쁨으로 주를 맞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