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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념 행사에 추모 미사 봉헌
제주4․3 제76주년 서울 기념 행사에서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6일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청계 광장에서 진행한 이날 행사에는 추념식과 각 종단의 종교 의례로 천주교 추모 미사와 천도교 합동위령식, 원불교 위령제, 개신교의 추모 기도회가 있었다. 불교는 앞서 3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또 광장에는 4.3을 제대로 알리는 다양한 부스를 설치했다.
미사는 사제 여섯 명이 공동 집전하고, 수도자와 신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주 4․3 기도문’을 함께 올렸다. 기도문에는 정의와 용서를 아우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함축해 담았다.
추모 미사를 공동 집전하는 사제들. ©김지환 기자
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주4․3 제76주년 서울 기념 행사에서 천주교가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김지환 기자
김수남 신부(전주교구)는 강론에서 그가 신학교에 입학했던 2012년에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로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그해 제주도의 구럼비가 발파됐다고 했다. 방학 중 강정마을 거리 미사에 참여하고, 제주교구 교우와 우애를 다졌던 추억을 이야기한 그는 강정평화센터 부원장이었던 부재환 신부를 통해 “제주 4․3이 과거에 그친 일이 아니라 오늘날엔 강정이란 모습으로 그리고 제2공항이란 모습으로 계속 변형되면서 그 역사를 이어 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방학 때마다 알뜨르 비행장과 항공 유적지 등을 돌며 “제주는 아름답지만 시리며 걸음걸음마다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추모의 공간”으로 기억했다. 제주도민은 저항과 순응의 역사 속에서 살아왔는데, 4․3을 거치면서 이른바 레드콤플렉스로 침묵을 강요당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강우일 주교가 제주에 와서 끔찍한 대학살이 있었음에도, 강요된 침묵으로 자녀 세대인 청장년층이 4․3을 잘 몰랐다는 사실에 개탄스러워했다며, 제주 4․3을 둘러싼 명명에 대한 논란 와중에 자비와 화해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그는 “이 잔인한 달 4월, 사순과 부활의 교차 지점에서 교회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결국 평화일 것이다. 팍스 로마나로 대표되는 힘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평화, 두려움과 상처를 넘어서, 치유하시는 평화, 상처를 외면하는 평화가 아니라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상처를 입은 이(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선포하시는 평화가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평화가 선포될 때, 두려움 속에 갇혀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 기쁨에 찼듯이, 우리 또한 참된 용서와 평화의 기쁨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비단 4.3뿐만 아니라 같은 이념 갈등의 굴레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 가운데 파고들어가 평화의 사도로 자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추모이고, 또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는 온유한 복수이며, 4.3이 후대에 전해줄 수 있는 인권, 존엄, 평화의 메시지일 것"이라고 전했다.
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주4․3 제76주년 서울 기념 행사에서 천주교가 추모 미사 중에 성체를 나누고 있는 모습. ©김지환 기자
이번 추모 미사는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함께 걷는 예수의 길이 공동 주관했다.
제주4·3 제76주년 서울 기념행사는 청계광장, 서대문 독립공원, 노무현시민센터에서 2주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3일부터 5일까지는 서대문 독립공원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고, 6일은 청계광장에 연대의 장을 꾸렸다.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는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서울 4․3 영화제를 열 예정이다.
이날 청계 광장에서 열린 ‘4·3과 친구들 연대 광장’에서는 각 부스가 4·3을 제대로 이해하는 역사와 콘텐츠를 알렸다. ©김지환 기자
이날 청계 광장에서 열린 ‘4·3과 친구들 연대 광장’에서는 각 부스가 4·3을 제대로 이해하는 역사와 콘텐츠를 알렸다. ©김지환 기자
제주 4․3 기도문
〇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지은 모든 죄를 솔직하고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미군정은 사람들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의 외침을 우선 먼저 듣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총칼로 막아버렸습니다. 무장대는 잔혹한 폭력에 견디지 못해 주님의 가르침을 잊고 폭력으로 대항하였습니다. 군경은 성급하게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단정하고 비무장에 저항도 하지 않는 수많은 우리들의 아빠와 엄마와 아들과 딸과 남편과 아내를 무차별적이고 집단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정부는 악행과 죄를 뉘우치고 사죄하기보다는 오히려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단죄하고 배척하였습니다.
● 용서의 하느님, 저희는 하느님과 이웃과 저희 스스로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가 지은 수많은 죄에 대하여 깊이 참회하고 진심으로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그리고 저희의 모든 죄를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진실된 언어로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게 하소서. 죄의 고백을 통해서 비로소 저희는 짙은 어둠 속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〇 정의의 하느님, 저희가 제주 4․3의 진실을 올바로 규명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소서.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이 세상에 주님의 정의를 바로 세우게 하소서.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모든 이들 앞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저희도 자비로울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 화해의 하느님, 저희가 당신께 돌아설 때면 어제든 기다려 주시고 맞아 주시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느님의 정의를 회복하는 가운데 서로 용서하며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가 제주 4․3으로 희생된 무고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의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소서.
〇 평화의 하느님, 제주 4․3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화해와 상생의 여정을 걷고 있는 저희를 축복하여 주시어 저희가 복음의 기쁨 가운데 참 평화를 일구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소서. 한민족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와 제주도가 강대국을 위한 군사기지가 되고 전쟁터가 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늘 깨어 기도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수많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죽음의 교훈이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실현하는 부활의 밑거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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