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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6월6일-7일(土,日)雲
▲지리산[智異山](9)(거림-세석-장터목-천왕봉-칠선계곡-추성리)
해봉(29명+22명)
♠참고
▲지리산국립공원[智異山國立公園]
소재지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
국립공원 지정연도 1967년
면적 438.9㎢
명물 지리산 10경, 화엄사
[네이버 백과사전]
공원보호구역 8.3㎢이다. 1967년에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국내 최대(해상공원 제외)의 규모를 자랑하는 지리산국립공원은 산세의 웅장함에 있어서도
으뜸이어서 천왕봉(天王峰:1,915m)·반야봉(般若峰:1,752m)·노고단(老姑壇:1,507m)의 3대 주봉
을 비롯하여 해발고도 1,500m를 넘는 고봉들(帝釋·烟霞·三神·촛대·靈神·德坪·明善·토끼봉등)
이 많다.
해발고도 1,000m 이상 되는 준령이 20여 봉, 그 밖에 수많은 대소 산봉이 서로 어우러져 거대
한 산악군(山嶽群)을 형성한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가 42km이며, 10
km 내외의 대소 능선도 15개를 헤아린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을 비롯하여 뱀사골·칠선(七仙)·한신 등 4대 계곡 외에 심원
(深院)·대성동(大成洞)·백무동(白武洞) 등 20여 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특색을 자랑한다.
불일·구룡·용추·칠선·차발목·삼홍소 등 이름 있는 폭포들이 계곡을 따라 산재한다.
한국 5대악(大嶽)의 하나인 지리산은 울창한 자연림과 운무로 뒤덮인 영산(靈山)이기도 하여
그에 어울릴 만한 유서깊은 고찰·국보·보물 등의 문화재도 풍성하게 모여 있다.
지리산 남서쪽의 제1관문 화엄사(華嚴寺)는 신라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에는 각황전(覺皇殿:국보 67)·사사자(四獅子) 3층석탑(국보 38)·석등
(石燈:국보 12)·대웅전(국보 299)·동5층석탑(국보 132)·서5층석탑(국보 133) 등이 있다.
연곡사동부도(燕谷寺東浮屠:국보 53)·연곡사서부도(보물 154)·연곡사북부도(국보 54)·연곡사
3층석탑(보물 151)·연곡사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보물 152) 등이 있고, 그 밖에 천은사
(泉隱寺)·실상사(實相寺)·쌍계사(雙磎寺) 등이 모두 신라 때 세워진 고찰로 전해진다.
화엄사 지장암 옆에 있는 수령 300여 년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38)가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지리산국립공원에는 824종(목본 245, 초본 579)의 식물과 421종
(짐승 41, 조류 165, 곤충류 215)의 동물이 분포, 서식한다. 명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을
위한 등산로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고 지리산은 철따라 산 모습을 달리한다.
명승과 비경을 열거한 지리산 10경(景)이 있는데, ① 노고운해(老姑雲海), ② 피아골 단풍,
③ 반야낙조(般若落照), ④ 섬진청류(蟾津淸流), ⑤ 벽소명월(碧沼明月), ⑥ 불일폭포, ⑦ 세석
(細石) 철쭉, ⑧ 연하선경(烟霞仙景), ⑨ 천왕일출(天王日出), ⑩ 칠선계곡 등이다.
♧ 산행 코스
11시30분 내대리
12시00분 거림
13시55분 갈림길폭포
15시40분 세석산장(휴식)
16시15분 촛대봉
17시35분 연화봉
17시50분 장터목대피소(1박)
*6월7일 04시30분 기상
07시35분 출발
08시40분 천왕봉
08시50분 칠선계곡 철 계단
10시00분 마폭포
12시00분 대륙폭포
12시10분 칠선폭포
13시45분 옥녀탕
14시36분 선녀탕
16시00분 추성리
총 13시간40분
☞☞☞ 지리산 10경인 험난하다고 소문난 칠선계곡을 타기위해
현충일, 태극기를 꽂아놓고 집을 나섭니다.
이런 산을 찾는 자유를 누리는 행복을 준,
수많은 호국영령에 감사하며...
시민회관 앞의 관광버스 안은 거림에서 세석산장까지 갔다
돌아오는 B팀 22명과
장터목 대피소에서 일박하고 천왕봉에 올라갔다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는 A팀 29명이 동승 하여
집행부와 정회원 몇 명은 통로에 앉는 초만원을 이룹니다.
남해고속도로에 오르자 산행안내 방송과
지난 산행 시 촬영한 비디오를 시청하며 달립니다.
중간휴게소에 들리고
산청군, 지리산의 낙동강 발원지 강 상류로 부터
흐르는 물이 화살같이 빠르다하여 부쳐진 시천면(矢川面),
안쪽지역이 넓다 해서 부쳐진 내대(內大)리 도착이 11시26분,
도로공사로 관광버스는 더 가지 못하고 전원 하차.
산자락에 휘감고 있는 안개구름을 촬영하고
곧 큰 숲으로 형성되었다는 거림(巨林)으로 출발합니다.
12시 거림 도착.
인원점검을 하는데
몇 년 전, 바래봉 산행 때 비디오 촬영하는걸
보았다며 한 장년회원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본격적인 계곡을 낀,
바위와 돌의 긴 너덜겅을 따른 긴 오름을 탑니다.
간간이 나타나는 산죽.
안개구름 속에 주변은 습기를 잔뜩 머금고
그 청정함을 자랑합니다.
12시38분, 앞서가든 회원들이
적당한 자리에서 첫 휴식을 하고 있습니다.
잡목사이의 나무 가지와 잎 사이에 거미들이 집을 지었는데
물방울로 치장하여 먹이 사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3시53분, ‘세석산장 6.2Km' 이정표를 거쳐
’세석산장 4.7Km 거림 5.0Km 해발1050m' 이정표
폭포갈림길에서 선체 빵으로 점심식사 겸
휴식을 마치고 곧 출발합니다.
촬영하다 보면 남들보다 지체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촬영시간이 바로 휴식시간입니다.
회원들이 통나무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는데 뜻밖에
나이 76세라는 대단한 할머니가 통나무 계단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할머니! 힘들지 않습니까? 대단하십니다.”
“힘~들지~ 그래도 젊어서 산을 오르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산을 안타능기요!”
장년회원들과 농반 진 반의 대화를 나누는 걸 뒤로 들으며
계단을 피해 갓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내가 그 나이에 지리산을 오를까 자문하면서...
등로변의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들.
바위에 파랗게 낀 바위 옷들이 싱그럽기만 한데
회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갑니다.
14시20분, 바윗돌 사이의 샘에서 한 회원이 물을 마시고 있고
등로변의 나뭇잎은 수정 같은 물방울을 아롱아롱 얹어놓고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사용할 텐트를
배낭위에 무겁게 얹어 놓은 채
메고 올라가는 이진복,
뒤이어 이종원회원도 먹거리를 넣었는지
큼직한 배낭을 힘겹게 메고 올라갑니다.
15시, ‘세석산장 1.7Km'이정표를 지나
회원들은 거의 바지 아랫도리가 진탕이 되어있습니다.
세석산장을 목전에 두고 시드는 철쭉과 대조적으로
각종 야생화는 싱싱하게 피어있습니다.
날이 궂고 언제 비가 내릴지 염려되어서인가
아니면 잿빛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체념해서인가
B팀은 벌써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안개구름이 자욱한 헬기장에 도착한 게 15시40분.
앙증스럽고 싱그러운 야생화들을 캠코더에 담으며
15분간 휴식, 임대장이 A팀 인원점검을 거듭하고
15시55분, 장터목으로 출발합니다.
계속되는 짙은 안개구름 속으로 촛대봉을 오르는데
다른 팀의 등산객이 안고 온 땅딸이 애완견이
이리저리 살피며 올라가 등산객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16시15분, 안개구름속의 촛대봉에서 제마다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가다 철 계단을 거쳐 잎이 부분적으로 하얀
특이한 개다래나무 잎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열 살 먹었다는 작은 배낭을 멘 어린이와 조우하는데
“안녕!”
하고 인사하니
지나치다 말고 꾸벅 허리를 굽힙니다.
어린이보다 데리고 가는 아빠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사랑을, 가정교육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까닭일까요?
얼마가지 않아 대단한 비만 청년과 조우,
어느 산객이 주책없이 체중이 얼마 나가느냐고 물으니
무뚝뚝하게 답합니다.
“145Kg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라고 배낭에다 노란 천을 덮은
장년 등산객이 앞에서 걸어갑니다.
저가 격주 백두대간 종주중이여서 인가 보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17시35분, 우로 일출봉과
해발 1667m의 연화봉 이정표를 지나
17시50분, 안개구름으로 시계가 흐린 장터목 대피소를 내려다보는데
헬기장은 수많은 천막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고
아예 대피소 안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항입니다.
장터목{場基項)은 옛날 동쪽의 시천(矢川)주민과
서쪽의 마천(馬川)주민들이 물물교환 하던 장소인데
지금은 등산객들의 시장바닥 같은 쉼터가 되었습니다.
이미 연락이 되어있었는지 전에 집행부에서 활약했든
대피소에 근무하고 있는 강성근군이 마중 나와
제석봉쪽으로 올라가는 대피소 옆 빈터로 안내합니다.
천막 2개와 포장 박스와 모포 등을 지원받아
집행부에서 갖고 간 천막으로 순식간에 3동의 천막을 세웁니다.
그리고 마련해 간 먹거리로
저녁식사 준비를 합니다.
우선 이진복회원등 삼총사가 마련한 삼겹살로 소주파티가 벌어지고
서너 개의 버너와 코펠로 라면과 밥과 찌개가 익어갑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야! 라면 국물이 이렇게 맛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
“뭐니 뭐니 해도 된장찌개가 최고야!”
“야! 상추까지 갖고 왔네!”
이런 관경을 캠코더로 촬영하며
“누가 제일 맛있게 먹는지 콘테스트 해야지!”
했더니
한 중년회원이 상추에다 밥과 갖은 찬으로
주먹만 하게 싸서 두 눈 부릅뜨고 입 하나 가득 밀어 넣습니다.
“어이~ 어이~ 입 찢어지겠다!”
평소 소식인 차 회원이 젓가락으로 김치를 먹다
말끄러미 쳐다보고 좌중은 폭소가 터집니다.
건너편 천막에서는 푸짐하고 든든한 이진복,
항상 봉사하는 노총각 이종원,
그리고 김성수 군이 둘러앉아 뽀얀 김을 올리며
통닭 백숙을 보글보글 끊이며
“여긴 아무나 오면 안돼요!”
하며 침을 삼킵니다.
좀 뒤 김현주를 부르고
아가씨와 아주머니들만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 포식한 뒤라
백숙이 팔리지 않아 세 사람이 떡을 칩니다.
이런 요란한 정 주고 받기가 계속되다가
천막이 배정됩니다.
한 동은 여자 전용, 두 동은 남자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8명이 들어간 천막 안은 어깨도 펼 수 없지만
송판에 비닐을 깐 덕인가 준비해간 오리털 조끼 탓인가
추위를 모르고
천막 덮개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속에 빠져듭니다.
주당이 아직 있었는지 어렴풋이
밖에서 탄성이 들려옵니다.
“야! 안개구름이 겉이네.”
“달빛 속에 별이 총총하고..
달빛아래 운해는 정말 기가 막히네!”
*6월7일 4시30분, 단독 기상.
천왕봉 일출은 당초 계획에 없어 기대하지 않았고
달빛 운해와 일출봉 일출촬영을 위해
조용히 텐트를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밖은 안개구름 속.
혹시나 해서 캠코더와 캐논을 메고 연화봉쪽으로 올라갑니다.
일출봉에서 행운의 또 다른
일출을 기대하며 뚜벅뚜벅 올라가는데
안개구름은 좀체 게이지 않습니다.
혹시나 해서 좌측 일출봉으로 올라갔으나
역시 나로 끝나,
일출 대신 안개구름 속에 앙상하고 외롭게 서있는
괴기한 고사목 한 그루만 촬영하고 내려옵니다.
아침은 대충 느긋하게 때우고
07시35분, 천막 철수,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 뒤.
듬직한 임대장이 인원점검을 마치고
헌신적으로 봉사한 강군과 작별.
천왕봉을 향해 가파른 제석봉을 오릅니다.
좌우로 앙상한 고사목을 바라보며
안개구름속의 산행은 계속됩니다.
제석봉을 넘어 통천문을 머리에 두고
빨갛게 상기된 소년이 부모보다 앞장서
올라가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고 통천문을 거쳐
상추쌈 중년이 가픈 숨을 몰아쉬는 추성리 갈림길을 지나
하늘기둥, 天柱라고 희미하게 음각된 암괴를 바라보며
8시40분, 인파로 덮인 햇빛 빤짝이는
천왕봉에 올라섭니다.
이제 안개구름은 세찬 바람에 날아가고
각자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습니다.
8시50분, 되돌아 내려와
오른편의 '추성리 10Km'의 이정표를 따라 내려갑니다.
가파른 내리막과 철 계단을 내려
너들지대와 비교적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가다
9시20분, 첫 휴식을 취합니다.
칠선계곡(七仙溪谷)은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일곱 선녀가 그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틈에
숨겨 버렸는데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 때
사향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산사태가 난 아슬아슬한 코스를 지날 때
주회원이 위험하다며
“야~~!”
소리를 내고 얼마가지 않아
앞장서 가든 한 젊은이가
“이 나무속에 새 한 마리가 들어갔어요!”
하며 촬영하라고 합니다.
약 3m 높이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딱따구리가 서식하는 모양입니다.
주거침입을 할 수 없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
구멍만 촬영하고 깨끗이 포기하고 내려 갑니다.
10시3분, 칠선계곡의 최상층 폭포인
‘표고 1400m 마폭포, 천왕봉 3Km 마천 15Km’
이정표 아래,
마폭포에서 회원들이 아침에 못한 세수를 합니다.
다시 된비알과 모가 없는 좌측으로 비탈진 너들지대,
한 아가씨 회원은 총각회원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조심 통과하고
11시25분, 짧은 밧줄이 매달려 있는
바위지대를 내려
11시40분, 작은 폭포를 건넙니다.
12시, ‘대륙폭포, 도착.
’추성리 9Km'라는 이정표가 서있는데
이상한 건 천왕봉에서 약 3시간을 내려왔는데
겨우 1Km 밖에 못 왔단 말인가?
천왕봉의 이정표가 잘못된 건가.
대륙폭포의 이정표가 잘못된 건가?
너덜 비탈과 밧줄은 계속되고
12시10분, 표고 870m의 칠선폭포 도착.
‘추성리 7.5Km’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뒤따라오는 임대장에게 폭포로 내려가
촬영하고 오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우측에 있는 폭포 쪽으로 내려갑니다.
웅장한 폭포소리가 고막을 마구 두드립니다.
한 젊은이가 카메라를 건네주며
촬영을 부탁하기에 좋은 위치에서 찍어주려고
둥근 바위를 건너뛰다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고 맙니다.
그 바람에 목에 건 캠코더가 바위에 충돌,
충격을 받아
뒤에 알았지만 앰프가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수리비 65,340원)
13시40분, 우측으로 벼랑아래 계곡물이 흐르고
나무줄기가 옆으로 뻗어 나와
그걸 넘어 밧줄을 잡고
한참 내려가는 난코스에서
한 장년회원이 무심코 소리칩니다.
“와~~! 사람 죽여주네!”
13시45분, 표고 650m의 옥녀탕 도착.
‘추성리 4Km 마천 8Km 칠선폭포 3.1Km’
라는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그 아래 맑은 옥녀탕 주변에
오늘 아침에 부산에서 출발해 도착한
해봉산악회 회원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신선놀음하며 점심식사를 하고
탁족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과 어울려 라면으로 식사를 마치고
14시30분, 추성리로 출발합니다.
모가 없는 바위를 건너뛰며
14시36분, ‘선녀탕 표고 620m 옥녀탕 60m 추성리 4Km, 천왕봉 10Km,
그 옆에 매직으로 14K'라 쓰 놓은 이정표와 마주칩니다.
거리 혼란은 여기저기 산제해 있습니다.
천왕봉 아래 이정표가 잘못된 것.
추성리 10Km 가 아니라 14Km 가 정답입니다.
15시25분, 흔들다리를 건너고
1년 전 ‘칠선계곡 선녀탕’ 산행시 골절 후,
체력 부족으로 되돌아갔든 지점인 두지터
빗긴 바위길을 올라서면 휘파람불며 가는 산행길이 시작됩니다.
15시35분, 원두막과 특색 있는 다실이 있는,
옛날 성(城)의 곡식을 채우는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의 두지터(斗地攄) 쉼터를 지나
16시, 옛날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체류하면서
이곳에다 성을 쌓아 성의 이름을 추성(楸城)이라 하였기에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추성이라고 하는 길조의 별이 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 추성리(楸城里)에 도착합니다.
참고로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에 보면
천왕봉고성(天王峰古城)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일명 추성(楸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하며, 의탄(義呑)에서 5~6리 떨어졌는데,
마소가 갈 수 없는 곳이고 안에는 창고 터가 있다. 세상에서는 신라가 백제를 방어
하던 곳이라 전한다."
국골 쪽 좌측산등성이에는 약 1km에 이르는 석성(石城)의 흔적이 있고 높이 10m 의
망암(望岩)이 있어 아래쪽이 훤히 관찰된다. (지금 이 성 안에는 3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마을 이름도'성안'이다).
아무튼 군사적 요충지로서 그 이후의 역사에서도 몇 번 등장하는 이 추성의 정확한
축조는 알 수 없는데 다만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가락국 양왕(讓王)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피난하여 군마를 훈련시켰다는 말만 전해온다.
(지금의 국골도 이러한 배경에서 '國'자를 쓰고 있다.)
첫날 내대리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5시간 40분,
다음날 장터목애서 추성리까지 8시간
합계 13시간 40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몹시 긴장하며 산행했든 칠선계곡 산행.
캠코더가 앰프가 고장나 칠선폭포 이후의 산행은
먹통으로 촬영했지만 오염되지 않는 칠선계곡의
그림을 담았다는 걸로 만족합니다.
16시50분, 칠선계곡 당일 회원 23명과
합계 52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포장 일차 선을 거쳐
독특한 모양의 의탄교(義灘橋)를 건너
급하게 흐르는 물이 마치 말이 뛰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부쳐진 좌 마천면(馬川面), 백무동(白武洞)대신
우, 휴천면(休川面)으로 2차선 지방도로에 오릅니다.
내 옆자리는 당일 코스로 온 언젠가 동석했든
국제시장에서 금은방을 한다는 깐깐한 아주머니가
어디서 좋지 않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지!”
하며 누구에게 마구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좀 전의 때 묻지 않은 지리산 칠선계곡의 자연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입니다.
남해고속도로의 정체로 예상시간보다 늦은
21시28분에 서부산 T/G를 빠져 나왔습니다.
# 참고로, 7년 전 산행시는 천왕봉에서 칠선계곡 선녀탕까지
휴식년제로 묶였는지 몰랐고, 지금 그 휴식년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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